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아노맨
12. 내 연주는 영원히 멈추지 않아(完) [늉비]



아무리 아름다운 선율이 귀에 흐른다고 해도

조화에 어긋나고 소리가 층층이 겹치다가 보면

결국 저열적인 소음따위 밖에 되지 않았다.

피아노 소리와 함께 고달픈 하루를 보내다가

온기가 남아있는 곁에 맴돌기만 해도 정화해줬던

그이는 어느 순간부터 나의 귀끝에서 아른거렸다.


선생님 - "지훈이는...그래, 저기 순영이 옆에 앉자."


이지훈
"네, 알겠습니다!"

선생님의 지시에 따라 지훈은 교실 뒤로 가더니

짝꿍이 될 순영과 눈이 마주치자 순영은 기겁했다.


이지훈
"안녕? 너가 그... 아, 순영이라고 했지?"


권순영
"ㅇ, 어... 맞아...?"

이상했다.

이상했다. 이 아이가 내 앞에 있다는 것이.

꿈이라고 하기엔 너무나 생생했기에.

너가 거짓일까, 아님 내가 거짓일까.

아님 모든 것이 다 모순덩어리인 걸까.


이지훈
"...순영아?


이지훈
"괜찮아? 안색이 많이 안 좋은데...?"


권순영
"아...아무 것도 아니야."


권순영
"생각할 게 좀 있었어..."


온갖 난무한 생각들이 머리를 짖누르는 데에 감각이 쏠려

시간이 빠르게 흐르는 지도 자각하지 못한 채로

결국 수업 시간의 종이 치고 쉬는 시간이 되었다.

순영 주위로 몰려드는 그의 친구들.


문준휘
"안녕? 너 되게 귀엽고 하찮다!"


김민규
"미친놈, 처음 보자마자 그렇게 주둥이 씨부리냐."


이지훈
"그거 좋은 뜻으로 알게...??"


전원우
"어느 고등학교에서 전학왔어?"


이지훈
"나는 좀 멀리서 와서 말해도 모를 걸?"


김민규
"어쩌다가 전학왔어? 설마 주먹 좀 휘둘렀니?"


문준휘
"미친, 너도 씨부리는 게 만만치 않네ㅋㅋㅋㅋㅋ"


이지훈
"그건 너가 더 그래보이는데...?"


전원우
"사실 쟤 학폭위 열려서 강전 온 거 맞아."


이지훈
"엥, 진짜로????"


김민규
"전원우, 진실의 방으로 가고 싶어?"


전원우
"응, 아니야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문준휘
"원우가 니는 백퍼 이긴다에 내 손목 건다."


이지훈
"근데 애들아, 여기 순영이는...왜 저래?"

한참 떠드는 사이에 순간 지훈은 순영을 가르켰다.

순영은 마치 혼이 나간 유체이탈 상태였다.


문준휘
"어이, 권수녕!"


권순영
"......"


김민규
"쟤 정신 집에 두고 왔어?"


전원우
"아, 나 이럴 때 정신 확 깨게 하는 방법 알아."


전원우
"이렇게 뒤로 간 다음에, 양 옆 구렛나루를 잡고 당기면...!"


권순영
"끄아아악!!!! 개새끼야아!!!!"


전원우
"효과만점이란 말씀."


권순영
"전원우 뒈지고 싶어?!?"


김민규
"나랑 같이 진실의 방으로 끌고 가자니깐?"


문준휘
"다들 입 여물고, 오늘 너 왜 그래?"


문준휘
"니 눈 존나 흐리멍텅해."


권순영
"아...야, 전원우. 오늘 며칠이냐."


전원우
"니가 핸드폰 봐봐. 손이 없어, 발이 없어."


권순영
"아, 맞다...?"

순영은 순간 핸드폰을 키고 날짜를 보자,

시간이 되돌아가져 있었다..?

다시 이 아이를 보기 전으로 돌아간 것이었다.

그러면 진짜로 악몽 같은 데자뷰라도 꾼 것일까.


권순영
"개새끼들아, 나 오늘 얼굴 이상해보이냐."


문준휘
"얼굴 개빻은 건 원래 알고 있고, 그것말곤 없음."


권순영
"그 말 참 힘이 난다, 힘이 나..."


이지훈
"순영아, 혹시 지금 나 학교 구경 시켜줄 수 있어?"


권순영
"학교 구경...?"


