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류상 가족
러브 미로 00-5


교통사고가 났다고 했다. 대한민국에서 흔하다면 흔하다고 할 수 있는, 뺑소니. 아버지는 차에서 내리고 있던 중이라 단순 타박상에 그쳤고, 엄마는⋯.

아버지
“⋯미안하다, 여주야. 내가 내리는 게 아니었는데, 정말⋯ 정말 미안하다.”

여주
“⋯어쩔 수 없는 거였잖아요. 괜찮아요.”

어쩔 수 없는 것. 그래, 이건 어쩔 수 없는 거였다. 있는 사람은 어떻게든 살게 되어있고, 없는 사람은 어떻게든 죽게 되어있는 것. 나는 그걸 어쩔 수 없는 것이라 말했다.

나는 엄마의 사진이 놓여있는 장례식장에 도무지 머물 수가 없어 무거운 몸을 이끌고 계단으로 도망치듯 달려왔다. 이런 상황을 예상했던 걸까. 신기하게 눈물은 나오지 않았다.

엄마는 내 유일한 가족이었고, 내가 가장 사랑하는 사람이었다. 그 사실은 변하지 않았고, 마음 한켠이 텅 빈 듯 느껴졌지만⋯.

여주
“⋯그럼 난 버려지는 건가.”

지금 당장 살 길이 급했다. 주머니에 넣어둔 휴대폰을 꺼내 검색창에 고아원과 위탁 가정, 원룸을 검색하기 시작했다. 알바 할 자리를 검색도 해 봤지만, 갓 중학생이 된 어린애를 뽑아줄 정신 건강한 어른은 없었다.


김태형
“야.”

여주
“⋯.”


김태형
“거기, 너.”

여주
"⋯?"


김태형
“집 안 가냐.”

난간에 머리를 기대고 멍하니 고개를 숙이고 있는데, 누군가 뒤에서 나를 불렀다. 김태형이었다. 말투는 평소처럼 퉁명스러웠지만, 전하는 내용은 다정하게 느껴졌다. 아, 이제 나한테는 집도 없어서 그런가.

여주
“⋯어디 집.”


김태형
“뭐?”

여주
“우리 엄마 죽었잖아. 너네 집, 이제 우리집 아니야.”


김태형
“뭔 개소리야.”

다짜고짜 욕설을 뱉는 김태형에 시비를 거는 건가 싶었지만, 얼굴을 보니 정말 이해가 안 된다는 표정을 하고 있었다. 내가 말실수를 한 건가 싶은 생각이 들 정도로 말이지.

김태형은 양주머니에 손을 꼽고 건들거리는 걸음으로 다가왔다. 또래보다 큰 키를 가진 김태형이 긴 다리로 계단에 쭈구려 앉아있는 내 앞에 오는 건 순식간이었다.


김태형
“너 이름 뭐야.”

여주
"⋯?"


김태형
“이름, 뭐냐고.”

‘이 새끼가 갑자기 왜 이래.’

2년 동안 같이 살면서 대화 한 번 나눈 적은 없지만 이름을 모를 리는 없었다. 알고 있는 이름을 왜 또 물어보는지 그 의중을 파악하지 못해 인상을 팍 구긴 채 입을 다물고 있으니, 김태형이 재촉했다.


김태형
“이름.”

여주
“⋯여주. 알면서 왜 물어.”


김태형
“성까지 붙여서.”

여주
“하⋯ 김여주. 내 이름 김여주야. 도대체 왜 그러는,”


김태형
“그래. 너 김여주야. 한여주가 아니라, 김여주라고.”

여주
“⋯.”

⋯아. 그제야 왜 김태형이 내게 이름을 물어보는지 알게 됐다. 엄마의 성을 딴 이름 한여주가 아니라, 김태형네 아버지의 성을 딴 이름 김여주. 그러니까 김태형은 내게⋯.


김태형
“뭐해. 여기서 살 거야?”

가족, 이라는 말을 하고 싶었던 걸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