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마지막 추격전.
***
"하아... 시발."
대한민국의 수도이자 중심이라고 불리는 이곳, 서울의 어느 한 경찰서. 누군가는 자신이 하지 않았다 소리를 치고. 누군가는 왜 이곳은 민원을 받아주지 않느냐며 진상을 부리는 말 그대로 대 환장 파티였다.
하지만, 제2 수사반은 조금 달랐다. 숨이 막힐 듯이 조용하고 고요한 정적이 제2 수사반의 주변을 맴돌았다. 모두가 자신의 책상에 눈이 꽂혀 무언가를 찾고 있었다. 그런 수사반의 정적을 깬 것은, 이연화 경사의 한숨소리와 나지막이 내뱉는 욕설이었다.
이연화 경사. 비리라는 장애물을 뛰어넘고 경장의 자리에 오른 인물이었다. 온갖 비리로 넘쳐 어둡게 물들기로 그치지 않아 썩어 빠지던 경찰계의 신예 등장이었다.
"내가 이 새끼 꼭 감옥에 처넣고 죽고 만다."
"워워. 진정해 이 경사."
"마침 목격자를 만나고 오던 참이니까."
"주십시오. 목격자 진술서."
"이 경사도 참 딱딱하다니까."
이연화 경사, 줄여서 이 경사는 몇 주째 잡히지 않는 연쇄살인범을 잡기 위해 몇 날 며칠을 밤을 새가며 오로지 범인을 잡는 것에 대한 것에만 집중하며 날을 곤두세우고 있다. 이번 달에만 벌써 5번. 특징은, 피해자들이 모두 유명 인사라는 것이다. 비리를 조금 곁들인 유명 인사.
범행 시각은 오전 00시부터 오전 4시의 야심한 밤. 피해자의 시체는 골목에서 발견이 되기도 하며, 상점가 중심에 당당히 시체가 놓여 있기도 했다. 하지만 무언가 질질 끌린듯한 자국이 남아있다는 것을 보아 범행 장소는 다르다는 것을 암시했다.
범인의 행각은 매우 대단하고 비범한 행동들이었다. 유명 연예인, 대기업의 사장, 국회의원 등의 피해자들로 인해 나라는 이 범인을 찾는 것에 혈안이 되어있었다. 그러나 정작 약 2주 동안 아무런 발자취도 쫓지 못했다. 그런 이 상황에서, 이 경장의 동료인 김석진 경위, 김 경위는 그토록 찾아 헤매었던, 한줄기 빛의 목격자를 만나고 온 것이었다.
"목격자 진술서라. 이거, 제가 잠시 가져가도 되겠습니까?"
"마음대로 해. 나는 진술서 받아쓸 때 이미 다 숙지했으니까."
"박 경장, 오늘 출근 안 했습니까?"
"응. 어머니께서 갑자기 쓰러지셨다네. 보호자로 갈 사람이 박 경장밖에 없나 봐."
"이 사건이 끝나면 같이 병문안이나 갑시다. 걱정하실 텐데."
"그러려면 이 사건이 빨리 끝나기를 바라야겠지.''
"그래야겠죠."
***
"하암... 이제 일어나야지."
황금같은 주말이 지나고 돌아온 월요일. 침대에서 뒹굴거리던 소녀는 한참을 그렇게 침대 위에 있다가 더이상은 미룰 수 없다는듯 일어나야지. 하며 약 20분을 낭비하다 25번의 시도 끝에 침대에서 일어나 뒤늦은 세수를 하고 주방으로 들어간다.
''어? 아저씨 오실 시간이다!''
소녀는 부엌으로 들어가 뒤늦게 시계를 확인했다. 기다리던 사람이 올 시간이 다가오자 소녀는 바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무선 이어폰을 양쪽 두 귀에 낀 후, 휴대폰 액정 속 플레이 리스트를 재생했다.
몇번 해본듯이 익숙하게 냉장고 문을 열어 몇번 눈대중으로 대충 훑어본 후 재료 몇개를 집어 싱크대로 가져가 재료를 씻는다. 한쪽 손은 손질을, 한손은 인터넷에 널려있는 음식 레시피를.
그렇게 다 씻고 난 후 물기를 털고 도마를 꺼내 칼로 재료들을 다지고 있었다. 분명 그랬다. 그랬는데...
"어? 아저씨 왔어요?"
누군가가 소녀의 뒤에서 백허그를 하며 달려왔다. 이어폰을 양쪽에 끼느라 인기척을 전혀 듣지 못했던 소녀는 깜짝 놀라 칼을 떨어뜨릴뻔 했다. 누군가는 자신이 하겠다며 소녀를 주방 밖으로 내보냈고, 그렇게 소녀는 주방에서 반강제로 쫒겨난 셈이 되었다.
소녀는 잠시 삐진티를 조금 냈으나. 이어 금세 화를 풀고 냉장고를 열어 아까 봐두었던 반찬 몇개를 꺼내 탁자 위에 올려놓았다. 그러고는 쫒겨났던 주방으로 슬그머니 가 밥솥의 밥을 두 그릇 퍼 탁자위에 올려놓았다.
그렇게 하나씩, 하나씩 완성된 밥상을 보니 똑같은 밥그릇, 똑같은 컵, 똑같은 수저까지. 이 둘은 얼핏보면 커플 같이 보이기 일쑤였다.
그렇게 차려진 밥상을 맛있게 먹는 소녀를 누군가는 빤히 쳐다보고 있었다.