김민규
"하기 싫다는 눈빛이 다 느껴져요, 순영씨..."


권순영
"아니야! 나와봐봐. 내가 궁금한 데 알려줄게."

그래, 내 착오가 있던 거겠지.

분명 지난 일들은 나쁜 꿈들로만 펼쳐졌을 뿐일 거야.

더이상 내 귀에 피아노 소리가 안 들리니깐 그걸로 됐어.

그렇게 순영은 좀 가벼운 마음으로 지훈과 교실 밖을 나섰다.



이지훈
"여기는 어디야?"


권순영
"여기쪽은 안전생활부실, 학주샘도 여기 계시는데,"


권순영
"되도록이면 여기 들어갈 때 복장 조심하는 게 좋아..."


권순영
"한 번 사복 풀세팅했다가 벌점 엄청 받았거든."


이지훈
"아하, 기억해둘게ㅋㅋㅋㅋ"

그렇게 둘은 복도를 지나며 얘기를 나누고 있었다.

이제서야 신경쓰지 않았던 순영은 순간 자신의 귀에

조그만하고 익숙한 소리가 아름답게 흘러가고 있었다.


권순영
"...!"

또다시 온 신경이 소리에게 곤두섰다.


권순영
'아, 또 다시...?'


이지훈
"...우와, 여기 근처에서 누가 피아노 치나 봐!"


권순영
"ㅇ, 어...?"


이지훈
"여기 근처에 음악실에서 치고 있는데 잘 치지 않아?"

순영이 이제는 트라우마로 남을 듯한 소리가

작은 진동으로 변해 온몸을 감싸자, 동시에 지훈은 순영을 보고

자신도 피아노 소리가 들린다며 이야길하였다.

덕분에 순영은 잠시 두려움을 떨쳐냈다.

또다시 나만 들리고 고통받는 줄 알고 두려웠다.

그냥 어떤 학생이 치는 평범한 피아노 소리였다.


이지훈
"나, 매점 어디있는지도 알려주라!"


이지훈
"좀 배고픈 것 같기도 하고..."


권순영
"그래, 따라와봐. 좀 내려가야 되거든."

지훈의 말에 순영은 정신을 차리고 계단으로 향하고

그 뒤를 따르는 지훈은 약간의 미소를 머금고 뒤따라갔다.

그리고 아까 전에 지훈이 가르킨 음악실 문에는

은빛색의 자물쇠가 단단하게 잠가놓고 있있다.



문준휘
"꺄하, 학교 대탈출이다!!"


전원우
"학교 대탈출 하자마자 학원 대입성이지, 뭐."


문준휘
"응, 내 중지손가락이나 처먹어~"


김민규
"너는 따로 어디 학원 가?"


이지훈
"음? 아니? 나는 따로 학원 안 가."


문준휘
"미친, 완전 부러운 새끼..."


전원우
"저 권멍청이도 학원 따로 안 가잖아."


권순영
"김민규 니 말대로 한 번 끌고 갔어야 했어."


김민규
"지금 기릿?"


전원우
"어, 마침 딱 버스가 왔네. 그럼 난 간다."


문준휘
"악, 나도 같이 가!!"


김민규
"타이밍은 기막히게 좋아가지곤... 우리 먼저 간다!"

쉴 틈 없이 수업과 휴식이 난무하게 지나가고,

하교하는 길에서 다섯 명은 어느새 한 무리처럼 얘기하며 걸어갔다.

같은 지역쪽에서 학원을 다니는 셋은 버스를 간신히 잡고는

순영과 지훈에게 급히 인사를 하고 갔다.

그렇게 둘만 남은 한적한 거리.

왠지 이상한 기류가 흐르는 것은 기분 탓일 것이다.


권순영
"오늘 애들 텐션 버티기 힘들었지?ㅋㅋㅋㅋ"


이지훈
"아니야, 나 이런 분위기 엄청 좋아해!"


이지훈
"앞으로 잘 지냈으면 좋겠다."


권순영
"당연하지, 저래봬도 쟤네들 친화력 하난 죽이거든."


이지훈
"그런데 순영아, 아까 쉬는 시간에 표정 왜 갑자기 굳었어?"


권순영
"아, 아까 그때...?"


권순영
'이걸 어떻게 말해야 돼, 말아야 돼...'


권순영
"ㄱ, 그냥 오늘 새벽에 좀 안 좋은 꿈을 꿨어."


