[공모전] 센티넬의 사랑방식

1화 가장 후회되는 선택

이정환 image

이정환

갈수록 빨라지네.

이여주

아니면 네가 점점 느려지고 있다거나.

긴칼을 내려놓는 나에게 다가오며 말을 건내는 이정환에게 무뚝뚝하게 대답하자 그는 내 옆에 엉덩이를 대고 앉았다. 이정환은 태어날때부터 친구였다. 아니, 정확히는 친분이 계시던 부모님덕분에 태어나기 전부터 친구가 될 운명이었다.

땀에 젖어 자꾸 달라붙는 머리카락들이 거슬렸는지 강아지마냥 고개를 흔들던 정환이는 목을 천천히 돌리며 일어났다.

이정환 image

이정환

넌 왜 동생처럼 옷만드는거 안배우고 용병이 되려고하는거야?

이여주

내가 누누히 말하지 않았어? 난 그런거 만들만큼 솜씨가 좋지않아. 내 동생은 그런 손이 타고난거고.

이정환 image

이정환

아무리 그래도 용병은 센티넬의 개가 되는거일 뿐인데. 자존심도 쎈 애가.

이여주

흥, 대련에서 나한테 한번이라도 이기고 잔소리하지?

이정환 image

이정환

그래. 내가 너는 못 이기겠다.

정환이의 말에 흥, 코웃음을 치며 물건들을 정리하자 못이기겠다는 듯이 날 따라 칼과 활들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그래, 나는 용병이 되고 싶은게 아니라 용병이 될 수 밖에 없는것이다.

이 세계는 센티넬과 가이드들이 지배를 하고 있고 일반인들은 하루하루 먹고살기 힘들만큼 가난한 삶을 살고있다. 그건 우리집도, 정환이 집도 예외가 아니었다.

몸이 불편하신 아버지와 그런 아버지를 지극히 보살피는 어머니. 그리고 착한 내동생. 전기가 끊기기도 하는 집사정때문에 나는 빠른 손놀림을 악용해 도둑질을 하기도 다반사였다. 그런 우리집의 유일한 희망이 내동생 이지은이다.

태어날때부터 손이 곱더니 옷을 만드는 솜씨도 모두가 인정할 만큼이나 예사롭지않았다. 센티넬이 아닌 일반인이 직업을 갖는다는건 하늘의 별따기보다 어렵다.

그런 상황에서 지은이는 고운 옷을 만들어 센티넬과 가이드에게 물건을 팔 수 있었고, 수입 또한 일반인들 사이에서 탑을 달리고 있었다. 애초에 센티넬들만 들어갈 수 있는 시장에 물건을 판다는 목적으로 들어가는 일반인은 지은이가 유일무이했다.

그만큼이나 지은이의 옷은 아름다웠다.

이여주

정환아. 너는 왜 용병이 되려는건데?

툭, 내가 먼저 질문한것 자체가 놀라운지 눈을 동그랗게 뜨는 정환이의 모습에 피식, 웃음이 새어나왔다.

이정환 image

이정환

이여주가 나한테 그런 관심도 있었냐.

이여주

뭐, 나름 나한테 하나밖에 없는 친구니까.

이정환 image

이정환

영광입니다~

이여주

말돌리지 말고.

이정환 image

이정환

우리집이 너네집보다 가난한건 알고있냐.

이여주

일반인들 중에 가난하지 않은 집이 있나.

이정환 image

이정환

그건 그렇지. 근데 우리 이번에 집세 못내면 팔려가.

이여주

뭐?

이정환 image

이정환

난 너처럼 도둑질을 할 줄아는것도 아니니까. 할줄아는거라곤 몸쓰는게 다인 나한테 적합인 직업이 용병이지 않겠냐? 그 잘나신 센티넬들밑에서 일하면서 지키는 개가 되는거.

이여주

...

이정환 image

이정환

용병이 되면 쥐꼬리 만하지만 월급도 나오고 집을 제공해준데.

이여주

...