''왜이리 빤히 쳐다보고 있어요?''
"내가 귀엽다구요??"
"그럼, 우리 약속 하나 해요."
소녀는 머뭇거리다 입을 열었다. 왜 나를 보고 있느냐고. 답을 들은 소녀는 피식, 웃고 난 후 누군가를 빤히 쳐다보았다. 당신이 나를 향해 이러고 있었다고. 소녀는 먹고있던 숟가락을 내려놓고 한가지 약속을 제안한다.
"그 무슨일이 있더라도, 내 옆에 있기로 약속해요."
소녀의 말을 들은 누군가는 그런 소녀가 귀여운듯 소녀를 가볍게 쓰다듬어 주었다. 그리고는 소녀의 이마에 짧게 입을 맞추자 소녀는 누군가를 꼬옥 껴안았다.
"그럼, 동의 한걸로 간주하겠습니다. 아저씨."
그렇게 그 둘은 한동안 서로를 껴안은 채 행복한 시간을 보냈다. 이 행복한 시간이 영원하기를, 그 누구보다 둘은 간절히 바랐다. 그 누구보다 바랐던 평범하고 행복한 이 시간이.
***
"왜 그렇게 표정이 굳어있어. 필요한 정보를 찾지 못했나봐?"
"아뇨. 충분히 찾았습니다. 다만..."
목격자 진술서를 본 이연화 경사는 눈살을 찌푸린 채 그대로 얼굴이 굳어져 있었다. 이연화 경사는 신경질적이게 진술서를 내팽겨 친 후 한숨을 쉬었다. 그 상태에서 김석진 경위가 문을 열고 들어왔던 것이었다.
김석진 경위는 눈살을 찌푸린 채 어딘가 불편해 보이는 이연화 경사를 보고 생각했다. 왜 이렇게 기분이 좋지 않은가. 분명 무언가 찾은것 같은데. 머뭇거리며 말을 하지 않는것을 김석진 경위는 눈치챘다. 이렇게 봐도 나름 커리어가 있는 경위라 하고 싶은 말이 있다는것 정도는 알아챌 수 있었다.
궁금한건 참지 않지. 우리의 김석진 경위는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물어보았다. 왜 그렇게 표정이 굳어 있냐고. 하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형식적이었다. 충분히 찾았다. 다만,
"다만?"
"...찾은게 너무 많아서 의심이 들 정도 입니다."
의심이 들 정도? 좋아해야 하는것 아닌가? 라고 생각하겠지만 오산이다. 이게 트릭일 수도 있다는 말이다. 경찰을 너무 우습게 보는 범죄자들은, 가끔씩 경찰이 쉽게 찾을 수 있는 단서를 던지곤 한다. 근데 그 단서가 다 진실일 가능성이 매우 적다는 거다.
게다가 이 사람은 연쇄 살인마다. 치밀하게 계획하고 치밀하게 움직이는 사람. 그런 사람이 단서를 이렇게 많이 줄 수가 없다는 말이다.
"그래서, 찾은게 뭔데?"
찾은건 많다. 지금까지의 사건 현장의 장소, 범행 수법, 사건 현장 사이 거리 등 조합 해보면 다음 범행 장소와 시각 등을 알 수 있었다. 그런데 왜, 경찰들은 아무런 조치도 하지 않았는가.
솔직히 말해서 조금 화가 날 지경이었다. 이렇게 찾기가 쉬운데 왜 아무것도 하지 않았는가. 왜 그냥 놔두었는가. 다시 한번 차근차근 설명 해보니 더욱 화가 치밀어 올랐다.
"그래서, 다음 범행 장소는... 여기 입니다."
학교 옆 작은 골목. 여기가 내가 생각하는 다음 범행 장소였다. 그렇게 범행 시각을 예상하고 있던 찰나, 누군가 문을 쾅 열고 헐레벌떡 뛰어왔다는것을 광고하다 싶이 헉헉 거리고 있었다. 그리고 내뱉는 한마디가, 우리를. 나를 놀라게 하였다.
"사건입니다. 학교 옆 작은 골목에서 한명의 피해자가 나왔어요."
***
"음... 왜이렇게 늦게 오시지??"
누군가를 기다리던 소녀는 시계를 쳐다보았다. 오후 11시 40분. 이미 퇴근한지 3시간이 한참 더 지났을 때였다. 마중이라도 나갈까 생각했지만, 창문 밖으로 무수히 쏟아지는 눈송이와 가끔씩 울리는 한파, 대설 경보 문자와 함께 그 생각은 곱게 접어두기로 했다.
아무리 늦는다고 해도, 이런 날씨에 나를 집에 혼자 두고있다니. 소녀는 문득 누군가가 원망스러웠다. 내가 얼마나 힘들어 하는지 그 누구보다 잘 알면서. 왜 나를 혼자 두게 하는거야.
그러다 소녀는 문득 회상을 하기 시작했다. 내가 언제부터 아저씨와 같이 살고 있었던가. 내가 왜, 눈이 내려 온 세상이 하얗게 덮이는 날을 싫어했던가.
***
"눈이 많이 내리네. 추워."
세상을 집어삼킬듯이 눈이 미친듯이 내렸다. 이 날씨에는 그 누구도 밖에 있고싶지 않을것이다. 이 추운 겨울에, 미친듯이 내리는 눈 때문에 피부에 한기가 스며들었다. 하지만 나는 학교도, 집도, 학원도 전부 나를 반겨주지 않을것 같았다.
