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동화 : Adult Story

#Page 2. 어른동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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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이 마을에 이안이라는 사람은 없네, 제온이라는 성을 가진 사람도 없고,"

  고동색 눈동자에 흰머리가 살짝 돋아난 회색 머리칼의 중년 남성, 이 아일론 마을의 촌장님이신 제이슨 브라운씨는 편지를 살펴보며 고개를 내저었다.

"뭐.. 옛날에 살았던 사람이라던가 그런건 아니겠죠?"

"글쎄.. 웬만해선 이 마을에 살았던 사람들은 전부 기억하는 편인데.."

"흐음.."

  잠시 제 볼을 긁적이던 그녀는 도움을 주지 못해 미안하다 하는 제이슨씨에게 되려 고맙다며 감사의 말을 건내고선 편지를 챙겨 그의 집을 나서려했다.

"아님 하운드 선생님께 가보는게 어떤가?"
"이 마을에서 가장 오랫동안 살고 계셨으니 한번 여쭤보는 것도 좋을 걸세,"

"아, 감사합니다..!"

  하운드 올리버, 일명 하운드 선생님이라 불리는 그는 마을의 중심에서 북동쪽으로 살짝 치우쳐진 곳에서 살고있는 어느 학자였다.

  음, 무언가 연구하던 중 부작용이 생겨 올해 연세만 130세가 넘으신 것 외에는 굉장히 평범한 노년 학자님이시다, 응, 그렇다고 하자,

  촌장님의 집을 나선 그녀는 지나가던 포도주수레를 얻어타 하운드 선생님의 자택으로 향했고 가뜩이나 덕지덕지 발려져있던 허연 페인트가 홀라당 까여 더욱 휑해보이는 어느 2층자리 오두막에 도착할 수 있었다.

  그녀가 조심스레 가시가 비죽비죽 돋친 생나무 문을 똑똑, 하고서 두드리자 문이 저절로 스윽 열렸고 아니나 다를까 타이밍도 좋게 안에서 퍼어런 연기가 펑, 하고서 터져나왔다.

"켈록, 켈록, 어후.. 선생님 제가 집안 환기 좀 시키시라고 몇번이나 말씀드렸는데!"

"어이구, 그레이 자네 왔는가? 방금 연구를 끝낸 참이라, 이제 막 환기를 시키려 했다네, 허허,"

"은퇴하신지 50년은 넘으셨으면서!"

  그리 말하며 장난스레 제 고운 코끝을 찡그리는 그녀에 노인은 그저 허허, 하는 인자한 웃음을 지으며 제 수염을 쓰다듬을 뿐이었다.

"그나저나, 새 책 낸지 얼마 안 되어서 바쁠텐데, 여긴 어쩐 일인가?"

"아, 그게 다름아니라 어제 저희 집으로 편지가 한통 왔는데.."

  그리말한 그레이는 재킷 안주머니에 고이 품어둔 하얀 편지봉투를 조심스럽게 꺼내어 그의 앞에 내밀었고 하운드씨는 그것을 유심히 바라보았다.

"이안 제온? 허허, 이 이름 굉장히 오랜만이구만,"

"누군지 아세요?"

"그럼! 알다마다, 워낙 이름만큼이나 특이한 청년이라 잊어버릴 수가 없지,"

  잠시 커흠, 하며 제 목을 가다듬은 노인은 그레이에게 소파에 앉을 것을 권하고는 그녀가 자리에 앉자 천천히 이야기를 시작했다.

"아마 내가 그 청년을 처음 본게 80년은 훨씬 전일걸세,"

"...네? 8...80년이요?"

  80년전에 청년이었으면.. 이미 진작 100세는 넘었다는거잖아? ...그 사람 살아있긴 한거야?

  그의 이야기를 귀담아 듣던 그레이는 잠시 제 귀를 의심하며 혼란에 빠졌고 하운드씨는 개의치 않고 말을 이어갔다.

"그래, 그날은 마을에서 한창 올 할로우 (All Hallows)를 준비중이었지, ..아, 지금의 할로윈 (Halloween) 말일세,"



  그날은 할로윈 밤 중에서도 특이했지, 알차고 동그랗게 오른 보름달이 무려 두개나 떠오른 날이었으니까,

  그때 난 아이들을 놀래키기 위해 유령 인형을 공중에 띄우는 마법을 실행중이었지, 그래 이렇게 사과를 손대지 않고 들어올리는 것처럼 말이야, 오, 그건 자네 먹게, 오늘 아침 과수원에서 갓 따와서 아주 신선해,

  아무튼, 다들 한창 축제를 즐기고 있는데 무언가 이상한 기분이 들었네, 그 있잖나, 촉각도 청각도 아닌 그 묘상한 감각.. 그래그래, 육감! 아휴 참 내가 나이가 들어 자주 깜빡깜빡 한다니까,

  그래서 나도 모르게 뒤를 돌아보았지, 그런데 웬 처음보는 청년이 거기 멀뚱히 서서는 무언가 찾는 것마냥 두리번두리번 거리는게 아니겠나?

  피부는 남들보다 몇배나 창백해서 핏기가 아예 없고 유행이 몇세기는 지난 요상한 검은 로브형 망토를 걸치고 있는 청년이었어, 그치만 그날은 할로윈이었기에 아무도 그를 수상히 여기지 않았어, 나도 마찬가지고 말이야, 나는 그저 그 청년이 뱀파이어 분장을 하고 있다고 여겼지, 아마 그때 모두가 그랬을거야!

