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험한 수사일지

Ep. 66 ° 강력 1팀, 우리의 최선

각자의 안정을 찾으며 시간을 보내고 있는 강력 1팀 팀원들. 그곳의 팀장인 김 경감은 딱히 찾을 안정이 없었다. 본가도 차로 2-3시간은 가야 있었는데 마침 자차가 고장난 때였고, 형제가 있던 것도 아니었기 때문에.

찾아갈 수 있는 곳은 또 자신이 팀장으로 있던 경찰행정 2팀 뿐이었다. 자신보다 나이도, 직급도 어린 팀원을 보러간다. 김 경감이 빠지고 경찰행정 2팀은 그 팀원밖에 안 남은 수순이었으니 걱정이 되기도 했다.

"조 경장~"

"어! 경감님, 오셨어요?"

"많이 안 놀란다?"

"사실... 3팀 이 순경한테 얘기 들었거든요."

"강력 1팀 단체로 1주일 동안 쉰다고..."

"김 경사님은 경찰행정 3팀 들렀다 하셔서 혹시 김 경감님도 오실까 하고."

"날 기다리고 있었다, 이 말이지?"

"그럼요~"

"제가 김 경감님 좋아하시는 아아도 사왔어요!"

"아이고, 고마워라~"

"나 안 왔으면 어쩔 뻔 했어, 커피도 안 마시면서."

비교적 무거운 분위기를 지닌 강력 1팀의 팀장이지만 경찰행정팀에서만큼은 부담을 가질 업무가 적으니 나름 가벼운 분위기를 풍겼다. 팀을 살리려고 실신할 때까지 아득바득 이를 갈 필요도 없고, 부상까지 당해가며 사건 해결에 힘쓸 이유도 없으니까 말이다.

"오셨으니까 됐죠~"

"일은 좀 괜찮으세요?"

".....응. 나름."

"뭐야~ 안 괜찮으시구만?"

"아냐, 진짜 괜찮아."

"넌 어때. 혼자 일하는 거 괜찮아?"

"괜찮고 말고요~"

"내가 끝까지 고민했던 이유 중 하나는 너였어."

"너가 혼자 일하는 거 힘들까봐."

"음... 저도 걱정하긴 했는데."

"1팀이랑 3팀에서 많이 챙겨줘가지고 나름 괜찮았어요."

"며칠 전까지만 해도 엄청 바쁠 시기였을텐데."

"그땐 괜찮았고?"

"와, 그땐 좀 힘들긴 했어요."

"처음으로 김 경감님 보고 싶었잖아요."

"...미안해."

"아니에요, 괜찮아요."

"덕분에 제 능력은 늘어서 좀만 더 있으면 승진 하겠더라고요."

"그래? 다행이네."

"전 그냥 이왕 가신 거 경감님이 재밌게 일 하셨으면 좋겠어요."

"안 힘들 순 없으니까 즐기기라도 하세요."

"즐기는 것조차 안 되면 이루고자 했던 목표 성취 하기라도."

"얻는 건 있어야죠."

"...그치. 나도 그러고 싶은데..."

"우리팀이 어디서부터 잘못된건지 모르겠다."

"나는 아직도 우리팀이 그렇게 끝났어야 했나 싶고."

"애들 사이 나빠진 것도 다 내 잘못 같고 그래."

"내가 조금만 더 신경 썼다면..."

"내가 좀 더 헌신했더라면..."

"우리의 도착점이 다르지 않았을까 하고 지금도 매번 생각해."

"김 경감님이 팀원 잘못 뒤집어쓰기까지 하셨다면서요."

"뭐... 그러지 않았어도 윗분들은 똑같은 선택 하셨을 거예요."

"한 번 눈 밖에 나면 끝까지 무는 분들인 거 잘 아시잖아요."

"...그렇지. 그런 거지."

"이젠 죄책감을 덜 가져도 되는 거겠지?"

"나 그럴 자격 있나 확인 받고 싶네."

"그럼요. 팀원들도 다 알고 있을 거예요."

"그 누구의 잘못도 아니란 걸."

"그러니까 현재에 최선을 다하세요."

"팀이 어떤 모습이든, 그게 거슬리든."

"서로 믿고 있으면, 그거면 되죠."

"그런 관계였으면 좋겠다."

".....고마워, 조 경장."

"에이, 뭘 또~"

"내가 인력 충원 해달라고 요청해볼게."

"아이... 아까까지만 해도 윗분들 욕하시던 분이?"

"전 괜찮으니 김 경감님은 1팀 일에 신경 쓰세요."

"다행히도 다른 팀들이 많이 도와주고 있으니까!"