학교에서는 온갖 눈초리를 전부 받아야 했다. 냄새나는 아이. 거지. 썩 사라져버려. 너가 우리 반이라는게 창피해. 등등 세상에 존재하는 욕이란 욕은 전부 받았던것 같다.
그럼 집은 어땠는가. 포근했나? 그것도 아니었다. 도박에 빠져 결국 있는 돈 없는 돈 전부 사용해 결국 알코올 중독에 빠져 매일 구박에 구타를 받았다.
그것만 있었을까. 인간관계. 그중에서도 남자 관계가 꼬이고 꼬여버린 쾌락중독자 어머니가 있었다. 아버지는 안방에 틀어박혀 나오지도 않았고, 어머니는 매일밤 집으로 오는 남자가 매번 달랐다.
그렇게 산지 15년이 흘렀다. 소녀는 창 밖으로 보이는 쏟아지는 눈에 차라리 나도 저 눈에 잡아먹혔으면 했다. 그렇게 비가 미칠듯이 쏟아지는데도 나가는 소녀를 붙잡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렇게 집을 나와 목적지 없이 걸은지 30분. 아니, 더 걸렸는지도 모른다. 나는 발이 가는데로 걸었다. 그렇게 온 곳은 학교 옆 작은 골목이었다. 소녀는 이대로 자신이 죽기를 바랐다.
굶어 죽던지, 아니면 이대로 체온이 계속 내려가 동사를 하던지. 아무래도 좋았다.
소녀는 지쳐 골목 막다른 벽에 쭈그려 앉았다. 사람의 온기는 느껴지지 않았다. 그렇게 쭉. 눈이 감겨 죽기만을 기다렸다.
"괜찮니? 여기 있으면 많이 추울텐데."
누군가 소녀에게 다가왔다. 소녀는 더 대꾸할 힘조차 남아있지 않았다. 하지만, 차가웠던 그녀의 몸을 녹여주는 무언가가 있었다. 사람의 온기. 아아, 누군가 나를 이렇게 안아준건 정말 오랜만이었다. 어쩌면 한번도 없었을지도 모른다.
어느샌가 소녀의 눈에서는 이게 눈물인지, 눈이 녹은 비인지 구분이 가지 않을정도로 뜨거운 눈물이 흘렀다. 누군가는 다 안다는듯, 괜찮다는듯 나를 꼭 안아주고 있었다. 소녀는 그렇게, 아주 긴 시간을 그 자리에서 울었다.
***
"... 혼자가 된건가??"
그 일이 있고난 후 소녀는 그 사람을 믿었다. 이 지옥같은 삶 속 한줄기 빛을 타고 내려온 사람이니까. 캄캄한 어둠 속 방황하던 나를 구해준 나만의 구원자 였으니까.
하지만 그 시간 조차 오래가지 않았다. 소녀는 그 사람과 약 1시간동안 함께 거리를 돌아다녔다. 편의점에서 음식을 사와 함께 먹기도 하고, 살면서 가장 오랜 시간동안 대화를 나누기도 했다.
들어보니 그 사람은 이제 19살이 되었다고 했다. 그러면서 내가 하는 이야기에 나 대신 불만을 이야기하고, 때로는 화를 내기도 했다. 그러면서 나는 자연스레 그를 아저씨라고 생각했다. 겉은 고등학생 이지만, 세상의 아픔을 너무 일찍 알아버린 아저씨.
그는 나는 아저씨가 아니라며 툴툴댔다. 하지만 그 모습 속에, 그가 비난하는 말들 속 나는 없었다. 나를 힘들게 했던 사람들뿐, 나는 없었다.
정적이 이어지고 그는 입을 열었다. 자신의 옛이야기를. 들어보니 나와 같은 생활을 하고있는 사람인것 같았다. 하지만, 절망하며 바닥만 보며 살아간 나와는 달라보였다. 늘 희망을 품고 살아가는것 같았다. 점점, 동질감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시간이 되자 그는 집에 가야한다고 했다. 소녀는 같이 가고 싶었다. 정말 미친짓이었다. 가출 청소년이라니. 나를 보는 매서운 부모의 시선이 느껴지는듯 했다.
하지만 이대로 살 순 없었다. 조금만이라도 이대로 간다면 나는 얼마 안가 죽어버릴것만 같았다. 어떻게든 그를 붙잡아야 했다. 내가 살기 위해서. 나와 같은 처지인 당신을 위로해주고 싶어서.
"실례가 안된다면, 제가 당신을 위로해도 될까요?"
"...!"
그 순간 뒤에서 경찰의 목소리가 들렸다. 아, 부모가 드디어 사고를 쳤구나. 옆을 돌아보니 그는 어느샌가 사라져 있었고, 소녀는 그대로 경찰서로 향했다.
그때의 일은, 그는, 내가 너무 힘들어 생긴 환상의 존재인줄만 알았다. 내가 드디어 미쳤구나. 생각하며.
그렇게 일주일이 지났다. 소녀는 보호소에서 살고 있다. 여전히 그와 함께 있었던 후 제대로 활짝 웃어본적은 없었다. 반복의 연속이었다. 일어나서 공부하고, 밥먹고, 자고.
