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과의 마지노선
53화] 사람의 마음은 물과도 같아서









윤여주
.......


배나경
....


이지오
......



이 얼마나 우스운 상황인가.

한산한 버스정류장 앞, 퍽이나 어정쩡한 모습으로 서있는 세 명의 시선이 어색하게 교차했다.




윤여주
........


나는 저 눈빛을 안다.

감추지 못하는 불쾌함과, 내가 누구인지 빠르게 훑는 눈빛, 그리고 그 속의 의문과, 미세한 질책.


나이가 많아봤자 이십 초중반인 애가 뭘 더 숨길게 있다고 자기 표정을 감추겠는가. 그래,

....그 어린 눈에도 나는 또 없어야 할 자리에 있는 사람인가보지.





윤여주
....ㅎ...


윤여주
지오씨, 나야 주말에 시간은 많겠지만.. 지오씨는 없을것같은데.



윤여주
싱긋)) 여자친구에요? 예쁘네.


알 수 없는 위화감에도 다행히 싱긋 미소를 띈 입에서는 차분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미묘하게 주제에서 벗어나는 흐름으로,

나는 그 이상으로 이지오라는 사람과 아무런 연관이 없다는 것을 처음 보는 여자애에게 확인시켜주는 투의 말을 하는건 그다지 어려운 일이 아니였다.



윤여주
둘이 잘어울리네. 예쁜 사랑해요.


윤여주
......


그리고 이 말만은 혼탁하게 뒤섞이는 감정들 중에서 유일하게 전하는 진심이다.






이지오
....여주씨..!



윤여주
그럼, 나는 이만 버스가 와서.



조금 다급한 말투로 나를 부르는 그의 목소리는 가볍게 묵인하고 버스에 오르자 기사가 버스정류장에 남은 두 사람을 힐끗이는 게 느껴졌다.

내가 교통카드를 찍고 몇 남은 빈자리에 앉을때까지 미동없는 둘을 보며 잠시 쯧, 혀를 찬 기사는 그대로 버스를 출발했고.






윤여주
.........



윤여주
......((창가에 머리를 기대 밖을 바라본다.







인간의 마음을 물이라고도 표현할수 있다 그랬나?

쉽게 뜨거워지지도, 차가워지지도 않아 그 적정온도를 잘만 유지시켜준다 해도

접점없는 물감 몇 방울만 떨어져도 금세 탁해져 그 색을 잃어버리는데.



더러워진 마음 좀 씻어내겠다고 연고없는 비에 흠뻑 젖었던 것도 벌써 두번이다.

나는 도대체가 어떤 팔자길래 이렇게도 꼬인 삶을 살아가야 하는가.


누구에게는 원망의 눈빛을, 실망의 눈빛을, 간절함과 불쾌함과 불편함을.

절대 악은 없고, 절대 선도 없는 이 세상에서

최선을 선택할 겨를도 없이 최악이 아닌 차악에도 만족하며 살아가는 삶이였다.


그런데 결국 이 모든 선택이, 내가 서있는 이 선이 다 내가 자초한 것이라는둥 바라보는 눈빛은..


도대체 어떻게 받아드려야 하는가.






윤여주
.....하....


윤여주
.......


별로 먹은것도 없는데 속이 메슥거리는게, 답지않게 멀미라도 할 참인가 보다.







_다음날,




차혜정
여주씨! 미안해, 어제 집에 혼자갔지??


윤여주
네..? 네, 그렇긴 한데...


차혜정
내가 차마 거기까지 생각을 못했어. 내 차로 같이 퇴근하면 됐었던걸..


윤여주
아, ..아니에요. 저 버스로 가도 괜찮아요. 그렇게 안멀어서..


차혜정
아니야! 요즘 세상도 얼마나 위험한데..! 지오씨야 뭐 사지멀정한 청년이니 한시름 놓는데..


차혜정
여주씨는 요즘 살도 많이 빠진것같고.. 건강도 많이 안좋아진것같아서 그래. ...요즘 밥이 조금 안넘어가..?


