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견례
‘다음엔 정식으로 들르지.’
한노아는 그렇게 말하고 돌아보지도 않은 채 담장을 넘어 나갔다.
언제나 그랬듯 뒷모습까지 멋대로였다.
“……미친놈이지.”
그 말이 혼잣말처럼 새어 나왔다.
소화는 조용히 다가오더니 조심스럽게 내 옆에 앉았다.
“아기씨 괜찮으세요...?”
나는 가만히 고개를 들었다.
입술에 힘을 주고 또박또박 말했다.
“아니 한 대 때려주고 싶은 기분이야.”
소화가 숨을 삼키며 눈을 동그랗게 떴다.
“아, 아기씨! 언행을 조심하셔야지요!”
‘아직 공자님 하인이 마당을 안 벗어났으면 어쩌려고…’
속으로 중얼거리던 소화는 성급히 창가 쪽을 살폈다.
문을 닫으려다 말고 다시 나를 바라봤다.
나는 팔짱을 끼고 등을 기대며 천천히 한마디 더 보탰다.
“그 웃음소리 들을 때마다 손에 쥔 찻잔을 던지고 싶어.”
“아기씨이…!”
소화는 거의 울상을 지으며 나를 말리는 대신 주저앉듯 자리에 앉았다.
“여전히 미우세요…?”
“미운 걸로 끝나면 다행이지.”
웃고 있던 그 얼굴이 머릿속에 맴돌았다.
변한 것도 있고 변하지 않은 것도 있었다.
그 애는 언제나 남을 화나게 하면서도 스스로는 상처 입지 않는 사람이었다.
그 특권 같은 얼굴과 태도로.
나는 이마를 짚었다.
열도 없는데 머리가 지끈거렸다.
“아… 머리야.”
소화가 잽싸게 다가와 물끄러미 내 얼굴을 살폈다.
손등으로 이마를 짚고 다시 손을 뗐다.
“아기씨 이런 날은 그냥 좀 쉬셔야 합니다. 혼례니 뭐니 생각하지 마시고요. 생각만 하셔도 탈이 납니다.”
나는 작게 웃었다.
“네가 나보다 더 속상한 얼굴이야.”
“속상하지요. 속상하고 또 속상합니다. 그분이야 뭐 혼례 올리고 말고 마음대로 하셨겠지만…아기씨께선 혼자 남아 기다리셨단 걸 저는 아니까.”
소화는 조용히 한숨을 내쉬고 찻잔을 한쪽으로 밀어두었다. 손수건으로 상을 정리하고는 자리에서 조심히 일어섰다.
“잠깐만이라도 혼자 계세요. 사람도 소리도 없게 해드릴게요. 마음 정리하실 틈이라도 있어야 하잖아요.”
문간에 이른 소화는 한 번 더 뒤를 돌아보았다.
“언제든 부르시면 올게요.”
소화는 그 말과 함께 조용히 문을 닫고 나갔다.
방 안엔 다시 정적이 깃들었다.
매화가 그려진 병풍은 바람 한 점 없는 방 안에서 묵묵히 제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붓끝으로 찍은 듯한 분홍 꽃잎이 유난히 싸늘하게 느껴졌다.
괜히 찻잔을 들었다.
입술에 닿기도 전에 다시 내려놓았다.
차는 이미 식어 있었고 도자기의 차가운 감촉이 손끝에 남았다.
나는 그대신 조용히 물그릇을 당겨 두 손을 담갔다.
물은 말없이 손을 감쌌다.
마치 어떤 감정을 다독이듯 말 대신 차오르는 온기가 손등을 타고 천천히 흘렀다.
물속에서 손가락이 아주 천천히 떨렸다.
파문이 번졌다.
마음속 어지러운 말들이 하나씩 물속으로 가라앉았다.
‘나 그대가 싫어할 얼굴은 아니지 않나?’
그 말이 또다시 머리를 스쳤다.
나는 속으로 중얼거렸다.
“……죽이고 싶을 정도로 얄미운데 얼굴이 너무 예뻐서 열이 배로 나.”
나는 그대로 손을 물속에 잠긴 채
가만히 앉아 있었다.
물이 고요했다. 그래서 마음속 소음이 더 또렷했다.
무언가를 애써 삼키는 듯한 조용한 시간.
마음 한쪽에서 끝나지 않은 감정이 아직도 아주 작게 살아 숨 쉬고 있었다.
차가움이 감정을 누그러뜨려줄 줄 알았는데—
손끝이
다른 감촉을 기억해냈다.
종이의 표면.
붓 끝의 떨림.
그리고
그 애의 눈을 그리던 순간.
나는 천천히 시선을 옆으로 돌렸다.
책상 아래 서랍 안.
감춰 둔 족자를 꺼냈다.
물기를 닦고 조심스럽게 펼쳐진 종이 위에 익숙한 눈매가 드러났다.
그림은 조금 바래 있었다. 종이 가장자리는 살짝 누렇게 빛났고 먹선은 예전보다 흐릿했다.
그런데도 그 얼굴은 선명했다.
가만히 웃고 있는 얼굴을 보니
그날. 그 봄, 도화서 뒤뜰.
