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원경(桃源境) : 속계를 떠난 별천지(別天地)
이 단어를 보자마자 너의 생각이 났다
너와 함께 한 모든 순간이 마치 꿈속의 무릉도원처럼 현실의 감각이 없이 행복했기에
하지만 그건 오로지 나 혼자만의 생각으로 남았어야했던걸까
그저 너를 욕심내지 않고 붉은 동백같던 너를 손에 가지려 하지않고 어여삐 너만을 바라 보기만 해야했던걸까
봄비가 내리던 곡우(穀雨), 복숭아꽃 나무 아래에 있으면서도 마치 붉은 동백꽃같던 너를 처음만났다
결혼시기가 지난 스물셋이 되도록 그 흔한 첫사랑도 없었더랬다
딱히 혼인도 관심이 없었던지라 주변에선 나를 놀리듯 남색이라도 하는것이 아니더냐라는 말까지 나올정도로 여자에 관심이 없었다
하지만 그 봄날 복숭아꽃 아래 나무에 서 있던 너를 본 순간, 텅 비어있던 나의 세상이 갑자기 너로 인해 너의 색으로 빛이 났다
눈이 아픈 쨍한 색이 아닌 마치 친근하면서도 계속보고싶은 아련한 색처럼.
그렇게 그나무 아래에 있던 너를 계속 멍하니 바라보았다
마치 이 속세(俗世)속에 너와 나만 있는것처럼, 이 어지럽고 사람많은 공간이 순식간에 낙원인 무릉도원(武陵桃源)이 된것처럼, 그런 기묘하고도 처음 겪어보는 가슴의 설렘에 나는 정신을 차릴수가 없었다
곧 너와 눈이 마주쳤고 예기치못한 마주침에 나는 숙맥처럼(실제로 숙맥이지만) 얼굴이 붉게 달아오른체 그저 고개를 숙일수 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 짧은 눈 마주침에 너의 눈을 보았을 때, 마치 눈속에 밤하늘이 담겨진것처럼 보였다
흔히들 말하는 너의 눈속에는 별이 있는것 같다 따위의 말과는 전혀 다른, 우리가 보는 그런밤하늘이 아닌, 내가 한번도 보지못했고 앞으로도 보지못할 그런 밤하늘.
그러나 나의 숙맥기질은 어쩔수가 없었나보다
이말을 너에게 전하지 못한채 그저 두 볼이 붉어진채 그곳을 정신없이 빠져나와 집으로 돌아올수 밖엔 없었다
하지만 집에 돌아와서도 너가 계속 생각이 났다
눈을 감아도 너가보이고 지금 낮인지 밤인지, 구분을 하지 못할정도로
낮과 밤이 전부 너였기에
내 마음의 빈틈이라곤 전혀없이 모두 너였다
그리고 그날밤 상사병(相思病)이란걸 처음겪어보았다
그동안 나의 동무들이 상사병 걸린걸보며 놀리듯했던 저이기에 그 꼴이 꽤나 우습다고도 생각이 되었다
하지만 막상 저가 겪어보니 그 어떤 병보다도 불치병보다 심각하다 여길정도였다
그로인해 다시 그 복숭아꽃이 흐드러지게 핀 그곳에 다시 너를 보러갔다
혹여, 너가 다시 그곳에 있지않으면 어쩌나 싶었는데 다행히 너는 그곳에 동백꽃처럼 있었다
한편으론 다행스럽다가도 또 다른 한편으론 어제의 그 감각이 다시 저를 마치 해일(海溢)처럼 덮쳐오는 그 감각에 오감이 아찔해져 또 다시 정신을 차릴수 없었다
그리고 이어 또 너와 눈이 마주쳤고 나는 또다시 숙맥처럼 고개를 푹 숙일수밖엔 없었더랬다
그리고 다시 이 맘을 들키지 않으려 어제처럼 집으로 돌아가려하는데 별안간 고개숙인 내 시야에 웬 붉디붉은 꽃신이 내 눈에 들어왔다
