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몸의 상처들과 내 마음의 상처의 공통점
[제 02화]


02. 지민의 과거

2년전

오늘도 평화로운 하루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그 일이 일어나기 전까지만 해도 평화로웠다. 작은 걸음으로 어딘가 급히 가는 지민의 등은 무더운 날씨 탓인지 이미 축축하게 젖은지 오래였고, 이마에는 송글송글 땀이 맺혀있었다.


박지민
"날씨 웰케 덥냐..."

30도는 기본이고 40도까지 가는 날씨는 개도차 혀를 내밀 정도의 더위였다. 지민은 에어컨과 선풍기, 얼음이 너무나도 간절했다. 지민은 에어컨이 틀어져 있는 일명, 천국인 옷가게를 향해 빠르게 걸었다.

툭-, 누군가와 부딪힌 지민은 뒤로 넘어질 뻔 했지만, 곧바로 중심을 잡았다.


박지민
"으아.. 죄송합니다!ㅠㅠ"

지민은 부딪힌 머리가 아픈지 꽉 붙잡고 있었다. PC방에서 나오다가 봉변을 당한 그 역시 지민과 같은 자세로 지민을 째려봤다.

???
"아.. 씨# 겁나 아프네..."

미안한 마음이 가득 차 고개를 들 수 없었던 지민에게 욕이 들려왔다. 별거 아닌듯 하지만 평소 욕을 싫어하던 지민인지라 깜짝 놀라며 그를 올려다 봤고, 지민은 경악을 금치 못했다.


박지민
"..이지호?"

일명 '일진' 이라고도 불리는 그는 말그대로 날라리였다. 이 학교 최고의 문제아인 그와 부딪혔다. 남들같았으면 사과 한마디로 넘어갔겠지만 그는 다르다.

하필 왜 얘랑 부딪혔냐, 자기 자신을 원망하던 지민은 곧바로 들려오는 그의 목소리에 얼어붙었다.


이지호
"우리 좀 따라와."

우리? 이지호 말고 또 누가 있는거야? 지민의 표정은 굳어져만 갔다. 그리고 아니나 다를까, PC방 입구에서는 이지호와 한무리 인 것 같은 일진들이 줄지어 나왔다. 지민은 그때 직감했다.

아, 난 망했구나.

골목.

그들은 으슥한 골목으로 지민을 끌고갔다. 도망치고 싶었지만 후에 감당할 자신이 없었던 지민은 그냥 잠자코 있었다.


이지호
"친구야. 돈 좀 있니?"


박지민
"ㅇ, 응..?"

숨 막히게 고요한 정적을 깬 그의 질문은 예상과 조금도 다르지 않았다. 흐름상, 삥 뜯는게 뻔했다.


박지민
"미안해...근데 진짜로 돈이 없어서..."

거짓말이였다. 오늘 아침, 어머니와 동생들에게 선물을 사주기 위해 나의 돼지 저금통을 깼다. 소방 대원이였던 지민의 아버지는, 동생 또래인 어린 아이와 할머니 한 분을 구하려다 돌아가셨다. 그렇게 허무하게, 이렇게 갑작스럽게 사라지실지 몰랐다.

그게 불과 2년 전 일이다. 남편 없이 힘들게 세자녀를 키우시는 어머니와 사랑하던 아버지를 잃었음에도 밝게 웃어준 동생들에게 너무 미안하고 고마웠다.

부족하고 어려운 살림에도 기죽지 말라며 꼬박 꼬박 돈을 챙겨주신 어머니의 용돈을 더불어 돈이 생길 때 마다 아끼고 아껴 모아둔 돈이였다. 그런 피같은 돈을 빼앗길 순 없었다.


이지호
"진짜로 없어? 거짓말 하면 어떻게 되는지 알지?"

응. 잘 알지. 너 양아#라고 소문이 얼마나 많이 났는데.

차마 입 밖으로 꺼낼 수 없었던 말이였다.


박지민
"진짜 없는데..."


이지호
"10원 당 한 대. 알지?"

입꼬리를 살짝 올렸다 내리며 되지도 않는 멘트늘 치는 이지호였다. 드라마나 영화에서만 보던건데... 현실에서 경험할 줄 누가 알았겠는가.

그래서 결말은? 내가 생각했던 것처럼 망.. 찍혀서 삥 뜯기고, 맞고... 일생활이 된지 오래다. 말은 이렇게 한다만 고통스러운 건 여전하다.

작가한테 남주가 날 구해주면 안된다고 물어보니까 아직 타이밍이 아니란다, 빌어먹을. 정녕 나한테는 백마 탄 왕자님 따윈 존재하지 않는 걸까... 오늘따라 좀 외롭네.

°°°

다음날.

교실에 들어가자마자 자리에 앉았다. 하지만 고개를 들지 않았다. 마주 볼 용기가 없었다. 그때 같은 반친구의 말 속에서 자신의 이름이 들려왔다.

아무리 작은 소리라도 자신의 이름이 들리면 갑자기 귀가 좋아지지 않는가. 나만 그런 걸 수도 있지만 대다수는 공감할 거라 생각한다. 남 일이라면 뭐든 상관없지만 나의 일이라면 예민하게 반응하는 게 인간이니까. 지민은 한 아이의 말 속에 귀를 기울였다.


최민기
"야, 나 갑자기 궁금한 거 생겼는데."


최민기
"박지민 왜 이지호한테 찍힘?"


방용국
"저기 박지민있다. 조용히 말해."