그렇게 의미없는 하루를 보내고있을 때였다. 10시를 알리는 종이 울리면 취침시간이 시작되었다. 소녀는 침대에 누워 창 밖을 바라보았다. 보름달. 보름달이었다. 찬란하고 깨끗한, 보름달이었다. 나와 정 반대의 삶을 살아가는, 보름달이었다.
눈을 감고 잠시 있어보았다. 역시 잠이 오질 않아 이번에는 창 반대편 그림자가 지는 방 안쪽을 바라보았다. 고요했다. 너무나도 고요해서 금방이라도 무슨일이 벌어질것만 같았다.
사람의 그림자가 졌다. 역시 이건 꿈이구나. 맞네. 꿈이구나. 꿈이 아니라면 지금 내 눈앞에 그가 있겠는가. 창문을 두드리며 나를 애타게 외치는 그가 있겠는가.
"빨리 문 열어."
...응?
맙소사. 소녀는 창문을 열었다. 차가운 바람이 소녀의 몸을 감쌌다. 하지만 그것을 인식하기도 전에 그는 나에게 손을 내밀었다. 뒤에서 소녀를 부르는 소리가 났다. 거기 무슨일 있니?? 문이 잠겼어. 빨리 마스터키를...!!
소녀는 너무 놀라 온몸이 굳었다. 그 누구의 말도 선명히 들리지 않았다. 소녀는 홀린듯이 그에게 한발짝, 한발짝 다가갔다.
"약속할게. 항상 네 곁에 있어주기로."
소녀의 머리를 자신쪽으로 당긴 후 내뱉은 귓속말은 그 누구보다도 달콤했다. 아주 오래전부터 누군가 나를 보호해주기를 바랐다. 그 누구보다도 간절히 바랐다.
소녀는 그의 손을 잡았다. 그는 씨익 웃음을 짓고는 나의 손을 꼬옥 붙잡은 채 나에게 다짐했다. 우리는 서로의 눈을 마주친 채, 서로를 굳게 믿으며 찬란한 달빛속으로 사라졌다.
"지켜준다고 약속 했으면서."
"내 곁에 있어주겠다고 했잖아."
"이 거짓말쟁이..."
***
"정말 여기에 찍힌거 맞아??"
"네. 틀림 없습니다."
이연화 경사는 사건 현장에서 조금 떨어진 한 골목의 cctv를 보고있다. 왜 이곳으로 왔는지. 나로썬 절대 이해할 수 없었다. 사건 현장도 아닌 생뚱맞은 장소의 cctv를 보고있으니까. 그러다 문득 이 경사가 왜 경찰이 되었는지를 생각해 보았다.
그렇게 생각에 잠겨있던 도중, 이 경사는 무언가를 보았는지 문을 열고 뛰쳐나갔다. 나는 상황을 파악하기도 전에 헐레벌떡 이 경사를 따라갔다.
"무슨일인데. 왜 차를 타고 이곳을 가야하는거야?"
"범인이 이곳으로 도주할 겁니다.''
''지금 당장 이곳으로 가지 않으면 또 다른 피해자가...!"
"진정해. 일단 진정하고."
이 경사는 거친 숨을 내뱉으며 쉴 새 없이 말을 하기 시작했다. 횡설수설 하지만, 그럼에도 목적은 하나인것 같았다. 범인을 쫒는다. 그것 하나였다.
사건 현장 근처의 한 골목길 앞에 차를 세웠다. 그러고는 차 문을 열고 골목길 안쪽으로 다시 뛰어가기 시작했다.
사실, 아까 다음 범행 장소를 예측하는 것부터 조금 이상했다. 어딘가 나사 하나가 빠진 느낌이랄까. 나는 이렇게까지 흥분한 이 경사를 본 적이 없었다. 그러다가, 점점 이 경사와 첫만남을 생각하고 있었다. 언제 이 경사와 만났더라.
***
"아저씨는 어디간거야..."
소녀는 결국 집을 나왔다. 밖은 아까보다 더 눈이 내리고 있었다. 마치 사람 한 명이 눈속으로 먹혀 사라져도 모를만큼, 눈이 내리고 있었다.
소녀는 미친듯이 걸었다. 걷고 또 걸었다. 아저씨를 만난 처음 그 날처럼. 그때도 이렇게까지 절망적이지는 않았는데. 나를 왜 구해준거야? 왜 다시 나를 버린거야• • •.
처음에는 슬펐다. 일주일동안 아저씨가 오지 않았으니까. 많이 늦는구나. 라고 생각했다. 아저씨는 나를 버릴 이유가 없으니까. 나와 같은 상처를 받은 사람이니까.
2주가 지났다. 이제는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밖의 눈은 멈출 기세가 보이지 않았다. 이제는 희미하게 남아있던 사람의 온기도 다 사라지고 없었다.
한달이 지났다. 이제는 확실하게 말할 수 있다. 아저씨는 나를 버렸다. 그것도 아주 잔인하게. 이제는 아무 감정도 들지 않았다. 결국 나를 구원해준 사람은 없었구나.
나와 같은 사람일줄 알았다. 내가 위로해줄 수 있다고 믿었다. 그렇게 자그마치 5년을 살아왔다. 하지만 그 믿음이 전무 물거품이 되었다고 생각하니 절망했다.
그렇게 이제 있을 필요가 없는 집을 나왔다. 양말 두 짝도 다 신지 못한 채 차갑고 쓸쓸한 거리에 몸을 내딛었다. 다리에 힘이 풀려 더이상 나아갈 수 없었다. 이제는 나아갈 필요도 없었다. 나를 앞에서 기다릴 사람이 없으니까.