권순영
"근데 꿈이라기엔 너무 생생해가지고 무서웠지."


이지훈
"아, 피아노 소리랑 관련된 악몽 같은 거야...?"


권순영
"응, 그것 때문에 좀 귀가 많이 피곤해졌어..."


권순영
"그래도 꿈은 꿈이니깐, 지금은 괜찮아."


이지훈
"아하, 많이 시달렸겠구나..."


이지훈
"그런데 순영아."


이지훈
"너는 꿈이랑 현실이랑 구분도 못 해?"


권순영
"......뭐라고?"

순간 지훈이 밷어낸 저 한 마디가

내 두려움을 덜컥 밑으로 떨어뜨렸다.

아니야, 지금은 현실이야.

내가 꿨던 꿈이 진짜로 펼쳐질 리는 없잖아, 그렇지?

하지만,

하지만, 만약 그 악몽도

하지만, 만약 그 악몽도 현실이라면?


권순영
"지훈아, 그게 무슨 말이야."


이지훈
"음? 그냥 넌 항상 꿈을 생생하게 꾸는지 궁금해서 물어본 거야~!"


이지훈
"어, 나는 여기쪽으로 가야 되는데. 너는 어디로 가?"


권순영
"...나는 여기로 가야 돼."


이지훈
"그럼 헤어져야겠네, 내일 보자!"


권순영
"ㅇ, 어... 잘 가."

그렇게 물어볼 틈도 안 주고는 지훈은 다른 길로 빠져나갔다.

그리고 한창 그의 뒷모습을 바라보던 순영의 자리엔

찝찝함과 두려움이 섞인 기괴한 감정들만 가득 찼다.


풀썩-

순영은 오자마자 침대에 자신의 머리를 꼬라박았다.

이 무거운 머리를 어떻게 하면 비어낼 수 있을련지.


권순영
"아, 머리 아파..."


권순영
"...나 지금 현실인 거 맞지?"

순영은 혹시 몰라 자신의 귓볼을 세게 꼬집자,

조그만한 고통이 그에게 느껴졌다.


권순영
"이상하다. 꿈 아닌 거 맞는데."

[꿈이랑 현실이랑 구분도 못 해?]


권순영
"......"


권순영
"아니야, 나도 그딴 거는 할 줄 안다고!"

순영은 급격히 울컥하여 지훈의 말에 반박하며 이불킥을 하였다.

결국 그냥 내가 망상 하나 제대로 꾼 거겠지.

그냥, 그저 그렇게 합리화 하는 거야.


권순영
"얼른 밀린 공부나 해야지, 원."

순영은 침대에서 일어나 자신의 책상에 앉더니

온 신경을 문제집에 쏟아부었다.

하지만 시간의 흐름이 그의 신경들을 흘려보내

잠이란 텅 빈 공간을 가득 채워주었다.

결국 스르륵 눈에 힘이 풀리고, 잠을 청하였다.


어디선가 많이 들어본 소리였다.

귀를 살살 간지럽히면서도 부드러운 소리.

마치 향기로운 냄새를 맡은 듯이 이끌리는 데로 걸어갔다.

터벅, 터벅.

점점 소리가 증대되면서 발원지에 도착하자

소리가 중간에 끊기는 동시에 그의 이성도 함께 돌아왔다.


권순영
"ㅇ, 어라... 여기가 어디...?"

순영은 아무리 고개를 돌려도 검은 배경밖에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또다시 아까와는 다르게 조금 어두운 곡이

피아노로 통해 연주되고 있었다.


권순영
"으윽, 개같은 피아노 소리..."

???
"으음, 피아노 소리가 개같다고?"

???
"피아노는 음들을 웅장하고 우아하게 연주해주는 대체물이야."

???
"아무 것도 모르는 주제에 피아노 소리를 판단하다니."

어디선가 퍼져울리는 목소리.

너무나도 익숙하고, 짐작하는 그이의 목소리.


권순영
"...너구나, 이지훈?"

???
"우와, 너도 눈치는 아주"


이지훈
"우와, 너도 눈치는 아주 글러먹었구나?"

목소리가 들리는 데로 고개를 돌리자 어둠 속에서

지훈의 실루엣이 선명히 그려졌다.


이지훈
"이제서야 눈치를 채다니, 이거 벌을 줘야겠는 걸?"


권순영
"...나한테 이러는 이유가 뭐야?"


