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수사반 BTS 2
EP 34. 폭풍전야



사브라
“젠장, 젠장, 젠장⋯!”

폭시 인형 가게가 털렸다. 왠지 느낌이 좋지 않아 전날 본부에 관한 정보는 다 빼두었는데, 차마 꺼내진 못한 약들이 전부 경찰 손에 넘어갔다. 그게 다 얼마짜리인데⋯. 사브라의 눈이 퍼렇게 빛났다.

사이타
“닉은.”


프시케
“⋯못 찾았어. 간도 크지, 우리 문서를 가지고 튀다니.”

사이타
“당장 찾아내. 닉 찾을 때까지는 약 제조도 판매도 모두 금지야.”


사브라
“뭐⋯? 사이타, 그럼 돈은 어디서 구하라고.”

사이타
“당분간 외국 업체랑만 거래해. 국내는 위험해.”

일이 꼬였다. 꼬여도 잔뜩 꼬였다. 연준이 문서를 들고 카타르티시를 탈출했다. 별 볼 일 없는 문서였다면 그냥 무시하고 개 한 마리 풀어주는 셈 쳤겠지만, 연준이 가져간 문서는 중요했다.

카타르티시의 마약을 제조하는 연구소에 관한 정보가 빼돌려졌다. 그 문서에는 연구소의 위치뿐만 아니라 연구원, 실험자, 투약 약품 등 마약과 관련한 정보가 모두 포함되어 있었다.

머리로는 당장 연구소에서 증거를 없애고 사람들을 빼 와야 한다는 걸 알았지만, 섣불리 움직일 수는 없었다. 이미 연구소 안에서는 약의 성능을 실험 중인 상태였고, 괜히 밖으로 실험자들을 꺼냈다가 탈출이라도 하면 더 곤란해졌다.


프시케
“그러게, 간수 좀 하지 그랬어. 정호석인가 뭔가 하는 걔 누나 이용하면 된다며. 여자애도 나름 함부로 못 건드릴 것 같은 애로 선별해서 고른 거 아니야?”


사브라
“⋯조용히 해.”


프시케
“하긴, 생뚱맞게 어린애를 데리고 시작하는 것부터 이상했어. 정호석 누나를 이용할 거면 걔한테 칼 쥐여주고 죽이라고 하면 됐지, 왜 애랑 같이 지하철을 떠돌게 해?”


사브라
“⋯아무것도 모르면 입 닥치고 있어, 프시케.”


프시케
“뭐?”


사브라
“생각이 짧으니까 네가 그것밖에 안 되는 거야.”


프시케
“야,”

사이타
“그만.”

신경전을 오가던 둘의 사이를 사이타가 갈랐다. 그만하라는 사이타의 말에도 살기 어린 프시케의 눈이 사브라에게 향하니, 사브라는 낮게 욕설을 내뱉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사이타
“어디 가, 사브라.”


사브라
“이번 판은 우리가 졌어. 한참 안심하고 있을 테니, 한 번 정도는 흔들어 줘야지.”

사이타의 시선이 밖으로 나가는 사브라를 따라갔다. 빠르게 걷는 사브라의 손에 쥐여진 무언가가 반짝 빛났다. 아, 설마⋯. 사브라의 말과 사브라의 손에 쥐여진 것을 두고 생각을 마친 사이타는 피식 입꼬리를 올려 웃었다.

아, 그 얼굴을 직접 보지 못해서 아쉽네. 와인을 입가에 가져간 사이타의 입술은 어느새 보라빛으로 물들었다.


연준이 훔친 마약 판매 거래 명세서와 그 외 증거들을 모두 검찰 측에 넘김으로써 폭시 인형 가게는 완전히 문을 닫았다. 그 안에 있던 각종 마약들과 마약 성분을 띠는 인형들도 제출했다.

폭시 인형 가게와 관련된 일이 끝나고 난 뒤, 특별수사반에는 약간의 휴식이 찾아왔지만 완전히 즐길 수는 없었다. 폭시 인형 가게가 사라졌다 해도 마약에 중독된 일반인들이 존재했고, 심각한 금단현상을 겪을 것이 분명했다.


정호석
“난 누나랑 병원 좀 다녀올게.”