"...고마워."

"반 년 뒤에는 웃으면서 보자."

"그럼요! 지금도 웃으시면 되겠네!"

"ㅋㅋㅋ 참... 알겠다, 고마워."

조 경장은 쿨한 마인드로 걱정 많은 김 경감을 진정 시켜주곤 했다. 김 경감 나름대로 팀장으로서 팀원한테 기대지는 말자 주의여서 조 경장에게 사적인 이야기를 잘 안하기로 했었는데, 이미 많은 부분을 공유한 사이라는 걸 이제서야 깨달은 김 경감이었다.

좁은 사무실이었지만 조 경장 혼자만 두고 가려니 유독 비어보이는 경찰행정 2팀 사무실. 걱정 말라는 듯 웃으면서 고갤 주억거리는 조 경장을 보던 김 경감은 그제서야 사무실을 나갔다. 더 충실하기 위해서 말이다.

한편 하 순경읏 아저씨에 대한 죄책감 때문에 늦은 저녁에 들어와 소파 위에 몸을 구겨 잠만 자는 용도로만 쓰던 집에 왔다. 사고가 났던 그 날을 기점으로 가정부들을 전부 무른 아저씨의 의도는 나중에서야 알았다.

오직 하 순경의 정신 회복과 저희들의 관계 회복을 위해서, 그걸 이루려면 자신만이 이 집에 있어야 가능하다고 생각했다고 한다. 그래서 더 이 집에 들어오기 싫었던 걸지도 모른다. 곳곳에 남아있는 아저씨 흔적을 누가 치워주지도 않았기 때문에.

"...다녀왔습니다."

아무도 없을 거 알지만 괜시리 중얼거려본다. 아저씨와 냉전이 되고 1년간 안 했던 귀가 인사. 냉전 전에 이렇게 외치면 2층 방에서 아저씨가 내려와 반겨주곤 했었는데. 지금은 하 순경을 반길 아저씨도, 자연스레 저녁식사를 준비하는 가정부도 없다.

".....하."

이 넓은 집에 혼자 남겨진 자가 뭘할 수 있겠는가. 애초에 미친 척 하고 강력 1팀에 복귀한 건 오직 아저씨만을 위한 거였음에도 지금의 팀원들이 미운만큼 좋아서 저 자신이 너무 역겨워지는 하 순경.

생각을 마치자 헛구역질이 나오려고 해 하 순경은 소파에 드러누운 몸을 억지로 일으켰다. 한참을 공허하게 앉아있자 소파 끄트머리에서 진동이 울린다. '아버님'이라고 적힌 통화 연결 화면을 바라보다 수락 버튼을 누르고 휴대전화를 귀에 갖다댄다.

- "여보세ㅇ..."

- "여주니?! 빨리 와줘야겠다. 지금 도운이가...!"

하 순경은 그 말 한 마디에 이성을 잃고 집을 뛰쳐나갔다. 이건 지금 벌을 받는 게 분명하다. 내가 감히 아저씨 말고 다른 이유를 품어서, 감히 아저씨를 잊고 사건에 집중하려고 해서, 감히 강력 1팀에 복귀해서...

정신 없이 뛰는 와중, 머릿속에는 말도 안 되는 생각들의 나열이 이어졌다. 하지만 이렇게라도 탓을 돌려야 정신을 간신히 잡을 수 있었다. 그건 하 순경 본인이 제일 잘 알고 있다.

아저씨의 병실에 뛰어들어오자 아저씨 근처에 의료진 대여섯 명이 들러붙어있었고 돌아가며 심폐소생술 중인 장면이 펼쳐졌다. 절대 보고 싶지 않았던, 가끔씩 악몽으로만 꾸던 광경이었다.

"아... 안돼, 안돼..."

하 순경은 그 자리에서 굳어버려 가까이 가지도 못하고 병실을 나가지도 못하는 채로, 병실 바닥에 눈물을 떨어뜨렸다. 시끄러운 심박수 측정기가 요란스럽게 울리는 꼴이 백화점 폭탄 설치 사건 때와 겹쳐 하 순경은 결국 바닥에 주저앉았다.

20분 정도가 지났을까. 심박수 측정기가 안정을 되찾았고 의료진들도 하나둘 아저씨에게서 떨어졌다. 아버님에게 무언가를 말하고 나가는 의료진들을 보다가 제정신이 아닌 상태에서도 감사 인사는 착실히 하는 하 순경이었다.

"...여주 왔구나. 업무시간에 부른 거일텐데 얼른 가봐."

