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립구나...연화야..."
다음날
이른 아침 한 상궁이 설화의 집 앞에서 가마에서 내렸다
아마도 전하를 옆에 모시는 지밀 상궁이겠지... 그리고 오늘 중전의 자리에 앉을 주인을 심사하러 왔겠지...
"대감마마 아가씨께선 어디계시옵니까?"
"별채에 있네... 아 그리고 비록 양딸이긴하나 친 자식처럼 키웠네 잘 좀 봐주시게"
"아무리 높으신 좌의정 대감이라지만 어찌 한 나라의 국모이자 만인지상이신 전하의 베필을 심사하는데 대감마마의 말씀에 따라 좌지우지 할 수 있겠사옵니까"
"전하의 베필로는 설화만한 여인이 없을것이네"
"친 자식처럼 키우셨다더니... 매일 피바람이 부는 궐에 아가씨를 보내시는게 걱정되지는 않으시나봅니다?"
상궁은 지밀 상궁답게 올곧은 충심과 신념을 가지고 있었다. 돈이나 권력에 전혀 흔들리지 않았다.
"아가씨 지밀 상궁이옵니다. 들어가도 되겠습니까?"
"드시게"
"예..."
"나를 심사하러 왔는가..? 얼굴이나 몸에 흉은 없는지, 현명한지, 성심은 고운지..."
"집안은 이미 둘째가라하면 서러운 가문이고... 얼굴이나 몸에 흉이 없는 것은 귀한집 여식이니 당연하실거고 현명한지, 성심은 고운지 그것은 굳이 소인이 이리 오지 않아도 서신으로도 확인할 수 있사옵니다."
"허면 어찌 이리 발걸음하였는가?"
"아가씨를 마주하지 않고는 심사할 수 없는것을 하러 왔사옵니다"
"그럼 이리 나를 마주보았으니 심사하시게"
"중전이란 자리의 주인이되시면 궐에 들어가게되는데 두렵지는 않으십니까?"
"두렵다고 피할 수 있는 가벼운 자리는 아니지 않은가"
"전하의 베필이 되시게 될텐데 지밀 상궁인 소인에게 궁금한것은 없으십니까?"
"궁금한거라... 이전 빈궁마마께서는 어떤 분이셨는가?"
"참으로 총명하시고 심성이 고우신 분이셨습니다 자신보다는 주위사람을 더욱 귀하게 여기시는 분이셨지요"
"마마또한 누군가에게 귀한 분이셨을텐데... 꼭 내가 빗궁마마의 행복한 생을 빼앗은것만 같아 송구하네..."
"이외에 달리 하문하실것은 없으십니까?"
".... 전하께서 좋아하시는것 싫어하시는것 전하께선 어떤분이신지 등 전하에 대한 것을 묻지 않아 놀랐는가?"
"물음하시지 않는 연유를 여쭈어도 되겠습니까?"
"그런것을 물어보는것은 전하께 사랑받고 싶어 묻는것일텐데... 중전의 자리는 궐에서 가장 전하께 연정을 바라면 안되는 자리가 아닌가"
"어째서요?"
"전하께 연정을 바라면 후궁을 투기하고 전하를 치마폭에 싸고들려할텐데 전하의 눈과 귀와 마음 모두를 어둡게 하는것이 중전의 본분이겠는가?"
"여인이라면 당연한 것이 아니겠습니까?"
"여인이 아니라 중전의 자리다. 전하의 여인인 후궁또한 내명부의 수장으로써 품을줄 알고, 전하의 눈과 귀 마음모두를 어둡게하기보단 밝혀주어 성군이 될수있도록 보필하는것이 중전의 본분이 아니겠는가?"
"전하의 연정은 바라지 않으십니까?"
"전하께서 바라바줄때까지 기다릴것이네 끝까지 나를 보지 않으셔도 별 수 없고... 외로이 사는게 두려웠으면 지금 자네와 내가 마주앉아 있겠는가?"
"절을 올리겠사옵니다 중전마마..."
"....자네의 심사에 통과하였나보군..."
"일주일 이내로 가마를 보낼테니 입궐하시옵소서 마마"
"알겠네 헌데 자네에게 묻고 싶은것이 있네"
"하문하시옵소서"
"심사한것이 무엇이었는가?"
