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rriage Blue (메리즈 블루)”

01화 | 백마탄 왕자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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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지민

그쪽 남자친구, 지금 바람피워요.

“그것도 당신과는 다르게, 식장과 날짜까지 잡은. 진짜 여자가 있어.”

쿵. 하고 심장이 발 끝까지 내려앉은 것만 같았다. 빨라지는 심박수가 온 몸에서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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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여주

…거짓말

난 아무렇지 않은 척, 그 남자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았다. 난 이 남자를 처음 봤고, 이 남자가 내게 거짓말을 한 것이라 믿고 있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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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지민

남자를 잘 믿는 타입인가봐요.

어째 비웃는 것 같기도 하고 장난스러운 것 같기도하고, 그 말에 뼈가 담긴 듯 했다. 나는 되 물었다. ‘내가 남자를 잘 믿는다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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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지민

네. 그것도 엄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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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여주

난 남자를 믿는게 아니라, 우현 오빠를 믿고 있는거에요.

그를 믿는 이유는 하나였다. 나와 권우현이 함께 한 시간이 짧지 않았으니까.

검증되지 않은 그 한 마디에 오빠를 의심하면, 3년 간 연애하면서 쌓았던 신뢰가 하루 아침에 휴지 조각이 될게 보였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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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지민

그럼 그 신뢰, 오늘 무너지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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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지민

직접 눈으로 보고, 귀로 들어요. 내 말이 거짓말인지 아닌지.

남자는 주머니 속에 넣은 손을 빼고, 내가 있는 곳으로 한 걸음 한 걸음씩 걸어오더니 기어코 내 앞에 서고는 제 손을 내게 내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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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지민

내가 직접 보여주면 되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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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여주

직접… 보여준다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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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지민

처음 본 남자랑 신뢰 쌓는 법.

내가 그 손을 잡기도 전에 그 남자는, 내 손목을 가볍게 쥐어들고 제 쪽으로 잡아 끌더니 어딘가로 향했다. 그 곳이 어디인지도 모르고.

웨딩 드레스 샵의 여럿 있는 복도 중 한 가운데. 그 남자는 내 손목을 이끌고 복도로 나오더니, 빠르게 걷던 발걸음을 커브길에서 멈춰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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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여주

지금 여긴 왜 온거에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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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지민

쉿.

제 손으로 내 입을 막아버리는 그 남자. 증명하겠다면서 이게 무슨 예고없는 행동인가. 난 눈동자를 위로 지켜세워 그를 째려보는데

그 남자는 자신 말고 저쪽을 보라며, 검지 손가락으로 복도를 가르켰고. 곧 그토록 들리지 말아야 할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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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우현

응, 윤정아 오빠가 미안… 갑자기 출장이 생겨서, 드레스 못 골라줘서 미안.

오빠?, 드레스?, 출장?. 누가 들어도 의심할 만한 단어가 우현의 입에서 흘러나왔다. 난 자세히 듣기 위해 내 입을 막은 남자의 손을 치우고, 벽에 바싹 붙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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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우현

이번 일이 갑작스럽게 일어나지 않았으면, 같이 드레스 골랐을텐데. 너무 미안해.

전화 너머로 들리는 여자의 목소리는 ‘일인데 어때, 당연히 괜찮지.’ 라며 그를 위로하는 목소리가 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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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우현

사진이라도 찍어보내 줘. ‘우리’ 윤정이 한테 어울리는 거로 내가 골라볼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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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여주

……

내게만 해준다고 굳게 믿었던 다정한 목소리로, 내게는 한 번도 붙여주지 않은 ‘우리’를 다른 여자에게 붙이고 있던 권우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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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여주

...이거 꽤, 많이 아프네요...

이기적인 놈. 난 그렇게 널 끝까지 믿으려고 애를 썼는데... 넌 결국 나를 저버리는 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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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지민

이제 증명 됐죠?.

내 손목을 감싸진 제 손을 거둔 남자. 난 허탈한 웃음을 지으며 ‘왜 나한테, 이 사실을 알린거에요?.’ 라고 물었다. 남자는 이렇게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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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지민

결혼식은 행복해야 하니까. 그래서요. 어차피 두 사람 결혼 못 할 것 같길래.