"아니에요... 증거품 과학 수사 맡겨서 결과 나올 동안 공식 업무는 없습니다."

"불러주셔서 감사해요..."

"...부르지 말 걸 그랬구나."

"괜히 안 좋은 꼴이나 보고."

"...아니에요. 앞으로 또 이런 일 있으면 꼭 불러주세요."

"이런 일은 없어야겠지만..."

아직 병실 바닥에 주저앉아있던 하 순경은 그제서야 몸을 일으키려 했다. 그때 병실 문이 열리며 하 순경이 알만한 익숙한 실루엣 두 명이 들어왔다.

"...어?"

"뭐야... 하 순경? 여기서 뭐해?"

"어디 아파?"

"어어... 왜 울어?!"

왜인지 모르게 선배들의 얼굴을 보자마자 눈물이 터져 다시 주저앉은 하 순경. 당황한 선배들을 본 아버님은 얘기 나누라며 잠시 자리를 피해주셨다.

"...이 환자분 너희 아저씨지?"

"에? 무슨 아저씨?"

우는 하 순경을 토닥여주며 김 경위에게 간단하게 하 순경과 아저씨의 관계를 말하는 정 경사. 가만 듣던 김 경위는 소스라치게 놀라며 말했다.

"그럼 여기 누워계신 분이 하 순경 아저씨라고?!"

"네... 그런 거 같은데요."

"여주야, 진정됐어? 응? 나 봐봐."

정 경사는 호칭도 빼고 불러주는 등 다정하게 달래주며 우는 하 순경의 머리를 조심스럽게 잡아올렸다. 눈가가 붉게 짓물러있고 그 눈에서 눈물방울이 나와 볼을 타고 흘러내리고 있었다. 손을 덜덜 떨면서 입을 떼는 그런 하 순경의 얘기를 모두가 귀기울였다.

"...내가 벌 받는 건가봐."

"내가 감히 아저씨를 목적으로 삼았던 걸 잊어서."

"감히 강력팀 복귀해서 행복을 찾으려고 해서."

"그래서 아저씨가 나 떠나려고 했나봐..."

"나 일 계속 못하겠어..."

굳건하게 가졌던 처음의 마음가짐이 아저씨의 고비에 처참히 무너져내렸다. 아저씨를 깨울 정도로 울부짖으며 자신이 벌을 받고 있다는 얘기를 하는 하 순경에 정 경사는 하 순경을 더 세게 안았다.

"아냐. 너 잘못 아니고, 벌 받는 것도 아니야."

"저분이 저렇게 된 건 우리가 잡고 있는 그 놈들 때문이잖아."

"그 놈들 잡는 게 아저씨한테 은혜 갚을 수 있는 방법이야."

"절대 여기서 무너지면 안돼. 우리 믿어."

"그게 아저씨를 위한 거란 걸 너도 잘 알잖아."

"아는데... 나도 그거 하나 믿고 시작한 건데..."

"...하 순경."

"내가 그래도 의료 지식에 있어서는 자신 있으니까 말해주는 거지만."

"앞으로도 저 분 여러 고비가 찾아올 수 있어."

"어찌 됐건 혼수상태인 환자는 언제나 위험군이니까."

"근데 그 고비들 중에 너 잘못은 하나도 없을거야."

"저분은 너가 뭘하든 응원할거야."

"설령 너가 강력팀에서 행복해하고 안정을 찾아도, 아저씨를 잊고 일에 빠져도."

"그게 진정으로 아저씨가 원하는 일일 거야."

"절대 그걸 죄악시 하지 않았으면 좋겠어."

"어린 너를 거두어 키우면서 저분의 최종 목적은 어쨌든 너의 독립이었을 거야."

"그러니까 지금 너가 있는 곳에서 최선을 다해."

하나하나 내뱉는 김 경위의 신중한 말에 하 순경은 서서히 진정했고 일을 그만두겠다는 말은 진심이 아니었다고 사과를 건넸다. 정 경위는 그제서야 안심하며 괜찮다고 말해줬다. 하 순경과 정 경사, 김 경위는 의자에 앉아 얘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근데 두 분은... 왜 오신 거예요?"

"아, 여기 지원 요청이 있어가지고."

"원래 나 혼자 오는 거였는데 얘가 딱 맞춰 와서 같이 왔어."

"고맙죠?"

"야, 임마. 너가 나한테 고마워 해야지~"

"이런 경험 어디서 할 수 있는데."

"저는 한 5년 전에 질리도록 했죠."

"이제 그 얘기 안 피하네?"

"그럼요. 얼마 전에 원장님 면회도 갔다왔어요."

