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윤소원의 처소로 들것이니 유시까지 대전으로 가마를 대령하라"
헌이 발걸음을 옮기고 설화는 웃음을 지었다
"조상궁"
"예, 마마"
"오늘 전하께서 내 처소로 들면... 모든 나인과 자네를 포함한 상궁을 처소에서 물릭시게"
"예?"
"아무도 나와 전하의 담소를 듣지 못하게 하란 말이네"
"예 명 받들겠나이다..."
"오늘은 달이 빛을 잃겠구나..."
시간이 빠르게 흘러가고 어느새 해가 지고 달빛이 희미하게 빛을 내는 저녁이 되었다. 헌이 오기전 설화는 어제와 같이 처소에서 허리를 꼿꼿이 세우고 반듯한 자세로 헌을 기다렸다.
"마마 전하께서 납시셨사옵니다"
"드시라하게"
"짐이 분명 아름다운 여인의 모습으로 치장을 하라 명하였는데 모든 나인들과 상궁을 물리ㄱ...."

"신첩의 모양새가 영 별로이십니까...?"
"ㄷ,닮았다... 너무나도 많이..."
솔직히 연화와 너무나도 닮아 혼라스러웠다. 분칠하지 않은 맑고 깨끗한 피부, 연지를 바르지 않아도 윤기가돌던 복숭아빛 입술, 화려한 비녀를 꽂지 않고 빗질만 한 단정한 머리 윤소원의 모든게 연화와 겹쳐보였다. 마치 이래도 자신을 알아보지 못하냐고 연화가 말하는것만 같았다.

"전하... 어찌 소녀를 알아보지 못하시옵니까? 벌써 소녀를 잊으신겁니까..?"
헌은 설화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연화에게 말하듯 다정한 목소리로 자신의 아픔을 드러냈다.
"아니다 너를 여전히 잊지 못하였다... 그저 어디선가 살아만 있어준다면... 그저 살아만..."
"신첩이 그 여인과 많이 닮았사옵니까? 그 여인이 그리도 그리우십니까...?"
"하긴 니가 그 아이일리가 없지... 그 아이는 죽었는데"
"그 분께서 운명을 달리하셨습니까..?"
"여느 여인들과 다른것이 참 이상하구나... 어찌 너를 통해 다른 여인을 생각하였는데 기분 나빠하지도 투기를 하지 않는것이..."
"전하의 눈에 슬픔이 가득합니다... 헌데 신첩이 어찌 서운하다고 투정을 부리겠습니까..."
"이제 말해보거라 분명 처소로 오면 알려준다고 하지않았느냐?"
"그 여인을 잊으려하지 마시고 그저 추억하십시오"
"그 아이를 잊게해준다고 하지 않았느냐!"
"신첩은 전하께서 고통스럽지 않게 해드린다고하였지 그분을 잊게해드린다고 한적이 없사옵니다"
"허? 말이 아 다르고 어 다르다더니..."
"전하께서 고통스러워하시는 이유는 전하께서 잊으려하는데 잊혀지지 않아서가 아닙니까... 그러니 잊으려하지 마시고 추억하십시오"
"그 여인의 생각을 하면 그리워 미치겠고... 지켜주지 못해 미안하고... 그 모듣 감정이 슬픔으로 변해 나를 무너뜨리는데 어찌 잊지는 못할 망정 추억하란말이냐"
"잊으려고 하시니 그 여인이 상처를 준 그 때를 생각하실것이고 헌데 그 여인을 은애하시니 그 여인이 왜 그럴 수 밖에 없었는지를 이해하실것이니 결국은 미안함만 남는것이 아니옵니까"
"....."
"그러니 그저 추억하십시오 그 여인을 더이상 만날 수 없다는 사실을 받아들이시고 그 여인과의 행복한 기억을 그저 추억으로 남기십시오"
"그 여인과의 행복했던때를 추억하며 고통을 잊어라..."
"어느새 자연스레 고통은 잊고 오히려 그 여인의 생각을해도 마음이 흔들리지 않고 평온할 것이옵니다"
"한 상궁이 그대를 차기 국모의 자리에 앉히려한 이유를 알것 같구나"
"신첩은 국모의 자리에 미련과 후회가 없으니 염려하지 않으셔도 되옵니다"
"그래... 그럼 이제 윤소원 그대가 대답해보거라"
"ㅇ,예? 하문하오시면 답하겠사옵니다"
"그대가 추억하는 사내는 누구인가?"
"추억하는 사내라니요... 전하의 여인이 되었는데 감히 어찌 다른 사내를 마음에 품겠사옵니까"
"그대가 짐의 눈에 슬픔이 가득했다고 하였지"
"예 그러하옵니다"
"그대가 과인의 눈을 보았을때 짐도 보았다 그리움이 가득한 너의 눈을...."
"....신첩의 눈에 그리움이 차있었습니까?"
"괜찮으니 말해보거라"
"....."
고개를 숙인채 아무말이 없던 설화의 어깨가 떨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끝내 "툭" 눈물이 떨어졌다.