윤여주
아.... 그,. 환절기라 그래요.



윤여주
제가 환절기만 되면 입맛이 떨어져서, ㅎ ...걱정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차혜정
.......


딸랑

딸랑-



차혜정
휙-)




차혜정
어, 지오씨. 출근했어? 오늘은 조금 늦었네. 빨리 옷갈아입고 와.


이지오
아, ...넵,


이지오
........


윤여주
.....



이지오
......


의도한건지 아닌지 알 수 없지만 자신에겐 눈길이 없는 여주의 옆모습을 슬쩍 쳐다본 그가 급하게 탈의실로 들어갔다.


그리고...





차혜정
..아, 여주씨. 맞다.


차혜정
김석진 알지? 왜, 저번에 내가 저녁 약속 잡아준 사람.


윤여주
......아,



윤여주
..석진씨요, 네... 기억해요.


차혜정
싱긋)) 걔가 사실 작은 레스토랑을 해. 유학때 만났는데 양식 전공.



차혜정
여주씨를 자기 가게에 초대하고 싶다더라고. 그날 여주씨가 빨리 간게 조금 걸려서....


윤여주
.........



윤여주
.....아,...




차혜정
보니까 여주씨 나쁘게 본것같진 않은데, 걔가 진짜 괜찮은 애거든. 성격 좋고.


차혜정
요즘 잘 못먹는것 같은데 한번 연락해봐. ㅎ, 그쪽에서 기다리고 있을수도 있을껄?


차혜정






윤여주
............



...사실 사장님의 말 따위는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래, 그 날......


ㅎ, ... 그......




차혜정
여주씨,


윤여주
...네?



차혜정
듣고 있어? ...어디 몸 안좋아?


윤여주
..아뇨, ㅎ.... 신경써주셔서 감사해요. ..그리고 석진씨한테는 조만간 연락해보겠습니다.


윤여주
......



두번째 만났을 때는 분명히 말해야지.

그쪽이 나를 어떻게 봐주었든 이 관계는 더는 지속되면 안되겠다고.


...그쪽 잘못이 아니라고. 그저 내...

.....


우유부단한 내 탓이라고











_LA공항






백시혜
........


백시혜
하......




미국, LA

쨍하게 내리쬐는 햇살을 피하며 누군가를 찾는듯 두리번거리는 그녀의 손에 들린건 달랑 케리어 한개.

꼬박 하루를 비행해서 온 먼 타국치곤 부족해보이는 짐이였다.


그리고 그 위에 얹혀진 적당한 크기의 액자.





백시혜
.......


백시혜
....얘는.. 기다리겠다면서 왜이렇게 안보여...



생에 처음, 혼자 와보는 해외여행이였다.

그것도 아빠의 반대를 무릅쓰고 충동적으로.


..그런데, 그 시작부터 막히게 생겼으니......

.......


???
백시혜!!!


백시혜
휙-)




백시혜
.....ㅎ,



김태형
피식))



김태형
환영합니다! 친애하는 친구분!


백시혜
오랜만이야, 김태형


김태형
이야- 너는 뭐 몇년이 지나도 그대로냐, 애가


백시혜
한국어 그래도 능숙하네, 완전 서투를줄 알았는데.


김태형
며칠간 조금 복기해보는 시간을 가졌지,


김태형
무튼,!



김태형
근데, 짐이 그게 다야? 갑작스럽게 온다고 해서 그냥 휴양이나 하러 온줄 알았더니 그냥 며칠 묵고만 갈건가?


백시혜
피식)) 아니, 나 그냥 여기 눌러앉으려고.


김태형
What?! 너 남편은??? 너 여기 있는거 알아??


백시혜
..이혼했어. 아니, 이혼하려고.


김태형
....?



백시혜
말하자면 길어. ..근데, 나 언제까지 여기 세워둘거야?


김태형
...아.. 일단, 우리 집으로 가.








김태형
김태형, 30살(미국나이로 30이라 한국에서는 32) / 시혜의 친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