눈에 힘이 풀린다. 계속 눈이 감겼다. 나는 그대로 눈을 감았다. 그리고 다시 뜨지 않았다. 눈을 뜰 필요도 없었다. 내가 다시 눈을 떠도, 내 앞에 누군가가 나와 눈을 맞추지 않을테니까.
그렇게 그냥 눈과 하나가 되어 사라지기를, 내가 몸이 차가워져 죽기를 바랐다.
가로등의 불빛이 가려지는 느낌을 받았다. 아. 누군가 왔구나. 아저씨일까? 이때도 난 씨앗크기도 되지 않는 희망을 품을 수 있었다. 내가 이런 생각을 하게 만들어준 아저씨이길 바랐다.
"괜찮아요?"
아. 아저씨가 아니었다. 결국 내 하찮은 기대로, 나는 사람에게 3번 버려진 처지가 되었다. 나는 힘겹게 눈을 떴다. 그래도 내 마지막에 마주친 사람이 누구인지는 봐야 하니까. 그렇게 아저씨가 가르쳤으니까.
"많이 힘들어 보이는데. 병원으로 데려가야 하나."
남자였다. 그것도 경찰로 보이는 사람 한명과 대학생으로 보이는 사람 한명. 대학생으로 보이는 사람은 나를 지긋이 바라보았다. 그리고는 눈이 마주치자 나에게로 다가와 자신의 옷이 젖든, 아니든 나를 꼭 안아주었다.
사람의 온기가 느껴졌다. 5년전의 아저씨의 온기가 느껴지는것 같았다. 나는 따뜻해짐과 동시에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어차피 나를 버릴거잖아. 다 그런거잖아.
소녀는 그 사람을 밀쳤다. 나를 안아주지 말라고. 더이상 나를 비참하게 만들지 말라고. 나를 더이상 희망을 품게 만들지 말라고.
"제발... 사람이 그리워지게 하지 마..."
그러자 남자는 다 이해한다는듯 웃음을 지었다. 거짓말. 다 거짓말.
"사람이 그리워지는게 싫으면, 누군가를 기다리지 않도록 해줄게."
"이제 그럴 필요 없어. 기다릴 필요 없어."
그렇게 남자는 소녀를 토닥였다. 소녀는 그를 안았다. 너무 힘들었다고. 왜 이제서야 그 말을 해준거냐고. 소녀의 볼에서는 뜨거운 눈물이 흘렀다. 그렇게, 한참을 그러고 있었다.
ㅡ
진정이 조금 되었다. 소녀는 병원으로 옮겨졌고, 그들은 경찰이랜다. 소녀를 충분히 진정시키려는듯 나가려고 했으나, 그 남자는 내 곁에 있어주었다. 그러고는 소녀를 보며 말했다.
"그러고보니 아직 이름을 모르네. 네 이름이 뭔지 물어봐도 될까?"
그는 아주 조심스럽게 물어보았다. 혹시라도 내가 상처를 받은건 아닐까 걱정해서 였겠지. 소녀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 괜찮다고. 그는 알아들은것 같았다.
"제 이름은 이연화에요. 이연화."
***
''사실, 아까 cctv에서 말입니다."
"응?"
갑자기 이 경사가 말을 걸었다. 나는 천천히 그녀의 말을 경청했다.
"아까. 범인의 얼굴을 보았습니다. 그래서, 이곳으로 온겁니다."

절대 잊을 수 없는 그 얼굴. 나를 향해 웃음을 지어보였던, 손을 뻗으면 바로 닿았던 그 얼굴. 나의 지독한 사랑, 나의 사람. 나의 아저씨. 민윤기, 네 얼굴을 이런 곳에서 볼 줄 몰랐어. 어리석게도.
네가 없는 세상은 나도 없는 세상이 될거야.
나도 사랑해, 연화야.
***
"분명 그 사람이 맞을겁니다. 손에 피가 있었으니까."
"...그건."
"그러니까. 저만 가게 해주세요."
나는 가던 발걸음을 멈추고 김석진과 눈을 맞추었다. 어딘가 불안해보이는 김석진은 나의 발언에 놀란듯 보였다. 나는 경찰이 된 이후 단 한번도 내뱉지 못했던 말을 이제야 꺼내본다.
"나 이제 괜찮아. 그 사람이야. 내가 싫어했던 사람."
"그 사람이 범인이야. 이제, 나 그만 떨쳐내려고."
"이해해줄 수 있지, 석진오빠?"
나는 석진오빠의 손을 잡으며 말했다. 그러자 석진오빠는 나의 손을 꼭 붙잡더니 결국엔 졌다는듯 웃으며 나에게 말을 걸었다.
"당연하지. 우리 연화인데."
나는 석진 오빠를 뒤로하고 골목의 더 깊은곳으로 들어갔다. 아무래도 범인은 석진 오빠를 반기지 않을것만 같았다. 내가 이곳의 cctv를 볼줄 알았다는듯이 얼굴을 보였으니까. 심지어 그의 손에는 피해자 또한 들려있었다.
석진 오빠 덕분에 나는 이곳까지 올 수 있었다. 어쩌면 나의 진짜 구원자는 석진 오빠 일지도 모른다. 그런 석진 오빠에게 나는 아무것도 해주지 못했다. 오히려 말도 제대로 하지 않았던 나를 석진 오빠는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항상 받기만 했었지. 그런데 이제는 내가 해결해야 할것 같아. 미안해, 석진 오빠.