김석진
“그래. 그냥 오늘 하루는 누나랑 같이 있어, 호석아.”


정호석
“아니야, 병원만 갔다가 금방 올게.”


민윤기
“그냥 가라면 가. 어차피 급한 일 없어서 우리도 놀기만 할 텐데.”


전정국
“그래, 형. 오늘 하루 푹 쉬다 와.”


정호석
“⋯알겠어.”

세 명이나 완강하게 의견을 내비치니 호석으로선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누나와 함께 나가는 호석의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던 석진이 아, 맞다. 라며 자리에서 일어나 다연에게 다가갔다.


김석진
“다연이도 집에 가야지. 삼촌이 데려다 줄게.”

“제 집이요⋯?”


김석진
“응, 다연이 집. 가자, 부모님께서 걱정하신다.”

으쌰, 하는 소리와 함께 석진은 다연을 품에 안았다. 갑자기 눈높이가 훅 높아진 탓에 놀랐는지 다연은 석진의 목을 끌어안고 고개를 숙였다. 석진은 그런 다연의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으며 옅은 미소를 지었다.


김석진
“갔다 올게. 상황 설명하느라 좀 늦을지도 몰라.”


김남준
“그냥 형도 지금 퇴근해. 고생했잖아.”


김석진
“됐어. 팀원들이 안 쉬는데 팀장이 어떻게 쉬어. 갔다 올게.”

석진은 다연을 안지 않은 다른 손으로 재킷을 집어들고는 대충 팀원들에게 손을 흔들며 경찰서를 빠져나갔다. 다시 조용해진 경찰서에는 서류를 넘기는 소리, 게임하는 소리, 누군가의 색색대는 소리만 남았다.


박지민
“⋯연여주는 언제까지 자는 거야.”


최연준
“원래 잠이 많아. 환경에 적응해야 해서 조금 바뀐 거지.”


박지민
“너한테 물은 기억은 없는 것 같은데.”


최연준
“누나 자는데 괜히 시비 털지 말라는 소리야.”

지민의 얼굴이 확 구겨졌다. 시비를 걸려는 의도가 아니었다. 어젯밤 잠든 이후로 지금 오후 2시가 되도록 한 번도 깨지 않아 내심 걱정스러운 마음에 혼잣말을 한 것이었는데, 가볍게 내뱉은 말에 연준이 불을 지폈다.


박지민
“너 말 진짜 싸가지 없게 한다. 연여주한테 누나라고 부르면 나보다 어린 거 아니야? 너 몇 살이냐?”


최연준
“스물 일곱인데.”


전정국
“⋯⋯.”


김남준
“뭐야, 정국이랑 동갑이네.”

이번에는 정국의 얼굴이 구겨졌다. 연준과 공통점이 있다는 사실이 그렇게나 싫은 모양이었다. 하지만, 그건 연준도 마찬가지. 시선을 돌렸다가 괜히 정국과 눈이 마주친 연준은 인상을 찌푸리며 정국을 노려봤다.

연여주
“⋯시끄러워.”

지민과 연준의 소란에 자고 있던 여주가 깼다. 연준의 무릎을 베개 삼아 누워있던 여주는 곡소리를 내며 찌뿌둥한 몸을 일으켰다.

여주가 일어나기 전까지만 해도 의자에 앉아 휴대폰만 들여다 보던 태형이 여주가 일어나는 것을 보자마자 벌떡 일어나 아까 막 사 온 생수를 건넸다.


김태형
“⋯마셔.”

연여주
“어어⋯. 고맙다.”

태형에게서 생수를 받은 여주는 남몰래 얼굴을 찡그렸다. 한숨 자고 나면 괜찮아질 줄 알았던 팔이 뻐근했다. 이를 티내지 않고 생수를 입에 들이킨 여주는 좀 비어보이는 경찰서를 보고 고개를 갸웃거렸다.

연여주
“팀장님이랑 호석 선배는?”


민윤기
“호석이는 누나랑 병원에, 석진 형은 다연이랑 집에 갔어.”

연여주
“그래?”


민윤기
“⋯몸은.”

연여주
“괜찮아.”