내가 그 그림을 그리고 있었을 때 그 애가 내게 다가왔던 순간이 물결처럼 밀려왔다.
_______
그날의 햇살은 조용히 퍼지고 있었다.
도화서 뒤뜰 대나무 틈 사이로 흘러드는 빛 아래 나는 사람들 눈을 피해 그늘진 구석에 앉아 있었다.
종이를 펼쳐 놓고 붓을 들었다.
바람 소리 하나에도 어깨가 움찔거렸다.
숨을 고르듯 붓을 들어 내가 아는 얼굴을 천천히 떠올렸다.
눈꼬리는 살짝 올랐고 입매는 모나지 않았다.
웃는 듯 아닌 듯. 그 애 특유의 표정을 따라 그리다 보니 붓끝이 자꾸만 흔들렸다.
왜 이렇게 되지… 왜 자꾸 심장이 요동치는 건지.
그때까지만 해도 몰랐다. 그 애가 곧 사라질 거란 것도 내가 지금 그리고 있는 것이 시간 안에 갇힌 기억이 될 거라는 것도.
생각이 멈추지 않을 무렵 뒤에서 바스락 소리가 났다.
“이런 데 있었어?”
낮고 장난스러운 목소리.
나는 화들짝 놀라 손을 움켜쥐었다.
종이 위로 번져버린 먹물이 동그란 얼룩을 남겼다.
“……오라버니 왜, 여기 계세요?”
노아가 다가오며 시선을 내렸다.
그 시선 끝엔 펼쳐진 화선지와 아직 먹 냄새가 채 가시지 않은 붓이 놓여 있었다.
“흠. 그림인가?”
나는 망설임도 없이 화선지를 접었다.
“아니에요.”
노아는 내 얼굴을 한참 바라보다가 가볍게 웃었다.
“아버지를 닮았으니 붓쥐는 솜씨쯤은 있겠지.”
“…제가 어찌 감히 도화를 그리겠어요. 그저 흉내만 낸 거예요.”
나는 단호하게 말했다. 숨은 들키지 않았지만 심장은 여전히 요동쳤다.
노아는 그 말을 듣더니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그럼 안 본 걸로 해줄게.”
그 애는 빙긋이 웃었다. 말을 그렇게 남긴 뒤 그 애는 더 묻지 않았다.
그 웃음이 싫었다.
아니
그 웃음에 무너지는 내가 더 싫었다.
그러고는 돌아섰다.
가벼운 발걸음이 뒤로 멀어졌지만
그 등 뒤에서 그의 마지막 한마디가 들려왔다.
“붓 끝 조심해. 흔들리는 건 자국이 남기 마련이니까.”
나는 숨을 삼켰다. 손끝에 남은 먹물 자국이 어쩐지 오래 지워지지 않을 것 같았다.
나는 도화를 안고 그대로 앉아 있었다.
가슴 안의 먹물이 번지듯 조용히 퍼져나갔다.
⸻
지금 내 무릎 위엔 그때와 똑같은 그림이 놓여 있었다.
나는 조심스레 그 얼굴을 바라보았다.
붓끝으로 그려낸 선이 시간이 지나도 흐려지지 않았다.
그걸 바라보는 순간 문득 아주 어릴 적 아버지의 말이 또렷하게 떠올랐다.
우리 집은 조정에서도 명문으로 통했다.
단순한 화공이 아니라 대를 이어 궁중 도감을 드나들며
어진화(御眞畵)와 국화(國畵)를 그리는 집.
왕의 얼굴을 그리는 붓을 쥐었다.
아버님은 조정의 사초화(史草畵)를 그리셨고 세월을 담는 붓 역사를 기록하는 손이었다.
어머니는 한성부 판윤의 여식으로 높은 양반가의 규범과 예법을 집 안에 고스란히 들여오신 분이다.
나는 그런 아버지의 붓끝을 보며 자랐고 어머니의 눈빛 아래서 자세를 다듬으며 자랐다.
화실 문 앞엔 이런 현판이 걸려 있었다.
‘그림으로 천하를 남긴다.’
우리는 붓으로 기억을 남기는 사람들.
이름보다 얼굴보다 그 시간을 남기는 이들이었다.
초상화는 조정의 허가 없이는 그릴 수 없었고
도화서의 규율은 언제나 엄격했다.
그리고
“여자는 그릴 수 없다.”
나는 아버지의 그 말도 너무 어릴 때부터 알고 있었다.
그래서 몰래 그렸다. 아무도 모르게 숨죽여 그렸다.
들키면 큰일이었지만 그럼에도 그림을 버리지 않은 건 잊히는 게 무서워서였다.
갑자기 사라진 그 애의 얼굴을 나는 그림으로라도 붙잡아두고 싶었다. 다시는 못 볼 줄 알았으니까.
“…그런데 왜, 다시 나타난 거야.”
_____
한공자가 돌아온 지 사흘도 채 되지 않아 좌의정 댁에서 상견례 날짜를 통보해 왔다.
“한 달 안에 혼례를 올리시지요.”
그 한마디가 함께였다.
아버님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고 그날부터 안채는 조용히 그러나 빠르게 분주해졌다.