난 무의식 적으로 이마를 짚었다. 이렇게 비참할 수가 있나. 차라리 바람피운 걸 내 눈으로 봤다면, 적반하장으로 나왔다면. 이렇게 까지 비참하지 않지.

기만당한 느낌이였다. 처음부터 결혼할 생각이 없었다면, 내 프로포즈는 대체 왜 받아 준건지…

이마를 짚던 손을 내리고 그 남자를 올려다봤다. 이 남자 잘 못이 아닌데, 자꾸 이 사실을 알려준 이 남자가

너무나도 원망스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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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여주

...돌아갈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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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지민

깽판, 안 쳐요?.

피팅 룸으로 옮기려던 발걸음이 남자의 질문에 멈춰섰다. 깽판... 그게 다 무슨 소용인가 싶기도 하다. 난 아직 그 녀석을 사랑하기도 했고,

내 마음은 허무하다 못해 비참한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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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여주

...안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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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지민

......

여자가 힘겹게 다시 피팅 룸으로 돌아갔다. 저 정도 봤으면 깽판도 치고, 때리면서 욕도 날리고 할 줄 알았는데.

이거 너무 싱겁게 끝나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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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지민

가게 유리라도 박살낼 거 각오하고 말한 건데. 재미 없네.

곧 바로 주저앉아 눈물을 흘릴 것 같던 그 여자가 간 길을 되 짚어 보는데, 때마침 전화 통화가 끝난건지 그 남자가 이쪽으로 걸어오는 발소리가 들렸다.

툭, 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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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우현

아 죄송합니다. 제가 앞을 잘 보고 걸었어야 하는데...

그 남자와 내 어깨가 부딪히자, 바람핀 사람치고는 꽤 인심이 좋아보였다. 아니 인심 좋은 척 하는 건가.

이 남자도 아까 그 여자와 함께 입어 본 건지, 깔끔하게 머리를 올리고 턱시도를 입고 있었다. 기분 더럽네. 이거 내가 디자인 한 건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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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지민

궁금한 거 있는데, 결혼 할 거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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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우현

네?.

무슨 그런 당연한 질문을 하냐는 듯한 표정. 결혼 할 거냐는 질문에 우현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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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우현

...당연히 하겠죠?, 웨딩 드레스 샵에까지 왔는데.

나도 모르게 피식, 하고 비웃어 버렸다. 나한테 까지 거짓말을 하는 정성 따위 필요는 없는데.

그 남자도 내가 비웃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는지, 이번에는 미간을 살짝 찌푸리고는 아까와 다르게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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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우현

...지금 뭐하자는 겁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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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지민

뭐 하자는거 아니고. 그냥 진짜로 궁금해서. 누구 선택할지.

입가에 미소를 띄우고는, 그 남자의 오른쪽 어깨를 토닥이며 말했다. ‘왠만하면, 여기서 옷 맞추지마요. 여기 당신같은 바람 핀 놈에게 줄 옷은 없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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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우현

...!, 지금 뭐라고.…

남자를 등 뒤로 한 채 걸어가다 중간에서, 난 손만 올려 그가 볼 수 있게 흔들어보였다. 과연 그 여자는 어떤 선택을 할까.

작업실로 돌아가려고 발걸음을 옮기는데, 복도 끝에서 부터 샵에서 직원으로 일하던 여직원이 뛰어오기 시작했다.

또각또각, 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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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지민

무슨 일이에요?.

“디자이너님, 그 아까... 그 신부님 있잖아요. 그냥 돌아가셨어요.”

그 여자의 예비 남편이 바람폈다는 사실을 알고있는 유일한 직원. 말에 담는 것도 찝찝한지 눈치를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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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지민

아, 그래요?.

아무렇지 않게 대답하자, 물끄러미 바라보던 여직원은 조심스럽게 물었다. ‘대체 왜, 바람 핀 사실을 알려 주신거에요?.’ 난 그 물음에 그냥 담담하게 대답했다.

“그냥요. 누가 가르쳐줬거든요.”

“여자는 사랑하는 사람이 백마탄 왕자님처럼 보인다고. 적어도 그 여자한텐 그렇게 안 보일 것 같아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