이정환 image

이정환

그놈의 돈때문에 난 자진해서 그 새끼들의 개가 되는거지. 뭐, 그건 너도 마찬가지겠지만.

그래, 정환이의 말이 맞았다. 결국 나도 그 쥐꼬리만한 돈을 벌겠다고 용병이 되려고 하는것이다. 나는 지은이처럼 할줄 아는게 있는게 아니니까.

돌아온 집은 창문으로 들어오는 달빛에만 의존한채 한기를 머금고 있었다.

이지은 image

이지은

언니!

이여주

뭐.

이지은 image

이지은

또 나가서 칼놀이했지?!

이여주

칼놀이라니.. 자존심 좀 지켜주지? 엄연히 대련이라고.

이지은 image

이지은

흥!

저 새침하고 도도한 기지배를 어쩌면 좋을까. 걱정이 되어 한 말인건 알고 있지만 꽤나 얄미운 지은이의 모습에 절레절레 고개를 저으며 방으로 향하자 지은이는 내 표정을 살피듯 고개를 살짝 꺽어 슬쩍 눈을 흘겼다.

17살이라고 하긴 아직 어린티를 벗지못한 지은이의 얼굴만큼이나 나에게 하는 짓은 아직 어리고 여렸다. 다른사람들에게는 똑부러져 사랑을 받으며 조금의 질투를 일으키는 어린 동생이었다

이지은 image

이지은

부모님은 이미 주무셔.

이여주

넌 왜 안잤어.

이지은 image

이지은

주문받은 옷 좀 마무리 하느라.

이여주

흐음, 고사리같은 손으로 뭘 만든다고.

이지은 image

이지은

허! 언니. 언니빼고 세상사람들 모두가 내 솜씨 알아주거든?

이여주

그래 그래 잘났다.

정환이와 꽤 오랫동안 대련을 했는지 부모님은 이미 잠들어계셨고 나또한 쏟아지는 잠에 뭉친 근육을 주무르며 침실로 향했다.

낡은 나무판자로 이루어진 바닥이 걸을때마다 삐걱거려 나도 모르게 뒷꿈치를 든채 걸음을 옮겼다. 지은이는 쿵쿵, 총성마냥 큰 소리를 내며 걸음을 옮겼지만.

잠든지 얼마나 지났을까. 새벽인지 푸르스름한 하늘이 창밖을 덮고있었다.

이지은 image

이지은

언니! 언니!

내 몸을 흔들며 속삭이는 지은이의 소리에 눈을 천천히 뜨자 당황한 기색을 숨기지 못하는 지은이의 얼굴이 코앞까지 다가와있었다.

이여주

뭐야

내가 미간을 푸석하게 구긴채 지은이를 밀어내자 톡 쏘는 말씨로 내 잠을 완전히 깨워버렸다.

이지은 image

이지은

언니 정환이오빠 왔다고!

이여주

이 시간에?

이지은 image

이지은

응. 근데 울고있어 빨리 나가봐.

걱정이 되는지 다급하게 내등을 밀며 말하는 지은이를 뒤로한채 나도 망설임없이 집을 나섰다.씨발 사내새끼가 왜 울고 지랄이야. 쓸데없이 걱정되게.

'우리 팔려가.' 아까 정환이한테 들었던 그 말이 현실이 되지않기를 간절히, 또 간절히 바라며 난 빠르게 걸음을 옮겼다.

하, 울었다는 말이 거짓이 아닌지 땅을 바라보며 한숨을 내쉬는 정환이의 눈이 붉게 충혈되어있었다.

이여주

이정환.

이정환 image

이정환

여주야...

이여주

뭔데. 무슨일인데.

이정환 image

이정환

하... 씨발...

내 얼굴을 보자 벅차오르는지 얼굴을 쓸며 욕을 내뱉는 정환이의 목소리가 물기에 젖어있었다.

이여주

무슨 일이냐고!!

내가 언성을 높이고 나서야 후, 숨을 고르며 날 바라보는 정환이의 입이 열렸다.

이정환 image

이정환

내일까지 돈 안내면 팔려간데.

