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월

__1942년 4월 25일
범규는 안절부절못했다. 그는 손톱을 뜯고 발을 불안하게 딱딱거렸다. 수빈은 그 옆에서 범규를 바라보고 있었다. 어딘가 이상하였다. 늘상 불타는 것 같이, 상상 속의 동물인 주작 같이 뛰어다니던 그가 웬일로 이리 조용한가 싶었다. 적적한가 하여 그 옆에 앉았다. 협소한 계단 때문에 두 사람은 고스란히 서로의 체온을 느끼게 되었다. 뜨겁지도 않고 차갑지도 않은 그저 그러한, 초봄의 온기. 수빈이 입을 열었다.


“왜 그래요?”


그러나 범규는 수빈의 말에 대답하지 않았다. 대답을 기대하고서 한 것은 아니었으니 수빈은 어깨를 으쓱했다. 밤하늘이 정말 예쁘죠? 그가 웃었다. 범규는 간신히 고개만 끄덕였다. 도대체 무엇이 그를 괴롭히는 것인지는 수빈으로서 알 도리가 없었다. 필시 무슨 일이 있는 것이 틀림없지만서도. 얼마 지나지 않아 남준이 그 좁은 계단에 비집고 들어왔다.


“아 형 좁아요.”
“에이 같이 좀 있자. 범규씨도 괜찮으시죠?”


범규가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원체 기골이 장대한 남준이었기에 계단은 마치 세 사내를 쥐어짜 내고 싶어 하는 것만 같았다.


“동포끼리 싸워서야 쓰나.”
“同胞だと思ったらですね。(동포라고도 생각한다면 말입니다.)”


짤막하게 내뱉은 말에 수빈과 남준은 고개를 돌렸다. 아…미안합니다. 저희가 일본말을 잘 모릅니다. 남준이 머리를 머쓱하게 긁적였다. 범규는 어깨를 으쓱했다. 수빈은 입술을 뜯다가 일어섰다. 남준도 일어섰다. 못내 마음에 걸렸지만 신경 쓰고 싶지 않았다. 어쨌든 달가운 사람은 아니니까. 말을 섞어본 처지도 아니면서 수빈은 범규를 보노라면 불안했다. 아마 그 불안함의 정체는 나중에서야 밝혀지겠지. 그때 동안 까닭 모를 위화감을 견뎌야 할 서로가 수빈은 안타까웠다.


“학교에서 창씨개명 하라는데.”


넌 할 거니? 남준이 물었다. 일본은 앞으로 창씨개명을 해야 계속 수업을 들을 수 있다며 사실상 강제로 학생들의 창씨개명을 밀어붙였다. 수빈은 고개를 저었다. 그렇게 해야만 해요. 수빈이 말했다.


“…난 홀로 편하게 시나 쓰고 있잖아요.”




<자화상>


산모퉁이를 돌아 논가 외딴 우물을 홀로 찾아가선 가만히 들여다봅니다.

우물 속에는 달이 밝고 구름이 흐르고 하늘이 펼치고 파아란 바람이 불고 가을이 있습니다.

그리고 한 사나이가 있습니다.
어쩐지 그 사나이가 미워져 돌아갑니다.

돌아가다 생각하니 그 사나이가 가엾어집니다.
도로 가 들여다보니 사나이는 그대로 있습니다.

다시 그 사나이가 미워져 돌아갑니다.
돌아가다 생각하니 그 사나이가 그리워집니다.

우물 속에는 달이 밝고 구름이 흐르고 하늘이 펼치고 파아란 바람이 불고 가을이 있고 추억처럼 사나이가 있습니다.




지민은 기지개를 쭉 켰다. 방금 말모이 회원들의 편지를 다 뜯어 읽은 참이었다. 이제 좀 쉴 수 있으려나 했더니 태현이 커다란 가방을 들고 들어왔다. 뒤에서 호석이 끙끙대며 또 다른 가방을 들고 왔다. 지민은 우는 소리를 내며 엎어졌다. 아 못해 못해. 지민이 손을 내저었다. 밤을 새워가며 90통이 넘는 편지를 뜯고 읽고 기록하느라 뻣뻣해진 손의 마디가 비명을 질렀다.


“박 동지, 아직 포기하기는 이르네.”
“압니다…”


목표량의 반도 못 채운 글자들을 보며 지민은 한숨을 쉬었다.


“이대로는 힘듭니다.”


태현이 말했다. 새로운 것, 그것을 모두 갈망하고 있었다. 지민의 옆에 앉은 여인이 도대체 사전이 완성될 수 있기는 하냐며 분통을 터트렸다. 청년의 다른 말은 변화요, 따라서 긍정적인 변화를 향해 나아가는 것이 청년의 의무라 하였다. 태현은 자리에서 일어나 칠판 앞으로 갔다. 그리고 분필로 막힘없이 글자를 써 내려갔다.

‘광고’

생각해내지 못한 것이 오히려 무안할 지경이었다. 태현은 글자 밑에 줄을 한번 좍 그었다.