"하.... 송구합니다 전하 잠시만 밖에 나가있겠습니다"
설화는 처소 밖으로 나와서야 헌의 앞에서 참았던 울음을 터뜨렸다.
"ㅎ,흐읍..흐으으흐윽...흐으으"
떨리던 설화의 몸을 감싸는 부드러운 손길과 따스한 온기... 헌이었다. 헌은 설화의 울음이 멈출때까지 설화를 꼭 껴안았다.
.
.
.
설화의 울음이 그친 후
"밤 바람이 찬데... 과인의 앞에서 눈물을 보이는게 창피한것이냐..."
"그런것이 아니옵니다"
"허면 어째서 과인을 피해 밖에서 울음을 터뜨렸느냐"
"들키기 싫었습니다 저의 나락을..."
"들키지 않았다... 그대가 짐에게 들킨것은 나락이 아니라 진심이다"
"나락이든 진심이든 잊어주십시오 전하"
"더이상 숨기려고 하지말고 말해다오 너의 그리움도"
"전하.... 오늘은 달빛이 밝지 않아 그런지 별이 더 잘보입니다"
"그렇구나 헌데 갑자기 별은 왜..."
"해와 달만 있는줄 알았던 제게 처음으로 별을 보여주신 분이셨습니다. 신첩의 어둠을 별로 밝게 비추어주던 분이셨습니다."
"고마운 분이시구나"
"신첩이 그 여인을 닮았다고 하셨지요? 전하께서도 그 분을 닮으셨습니다 순간 착각할 만큼..."
"너도 추억하거라 네게 그러지 않았느냐 잊으려하지 말고 추억하라고"
"아니요... 저는 잊지말아야합니다. 고통스러워야합니다. 그분을 추억할 자격이 신첩에게는 없습니다"
"그럼 짐을 볼때마다 고통스럽겠구나.... 어쩔 수 없지 앞으로는 짐을 볼때 그 분보다는 다른것을 떠올리거라"
"무엇을 말입니까?"
"이것을"
헌은 설화에게 입을 맞추었다. 설화도 눈을 살며시 감았다. 둘은 11년전 별을 보았던 산에서 느꼈던 황홀함을 다시 느끼고 있었다 오직 둘에게만 집중할 수 있게 달빛마저 빛을 숨기고있었다. 담벼락 너머에도 빛을 잃어가는 달이 있었으니... 서화였다.