담백한 여주의 대답에 윤기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윤기의 모습을 지켜보던 연준이 미간을 찌푸렸다. 연준이 다쳐 이곳에 왔을 때도 그렇고, 지금도 그렇고, 저 윤기라는 사람은 여주에게만 걱정하는 기색을 내비쳤다.


최연준
“⋯설마.”

아니, 그러면 안 된다. 설마라는 가정 또한 나오면 안 된다. 지금은 같은 울타리 안에서 함께 싸운다고 하지만, 여주와 이들은 엄연히 달랐다. 어느 한쪽이 상처를 받게 된다면, 그쪽은 여주가 될 것이기에⋯ 절대, 사치스러운 감정을 가져선 안 된다.

똑똑–

“저기⋯ 택배가 왔는데요. 당사자한테 직접 전해줘야 한다는 물건이 있다고 하는데, 들여보내도 될까요?”

이곳에서는 잘 들을 수 없는 노크 소리가 들리고 경찰서 경비원이 문을 살짝 열었다. 평소였다면 문 앞에 두고 갔을 텐데, 이번 택배는 당사자에게 직접 수령 싸인을 받아야 하는 택배인가 보다.


김남준
“누구 택배인가요?”

“연여주 씨 앞으로 온 택배입니다.”

종종 이런 일이 있기에 남준이 부드럽게 물으니, 경비원 대신 경비원의 뒤에 있던 사람이 대신 답했다. 모자를 눌러 쓰고 택배 조끼를 입은 걸 보니, 물건을 전달해 주러 온 택배원인 것 같았다.

자신의 이름이 들리자 여주는 소파에서 일어나 의아해하며 택배원에게 다가갔다. 가족도 친구도 없는 여주에게 택배를 보낼 사람은 없었다. 이는 연준 또한 알았기에 이상하다는 시선으로 택배원을 쫓았다.

“연여주 씨 본인, 맞으시나요?”

연여주
“네. 제가 연여주인데요.”

“여기에 싸인해 주시면 됩니다.”

택배원이 여주에게 볼펜 한 자루를 건네며 어느 한 곳을 가리켰다. 의아해했던 것도 잠시, 여주가 수령인에 싸인을 남기자 택배원은 여주에게 자신이 들고 온 물건을 건넸다.

“그럼, 안녕히 계세요.”

연여주
“⋯⋯.”

뭐지, 방금 저 사람⋯ 웃었던 것 같은데. 하필 모자를 깊게 눌러 써서 얼굴도 다 보이지 않았다. 택배를 받고도 여주가 가만히 있자, 뒤에 앉아있던 정국이 다가왔다.


전정국
“뭐해. 안 열어 봐?”

연여주
“어⋯ 열어 봐야지.”

정국의 목소리에 정신을 차린 여주는 품 안에 있는 택배 상자를 커터칼로 그어 열었다. 상자의 크기는 큰데, 안에 들어있는 내용물은 작다.

온갖 포장지로 감싸 있는 것을 벗기고 벗기고 벗기니, 그제야 내용물은 제 모습을 드러냈다.

연여주
“⋯⋯.”

택배 물품을 확인한 여주의 얼굴이 굳었다. 툭, 들고 있던 빈 상자가 바닥에 떨어졌다.


전정국
“이게 뭐야? 목걸이? 꽤 낡은 것 같은데, 요샌 이런 것도 택배로 선물해 주나.”

오직 눈앞에 있는 목걸이에만 시선이 갈 뿐, 가까이 있는 정국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비틀대는 걸음으로 정국에게서 한 걸음 멀어진 여주는 덜덜 떨리는 손으로 목걸이의 뒷면을 확인했다.

봄베이.

영어 필기체로 박혀있는 이 목걸이는, 보스와 여주만의 추억이 담긴 목걸이가 맞았다.


김남준
“어, 여주 씨. 어디 가요!!!”

목걸이를 손에 꼭 쥔 여주는 방금 나간 택배원을 잡으려 사무실을 뛰쳐나갔다. 이 목걸이를 가지고 있을 이는 단 한 명, 아니 단 한 곳밖에 없었다.

연여주
“⋯카타르티시!!!!”

꼭, 꼭 잡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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