이지훈
"이유라... 이유라기보단..."


이지훈
"나는 너가 가장 마음에 들었거든."


권순영
"마, 마음에 들다니...?"


이지훈
"너는 내가 다룬 인간들 중에 가장 특별해."


이지훈
"너는 무한한 악보들을 지녔거든."


이지훈
"덕분에 너를 보며 치는 피아노 소리에 너가 고통스러워 하는 모습들."


이지훈
"그걸 보면서 나는 희열감을 느끼지."


이지훈
"내가 아무리 마음에 들지 않은 곡을 쳤다고 해도,"


이지훈
"그까짓 거 찢어서 다시 처음부터 하면 그만."


권순영
"...그럼 내가 다시 시간이 되돌려졌다고 자각한 것도..."


이지훈
"맞아, 내가 다시 너의 악보를 찢어 리셋한 거야!"


이지훈
"내가 계속해서 완벽히 마음에 들 정도의 곡을 칠때까지,"


이지훈
"나와 함께 피아노 소리에 흠뻑 빠져드는 거야."


이지훈
"너의 귀도 피아노 소리에 중독되어, 희열의 피를 내뿜으면서,"


이지훈
"아름다운 선율과 함께 청각을 텅 빈 허공에 묻혀버리는 거야!"


이지훈
"어때, 진짜 재미있겠지?"


권순영
"......아니."


이지훈
"...아니? 아니라고 했어?"


권순영
"당장 내 안에서 꺼져버려."


권순영
"누가 너한테 그 짓 하라고 허락할 것 같아?"


이지훈
"흐음, 그 반응은 예상은 했다만."


이지훈
"너무 질색하는 거 아니야?"


이지훈
"그런데 지금 이 상황이 너의 바람대로 간다고 생각하는 건 아니지?"

지훈의 미간이 찡그려진 채로 점점 순영에게 다가섰다.


이지훈
"너는 그저 악보일 뿐이고, 내 피아노를 위해 펼쳐져 있어."


이지훈
"한 번 잘 버텨봐, 내가 마음에 완벽히 드는 곡을 칠때까지."


권순영
"이 개새끼가...!!"

순영은 앞에 있는 지훈의 멱살을 잡으려 들자,

연기처럼 공기에 퍼진 지훈이었다.

그리곤 어디선가 또 울려퍼지는 지훈의 목소리.


이지훈
"그럼 여기서 간단한 퀴즈를 하나 낼게."


이지훈
"지금 이 상황은 그저 너의 어처구니 없는 망상일까,"


이지훈
"아님 너의 인생에 잿가루가 될 현실일까?"



권순영
"......"

그 말을 끝으로 또다시 눈을 뜬 순영 앞에는

쨍한 햇빛이 눈 앞으로 감쌌다.


권순영
"설마 이대로 잔 건가..."


권순영
"공부하다가 골아떨어진 건 기억이 나는데."


권순영
"잠을 자고 그 상황이 일어난 거니깐, 꿈...이겠지."

순영은 어이없게도 그것을 또다시 꿈이라도 합리화했다.

그저 제일 처음으로 그딴 소문을 알려준 준휘를 욕하면서

그 소문에 너무 혹했다고 순영은 그렇게 판단했다.

아니면, 그렇게 생각하고 싶었던 욕망이었을지도.


문준휘
"우와, 권순영 햄스터에서 점점 판다로 변해간다?"


전원우
"그러게, 니가 피부 얇은 것도 아닌데 다크써클 미쳤어."


김민규
"순영... 공부도 중요하지만 건강이 우선이야, 암암."

간신히 교실에 도착한 순영의 주위로 친구들이 오자

망신창이가 된 순영의 얼굴을 보고 한탄했다.

그리고 그 옆에서 똑같이 걱정하는 지훈이었다.


이지훈
"순영아, 어제 몇 시까지 공부했길래 이러는 거야?"


권순영
"......"


이지훈
"순영아...?"

순영은 지훈의 물음에도 대답따위 하지 않고

그의 얼굴을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역시, 꿈에서 나온 지훈과 지금의 지훈은 달라.

그냥 내 허접한 한 망상일 게 분명해.

다른 거에 집중하면 언젠간 꿈도 더이상 안 꾸겠지.


권순영
"ㅇ, 아. 한 나 새벽 4시까지 하다가 잔 거 같아."