"마마의 진심이옵니다. 마마께서 말씀하시는동안 소인은 마마의 눈에서 마마의 진심을 보았사옵니다"
"과연 지밀상궁이 아니군"
"또한 제게 빈궁마마에 대해서 물으시는분은 마마께서 처음이십니다"
"그게 뭐 그리 대단한것이라고... 같이 일어나세 내 배웅할테니"
지밀상궁이 돌아간후 아버지께서는 오랜만에 큰 웃음을 보이셨고 우리 집은 처음으로 아버지의 큰 소리 없이 하루를 보냈다. 다음날 아버지께서 입궁날 입을 옷을 사라며 용돈을 주셨다.
"설화 아가씨 어떤 옷을 고를것입니까?"
"무난한 옷... 설이 너는 같고싶은것은 없느냐?"
"저같은 종년이 필요한것이 무엇이 있겠습니까~"
"설이 너는 종년이 아니라 내 벗이다. 설이 너에게 줄 옷을 골라보아야겠구나 어디보ㅈ,! 아야...."
"아가씨 괜찮으십니까?! 아니 앞을 똑바로보고 다니셔야지 우리 설화 아가씨 다칠뻔했지 않습니까!"
"설아 그만!"

"아... 미안하게,"
"아니 우리 애기씨도 부딫혔그든요! 둘다 잘못한건데 지금 어데 우리 애기씨한테만 큰소리요 큰소리를! 애기씨 괜찮으십니까"
"유모 난 괜찮아... 아가씨께는 미안하게되었습니다"
"아닙니다 서로 몰라 부딫힌것인데 어찌 한쪽의 잘못이겠습니까..."
"헌데 무슨 옷을 보십니까?"
"그냥 이 아이가 입을만한 이쁜 옷을 보고있었습니다 애기씨께선 어떤 옷을 찾으십니까?"
"저는 누군가의 혼인을 망치러 갈때 입을 옷을 보고있었습니다"

먼가 가까히 하면 안될것같은 느낌(동공지진)
"아.... 네... ㅅ,설아 이 옷 어때? 괜찮지 않니?"
"ㅈ,좋아요 아가씨! 어서 사고 집으로가요!"
"그래! ㅇㅏ..하하..."
애기씨의 말에 살짝 어색한 공기가 감돌고 설이와 설화는 최대한 빨리 한복을 고르고 돌아갔다.
"서화 애기씨 진짜로 괜찮은교?"
"응... 괜찮아 이 정도쯤은... 근데 아까 나랏 부딫힌 아가씨말이야"
"예 그 아가씨가 왜요?"
"아니다 그냥 예전에 보았던 어떤 아이와 닮았길래..."
"애기씨도 참~ 세상에 닮은 사람이야 많지요"
"그러게... 그 아이가 아니라면 참 좋은 분이실것같네"
자리를 빠져나온 설화는 집으로 가는 길에 멈춰서 설이에게 집에 먼저가라고한 후 뒤를 돌아 어디론가 향했다.
"아가씨 집에 늦지 않게 오셔야해요!"
"응 먼저 들어가 난 잠시 들릴때가 있어서"
설화는 예전에 석권과 이별한 이후로 자주 갔던 절벽으로 향했다 밑에는 아름다운 색의 바다가 보이고 절벽의 위에서 보는 그 풍경은 가히 아름다웠다.
"도련님... 잘 계시옵니까..?"
"소녀 아직도 그때의 실수를 후회하옵니다... 차라리 언니처럼 멀리 도망쳐볼걸... 거짓이 아닌 사실대로 말씀드릴걸... 해서 다른 방도를 찾아볼걸..."
"도련님께 소녀의 죽음으로 너무나 큰 상처와 슬픔을 드린것이 아직도 너무나 죄스럽습니다"
"허나, 그리 끊어냈기에 그리 악하게 끊어냈기에 지금 도련님께선 저를 덜 그리워하겠지요? 덜 아프겠지요?"
"소녀 혼인하옵니다 이 조선의 국본이신 전하와 혼인하게 되었사옵니다.... 허나, 두렵습니다. 아버지께서 계신 궐은 너무나 잔인하고 끔찍했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도련님을 뵙게될까 두렵습니다"
"도련님의 아버지께서 높으신 분이시니 도련님께서도 분명 관직을 차지하셨을 터... 허면 언젠가 한번쯤은 마주치겠지요... 도련님도 소녀도 그때와 얼굴이 많이 변하였겠지만, 도련님께선 제가 이미 이 세상에 없다고 생각하시겠지만 만약, 소녀를 알아보신다면 부디 그저 지나쳐주십시오... 도련님께서 저를 붙잡으신다면 더이상 뿌리칠 수 없을 것 같으니...