최민기
"뭐 어때. 이젠 그냥 찐따인데."

맞는 말이다. 나 찐따야, 근데 뭐. 찐따는 아무것도 못하나. 친구 없으면 사람 취급도 못받나. 어이없었지만 한 편으론 조금 쓸쓸했다.

이지호에게 찍혔다는 소문에 친구들은 누가 먼저랄 것 없이 떠나갔다. 아, 이지호의 협박도 한 건 했겠지. 덕분에 주변에는 아무도 없었다. 완벽한 혼자였다.


최민기
"어쨌든 박지민 왜 찍혔냐고~ 나 궁금한 거 해결하기 전까지는 공부도 못하는 거 알잖아!"


이홍빈
"공부? 너 공부도 했었냐? 수업 시간에 계속 졸던 녀석이..."


최민기
"쨋든!.."


방용국
"박지민 혹시 이지호한테 죄 지은 거 아님? 약점 잡혔다던가..."


이홍빈
"몰라. 찍힐만 하니까 찍혔겠지 뭐."


박지민
"......"

솔직히 이 말에 상처 안 받았다고 하면 거짓말이겠지. 대체 내가 뭘 잘못했다고. 잘 알지도 못하면서 왜 그런 말을 하는거지.. 당최 이해가 되지 않았다.


이홍빈
"아, 맞다. 저번에 박지민이랑 피방 갈 때 보니까 인성이 장난 아니더라ㅋㅋ 나 존# 착한앤줄ㅋ"


최민기
"진짜? 개실망, 속았네."

난 누구한테도 내가 착하다고 한 적없다. 모범생이라고 내 입으로 말한 적도 없고, 조용하고 얘들한테 잘대해준다고 한 적도 없다. 자기들이 나에 대해 생각했던 이미지를 나에게 억지로 끼어 맞추려고 한다. 난 그런 적 없는데. 그런거 따위 바라지 않는데.

예쁜 꼭두각시. 개 썅 마이웨이를 주장하며 살았던 나도 남들에게 잘보이기 위해 나를 숨기며 살아가는, 남들에게 조종 당하는 인형이 되었다.

나에게도 가면이 씌워졌다. '벗으면 안된다. 부스면 안된다.' 사람들은 나에게 세뇌를 시킨다. 하지만 벗고 싶다. 벗지 않으면 미쳐버릴 것만 같았다.

가면을 벗기 위해 한 손을 올린다. 심장 박동 수가 빨라진다. 떨렸다. 드디어 해방이구나.

하지만 곧바로 다른 손이 가면을 벗으려는 손을 내리친다. 갑갑하고 고통스러웠지만 그 끝내 난 벗지 못했다. 너무 무서워서, 가면 속 숨겨졌던 추한 나의 모습으로는 세상을 마주볼 용기가 나지 않았다.

그렇게 난 다시 가면을 쓴다.

그리고 서두른다.

예쁜 꼭두각시가 되기 위한 치장의 준비를.

°°°

그렇게 일은 다시 현재로 돌아간다.


이지호
"지민아, 우리 재미있는 거 하나 할까?"

°°°

이지호가 재미있는 거라고 말한 그것은, 전정국이란 애의 대한 헛소문을 내란 거였다. 솔직히 하기 싫었다. 난 전정국에 대해 악감정 따윈 없다. 그리고 일이 커지면 소문을 낸 나에게 덮어씌울 것이 눈에 훤했다.


박지민
"......"


이지호
"왜. 싫어?"


박지민
"ㅇ, 아니..."

어쩔 수 없었다. 아니, 무서웠다. 또 어떤 해코지를 당할까 두려웠다. 옳지 않은 건 알았지만, 날 죽일 든 노려보는 이지호의 모습에 생존 본능이 나왔던 것 같다.


박지민
"...할께."


이지호
"역시. 그럴 줄 알았어."

어깨를 부딪힌 게 이렇게 큰 잘못일까? 물론, 내가 잘했다는 건 아니다. 살짝 억울하고 어이없을 뿐. 한 번 뿐인 학창 시절에, 친구가 제일 소중한 이 나이에. 이 일을 꼭 겪어야 할까?

난 비겁했다. 두려움에 친구를 팔았다. 다 겪는 거라며 일반화된 무자비한 폭력에 굴복했다. 난 살 가치가 없는 걸까. 완벽한 신의 실패작인 걸까.


박지민
"......"

남들이 좋은 추억 쌓으며 '하하 호호' 거릴 때, 난 혼자였다. 무서웠다. 지금 이 순간이, 내게 올 미래가. 너무 두렵고 무서워서 숨어버리고 싶었다.

하지만 그럴 수 없었다. 숨을 곳이 없어서? 아니, 지금 현재의 나를 생각하기에는 미래가 두려워서. 우울이라는 게 내 몸을 갉아먹는다. 너무 고통스러워. 누가 내 손 한 번만 잡아줬으면.

모르는 존재에 대한 두려움과 걱정들이 날 애워쌓다. 막상 그 존재가 아무것도 아닐 수 읺는데. 그치만, 이미 난 불안감에 둘려 쌓였다.

몸을 계속 웅크린다. 누구에게도 띄지 않게. 이런 나의 모습을 아무도 모르게 하기 위해서. 하지만 손을 살짝 내밀어 놓는다. 말라 비트러진 이 땅에서, 현실과 싸우기에는 작디 작은 그 손을.

'누군가 잡아주지 않을까?' 하는 약간의 기대와 더불어, 애처로운 생각과 함께.

-지민의 과거 EN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