문준휘
"공부가 아니라 핸드폰만 들여다 본 거겠지~"


권순영
"아니거든? 너가 뭔데 장담하는데!"


문준휘
"응, 너 어제 페북 새벽에 현활 뜨는 거 봤어~"


권순영
"ㄱ, 그건 잠깐 볼려고 한 거거든...?!"


김민규
"네네, 어련히 그러시겠어요~"


전원우
"그것도 그거고, 오늘은 그냥 일찍 자라."


전원우
"안 그래도 저번에 무슨 악몽때문에 많이 못 잔다며?"


이지훈
"그러게, 심지어 어제도 그 악몽 꿨으니 힘들었겠네ㅠㅠ"


권순영
"그래, 이게 다 문준휘 새끼 때문이ㅇ..."

잠시만, 순간 순영은 말 끝을 흐렸다.

오늘 내가 악몽 때문에 잠 못 잤다는 말 안 했는데?


권순영
"......이지훈, 뭐라고?"


이지훈
"아? 왜 그래, 순영아?"


권순영
"너 내가 오늘 그런 거 어떻게 알았냐고."


이지훈
"...아이쿠,


이지훈
"...아이쿠, 들켜버렸네?"

콰아앙-!

순간적으로 순영의 귀에 여러 건반을 한꺼번에

그리고 세게 내리치는 기괴한 소리가 짧게 퍼졌다.

그 큰 파장 덕분인지, 예전부터 피아노 소리에

많이 피폐해지고 낡아진 순영의 귀에서 결국 피가 흐르고

아무 소리가 들리지 않은 채로 일정한 소음이 울렸다.


권순영
"으아악!!! 크흑..."

큰 충격으로 결국 땅바닥으로 떨어지고 움직이질 못했다.

그의 위로 친구들이 흔들며 소리를 쳐도 들리지 않았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고 모두가 혼비백산처럼 돌아다니자

유유히 지훈은 순영의 위에 웅크려 그를 보며 말했다.


이지훈
"뭐야, 벌써 시시하게 끝내면 내가 화가 나잖아."


이지훈
"짜증나서 아끼는 피아노 건반 세게 내리쳤네."


권순영
"으윽... 이, 지훈..."


이지훈
"한 번 새롭게 발랄하고 가볍게 시작할려고 했는데."


이지훈
"역시 내 취향은 아니야. 괜히 나도 착해지는 것 같아."


권순영
"너, 너 진짜...로..."


이지훈
"진짜로 너를 괴롭혔던 거 맞아."


이지훈
"결국 망상이란 것은 없었던 거지."


이지훈
"이렇게 해서 벌써 두 번째나 실패..."


이지훈
"보통 일반 사람들이면 혼이 나가기도 하는데."


이지훈
"하지만 말했다시피 넌 무한한 영혼을 지녔어."


이지훈
"덕분에 평생 가지고 연주할 수 있는 악보가 생겼네?"


권순영
"하아, 하... 하아..."


이지훈
"이제 슬슬 눈이 감기지?"


이지훈
"눈 감고 다시 뜨면 모든 것이 다시 돌아가져 있을 거야."


이지훈
"그리고 그때부터 기대해줘, 더 나아질 연주를."


이지훈
"그리고 앞으로 너의 존재가 사라질 때까지는,"


"내 연주는 영원히 멈추지 않아."


어느 날, 피아노를 무척 좋아하는 한 이가 있었다.

그는 피아노를 연주하는 것을 무척이나 좋아했으나

실력은 다른 이들에게 행복을 줄 정도는 다다르지 못했다.

덕분에 주변 사람들은 그를 치지 못하게 막아섰다.

그는 자신의 어설픈 실력을 탓하지 않고

아무 탓 없는 악보들을 문제점으로 여겼다.

결국 한 악보씩 보며 연주하여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가차없이 찢거나, 태우거나, 구겨버렸다.

그렇게 수많은 악보들 뒤로 그이는 우연히

세상 모든 곡이 있는, 무한한 악보를 손에 얻었다.

자신이 아무리 마음에 들지 않아 찢어버려도

없어지지 않아 다시 새롭게 치면 그만이었다.

그이는 그 악보를 애정하여 지문이 닳도록

쉴 새 없이 피아노 소리에 미쳐갔다.


하지만 어느 날, 그 신비한 악보는 아무런 소식 없이

혼자 스스로 타버려 잿더미가 되었다고 하더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