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는 가장 밝게 빛났고,
달은 특히 외로웠으며,
꽃은 유난히도 화려했던
시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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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
"아구 우리 똥강아지 아직 안자고 뭐하누?"
"잠이 안 와요... 할머니 옛날 이야기 들려주세요!"
"이번에는 무슨 이야기를 해줄까나~"
"사랑 이야기요!"
"그럼 이 할미의 할머니께 들은 이야기를 해줘야겠다"
옛날 옛적에~ 우리 똥강아지처럼 아주 이쁘던 여인이 있었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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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씨~~ 연화 아씨~~"
"연아 빨리 와보거라 담벼락 밖의 세상은 참으로 재미난것이 많구나!"
"아씨 저와 같이 다니셔야지요! 그리 뛰어다니시다 넘어지시면 큰일 나십니다~"
"조심할테니 걱정 말거라"
"걱정이 됩니다..."
그때 저 멀리서 소란스러운 소리가 들린다 한 눈에 보기에도 사람들이 크게 둘러싸인것이 무슨 큰 일이 벌어진 모양이다
"어..? 연아 우리 저기로 가보자!"
"아씨~ 같이 가셔요!"
가까이 가보니 가난해보이는 어린 아이가 비단 옷을 입은 사내의 시종들에게 발길질을 당하고 있었다.
"감히 니놈들이 내가 누구인줄 알고! 어서 그만두지 못할까! 그만하거라!"
"내 비단옷에 흙을 묻혀놓고 막말까지 하다니! 이 놈을 죽기직전 숨만 붙어있을 정도로 매질을 하라!"
시종들이 발길질도 모자라 각목을 들고 아이를 매질하는 모습을 가만히 지켜볼 수 없었던 연화는 사내를 막아섰다
"그만하십시오! 어찌 이리도 사람을 험하게 매질할 수 있단 말입니까"
"비키거라! 어디 여인이 함부로 끼어드는 것이냐!"
"아씨 그만하셔요~"
"어떻게 이런 일을 보고 가만있을 수 있겠느냐"
"어린 년이 당돌하구나!"
"듣고있었습니다. 고작 비단 옷에 흙을 묻혔다는 연유로 이리도 배워먹지 못한 행동을 하시는겁니까?"
"허! 어느 집안의 여인이길래 날 함부로 대하는게냐!"
"제가 귀한 사대부 집안 자제면 어찌하실것이며 또한 노비이면 어찌하실겁니까?"
"나는 이번 문과에 장원급제를한 인재다!
"문과에 장원급제를하신 분께서 저보다도 서책과 논어를 멀리하셨나봅니다? 도련님과 소녀 그리고 매질을 하는 사람과 그 매질을 맞는 사람 또한 같은 사람이거늘 어찌 귀천을 나누십니까?"
"어는 집안인지나 대답하거라!"
"물어보시니 답하오건데 소녀 예문관 대제학 윤대환의 둘째 여식 윤연화라 하옵니다 그러시는 자제분께서는 어느 집안이시길래..."
"ㅇ,예문관 대제학? ㅅ,송구합니다!"
연화가 예문관 대제학이라는 말을 듣자마자 하얗게 질려버린 얼굴로 도망치는 사내와 사내의 몸종들 또한 들고 있던 가목을 던지고 줄행랑 치는 꼴이 우스웠다
사내가 도망치자마자 연화는 매질 당해 쓰러져있던 아이를 일으켰 세웠다
"많이 다치진 않으셨습니까? 연아 너도 부축하거라 일단 여긴 사람이 많으니 다른 곳으로 가자꾸나"
"ㅇ,예 아씨"
연화와 연이가 부축을해서 사람이 적고 얘기를 나눌 수 있는 강가에 와 강물로 상처를 씼겨주었다
"상처를 씼어내야하니 아프더라 참으십시오..."
"ㄱ,괜찮다 근데 너의 말을 들어보니 조선의 여인치고는 서책을 많이 읽은 모양이더구나 "
"감히 우리 아씨게 하대를 하다니!"
"연아 그만! 예, 소녀 조선의 여인이 조정이나 학문에 관여를 하면 안된다는것을 알고는 있으나 집안에만 있으니 무료하여 오라버니께서 다 읽으신 서책을 반복하여 읽었습니다"
"나는 달리 생각한다 조선의 여인도 현명한 인재라면과거를 치를 수 있고 조정에도 의견을 내놓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현재의 조선에서는 일어날 수 없는 일입니다"
"내가 바꿀것이다"
"예...훗날 꼭 훌륭한 분이 되셔서 이 조선의 법도를 꼭 바꿔주십시오"
"너는 나이가 어떻게 되느냐?"