“신문사에서 광고를 실으면 어떻습니까. ‘한글’ 잡지는 현재 말모이 회원들에게 큰사전 작업 진행 상황 및 지령을 내리는 용도이지 않습니까.  다수의 힘을 빌리려면 신문에 광고를 싣는 것이 효과적일 겁니다.”
“다만 그렇게 되면 회선(懷鮮) 동지께서 위험해집니다.”


지민이 반대하고 나섰다. 아직 수배지는 붙지 않았으나 일제가 태현을 주시하고 있다는 사실은 명백했다. 따라서 그 어떠한 확률에도 살얼음판 위에 선 듯 조심스럽게 걸어갈 수밖에 없었다. 지민은 평소 차분하고 계획적이며 정적이었던 그가 왜 갑자기 이리 대담해졌는지 의문스러웠다.


“애초에 각오하고 한 일 아닙니까.”
“내 하나만 물어봄세.”


머리가 희끗한 조선어학회 회장이 손을 들고서 말했다. 그의 눈빛은 연륜에서 비롯된 품위를 지니고 있었고 자줏빛 두루마기는 그의 위엄을 더해주었다.


“이리 적극적으로 나서는 연유가 무언가?”


태현이 잠시 회장을 바라보다 어깨를 으쓱했다.


“이참에 운을 범해볼까 해서요. 여튼 다들 동의하십니까?”


모두 고개를 끄덕였다. 지민만이 탐탁잖은 얼굴로 마지못해 찬성할 뿐이었다. 호석은 지민 옆에 의자를 당겨 앉았다. 다른 말모이 회원들이 태현 주위에 둥글게 모여 앉아 광고 내용을 의논하고 있었으나 지민은 멀찍이서 그를 지켜볼 뿐이었다.


“슨상님은 즈그 안 합니꺼?”


호석이 둥글게 앉은 말모이 회원들과 태현을 가리키며 물었다.


“굳이 목숨을 내던지려고 하는 것이 못마땅하여 그럽니다. 호석 씨는 저거 안 하십니까?”
“지가 뭔 도움이 된다꼬. 내는 그저 놀음패 출신이다 안 하요. 까막눈이 아는 체 해봤자 거서 거지.”


당연하다는 듯이 웃으며 말하는 호석을 보며 지민은 못내 안타까워졌다. 호석이 놀음패 이야기를 해주는 동안 지민은 계속해서 생각에 잠겨 있었다. 본디 세종께서 훈민정음을 만드신 것이 만백성이 글을 읽을 수 있게 함이거늘…. 지민은 낮게 훈민정음해례본을 되뇌었다. 나랏말싸미 듕귁에 달아…문자와로 서르 사맛디 아니할쎄 이런 젼차로 어린 백셩이 니르고져 홀 배 이셔도 마참내 제 뜨들 시러펴디 몯 할 노미 하니라…….


“배우면 되지 않겠습니까.”


호석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지민은 다시금 힘을 주어 말했다. 학당을 세우는 겁니다.




__1942년 4월 26일
연준은 나는 듯이 경성의 지붕 위를 뛰어갔다. 달빛도 구름에 가려 잘 보이지 않았고 그가 의지할 수 있는 것은 오로지 그의 육감이었다. 한 건물에서 불빛이 새어나왔다. 최시형의 저택이다. 아니, 정확히는 엔도 타다요시의 저택. 연준은 별을 등지고 저택에서 가장 가까운 지붕에 자리를 잡았다. 총을 장전한 후 연준은 표적이 나타나기를 기다렸다. 그의 관찰을 토대로 엔도 타다요시는 9시 쯤 정원을 거닌다. 몇달간의 관찰이 헛되지 않았다는 것을 증명하듯 최시형은 기다란 담뱃대를 들고 마당으로 나왔다. 그는 일본인처럼 양장을 입고 있었다. 연준은 잠시 숨을 고르며 바짝 마른 입술을 혀로 훑었다.


“대한독립 만세.”


방아쇠를 당기려던 그때, 시형의 뒤로 익숙한 얼굴이 보였다. 그것이 연준의 암살자 생활의 단 하나 큰 오점이었다. 멈칫하는 사이 방아쇠가 당겨졌다. 결코 처음 느껴본 것이 아닌 쇠의 질감이 손목에 박혔다. 휘청거리는 몸을 간신히 붙잡았다. 터져나오려는 고통을 입술을 씹어가며 견뎠다. 입술의 피부가 짓이겨져 피가 흘렀다. 마찬가지로 피가 흐르는 손목을 부여잡고 연준은 밑을 내려다보았다. 노란 군복의 일본군이 지붕 아래를 빙 둘러싸고 있었다.


“너는 포위되었습니다!(너는 포위되었다!)”
“일진이 사납네.”
“목숨이 아깝다면 내려와 총을 버리고 항복하라!(목숨이 아깝거든 내려와 총을 버리고


총알이 박힌 손목 그대로 연준은 일본군의 말을 무시한채로 다시 시형을 향해 조준하였다. 시형과 연준의 눈이 마주쳤다.


"쏴라!(쏴라!)"