"헐, 양신임씨?! 잘 지내셔?"

"모범수라시네. 참 다행이지."

"출소하면 의료 봉사 하고 싶으시대."

"와... 다행이네."

"그땐 진짜 원장님이 너무 무서웠는데."

"근데, 하 순경. 나한테도 말 편하게 해!"

"왜 정호석한테만 편하게 해애..."

"아...! 그게 아니고..."

"같은 팀 했어서 한참 전에 놓은 거였어요."

"혹시 몇 살..."

"31살! 호칭은 너 부르고 싶은대로 하고, 반말 써."

"그래! 그럼 오빠라고 할게."

"그래그래! 너무 좋아!"

"왜 우리 막내한테 뭐라 해."

"너는, 존댓말 좀 써라."

"또 왜 그러실까~"

셋의 이야기 소리와 웃음 소리가 병실을 가득 채웠고 아마 그 소리는 아저씨의 귀에도 들어갔을 것이다. 하 순경이 기특하다고 생각했을지, 곁에 있어준 동료들에게 고마움을 표현할지 그건 아저씨만이 알 것이고 그걸 전할 날이 언제일지도 모르는 일이다.

고비를 무사히 넘긴 다음 날, 하 순경은 경찰행정팀이 비교적 한가한 시기라는 걸 알고 경찰행정 1팀 사무실에 들렀다. 박 경감은 몇 번 봤지만 이 경사는 정말 오랜만이었다. 하 순경이 사무실 문을 열자 이 경사는 울망울망한 얼굴로 하 순경을 반겼다.

"하 순겨엉..."

"다들 오랜만이에요~"

"잘 지냈어? 얼굴이 많이 좋아졌네."

"잘 지냈죠."

"하 순경... 왜 박 경감님이랑만 만나..."

"네?"

"야 임마, 내가 그 말 하지 말랬지."

"나랑도 밖에서 만나아..."

"ㅋㅋㅋ 알겠어요."

"일부러 만난 거 아니에요. 서운해하지 마세요."

"웅... 잘 지냈지?"

"그럼요."

"다른 경찰행정팀에서는 강력 1팀 애들 들렀다 해서."

"우리 애는 언제 오나... 했네."

"너무 늦었죠... 어제 일이 좀 있어서."

"왔으니까 됐어."

"커피 한 잔 할래?"

"좋죠!"

"요즘 힘든 건 없고?"

"오랜만에 강력팀 업무라서 많이 힘들었을 거 같은데."

"처음엔 확실히 힘에 부치긴 했는데."

"뭐, 며칠 하다 보니까 금방 적응 되더라고요."

"역시 하 순경이야."

"우린 너 빈 자리 느끼느라 힘들었다구..."

"조금만 버티세요. 곧 있음 갈 테니까!"

"반 년이면 한참 남은 거지..."

"부담 갖지 말고 너 하고 싶은 거 다 해."

"너의 목적이 바뀌어도 우린 널 응원하니까."

"알겠지?"

"헐... 박 경감님은 참 무당 같으세요."

"요즘 그런 거 때문에 힘들어하는 건 어떻게 아셨대?"

"...글쎄. 널 본지 1년이다보니 눈빛만 봐도 알겠네."

사실 하 순경이 경찰행정팀에 들른다는 걸 알고 어제 한바탕 난리났던 일을 살짝 말해준 김 경위 덕분에 알고 있던 박 경감이었지만 부러 덧붙이진 않았다. 어쩌면 숨기고 싶을 일일 수도 있으니까.

"저 이제 진짜 열심히 할 거예요."

"무너지지도 않을 거고."

"꼭 당당하게 여기로 돌아오고 싶어요."

"반 년 뒤의 네 선택이 바뀌어도 되니까 지금에 최선을 다해."

"그래. 우린 너 같은 인재를 이 좁은 경찰행정팀에 묶어둘 생각 없어!"

"...감사해요, 정말."

일을 그만두고 싶다는 말을 내뱉었던 어제가 무색하게 하 순경은 여전히 이 순간이 좋았다. 단순히 아저씨를 위해 시작한 일이었지만 이제는 자신과 모두를 위해 강력팀에 있기로 마음 먹은 하 순경.

각자의 버팀목에서 위로와 응원의 말을 듣고 온 강력 1팀의 앞으로의 행보가 기대된다.

이 에피소드를 길게 끌고 싶진 않았지만 꼭 넣고 싶었던 이야기라 후다닥 써보았습니다 🥹 요즘 새로운 분들 유입이 많던데 모두 환영하고 언제나 좋은 글 보여드릴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오늘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

_ 글자수 : 6684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