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만과 편견

오만과 편견 A

난 능력 측정기가 단두대와 같다고 생각했다. 대부분이 그곳에서 등급의 결계가 생기며, 서로를 평가하게 되니까. 두 눈을 꼭 감고 올라가던 중에도 계속해서 중얼거렸다. B보다는 높은, S보다는 낮은 등급을 받아야 한다고. 낮은 등급은 차별을 당하고 높은 등급은 강도 높은 훈련에 나가니 제발 바라는 대로만 되기를 바랄 뿐이었다. 심장이 미친 듯이 뛰었다. 성인 남성의 키보다 조금 더 긴 유리통에 홀로 들어가 주어진 장치에 손을 뻗었다. 가져다 대자 마자 온통 숨이 끊길 것처럼 내 기를 빨아들이더니 경쾌한 알림 소리를 내며 내 시야에 알파벳 하나가 생겨났다. 곧게 뻗은 직선 하나에 곡선 두 개. 그 뒤로는 개같은 나의 재능이 이어졌다.



[ B급 텔레포트 센티넬 ]

"시이발···."



높은 축에도, 심지어 중간 축에도 끼지 못하는 애매하고 저조한 등급이 기어코 주어졌다. 그 무엇보다 완벽한 절망이었다.












Gravatar
오만과 편견 A










능력을 부여 받자 마자 한 일은 내 상성을 찾는 것이었다. 안 그래도 부모가 나 돈 받고 센터에 팔아서 기분 더러운데 나온다는 등급이 고작 B란다. 웃겨, 진짜. 북받치는 감정에 아랫입술만 꾹 깨물고 있을 때 쯤 센터 직원과 한 남자가 들어왔다. 의문 가득한 표정으로 직원을 바라보자 직원은 말을 꺼냈다. 아니, 꺼내려던 참이었다. 다만 그 남자가 선수를 쳤을 뿐.



"고작 얘야?"



남자는 첫 마디부터 예의라고는 없었다. 주머니에 손을 넣고 짝다리를 짚은 채로 대기실 의자에 앉아 있는 나를 내려다봤다. 저 남자가 뭔데 저렇게 의기양양해. 순식간에 을이 되는 것 같다가도 내가 움츠려야 할 이유를 찾지 못해 다시 어깨를 곧게 폈다.



"상성 검사 결과가 조금 애매해서 동급에서는 찾기 힘들더라고요. 저희 센터에서 센티넬 님이랑 90% 이상으로 맞는 가이드가 이 분 뿐인데···."

"네."

"등급 차이가 너무 나서 조정 중에 있긴 합니다."

"등급 차이가 왜 문제가 되는데요."

Gravatar
"제 가이딩이 벅차시겠죠, 네가."



아까부터 느낀건데 슬슬 짜증이 날 정도로 싸가지가 없네. 게다가 남자 뿐만 아니라 저 센터 직원도 살살 나를 돌려 까는 게 느껴졌다. 눈으로 내 머리 꼭대기부터 발 끝까지 눈으로 평가질 하고서 꺼내는 말이 겨우 저 정도라니. 그래서 대체 저 남자가 무슨 등급이길래 이렇게까지 날 깔고 들어가는 건데. 눈빛으로 대충 눈치를 주자 직원은 이제서야 자신이 등급도 언급하지 않은 채로 이 사태를 통보했다는 걸 깨닫고는 다급하게 외쳤다. 그 뒤로 이어진 한 알파벳은 나를 두 번 죽이기로 마음 먹은 듯 했다.



"S!!"



근데 있잖아, 다시 생각해봐도 너무 어이가 없는데···.



"S급 가이드 박지민 씨예요."



이건 진짜 너무 차이 나잖아요.






***





센터 직원이 대기실을 나간지는 이미 오래다. 내 옆에 남자를 꼭 앉혀두고 나간 게 관건이지만. 확실히 상성이 좋기는 한지 옆에 앉아만 있어도 심신이 평안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그의 가이딩이 살짝 버거운 건 사실이었으나, 예상만큼 불편하지는 않았다. 게다가 다가가면 안 될 것 마냥 그 남자의 주변이 온통 그의 가이딩으로 가득해 자신이 고위 등급인 걸 뽐내기라도 하는 것 같았다. 마치 짐승들이 자신과의 짝짓기를 구애하는 것처럼. 물론 난 그의 품에 들어갈 생각이 전혀 없기에 재검사 결과지를 들고 올 누군가만을 애타게 기다릴 뿐이다.