나는 거울 속 나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단정히 올린 머리 위로 족두리가 얹히고 속곳 위로 겹겹이 갖은 옷이 덧대어졌다.
겉은 흠 없이 단정했지만 마음속은 어지러운 채 그대로였다.
‘정말로 이 혼례가 진행되는 건가…’
그리고 마침내 그가 들어왔다.
곧이어 문이 열렸다. 단정히 의관을 갖춘 그가 조용히 들어섰다. 붉은 자수가 놓인 도포 자락 흐트러짐 없이 묶인 머리칼.
그의 눈빛은 종이 위에서 나를 바라보던 그때 그대로였다.
그림 속에서 나를 바라보던 눈.
“ㅇㅇ아.”
나는 고개를 숙였다. 예를 갖춘 인사였다.
“공자님, 길이 편안하셨는지요.”
그가 웃었다.
“공자님이라. 어제부터 그렇게 부르는군.”
고개를 살짝 기울이더니 천천히 입꼬리를 올렸다.
잠시 뜸을 들이다가 장난스럽게 말을 이었다.
“고민이야. 그대를 뭐라 칭할지. 낭자께서 날 공자라 칭해주시는데 이제처럼 이름만 부르자니 무례하고 그렇다고 ‘정혼자’라 하기엔 그대가 싫어할 것 같고.”
말투는 가벼웠지만 속을 떠보듯 간을 보듯 빈정거리는 어조였다.
예의를 가장해 선을 그은 걸
그도 알아차린 듯했다.
그래서였을까. 입꼬리를 한 번 더 올리더니 장난처럼 덧붙였다.
“좋다. 그대가 날 공자라 부른다면 나는 그대를 ‘양반댁 규수 아씨’라 부르지.”
(※ 조선시대에서 ‘규수’는 양반가의 정식 처녀를 높여 부르는 호칭으로, 중인 계층 여성에게는 통상 쓰이지 않는 말이다.)
그리고 마지막엔 쓸데없이 유쾌한 목소리로 마무리했다.
“입에 착 감기는군. 하는 행동도 딱 알맞고. 규수 아씨. 앞으로 잘 부탁하지.”
그 말은 유난히 또렷하게 들렸다. 천천히 일부러 약을 올리듯.
나는 표정을 바꾸지 않았다.
그 애는 그런 나를 슬쩍 훔쳐보며 마치 반응을 기다리는 아이처럼 웃었다.
그 순간 노아의 뒤로 좌의정 댁 하인이 발을 들였다.
그 뒤를 따라 숙부라는 사람이 함께 들어섰다.
그들은 예를 갖춰 절을 올렸고 아버님은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상견례는 그 어떤 허례도 없이 담담히 진행되었다.
“영감 어르신께서 안부를 전하셨습니다. 그간 따님을 멀리 두게 되어 늘 미안함을 품고 계시며 거동이 여의치 않으셔 이렇게 대신 찾아뵙지 못함을 송구히 여기신다 하셨습니다.”
노아의 숙부가 말했다.
나는 말없이 고개를 숙여 인사를 받았다. 정해진 예법대로.
노아는 말이 없었다. 말끔히 묶은 머리칼 아래로 그 눈빛만은 여전히 장난스러웠다.
‘저것이 정말 혼례를 치르겠다는 이의 얼굴인가.’
숙부의 입에서 다시 한 번 혼례 이야기가 나왔다.
“혼례식은 곧 준비에 들어갈 예정입니다. 좌의정 대감께선 이달 말 이전으로 혼례를 올릴 수 있기를 희망하십니다.”
그 말에 아버님은 잠시 눈을 감았다가 떴고 조용히 한마디만 남기셨다.
“좌의정 대감의 뜻이라면 마땅히 받들겠습니다.”
그 순간 가슴 어딘가가 조여드는 느낌이 들었다.
더는 되돌릴 수 없다는 확신.
노아는 고개를 살짝 돌려 나를 바라봤다.
말없이 웃는 얼굴.
나는 그 표정이 괘씸해서 아무 말 없이 고개를 돌렸다.
상견례가 끝나자 좌의정 일행은 곧바로 물러갔다.
마당을 벗어나는 그들의 발걸음은 거슬릴 만큼 단정했고 그 가운데서도 한노아는 늘 그렇듯 여유로웠다.
나는 그 뒷모습을 따라보지 않았다.
어릴 땐 그냥 예쁘기만 했던 그래서 얄미웠던 그 애는 이제 없었다.
이젠 더 예쁘고 더 얄미운 그 사람만이 남았다.
몸만 자란 줄 알았는데 얼굴도 같이 자랐다. 아니 제멋대로 미모만 성장했다.
나는 이제 알아버렸다.
사람 하나가 가진 얼굴이 마음을 얼마나 쉽게 뒤흔드는지. 그리고 그게 얼마나 비겁한 방식인지를.
혼례는 치르게 될 것이다.
그건 정해진 수순이었다.
그러나 나는 마음을 주지 않을 것이다.
아무리 예쁘게 웃어도.
그 웃음에 흔들리지는 않을 것이다.
2화 상견례 - 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