나는 뒷말을 삼킨 채 더욱 깊숙한 곳으로 들어갔다.
***
"..."
막다른곳에 다가서자 누군가가 가로등 밑에 서있는 실루엣이 보였다. 나는 범인이라는걸 본능적으로 알아차렸다. 가장 지독하게 붙은 내 인연. 내 첫사랑.
눈은 어느새 그치고 환한 달빛이 나와 그를 비추고 있었다. 차디찬, 싸늘한 겨울 공기가 서로를 감싸고 있었다. 이 모든것들이 마지막이라는걸 암시해주고 있는것 같았다.
첫마디를 무슨말로 열어야 할까. 반갑다는 표시, 그것도 아니면 경찰로써의 한마디? 머리가 복잡했다. 이미 그는 나를 쳐다보진 않았지만 내가 왔다는걸 인지하고 있는것 같았다. 내가 어떤말을 꺼낼지 궁금해서 저러고 있는것이다.
나는 한 손은 권총을 만지작 거리고 있었다. 그리고 점점 거리를 좁혀왔다. 말을 해도 들릴것 같은 거리에서, 나는 입을 열었다.
"오랜만이네."
그는 나를 향해 돌아보았고, 나를 향해 비릿한 웃음을 지어보았다. 한쪽 입고리를 올린채 웃고 있었지만, 나를 향한 눈빛은 전혀 그렇지 않았다.
그 또한 입을 열었다. 귓가를 울리는 중저음, 나를 향한 비웃음, 감정이란 존재하지 않는 눈빛. 나와 그는 세상에서 가장 끔찍한 재만남을 가졌다.

"오랜만이네. 보고싶었어."
민윤기. 널 다시 볼줄 상상도 하지 못했어.
***
"난 전혀 보고싶지 않았어."
여전하다. 저 능글맞은 성격. 사람을 홀리는데 재주가 있는 저 성격. 나도 그에게 잠시나마 홀렸던것 같다. 이렇게 사람이 달라보이는데, 그게 아니면 뭔가.
그냥, 민윤기를 만났다는것 자체가 나를 혼란스럽게 만들었다. 어째서 나를 보러 온거지? 사람을 죽이면서 까지 나를 부른 이유가 뭐지? 어째서 이렇게 변한걸까.
"왜 말이 짧지? 그냥 예전처럼 편하게 불러."
"닥쳐. 너랑 말장난할 기분 아니니까."
거짓말이다. 덤덤해질줄 알았는데. 진짜 민윤기가 내 앞에 있다고 생각하니 심장이 미친듯이 뛴다. 조금만 더 다가오면 심장이 뛰는 소리가 그에게도 들릴것만 같았다.
솔직히 말해서 보고싶었다. 사람의 마음이란게 참 간사하다. 그토록 증오하고 싫다. 근데 어째서, 왜 그가 아직도 좋은걸까. 왜 그만 보면 설렘이라는 감정을 느끼는걸까. 왜 아직도 그에게 달려가 안기고 싶은걸까.
나를 그토록 아껴주었다. 하지만 그건 다 거짓이다. 하지만... 아니. 정신차리자. 반복이다. 왜 내 머릿속에선 그가 나를 보며 활짝 웃어주는 모습이, 나를 안아주었던 모습이 생각나는가.
"안아줄까?"
"...저리 가."
"좋아했잖아. 내가 안아주는거."
" 나에게 더 이상 너를 위한 공간은 없어."
"그럼 내가 비집고 들어가면 돼."
"자꾸 말 돌리지 마."
계속 마음이 흔들린다. 그러지 않으려 했다. 괜찮을거라 했다. 그런데 왜 눈물이 자꾸만 나는가. 나는 아직도 그를 잊지 못했나. 아직도 나는 너를 사랑하는걸까.
"지금 이곳에는 너와 나. 단 둘뿐이야."
"나갈 수 있는건 한 명이고."
"그러니 우리 게임 한 판 할까?"
"변명 하지 마."
"자 여기. 권총 한자루가 있어."
내가 혼란스러운 그 때 그의 손에는 어느샌가 권총 한자루가 들어있었다. 여전히 그는 여유로운 표정을 짓고 있었다.
"이 리볼버엔 총알 두 발이 있어."
이 총을 먼저 잡는 사람이 상대에게 쏘는거야."
"재미있겠지?"
분명 하면 안된다. 저건 다 거짓말이다. 그는 거짓으로 둘러쌓인 사람이다. 분명 하면 안된다. 안되는데...
"좋아. 하지 뭐."
역시 난 이번에도 그의 속임수에 넘어가버렸다. 지금까지 그랬던 것처럼.
"준비..."
나는 자세를 고쳤다. 그는 여유로워 보였다. 내가 이럴줄 알았다는듯이 나와 눈을 맞추었다. 그런데 그 눈빛이, 너무 달콤했다. 예전의 그 행복했던 시절로 돌아간것만 같았다. 하지만 그건 다, 내 기만이겠지.
***
"이렇게 될줄 알았어."
모든게 짜증난다. 그를 이길 수 없었던 나도, 지금 내 앞에서 눈썹을 올리며 양 손을 들며 씨익 웃는 너도, 모든게 밉다. 그럼에도 거부할 수 없었던것은, 겨울의 싸늘한 바람과, 온도와, 주변에 쌓여있는 눈더미와, 빌어먹을 저 달. 우리 둘을 비추는 하얀 달이었다.