"윤소원이 연화라는 여인과 참으로 닮았구나"
"중전마마 마마의 합방일을 그르친 윤소원을 벌하셔야하옵니다"
"어명이라하지 않는가 전하께선 지금 윤소원을 통해 연화라는 여인을 보고계신다... 윤소원은 그저 그 여인을 대신할 뿐이다"
"하오나 마마"
"그만하시게 제 아무리 윤소원이 전하의 총애를 등에 업고 날고 기어봐야 한낱 후궁일터인데"
"후궁들이 전하의 총애를 입고 내명부의 질서를 쥐고 흔들어 왕실이 어지럽혀지는 일이 한두번이 아니었사옵니다"
"그런가하면 그런 후궁들을 질투하여 용안에 손톱자국을 내어 쫓겨난 폐비 윤씨도 있었다지..."
"....."
"내가 노여워하고 투기를 한다한들 바뀔것이 무엇이겠는가 그저 가만히 기다리다가 원자를 생산하는것 그것이 내가 이 자리에 있는 이유가 아니겠느냐"
"마마께서 원자만 생산하오시면 마마의 자리를 감히 그 누구도 넘보지 못할것이옵니다"
"그러니 이제 그만 중궁전으로 돌아가자꾸나... 내가 전하를 원망하게될까 두렵구나"
서화의 돌아가는 쓸쓸한 뒷모습을 지켜보던 백 운.
"원망을 넘어 증오하게 될 터인데.... 전하도 윤소원도"
다음날
평소와는 다른 곳에서 눈을 뜬 헌
"여기가...."
"신첩의 처소입니다"
"설마...."
"염려마셔요 전하께서 과음을 하셔서 신첩의 처소에 옥체를 뉘어드린것일 뿐입니다"
"아... 그렇군"
"전하의 그 여인분께 미안한 마음 가지지 않으셔도 됩니다 입맞춤 이후로 전하께선 신첩의 털끝 하나 건들지 않으셨습니다"
"그대에게 미안하게 되었소"
"애초에 전하의 아픔을 덜어드리려 한 것이 목적이니 신첩에게도 미안해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그래도..."
"수랏상을 준비하라 일렀으니 아침을 드시고 가십시오
전하"
"윤소원은?"
"신첩은 중전마마께 문안인사를 드리러 가야지요"
"왕실의 법도가 그대를 귀찮게하는구나"
중궁전 안
"유모 윤소원은 아직인가?"
"예... 아마 주상전하께서 깨어나신 이후에 오실 것 같사옵니다"
"전하께서는 한참 전에 이미 일어나셨을텐데 그 일 이후로 세자저하 시절에도 한번도 잠을 편히 주무시지 못하는 분이셨으니"
"마마 윤소원 마마께서 드셨사옵니다"
"들라하게"
"소인 윤소원 중전마마께 문안인사 드리옵니다"
"고개를 들게"
"예 마마"
"어제 밤에 전하를 잘 뫼셨는가?"
"송구하옵니다. 소인 마마를 뵐 낯이 없사옵니다"
"그럴 것 없네... 전하께서 교태전으로 드신다한들 본궁에게 몸을 내어주셨겠는가?"
"이제 전하께선 고통을 멈추시고 마마께서는 훗날 임금이 되실 복중 아기씨를 품게 되실것이옵니다"
"본궁이 세자빈으로 자리하던 세월, 궐에 없던 세월 그 모든 세월이 해결하지 못했던 전하의 고통을 자네가 없앴다는 것인가?"
"그리워는 하실지 언정 더이상 고통스러워하진 않으실것이옵니다 머지않아 그리움도 잊게되시겠지요"
"참으로.... 무례하다!"
"ㅇ,예?"
"전하의 동궁 시절부터 지금까지 전하의 뼈에 사무치는 그리움이시고 깊게 박힌 연정이다! 자네가 전하를 뫼신것은 고작 하룻 밤! 헌데 그 오랜 세월 사무친 그리움을연정을 자네가 끊어냈단 말인가!"
"ㄱ,그것은,!"
"본궁이 전하와 부부의 연으로 지낸 세월이 짧다하나 자네는 전하를 고작 하룻 밤 뫼신것으로 본궁을 무시하고, 모든 것을 다 아는듯이 으스대는 모습이 매우 방자하다"
"마마 무시라니요! 그런것이 절대 아니옵니다!"

"본궁은 중전으로써 내명부의 기강을 잡는것은 필수적 의무다! 윤씨 정4품 소원의 품계를 종4품 숙원으로 강등한다! 명을 받들겠느냐?"
"소인 중전마마의 뜻을 어찌 거역하겠사옵니까... 명 받들겠사옵니다 마마"
중전이 윤소원의 무례함에 노하여 품계를 숙원으로 강등시켰다는 소문은 좁은 궐 내에서 발빠르게 퍼졌고 금세 아침 조회 중 훤에게 까지 들리게되었고 훤은 조회가 끝나자 마자 중궁전으로 걸음을 옮겼다.
"중전마마 주상전하 납시셨사옵니다"
"드시라하게"

"전하께서 합방일에도 찾지 않으시던 중궁전을 윤숙원의 품계 강등 소식에 이리 한달음에 오실줄 알았다면... 다음부턴 신첩과의 합방일에 윤숙원에게 무수리 대신 빨래라도 시켜야겠습니다?"
"중전 말을 가려하시오!"
"전하께서 행동을 조심하셨어야지요! 전하께서 어젯 밤 신첩과의 합방일을 그르친것으로 신첩의 권위가 땅 바닥으로 떨어졌습니다"
"과인은 애초에 중전과의 합방일을 정하는것을 허락한적이 없소!"
"해서! 중전인 신첩과도 치르지 않은 합방을 윤숙원과는 치르셨습니까!"
"과인이 그럴 일 없다는 것을 가장 잘 아는 중전이오! 그리고 윤소원의 품계를 다시 제자리로 돌려놓으시오!
"내명부의 일입니다 전하께서 상관하실 일이 아닙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