"어찌 계속 아씨께 하대를 하십니까!?"
"연아 소리를 낮추거라! 소녀 올해로 열해 되었습니다"
"10살 이구나! 나는 12살이다 거보거라 내가 두살이 더 많지 않느냐"
"도련님께서는 이름이 무엇입니까?"
"도련님은 무슨~ 딱봐도 거지구만... 아씨 이제 그만 집으로 돌아가셔요"
"연이 너 누가 사람의 행색을 보고 귀천을 따지라하였지? 나는 너에게 그리 가르친적이 없는데"
"ㅅ,송구하옵니다"
"도련님 무례를 범했습니다"
"크흠.... 무례를 범하였으니 대가를 치르거라"
"ㅇ,예... 워하시는 바가 있으십니까?"
"나는 이름이 없으니 내게 이름을 지어주거라"
"하오시면 돌 석에 주먹 권 돌처럼 단단한 주먹이라 하여 석권이란 이름은 어떠실런지요?"
"꽤나 그럴듯한 이름이구나"
"앞으로는"
"하하하! 너와 얘기하니 시간 가는줄 모르겠구나"
"아씨 벌써 늦었습니다 대감님께 혼쭐이 나기전에 들어가셔야합니다!"
"다음에는 언제 또 볼 수 있느냐?"
"아버님께서 달에 첫날, 보름 ,그믐에만 외출을 허락하셔서 이번달 그믐에야 볼 수 있지 않을까싶습니다"
"그럼 그믐 유시에 여기로 나오거라 기다릴테니"
*유시:오후 다섯시 반~ 여섯시 반
"예 그럼 그날 뵙겠습니다 도련님"
석권과의 짧은 만남을 뒤로하고 집으로 돌아가는 연화
집에 다다르니 대문앞에서 연화의 오라버니인 윤 혁이 기다리고 있었다.
"오라버니 어찌 나와계십니까?"
"걱정이되어 나와 보았다 들어가자"
"예 오라버니"
오랜만에 외출로 고단한 몸을 뉘이고 눈을 감은 연화는 오늘 있었던 일을 떠올리며 살풋 웃는다. 그날따라 유난히도 그믐이 기다려지는 밤이었다.
그믐날
이른 아침부터 검이 부딫히는 소리에 잠이 깬 연화
어렸을때부터 친하게 지낸 동생 훈과 혁의 검술 겨루기를 하고있었다.
"연화야 혹시 시끄러워서 깼느냐?"
"아닙니다 오라버니"
"연화 누이~ 오랜만입니다!"
"오랜만이구나"
"헌데 소월 누이는 안보이십니다?"
"아~ 언니께선 높은자리의 주인이 되실 분이니 아마 지금쯤 *내훈을 읽고 계실게야"
*내훈:국왕이 여성들에게 전하는 지시사항이
"역시 소월 누이께선 대단하십니다 제가 본 소월 누이는 단한번도 아버지의 뜻을 거역하신 적이 없으니..."
"아버지께서 하신 일은 모두 언니를 위한 것일테니...."
"아씨! 오늘 일찍 외출한다하지 않으셨습니까?"
"안그래도 준비 중이다 연아 이리와보거라"
"예 어쩐일이셔요?"
"연이 오랜만이구나"
"ㅈ,지민 도련님 송구하옵니다 오신줄 모르고 인사를 드리지 못하였습니다"
"괜찮으니 고개를 들거라 연이 너는 언제나 이쁘구나"
"ㄱ,감사합니다..."
"연아 머리를 이리 땋을까 아니면 틀어올려 비녀를 꽂을까? 어떤게 나은지 보거라 이렇게 아니면 이렇게?"
"아씨께선 땋으신게 어울리십니다"
"그렇구나 고맙다 연아"
"연화야"
"예 오라버니"
"혹... 연모하는 사내가 있는것이냐?"
"오라버니께서 언니때문에 저를 걱정하시는 마음을 잘 알고있습니다 그러니 제 걱정은 않으셔도 됩니다"
"그래 연화 니가 알아서 잘하겠지만 사람 마음이 그리 뜻대로 되었다면 소월이가 그리 힘들어했을까..."
그때 방에서 내훈을 읽던 소월이 문을 열고 나왔다
"오라버니 연화는 자신의 뜻대로 살게해주기로 저와 약조하지 않으셨습니까"
"나는 그저 걱정이 되어서..."