"마지막으로 절 올리옵니다..."
설화는 절을 허공에 절을 올리고 절벽의 끝으로 다가가 시원한 바람을 맞고 돌아서려는 순간 누군가가 뒤에서 설화의 손을 잡아당겼다.

"지금 무엇하는 것이냐!"
"ㄷ,도련... 아니 지금 무슨 말씀을 하시는겁니까?"
"그대는 지금 죽으려하는것이오? 어찌 그리도 쉽게 자신의 목숨을 버리려하는것이오!"
"죽다니요? 제가요? 그저 바람을 맞고있었을 뿐입니다... 그리고 이제 이 손을 놓아주시겠습니까? 아직 처녀입니다..."
"아.... 미안하오"
"되었습니다 그럼 소녀는 이만..."
설화는 헌을 지나쳐 집으로 향했다. 설화가 멀리간 것을 확인한 헌은 슬픈 눈으로 말했다.
예전의 연화와 참으로 닮았구나... 연화로 착각할만큼... 만약 살아있다면, 저 여인처럼 슬픈 눈을 하고있진 않았으면 좋겠구나... 나의 영원한 아픔이자 여인인 연화야"
집에 돌아온 설화는 자기전 장신구함에서 석권에게서 받았던 노리개를 집었다.
"그저 추억으로만 간직하겠습니다. 이제 궐에 들어가서는 꺼내보지 않을것입니다 먼 훗날 궐을 다시 나오게 된다면 그때 다시 살며시 꺼내보겠습니다...강녕하셔요..."
시간은 속절 없이 흐르고 궐에서 보낸 가마를 타고 입궐하는 설화. 설화의 앞에 있는 궐은 웅장함과 동시에 어둠을 내뿜고있었다. 가마에서 내린 설화는 상궁에게 먼저
말을 꺼냈다.
"오늘부로 마마의 지밀상궁 조상궁이라 하옵니다"
"잘부탁하네... 헌데 별궁은 어디있는가?"
"별궁은 예전 빈궁께서 머무셨던 처소고... 마마께서는 별궁이 아닌 중궁전으로,"
"중궁전으로 걸음을 옮기기 전에 별궁에 가보고 싶어서 그러네... 불에 타 사라진 별궁의 자리에 빈궁마마의 묘가 있다기에... 인사는 올려야하지 않겠는가?"
별궁에 있는 묘는 세자빈의 묘라고 하기에 너무나도 작고 관리가 전혀 되지 않은 모습이었다. 몇년간 그 누구도 찾지 않은것 같았다. 지아비였던 임금도, 가족도 찾지 않은 묘의 모습이었다. 비석에는 도서화 라고 쓰여져 있었다. 설화는 무성히 자라난 묘의 잡초를 뜯어내어 정리하고 자세를 고친 후 공손히 손을 앞으로 모으고 두번 절을 했다.
"빈궁마마 그 곳은 평안하시옵니까...? 찾아뵙진 못하였지만 총명하고 어진 분이셨다고 들었습니다... 마마의 큰 빈자리를 제가 채울 수 있을까요...?"
"도...서...화... 너무나도 귀한 명문가의 아가씨셨을텐데
이 궐에서 얼마나 많은 시간 홀로 눈물을 삼키셨을까요...? 부디 그 곳에선 평안하시길 간절히 바라옵니다..."
"한 상궁..."
"예 마마"
"전하께서 한번이라도 빈궁마마의 묘를 찾으셨는가?"
".... 찾지 않으셨사옵니다"
"나도 오늘 전하를 뵈러가지 않을 것이니 그리 알게"
"ㅇ,예? 그래도 내일이 가례식인데,"
"정~ 뭐하면... 조상궁이라도 대전에 들려 인사를 올리시게 나 대신이라 전하고...."
조상궁은 설화의 말에 어쩔 수 없이 홀로 대전을 향했다. 조상궁의 머릿속은 설화가 전하를 찾지 않은 이유에 대해 어떻게 변명할지 핑곗거리를 생각하느라 복잡했다. 그런 생각을 하며 발걸음을 옮기니 어느새 대전에 도착해있었다. 침소에 들기전 설화를 간택심사했던 한상궁이 안절부절 못하는 조상궁을 보곤 살풋 웃으며 물었다
"설화 아가씨 때문인가?"