처음부터 이미 승패는 결정되어 있었다. 민윤기의 승리와 나의 패배. 비릿하게 올라간 입꼬리와 차가운 눈빛. 나를 압도 하는 그의 실루엣에 잠시 정신을 놓을뻔했다. 이윽고 달을 가렸던 구름이 걷히자 그의 모습이 역광하여 하얀 달빛에 의해 실루엣으로 보이기 시작했다.
지금 그는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나를 얼마나 잔인하게 죽일지 생각하고 있을까, 아니면 물어보고 싶은 질문을 정리하고 있을까. 내가 아는 민윤기는 후자일테지만, 이 자는 내가 아는 그가 아니었다. 지난 10년간 내가 변했듯이, 그도 역시 변해있었다.
나는 한숨을 푹, 쉬고 천천히 고개를 내려다 보았다. 10년전과는 많이 달라진 모습이었다. 얇은 다리 대신 실전 근육이, 상처많은 피부 대신 굳은 살이 자리잡혀있었고, 약간 민감해진 직감이 우울감 대신 나의 일부가 되어있었다.
"축하해. 게임의 승리자가 된거."
"너라면 축하해줄줄 알았어."
"그나저나, 갚아야 하는거 아닌가. 맹약을 깨는 조건."
"맹약? 아, 맞다. 그게 있었지."
"근데, 우리가 맹약을 지킬 정도의 사랑은 아니었잖아."
"이건 게임의 결과야. 연화야."
그 순간, 지금껏 한 번도 느껴보지 못한 정도의 배신감이 내 몸을 감싸안았다. 사랑. 우리가 사랑을 말하는 사이였던가. 그게 언제였던가. 그는 아직도 나를 사랑하고 있는가.
나는 범인이 된 것처럼 두 손을 들었다. 그리고는 두 눈에서 흐르는 눈물을 닦지 못한 채 그의 얼굴을 빤히 쳐다보았다. 그래. 이게 이 사람의 본질이었겠지. 한치의 온기도 존재하지 않는 이 모습이.
리볼버의 총구가 나를 향했다. 이제 정말 끝이다. 나만 끝이다. 총성을 들은 석진 오빠가 지원군과 함께 이곳으로 오고, 민윤기는 곧 잡히겠지.
석진오빠의 반응은 어떨까. 차갑게 식어버린 내 모습을 보고 입술을 깨물을까. 아니면 이미 바람과, 계절의 온도와 하나가 되어버린 날 끌어안고 내 온도와 대비되는 뜨거운 눈물을 흘릴까.
석진오빠. 그래. 죽어가는 나를 살려준, 내 구원자. 나의 가족. 어쩌면 나는 이미 석진오빠를 사랑하고 있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던 시절이 있었다.
석진 오빠를 바라볼때면 항상 심장이 미친듯이 뛰었고, 그 또한 나와 비슷한 감정을 느꼈었으니까. 하지만 지금에서야 다시 생각해보니, 그건 사랑이 아니라 동경과 고마움이였던것 같다.
마지막 한 마디가 그 석진 오빠가 아닌 민윤기라니. 사람 일은 참 모르나보다. 이 광경을 너무나도 기다렸으면서도, 회피해왔으니까. 이제 진짜 마지막이야.
"그래. 꼭 잘 살아."
그러자 그는 피식, 웃으며 고개를 떨궜다. 그리곤 어느 한 표정으로 나에게 한 걸음, 한 걸음 다가왔다. 그 때 보았던 상냥한 웃음. 이 날씨와는 다른,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몸의 한기가 녹아내리는것 같은 눈빛. 서로를 진심으로 사랑했다 생각했던 그때로 돌아간 것 같았다.
잠깐만. 이 사람, 위험하다.
"잠깐, 아저씨-."
"응, 사랑해. 연화야."
탕 - .
한 순간이었다. 한 손으로는 나의 시선을 가린 채, 한 손으로는 총을 자신의 머리에 겨눴다. 그리고는 내 앞에서 쓰러졌다. 새하얀 눈이 빨갛게 물들어간다. 나는 상황 파악을 하지도 못한 채 그를 껴안았다. 그가 있었던 육체를, 껴안았다.
아아, 이럴줄 알았으면 그렇게 차갑게 대하지 말걸. 안부라도 물어볼걸. 왜 돌아오지 않았냐고 물어볼걸. 너무 많은 의문점을 남기고 이렇게 가버리면, 나보고 어떡하라고.
눈에서는 미칠듯이 눈물이 내렸다. 이미 차가워진 그를 꼭 끌어안으며, 이미 끊어져버린 심장 소리를 들으려 애썼다. 내가 그토록 좋아했던 그 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불안할 때마다 그에 품에 안겨 들었던 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우리는 이미 너무 멀리 와버린 걸지도 모른다. 어디로 돌아가야 할까. 어디로 돌아가야 이 악연의, 이 비극의 시작점을 끊어버릴 수 있을까. 어디로 가야, 아저씨의 웃음을 다시 한 번 볼 수 있을까.
그 빌어먹을 맹약이겠지. 그 맹약 때문에, 나를 죽이지 못하고 자신에게 총구를 겨눈거겠지. 내가 당신을 사랑해버려서. 내가 당신의 소중한 존재가 되어버려서. 내가 당신의 세계에 침범해버려서.