무슨일인가 싶어 고개를 들어보니 멀리서만 바라보던 너가 내 눈앞에 있었다
순간 예기치 못한일에 뒤로 주춤물러나니 너는 다시 한발짝 내게 다가와 당돌히 왜 어제부터 저를 그리 바라보고 가느냐고 물었다
예기치 못한 질문에 나는 홍당무보다 더 붉어진 얼굴로 어버버거리며 제대로 답을 하지못하였고, 그런 나를 더 빤히 바라보는 너로인해 내 얼굴은 더 붉어질수 밖엔 없었다
내가 계속답을 못하고있자 너는 또 혹시 나에게 반하였느냐는 예상치못한 질문으로 또 다시 나를 당황케하였다
그리고 그 당시 내가 무슨 생각으로 고개를 끄덕인건 지금 와 생각하여도 무슨 용기로 고개를 끄덕인건지 아직도 의문이 가시지않았다
그 후 우리는 혼인을 전제로 사귀게 되었다
내가 너에게 무슨일로 이틀씩이나 그 나무아래에 있었느냐라고 물으니, 중매쟁이가 자신을 중매하기로 하였는데 무슨일인지 약속한 날이 사흘이 넘도록 오지 않아 계속 그곳에서 기다렸댄다라고 하였다
그리고 이어말하기를,
중매쟁이가 오지 않은걸 보아 당신과 내가 만날연이 아니었을까라고 생각한댄다
그리고 내가 말하기를 혹여 내가 나쁜 사람이면 어쩔것이냐 라고 묻자, 너는 나쁜 사람의 눈이 그리 선하면 이 세상에 나쁜 사람은 반절이 넘겠소 하며 동백꽃같이 화사하게 웃었다
그 웃음에 나도 너를 따라 웃을수 밖에 없었다
그 후 평탄한 연애와 평탄한 결혼생활이 되었다
비록 공장에서 일을하며 많지는 않지만 살림을 꾸려나가는 재미도 있었다
이 모든것을 처음경험하면서 이곳이 무릉도원이 아닐까하는 생각이 날만큼 꿈속같이 행복했다
그러다 다음해 봄, 우리에게도 아기님이 찾아왔다
결혼한지 한해가 넘도록 아기님이 생기지 않아 주변에서도 걱정을 하고 우리도 알게모르게 걱정을 많이 하였는데 다행히 임신이 되어 경사도 이런경사(慶事)가 없다고 입을 모았다
그러나 그 경사는 오래가지 않았다
병원을 갔을때 의사님께서 산모의 몸이 약하니
아이를 낳는것을 포기하는것이 어떠냐는 말을 들었을때 나는 땅을 뚫고 내려가는 기분을 느끼었다
그 기분은, 단지 아기를 포기하는 것때문에 느끼는 감정이 아닌 너의 눈을 보았을 때 아기를 절대 포기하지않을 눈빛이었기에
설령, 그 선택이
너를 이 세상에 없게 하더라도.
그 후 끊임없는 부탁이 이루어졌다
너만을 생각하라는 내 말에 너는 그저 가만히 나를 바라볼 뿐이었다
그리고 그 해 겨울, 아기는 나왔다
다만 너도 아기도 이세상에 없던채로
다시 곡우(穀雨)가 찾아왔고 봄비도 내렸다
그 비에 맞춰 복숭아꽃도 피고 동백꽃도 흐러지게 핀 그곳에, 모든것이 다 그자리인 그곳에, 나의 마음도 너를 처음만난 그 해일(海溢)처럼 그대로인 그곳에 너만이, 너만이 없었다
그러기에 나는 오늘도 달빛이 환현한 그곳에서 눈을 감고 내안에 널 찾는다
꿈에 번진 환상, 그 안에서 너는 날며 나에게로 가까워진다
찾아 헤멘 너를 발견한 나는 그 꿈속의 도원경(桃源境)에서 다시 눈을 뜨면 내게만 스며드는 너를 기억하며.
빅스 - 도원경(桃源境)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