"연화는 현명한 아이입니다 저처럼 미련하지 않아요"
"언니께서 어찌 미련하다고 하세요..."
"연화 너는 어머니를 참 많이 닮아서 현명할것이니 너의 뜻대로 살거라 그것이 정답일것이니 아버지의 뜻은 내가 이루어드릴테니..."
"예... 나가보겠습니다"
"연아 연화를 잘 보필하거라"
"예! 아씨 들으셨지요? 제 옆에 꼭 붙어계셔요"
평소 외출보다 연화는 들뜬 걸음으로 대문을 나섰다
그리고선 바로 석권과 만나기로 약속하였던 강가로 향했다. 유시가 되기까지는 한참 남았지만 석권도 연화를 기다렸는지 강가에 석권은 이미 도착해있었다
"석권 도련님?"
"연화야 왔느냐?"
"헌데 도련님... 전과 모습이 많이 다르십니다"
석권의 행색은 전과 많이 달랐다. 때 묻지 않은 멀끔하고 깨끗한 얼굴에 비단 옷은 입고 있었다
"놀랐느냐?"
"어찌되신겁니까?"
"저번에는 어머니의 기일이라 소박하게 입은것이다 나도 사실은 아버님께서 아주아주 높으신분이라 원래 평소에도 비단 옷을 입고다닌다"
"예문관 대제학의 아버지를 둔 소녀의 앞에서도 높다 말씀하실정도면 얼마나 대단하신 분이시길래"
"바라볼 수 없을 정도로 높~~은 분이시다"
"헌데 유시도 되기 전에 왜 벌써 와계십니까?"
"연화 니가 보고싶어 가만히 못 기다리겠더구나"
"저도 얼른 그믐날이 기다려졌습니다"
"사실 너에게 줄것이있다"
"무엇입니까?"
"여기로 오기전에 저작거리를 지나는데 예쁜 노리개가 보이길래 연화 니가 생각나서 사보았다"
"노리개는 값이 많이 나갔을텐데..."
"연화 너는 나를 구해주지 않았느냐 노리개는 그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다"
"나비모양 노리개... 참 오랜만입니다 돌아가신 어머니께서 자주하시던 노리개의 모양과 비슷합니다"
"괜히 나비모양을... 미안하구나"
"아닙니다 이제는 전혀 슬프지 않습니다 오라버니와 언니께서 어머니는 하늘에서 소녀를 지켜볼것이라 하였습니다 그러니 저는 슬프지 않습니다"
"내 어머니도 지켜보고계시겠지...?"
"하늘에서 도련님을 꼭 지켜보실겁니다"
"연화야..."
"예 도련님"
"나는 너를 매번 보고싶구나 니가 외출하는 달에 처음,보름,그믐마다 너를 보고싶구나 매번 나를 보러와줄 수 있겠느냐...?

"정녕 제가 드릴 답을 몰라 물으시는것입니까?"
"너에게 듣고싶구나"
"좋습니다"
서로의 마음을 확인한 둘은 웃으며 서로에 대한 얘기를 하다 해가 지는것을 함께 보냈다
"벌써 어둑어둑해졌구나"
"예 이제 집에 가야겠습니다"
"밤길이 어두우니 내가 데려다주어도 되느냐?"

"이제 집에 다왔으니 도련님도 들어가십시오"
"알겠다 다음달 첫날이 바로 내일이니 내일 보겠구나"
"예 그럼 들어가십시오"
연화가 들어가고 돌아가려는 석권의 눈에는 연화의 집 대문 주위를 서성이는 한 사내가 보여 사내에게 다가가 물었다
"뭐하시는것이오? 남의 집 앞에서"
"아까 들어갔던 여인과 내일도 만나는것이냐?"
"그러한데 그건 왜...?"
"그러면 그 여인에게 이것을 주며 언니에게 전해달라고 좀 부탁해주거라 내겐 중요한 일이니..."
"직접 만나서 하시오"
"내가 감히 만날 수 없는 여인이다 꼭 좀 부탁한다"
"알겠소 그러니 걱정은마시오"
"내 청을 들어주니 네게 한가지 알려주겠다 이 집안의 여인을 연모하는듯한데... 깊이 연모하지는 말게 감당하기 힘들것일세"
이 말을 남기고는 누가 볼까싶어 급히 떠나는 사내...
석권은 이상하다 생각하였지만 이만 대궐로 돌아갔다
대궐의 동궁에 들어가니 이미 누군가가 와있었다
"ㅇ,아버지...."
"여태껏 어디있었던게냐!"
"ㄱ,그것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