  그래서 나는 한창 축제를 즐기고 있었기에 잔뜩 들뜬 심정으로 그에게 다가가선 친근하게 소리쳤지, 음, 사실 그때 술을 좀 마셨던 터라 마냥 기분이 좋았거든, 응? 내가 그때 뭐라했냐고? 아 맞다 그래, 그때 뭐라했냐면..

"어이! 뱀파이어 친구! 거기 가만히 서서는 뭐하나? 어서 이리 오게! 오늘 밤은 아주 특별하니까!"

  근데 그 청년은 갑자기 화들짝 놀라더니 어디론가 휘익 달아나는게 아닌가, 정말이지, 내 목소리가 그렇게 컸던가?

  무튼 내심 황당하면서도 뭐 많이 소심한 성격이겠구나 싶어서 대수롭지 않게 넘겼네, 그런데 얼마지나지 않아 그 청년이 홀연히 나타나서는 나에게 다가오는게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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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선생님.. 아까는 죄송했습니다. 축제는 익숙하지 않아서 그만.."

  이야, 정말이지 지금 생각해봐도 잊혀지지 않을 만큼 잘생긴 청년이었어, 순간 나조차도 내가 남자인지 의심했을 정도라니까!

  이게 이목구비가 깊고 차분하게 생긴 것이 분명히 제국민의 얼굴은 아닌데, 내가 전해듣기로는 저 바다건너 동방출신의 사람들이 그런 느낌의 얼굴을 가졌다지? 아, 그래, 약간 자네 오라비랑 비슷한 느낌이었네, 자네 오라비도 제국으로 오기 전엔 동방출신이었다고 하지 않았는가? ...아, 미안하네... ..내가 괜한 얘기를 했구만, 그래 잊어주게나,

  무튼 나는 그 청년을 이 마을에 온지 얼마 안 된 외지인이라 생각하고 그를 데리고선 축제 이곳저곳을 돌아다녔네, 뭐, 그닥 재미는 없지만 성품 만큼은 참하고 정직한 친구였지,

  근데도 가리는 음식은 얼마나 많던지, 내가 마늘소스를 바른 닭꼬치를 사주려하니 아주 기겁을 하더군, 아, 그 닭꼬치 참 맛있으니 자네도 축제때 한번 먹어보게나,

  그 청년은 축제 내내 헤이만산 적포도주 외에는 음식을 입에 대는 법이 없었지, 그렇게 가리는 것이 많아서야 대체 뭘 먹고 살겠나?

  결국 축제가 끝나고 나서 나는 그 청년에게 집이 어딘지 물으며 바래다주려 했지, 그런데 그는 또다시 홀라당 사라져버리는 것이 아닌가? 제 이름이 '이안 제온'이라는 말 한마디만 남겨놓고 말일세,


".....그래서.. 이 사람 아시는거 맞죠..?"

"그럼! 일단 계속 들어보게나!"

  어느새 과육을 쏙 발라먹혀 심지만 남은 사과를 쓰레기통에 대충 던져넣은 그레이는 마지못해 그의 기나긴 이야기를 계속 경청했다.

"그 뒤로는 내가 저 바위산에 약초를 구하러 가다 우연히 마주치거나 아님 산짐승이라도 마주쳤을 때 그 청년이 구해주는 것으로 몇번 마주쳤었지,"

"...아.. 바위산... ...? 네? 바위산이요? 설마 저기?"

  그 말을 가만히 듣고 있던 그레이는 뜻밖의 단어에 정신이 퍼득 들어 마을의 북동쪽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재차 물었고 하운드씨는 고개를 끄덕이며 아예 창문을 열어 다시금 그 북동쪽 바위산을 향해 손짓하기까지 했다.

"그 청년, 왕년에 꽤나 힘을 썼던 친구일지도 모르네,"
"내 살면서 불곰을 맨손으로 찢어발기는 사람은 처음 봤네만,"

"...? 네? 곰을 찢어요?"

"...그러고보니 생각할수록 요상한 청년일세,"

  그리 말한 하운드씨는 다시금 그 바위산을 향해 시선을 돌렸고 그 깊이를 알 수 없는 어두운 녹빛 눈동자에 어느 흑색 저택의 깃발이 펄럭이는 광경이 비춰졌다.

"내가 그 후에도 몇번 정도를 마주쳤는데, 어째 몇년이 지나도, 아니 몇십년이 넘게 지나도 그 청년은 나이를 먹지 않았어,"

"어.. 뭐 엄청 동안이라던가 그런거 아닐까요..?"

"30년이 넘도록 20대의 모습을 그대로를 유지하는 것이 단순히 동안이라고 보기는 어렵네,"

"음.. 그럼 그 사람도 마법사일까요? 하운드 선생님처럼 수명이 연장된거라던가.."

"수명이 연장되거나 하는 것 모르겠다만 아예 나이를 먹지 않는다는 것은 제 아무리 마법사라도 인간의 몸으로는 불가능하네,"

"

  그의 말을 들은 그레이는 여전히 이해하기 어렵다는 듯 혼란스러운 심정이 그대로 드러나는 표정을 지어보였다. 이안 제온 이라는 영문모를 이의 정체를 알고자 질문한 것인데, 오히려 더욱더 미궁으로 빠져들었다.

"뭐 어쩌면,"
"그가 정말로 뱀파이어였을지도 모르지,"

"

"이런, 내가 너무 오랫동안 붙잡아두었구만, 이만 가봐도 괜찮네, 곧 해가 질걸세,"

"....네.."

  결국 여전히 풀리지 않은 의문을 품에 떠안은 그레이는 편지봉투를 챙겨 그의 집을 나섰고 무심코 위를 올려다본 그녀의 눈에 바람결을 따라 펄럭이는 흑색 깃발만이 보일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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