"오늘이 처음?"

"네?"

"파트너 찾는 거 오늘이 처음이냐고."

"저 오늘 센터 처음 들어왔는데요···."

"아."



처음 듣는 사실이라는 듯 한쪽 눈썹을 치켜세웠다가 금세 가라앉혔다. 부모에게 사랑이라고는 받아 본 적이 없는 것도 고사하고, 내가 센티넬이라는 말을 듣자 마자 바로 돈 주고 날 내다 판 게 내 부모였다. 그러니 센터에 들어올 때도 옷을 딱히 챙겨입지 못했다. 다른 사람들은 정장 혹은 유니폼을 입고 센터를 돌아다닐 때 나는 헤진 티셔츠에 학교 체육복 바지를 입은 채로 볼캡만 꾹 눌러 썼을 뿐이다. 즉, 잘 뻗은 훈련복으로 말끔히 차려입은 그와 나는 공통점이 없다는 거였다. 정말 단 하나도.



"나이가 어떻게 되세요."

"스물 셋."

"전 열 아홉이요."



열 아홉이라는 말에 내 차림을 살핀 남자는 내 바지가 체육복 바지라는 것을 알아차렸다. 그 뒤로는 내가 흥미롭기라도 한 건지 계속 나를 관찰했다. 뜯어질 듯한 슬리퍼와 겨우 생을 이어가고 있는 양말, 오래 되어 내부가 살짝 비치는 티셔츠. 심지어 그는 내 볼에 있는 흉터까지 알아차렸다.



"이건 뭔데."

"흉터요."

"왜 생긴 거야."

"엄마가 때려서요."



아무 감정 없는 눈으로 남자를 바라보자 남자는 입술을 달싹거렸다. 예상하지 못한 답변이었나. 그렇게 더 이상 대화는 이어지지 않았다. 직원이 들어올 때까지 그냥 그렇게 계속 어색하고 싸한 분위기로 가만히, 고요히. 이래서 누군가와 대화를 이어나가는 건 힘든 일이다. 결말은 늘 동정이고, 나를 불쌍히만 여길 뿐 사랑해줄 생각은 쥐똥만큼도 없는 게 이 사회니까. 이로써 확신하게 되었다. 그도 결국 남들과 같은 사람이었다고. 현실 자각을 이어가던 중 급작스레 대기실 문이 열렸다. 아까 봤던 그 직원이었다. 그리고 그 옆에는 또 다른 남자가 서있었다.
 


"방금 센터에 복귀한 A급 가이드예요. 비록 지민 님보다 상성이 좋지는 않지만 등급도 비슷하고, 오히려 이쪽이 여주 씨에게는 더 편하실 것 같아 모시고 왔어요."

Gravatar
"전정국입니다."



이 놈의 센터는 왜 죄다 가이드가 인상 무섭고 재수 없는 남자들 뿐인지. 아니지, 센터가 아니라 내 상성을 증오해야 하나. 확실히 지민 씨보다 정국 씨의 가이드가 옅었다. 직원 분의 말대로 지민 씨의 버거운 가이딩과는 다르게 다가오자 마자 편안해지는 것이, 아무래도 내 운명은 이쪽인 것 같다는 생각이 퍼뜩 들었다. 그래서 고민 없이 대기실 의자에서 일어나 직원 분에게 파트너 동의서를 요구했다.



"파트너 동의서··· 지민 님이랑요?"

"아니요."

"저랑 해요, 파트너."

"그러려고요. 동의서 좀 주실래요?"

Gravatar
"나랑 해."



삶은 원하는 대로 되지 않는다더니, 옛날 사람들은 대체 몇 수 앞을 내다본 건지 이제는 지겨울 지경이다. 그 사람들도 나에게 놓인 이 상황을 내다보았을까. 지민 씨가 파트너 동의서에 싸인하는 내 손목을 붙잡고 자신과 파트너를 하자는··· 대충 이런 상황을. 



이건 당황스럽다는 단어로도 형용되지 않는 감정이었다. 왜? S급이라면 적어도 SS급 혹은 S급 센티넬들과 최고급 숙소에서 호화롭게 놀고 먹을 수 있는 등급이었다. 왜 굳이 그런 꽃길을 버리고 나를 택하는 건지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심지어 난 그를 선택할 마음이 추호도 없는데.



"죄송한데, 말씀대로 당신 가이딩 조금 버거워요."

"내가 그깟 가이딩 조절도 못할 것 같아?"

