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예뻐해 주세요_
Episode 20. 파란 머리 여우




김태형
우리···


김태형
원래··· 알고 있는 사이였을까요?



"나 예뻐해 주세요_" _20화




백여주
글쎄요, 난 그저께 요정 씨 처음 봤는데.


김태형
······.

그렇게 한동안을 더 멍하니- 여주만을 쳐다보던 태형. 보다 못한 여주가 큰소리친 덕에 정신 차리지.


백여주
갑자기 왜 이래...


백여주
설마 내가 시집 가고 싶다는 말에 이렇게 정신이 나간 ㄱ···


김태형
그건 아니고.

여주의 입술에 검지 가져다 대며, 싱긋 웃은 태형은 언제 멍하니 있었냐는 듯 분주하게 움직이기 시작한다.


백여주
······.

한동안 태형을 빤-히 바라보며 왜 그랬을까, 생각 중이던 여주는 얼마 못 가 활짝 웃으며 입을 연다.


백여주
오늘 저녁 메뉴는 뭐예요-.


김태형
오늘 저녁은...


김태형
김치볶음밥-!


백여주
오- 할 줄 알아요?


김태형
내 전문이죠.

이 정도쯤이야, 하며 씩 웃은 태형은 곧 도마 위에 각종 채소 세팅하고 여주 보는 앞에서 능숙한 칼질을 선보이지.

그런 태형 보며 눈 빤짝빤짝거리는 여주고. 아마 이때 한 번 더 결혼 생각 진지하게 했을걸.


백여주
···만 점짜리 남편감이네.

그러다가 마음의 소리 툭툭, 밖으로 나오고.


김태형
그러니까. 다들 못 데려가서 안달인데.


김태형
데려갈래요, 여주 씨가?


백여주
요정은 인간 사랑할 수 없다면서요-.



김태형
원래_ 위험한 길이 더 재밌는 거 몰라요?


김태형
여주 씨라면 허락받지 못한 길을 걸어볼 용기가 생길 것도 같고.

요 놈 봐라. 자꾸 나를 꼬시려 드네.


백여주
빈 말인 거 다 알거든요-


백여주
얼른 밥해주세요- 배고파요-

그런 내 반응에, 웃기다는 듯 피식 웃으며 달군 프라이팬 위에 기름 두르는 그.

솜씨가 한두 번 해본 솜씨가 아닌데···


백여주
아, 김태형 씨.


김태형
뭐야, 왜 갑자기 이름 불러요-


백여주
그냥.


백여주
또 궁금한 거 생겼어요.

시도 때도 없이 궁금한 게 수도 없이 많은 나를 받아주느라 고생이 많을 법도 한 우리 요정님.


김태형
뭔데요-ㅎ


백여주
요정들은 하는 일이 뭐예요-? 인간 세계에 그냥 있지는 않을 텐데.

어느 정도 예상은 했다는 듯한 그의 의미심장한 표정. 묘하게 옅은 미소를 띠며 나를 바라보는 게... 뭐랄까, 없던 호기심도 유발했다.



김태형
여주 씨 행복하게 만들어주죠.



백여주
그러니까... 인간을 행복하게 만들어준다?


백여주
그럼... 어느 인간을 행복하게 해줄지 선택할 수 있는 거예요?


김태형
정해진 선에 있는 사람들만 가능하죠.


백여주
정해진 선이 어디까지인데요?


김태형
그건 비밀.


백여주
아... 뭐야, 한창 재미있어지려던 참이었는데.


김태형
시간이 지나면 알게 될 거예요. 그러니까 굳이 지금 알려고 하지 않아도 돼.





백여주
잘 먹겠습니다-.


김태형
많이 먹어요.

'···다음 주까지 정리하고 돌아와.'

아무것도 모르고 환하게 웃으며 한 입 먹는 백여주를 보고 있다가도, 문득 스쳐 지나가는 아까의 당부 한 마디.

형의 목소리는 어느 때보다도 무겁고, 진중했다. 그만큼 약속을 반드시 지키라는 의미겠지.


백여주
그쪽은, 안 먹어요?


김태형
천천히 먹으려고요.


백여주
하아-. 술 당긴다.

혼잣말인 듯 혼잣말 아닌 말로 날 향해 큰 소리로 외친 이 여자는 해맑게 웃으며 부엌으로 향하는 모습이 퍽 웃겼다.

언제 오나- 싶어 부엌 입구 쪽을 하염없이 보고 있다가도, 발걸음 소리가 가까워지면 관심 없었다는 듯이 볶음밥에 시선 내리꽂고 한 숟갈 떴고.


백여주
매콤한게... 마실 게 있어줘야할 것만 같더라고요?ㅎ


김태형
···그거 자주 마시면 몸에 안 좋지 않나.


백여주
에이-. 적당히 마시면 다 약이 되는 거죠.

근거 없는 말을 하는 것조차도 이제는 웃음이 나오네.


백여주
하아-. 내일 또 출근이네.


김태형
내일 금요일이잖아요, 하루만 더 버텨요.


백여주
···금요일...


백여주
금요일은 완전 신나게 놀아줘야 하는데...


백여주
나이 먹으면 먹을수록 그럴 기운도 없어져요...

백여주/26세/기운 없는 20대/인생 2회차로 추측됨.


김태형
나이 고작 몇 개 먹었다고 내 앞에서 이런 이야기를···ㅎ


백여주
아 참, 저번에 인간 나이로는 스물일곱이라면서요.


백여주
방금 말하는 걸 듣자니··· 나이가 꽤 있어 보이는데... 요정 나이로는 몇 살인데요?


김태형
안 믿을 거잖아-.


백여주
어어-? 왜 그렇게 확신해요?


백여주
내가 믿을 수도 있는 거지-.


김태형
안 믿을 거 같아-ㅎ


백여주
믿는대도-!


김태형
아직은 알려주고 싶은 마음이 없네요_

싱긋, 웃으며 자연스레 여주 앞에 놓여진 캔으로 손을 뻗는 태형.

탁, 캔에 손가락 하나 닿기도 전에 선수 친 여주가 그의 손을 쳐낸다.


백여주
쓰읍-. 어딜.


백여주
또 나 고생시킬 일 있어요-?


김태형
아ㅎ 오늘은 안 그럴 계획이었는데...


백여주
그게 요정 씨 마음대로 되나-? 술 마시면 제2의 자아가 생기는 법이라구요.

흥, 고개까지 돌려가며 혼자서 벌컥벌컥 들이켜는 여주.


김태형
아, 내일 금요일이니까-


김태형
우리 나가서 놀까요?

언제가 마지막이 될지도 모르는데, 지금 당장이라도 뭘 해야 마음이 놓일 것 같았다.


백여주
헙, 어디서 놀 건데요?


김태형
음···.


김태형
길 걷다 보면 없던 갈 곳도 생기지 않을까요?


백여주
그렇긴··· 하겠다.


백여주
그럼 우리 내일 데이트하는 거예요-?

마시던 캔도 내려놓은 여주가 태형에게 얼굴을 가까이하며, 초롱초롱한 눈으로 바라본다.

그런 여주를 빤히- 바라보던 태형은 덩달아 그녀에게 가까이 다가가며 속삭이지.


김태형
음···. 아직 확정은 아니죠.


백여주
에이···. 그게 뭐예요.



김태형
내가 데이트 신청은 했고, 여주 씨가 대답을 해줘야 확정이잖아.


···이 요정 완전 여우였네, 여우.

「백여주, 오늘 여기에서 잠들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