방아쇠를 당기려던 순간에 총알은 발목 살을 파고들어 가고 복숭아뼈를 박살 내었다. 연준은 총을 놓치고 지붕에서 미끄러져 바닥으로 굴러떨어졌다. 기왓장이 그의 위로 떨어졌고 지나간 자리에 혈흔이 흥건했다. 땅바닥에 볼품없이 내동댕이쳐진 연준은 숨을 고르며 뒤늦게 찾아온 고통을 인내하려 애를 썼다. 숨이 목구멍에서 막혀 짐승의 것 같은 소리를 냈다.


“現行犯だ。すぐ逮捕しろ!(현행범이다. 바로 체포해!)”


일어설 힘이 없었다. 제 몸이 저의 몸 같지 않았다. 헌병들이 수갑을 채우고 짐짝처럼 들어 차에 싣는 동안 제 몸임에도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허무하고 허탈했다. 조선의 사내로 태어나 이룬 것이 그저 아홉 구의 시체밖에 없음을 애석해하였다. 어찌 이리도 부끄러울 데가 있나. 연준이 자조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바로 재판을 열어라. 조선암살단의 아이야. (바로 재판을 열어라. 조선 암살단 새끼야.)”


연준은 픽 바람 빠진 웃음을 지었다. 나 암살단 아닌데. 그가 중얼거렸다. 청년이로서니 죽음은 두렵지 않았다. 다만, 최시형을 처단하지 못한 것이 한이었다. 연준은 경성 형무소로 가는 길을 아무런 생각 없이 바라보았다. 차에서 뿜어져 나오는 연기 사이로 언뜻 익숙한 형체가 보일락 말락 하였다. 그가 더 자세히 보려는 순간 형체는 경성의 골목으로 사라졌다. 눈을 감았다. 청년회 동지들에게 미처 유언을 남기지 못한 것이 못내 아깝게 느껴졌다.




__1942년 4월 27일
석진이 문을 박차고 들어왔다. 대한청년회 모두가 일어서서 그를 쳐다보았다.


“최 동지가 체포당했소!”


순식간에 회의실 안은 아수라장이 되었다. 카이는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남준은 마치 보이지 않는 적이라도 있는 듯이 눈을 부릅뜨고 허공만을 노려보았고 수빈은 하얀 얼굴이 더 새하얗게 질려버렸다. 지민과 태형은 서로를 꽉 움켜쥐고 엄습한 두려움을 다스렸다. 석진과 태현은 수첩을 펼치고서 대책을 세우느라 바빴다. 태현은 불안을 내색하지 않으려 노력하며 만년필을 쥐었다. 긴장한 탓인지 정갈한 글씨가 자꾸 비어져 나갔고 꽉 쥔 탓인지 잉크가 튀었다. 석진이 태현의 손을 움켜잡고 버럭 소리쳤다.


“진정하시오!”


대한청년회는 조국의 독립을 위하여 목숨을 아끼지 아니한다. 애초에 때이른 청춘의 죽음을 생각하며 조직한 단체였다. 1940년대. 그 암울한 시기의 마지막으로 남은 한 촛불의 심정으로 살아가고자 결심한 그들이었다. 허나 새파랗게 어린 그들은 죽음을 이토록 가까운 곳에서 맞닥뜨린 적이 없었다. 태현은 잘 쉬어지지 않는 숨을 그러잡으려 애를 썼다. 어찌 이리 운명이란 것은 사납단 말인가. 분명 제 주인이거늘 어째서 길들여지지 않은 말처럼 날뛰며 주인을 안장에서 떨어뜨리려 해.


“보석…”


태현이 가쁜 숨을 몰아쉬며 힘겹게 내뱉었다. 우리가 보석을 신청할 여유가 됩니까? 남준이 물었다. 석진이 의자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이럴 때를 대비하고서 청년회에 가입한 것 아니겠소. 보석금은 내가 마련할 수 있을 것이오.”


수빈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힘겹게 혼란에서 벗어난 대한청년회의 분위기는 뒤숭숭했다. 태형이 일어섰다.


“여기서 아무리 떠들어 봤자 아무런 도움도 안 돼. 일단 최 동지의 상태를 보는 것이 좋겠군. 놈들이 하루 새에 무슨 짓을 했을지 몰라. 어서 가자고.”


그가 잘라 말했다. 석진이 태현을 부축했다. 수배가 붙거나 눈이 붙은 사람이 여럿 있으므로 남준과 지민, 태현이 면회를 하러 가기로 하였다. 인력거꾼조차 부를 사정이 되지 않아 하릴없이 걸어갔다. 찰나의 발자국이 영원 같았고 땅이 그들을 집어삼키려고 하는 것만 같았다. 경성 형무소에 당도한 뒤 면회를 신청했다. 수감자와의 관계를 묻자 얼버무리며 ‘아는 친척의 부탁’ 이라 하였다. 헌병은 건성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옥사 안으로 걸어갔다가 한 사내를 끌고 돌아왔다. 숨이 턱 막혔다. 남준이 끝내 분노에 차 쇠창살을 흔들었다.


“어째서 이런 꼴인겁니까, 어찌!”


남준이 소리쳤다. 울분이요, 분노요, 동정이며 슬픔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