우린 서로에게 총구를 겨누지 말자.
내가 처음 그의 살인을 목격한 후, 그는 볼에 묻은 피를 한 손으로 닦으며 나에게 맹약을 걸었다. 서로에게 총구를 겨누지 말것. 이를 듣고 의문점이 들어 내가 죽으면 어떻게 할건지 물어본 적이 있다. 그때는 내가 어렸고, 그 또한 어렸기에 세상 모르는 답을 한 적이 있었지.
"네가 세상에 없으면, 나도 없어."
"이제는 그 맹약을 깨뜨린 대가를 받아야 할 때야."
나는 리볼버에게로 시선을 두었다. 분명 총알이 두 발이라고 했던가. 아아. 그랬던 거였다. 내가 이 맹약의 존재를 인지한 채 내가 나 자신을 쐈다면, 그는 아마 남아있는 이 총알로 자신의 머리를 쐈을것이다.
당신도 하는데, 나라고 못하겠어. 내 모든건 다 당신을 보고 만들어졌는걸. 나는 결코 당신의 곁에서 벗어날 수 없어. 그 때 했던 그 약속처럼.
멀리서 석진 오빠가 달려오는 소리가 들린다. 아마 총성을 듣고 달려오는 거겠지. 그렇다면,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석진 오빠가 이 장면을 보기 전에, 끝내야 한다.
먼저 가버려서 미안해. 오빠.
--.
***
''하아... 시발."
이렇게 될줄 대략 알고는 있었지만, 이렇게까지 처참할줄 몰랐다. 처음 울린 총성과, 이어 울린 두번째 총성. 첫번째 소리가 들린 후 미친듯이 다리를 굴렸으나, 결국 두번째 총성을 막지 못했다.
갑작스런 이별,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 범인의 검거, 범인의 죽음. 그 무엇도 나에게는 아주 커다란 혼돈이었다.
나란히 누워있는 두 남녀의 시체. 서로의 손을 잡은 채 발견된 둘은 비극의 연인이었다. 내가 미처 막지 못한, 나의 첫사랑. 다시 얼굴을 마주보고 싶었지만, 이렇게 마주보고 싶진 않았다.
둘이 세상을 떠난 후, 다음 날 박경장, 아니, 박지민이 나에게 어느 한 쪽찌를 건내주었다. 이번 사건의 범인이 연화에게 주는 메세지였다. 자신에게 이것좀 건네달라 부탁했다고. 그러나 자신은 끝내 이 메세지를 주지 못했다는 죄책감에 피가 날 정도로 입술을 꽉 깨물었다고 한다.
사실, 박지민은 이번 사건의 범인의 조력자였다고 한다. 그래서 이 범인이 많은 사람을 죽여 이 세상을 깨끗하게 만들어 연화를 행복하게 해주겠다는 목적도, 전부 알고 있었다고 한다.
관찰 대상인 연화가 사라지자 그 역시 자취를 감추었다. 나에 대한 진실은 묻어두는게 연화에게 좋을것 같다는 말과 함께. 나 또한 그 의견에 동의했다. 연화에게, 잠시라도 휴식의 시간을 주고 싶었다.
사실, 이미 알고 있었다. 이 사건의 범인을. 이미 4년전에 마주쳤으니까. 잠시 밖에 나간 사이 둘은 눈을 마주한 채 대치했던 적이 있었다. 민윤기는 온몸을 가린 채 연화를 바라보고 있었고, 연화는 그런 민윤기에게 총구를 겨눴다.
이번 사건을 정리하며 민윤기의 과거를 알아보았다. 지금으로부터 정확히 5년 전, 부모님의 감옥 살이가 끝난 후 위치를 들켜 잡혀가 약 2개월간 가정 폭력을 당했다고 한다. 그래서 한쪽 입꼬리가 찢어져 수술을 받았다고. 아마 그 즈음 내가 연화를 데려왔을 것이다.
그 때 어렴풋이 짐작하고 있었지만, 이 둘이 그런 사이였다니, 이 나라의 경찰로써 둘을 제대로 보호해주지 못했다는 점에서 죄책감이 몰려왔다. 만약 그들이 조금 더 빨리 좋은 세상을 만났다면, 지금 둘은 무엇을 하고 있을까.
착잡한 마음으로 한숨을 쉬었다. 지금쯤 그들은 무엇을 하고 있을까. 다시 재회는 했을까. 자신들과 비슷한 상황의 아이들을 구해주고 있을까. 아니면 복수하고 있을까.
나는 박지민이 전해준 쪽지를 다시금 읊조렸다. 어떤 인연이었는지는 이제 대충 알지만, 이걸 보니, 더 이상의 분석은 하지 않는게 예의라고 판단하여 이제 이들의 관계에 대해서 생각은 그만 두기로 했다.
바람은 차갑고, 사람을 잡아먹을듯이 눈이 내린다. 그를 비치는 창백한 하얀 달빛이, 너무나도 아름다워서,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맹약을 깨뜨린 대가는 죽음으로 갚을테니
넌 내 시체를 끌어안고 울어라.
나도 사랑해. 연화야.
겨울의 찬란한 달빛이 이윽고 구름으로 인해 가려지고, 석진의 모습은 어두운 방과 하나가 되었다. 그리고는 조용히 내뱉은 한 마디를, 그 누구도 무엇인지 알 수 없었다.
사랑해, 연화야.
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