"예 한상궁마마"
"간택심사때 설마 설마했는데 정말 이러실줄이야... 전하껜 내가 아뢸테니 자네는 돌아가시게"
"예 마마... "
조상궁이 돌아가고 한상궁이 다시 침소로 들어오자 헌은 기다렸다는 듯이 물었다
"궐에 들어오자마자 무엇을 했다고하더냐?"
"별궁의 빈궁마마 묘에 들러 인사를 드렸다하옵니다"
"궐에 들오자마자 묘에 들러 인사를 하였다... 그것도 빈궁에게라...."
"예...전하"
"왜... 아무리 양딸이라해도 친척지간이면 좌상 가문의 피가 흐를터인데 권력욕이 없다? 이상하지 않은가..."
"저번에도 말씀드렸다싶이 권력욕은 물론이고 물욕또한 없으며 특히 지혜롭고 어진 성품을 가지신 중전의 자리에 아주 걸맞는 아가씨였습니다"
"대궐에 좌상의 핏줄이 점점 늘어나고있다! 왕권을 약화시켜 자기 마음대로 권력을 움직일 셈인게지... 이러한 상황에서 좌상의 양딸까지 중전이라... 어림없는 소리!"
"하오시면..?"
"대왕대비마마를 뵈러가야겠다"
"하오나 전하 대왕대비마마께서도 좌상대감의 고모님이십니다"
"좌상의 고모이기 전에 짐의 할마마마시다!"
좌상 윤대환의 양딸을 중전의 자리에 앉히게된다면 왕권은 무조건 약화될것이고 모든 대신들이 윤대환 쪽으로 줄을 설것이며 조정과 정치는 윤대환의 손에서 놀아날것이다. 이를 막기 위해 헌은 할머니인 대왕대비의 처소에 가는 발걸음이 더욱 빨라지고있었다
"할마마마 소손 들어가도 되겠사옵니까?"
"드세요 주상. 주상께서 이 할미를 어찌 찾으십니까?"
"할마마마 도와주십시오"
"이런... 주상의 용안에 근심이 가득하군요"
"좌상의 여식이 중전의 자리에 앉는것은 아니되옵니다"
"중전의 자리를 언제까지 비워두실겁니까..?"
"왕권이 약화될것입니다"
"중전의 자리를 공석으로 두는것 또한 왕실을 욕보이는 짓입니다 주상"
"허면 다른 가문으 여식을,"
"좌상의 여식을 중전으로 들이세요... 이 할미가 시키는대로 그저 가만계세요 주상!"
"ㅎ,할마마마께서 어찌..."
"주상! 그 자리에 주상이 계신것또한 이 할미가 일궈낸 일입니다. 주상을 안전하게 세자의 자리부터 지금 계신 용상의 자리에까지 앉히기 위해 선왕의 후궁을 없애고 형제또한 없애기 위해 중전부터 제거했습니다"
"어마마마를 제거하신 분이 할마마마셨습니까!!"
"언성을 낮추세요 주상! 주상의 어미는 할미가 죽인게 아니라 스스로 견디지 못해 세상을 떠난것입니다! 덕분에! 주상이 지금 용상에 앉아계신거지요. 그러니 그때처럼 이 할미가 판을 만들어놓은 곳에서 그저 가만 계세요"
"소손 할마마마께 손손가 아닌 이나라의 임금으로써 한 말씀 올리겠습니다. 조선은 바뀔것입니다 반드시..."
"수백년간 지켜저온 것입니다 주상 그리 하루아침에 바뀌지 않아요 그리고 바뀐다해도 내가 아는 우리 주상은 절대 못합니다. 그러니 그 자리나 지키세요"
"수백년간 지켜져온 모든게 하루 아침에 바뀔 수 없을것입니다 그러니 하나씩 잃어가십시오 할마마마. 모두 하나씩 잃어가는 상실감을! 결국 모든것을 잃게되는 파멸감을 소손 꼭 할마마마께 안겨드리겠습니다"
"주상이 이 할미를 건들면 더 이상 주상의 자리를 지킬 수 없을것입니다"
"감내하겠습니다 그러니 모든것을 잃게될때까지 날뛰십시오, 발악하십시오. 허나, 모두를 잃은 후에는 그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