이여주

...

이정환 image

이정환

나도. 내 동생도.

이여주

...

나와 정환이 사이에는 한참동안 정막이 깔려있었다. 할말이 없는것이 아니었다. 정환이는 정환이 나름 이 좆같은 세상을 욕하고 싶고, 불만을 토로하고 싶겠지만 우리가 그런 이야기를 한다고 바뀔 세상이 아니었다.

그걸 알고있는 나와 정환이는 둘다 아무말도 할 수 없는 것이었다. 말해봤자 똑같은 절망만을 느낄뿐 변하는건 없기 때문이다.

근데, 나는 무슨 희망을 생각하는 걸까. 이 위험한 짓을 왜 하려는걸까. 정환이가 내 목숨을 걸 만큼 소중한 친구인걸까, 아님 세상에 대한 도전인걸까.

이여주

너 얼마 필요한데.

이정환 image

이정환

오백.

이여주

...

이정환 image

이정환

너 무슨생각해. 이여주.

이여주

오백. 내가 몇년일해도, 몇년을 이 동네에서 도둑질을 해도 못버는 돈인데. 센티넬이랑 가이드들이 옷에 달고다니는 보석하나만 훔쳐도 구할 수 있는 돈이야.

이정환 image

이정환

너 이상한 생각하지마. 애초에 이 동네에는 센티넬들이 오지도 않아. 이여주 나는 괜찮아. 마지막으로 네 얼굴 보려고 온거 뿐이야.

이여주

지은이. 지은이는 그 센티넬들의 시장에 들어갈 수 있어.

이정환 image

이정환

이여주!

이여주

날 믿어. 나 도둑질만 10살때부터 10년차야.

이정환 image

이정환

너 설마 진짜 그 새끼들 물건 훔치게?! 걸리면 너도 팔려가!

이여주

안걸리면 되는거야.

이정환 image

이정환

이여주!!!

그대로 내 팔을 붙잡는 정환이를 뿌리치고 집으로 들어갔다. 있잖아 정환아. 나는 이 개만도 못한 세상이 너와 나를 갈라놓는게 싫어.

이여주

지은아

이지은 image

이지은

응? 정환이 오빠는 갔어?

이여주

나 좀 도와줄 수 있을까?

이지은 image

이지은

물론이지.

심각한 내 표정을 한번 훑던 지은이는 몸을 일으키며 대수롭지 않게 대답했다. 긴장한 나를 오히려 격려해주는 듯한 기분에 난 입꼬리를 말아올리고 지은이의 뒤를 따랐다.

이지은 image

이지은

언니는 내 조수인척 하면 되는거야. 그냥 이 천들 들고 고개 숙이고 뒤따라오면 돼. 시장안으로 들어가면 정확히 10분안에 나와야해. 가게에 재료만 가져다두고 나온다고 할거니까.

이지은 image

이지은

난 가게에 물건 내려놓고 나가는 문으로 걸어가고 있을거니까 제대로 처리하고 내옆으로 와. 그러고 나가면 완벽해.

똑부러지게 말을 마친 지은이는 내 머리에 모자 하나를 씌워준 후 걸음을 옮겼다. 한걸음 한걸음 옮겨서 마을에서 멀어질때마다 점점 가까워지는 시장에서는 빛이 새어나왔다.

우리는 저 전기 하나 키지못해서 전전긍긍하는데 화려한 조명들로 전기를 낭비하는 그들의 모습에 이를 악물었다. 고개를 푹 숙이고 지은이의 발을 따라 얼마나 걸었을까 걸음을 멈춘 지은이의 앞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용병1

무슨일이야.

이지은 image

이지은

오랜만이에요. 내일 장사할 물건들 가져다두려고 왔어요.

용병1

뒤에는

이지은 image

이지은

아, 제 짐꾼이에요. 같이 들어가도 되죠?

태연하게 말하는 지은이의 모습에 의심을 거둔듯한 남자는 길을 열어주었다. 그렇게 발을 넣었다. 센티넬들의 시장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