"그리고 전 지민 씨가 마음에 안 들어요."

"뭐?"

"그중에서도 거만한 점이 특히나."



지민 씨는 미간을 잔뜩 찌푸리더니 금세 방도를 찾았는지 여유로운 표정을 되찾았다. 내가 그토록 싫어하는 그의 여유를, 그가 기어코 되찾고 말았다. 손찌검이라도 하나 싶어 우뚝하게 서있자 지민 씨는 고개를 돌려 직원을 바라봤다. 그러고서 하는 말이 정말 가관이었다.



"저쪽은 A고, 이쪽은 B?"

"네."

"그러면 내가 제일 높네, 그치."

"······."

"X-센터 규칙 제 1조. 모든 센티넬과 가이드는 5개의 등급으로 나뉘며, 고위 등급의 명령을 절대 거부하거나 거절할 수 없다···."



그가 입술을 떼는 순간부터 무척 불안했다. 대체 저런 쓰레기 같은 사상과 규칙은 누가 심어준 거야. 누군지도 모를 누군가를 당장 텔레포트로 범우주 어딘가에 이동시키고 싶은 충동이 생겼다. 직원 뿐만 아니라 정국 씨, 그리고 나까지 전부 긴장한 상태로 그의 뒷말을 기다렸다. 어쨌든 난 오늘 부로 센터의 일원이고 그 규칙을 따라야하니까. 아무리 그의 말이 말 같지가 않은 개소리여도 말이다.



"난 쟤랑 파트너 하고 싶은데."

"··· 저요?"

"너도 높을 수록 좋을 거 아냐."



그게 무슨 말이야. 난 등급 같은 거 상관 없다고. 차라리 낮으면 더 좋지, 높으면 그에 따른 부담감이 따를 테니까. 그에게 어울리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그런 부담감. 어벙한 표정으로 멍하니 서있었을 뿐인데 그는 나에게 한발씩 다가왔다. 물러설 생각은 없었으니 나도 요지부동이었다. 그리고 예상대로 그가 나의 바로 앞에 멈춰 서자 고개를 들어 빳빳이 바라보았다. 네가 뭘 하든 따를 생각이 전혀 없다는 뜻으로. 다만 그에게는 그런 의미가 아니었던 것 같다. 그는 내 볼에 남아있는 흉터를 손끝으로 살살 훑더니 내 귀 옆에서 조용히 읊조렸다.



"가이딩은 넘치도록 해줄게."

"······."

"그러니까 넌 구애만 하면 돼."

"그게 무슨···."

Gravatar
"너도 내가 필요하잖아, 안 그래?"



터무니 없는 소리라고 생각했다. 마치 홀리기라도 한 듯이 얌전히 그의 말을 듣고 있다가 무언가 잘못 되어감을 깨닫고 그의 어깨를 밀치려던 참이었다. 그가 그 타이밍에 가이딩만 풀지 않았다면 말이다. 내 주변이 온통 그의 가이딩으로 가득찼다. 숨이 쉬어지지 않을 정도로 꽉 채워진 그의 능력은,



"말해. 내가 필요하다고."

"··· 당신이 필요해."



나를 그의 의지대로 행동하게 만들었다. 손끝이 심하게 떨리자 내 손을 잡는 그였다. 대체 무슨 생각으로 나한테 다가오는 건지 모르겠다. 나한테서 얻을 거라곤 불행 밖에 없을텐데. 그래도 그게 그의 선택이라면 나도 그를 따르기로 했다. 적어도 나를 원한 첫번째 사람이고 그로부터 오는 감격스러움은 적어도 일생에 두번 다시 오지 않을 것 같았으니까.



"지민 씨랑 할게요, 파트너."

Gravatar
"······."



버려진 개들이 사랑에 목 메는 것처럼 나도 그저 그렇게 사랑을 갈구할 뿐이었다. 누군가가 나를 필요로 하기를 바랐으니까. 제발 아무나 나를 원해달라고 매일같이 기도를 해대는 내가 불쌍해서 신이 소원을 들어주기라도 한 것일까. 일그러진 정국의 미간과는 달리 꽤나 만족스러운 지민의 모습은 되려 나까지 당혹스럽게 만들었다.



만일 내가 전정국과 박지민의 지독하게 얽힌 관계를 알았더라면, 이렇게까지 어리석은 짓을 하지는 않았을텐데. 이로써 나의 구원과 나락은 한순간에 찾아왔다. 너무나도 갑작스럽게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