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PORTUNITY : 기회
#27



시간은 정신 없이 흘렀다. 엄마의 장례식이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 기억이 안날 정도로 나는 며칠을 제정신이지 못한 상태로 지냈고, 겨우겨우 정신을 차렸을 때 나는

혼자였다

혼자임에 익숙해져야만 했다.

집에 왔을 때 나를 반겨줄 누군가가 없다는 상황에,

오늘 있었던 내 이야기를 들어주며 같이 저녁 먹을 사람이 없다는 상황에,

다시 익숙해져야만 했다.


전정국
나 자퇴하려고.


김태형
뭔 개소리야.


전정국
당장 먹고 살 돈이 없어.


전정국
갈 곳도 없고.


전정국
혼자 남은 지금 이 상황에서 내가 해야만 하는 일은,


전정국
공부가 아니라 일이야.



전정국
너랑 같이 졸업하고 싶었는데.


전정국
아쉽긴 하네.


김태형
안돼, 너 자퇴 못 해.


전정국
난 괜찮아, 걱정마.


전정국
어차피 나 똑똑해서 검정고시 치고 대학 갈 수 있어.


김태형
……


김태형
미안해.


김태형
나도 한낱 꼬맹이라 너한테 현실 적으로 도움 줄 수 있는게 없네.


전정국
이렇게 내 어리광 받아주는 게 도움주는 거야ㅋㅋㅋ


전정국
너 아니었으면 이런 이야기를 내가 어디 가서 하냐?


김태형
…….


김태형
이번에는,



김태형
이번에는 진짜 신도 너무 했어.


전정국
신은 항상 나한테 무심해~


전정국
그래서 나는 안 믿잖아.


전정국
신이 있었으면, 진작에 나 좀 구해줬을걸.


김태형
……


김태형
50만원 조금 안돼.


김태형
너 자존심 상할 거 아는데, 그래도 받아줘.


태형이가 내 품에 두둑해 보이는 봉투를 안겨주며 말했다.



전정국
자존심 상해서 안 받는거 아니야.


전정국
너 써, 나는 돈 금방 벌어.


김태형
거짓말 치지마.


김태형
열 일곱살 애가 대한민국에서 어떻게 돈을 쉽게 벌어.


김태형
우리집 나름 부유해.


김태형
50만원 없어도 안 죽어.


김태형
근데 지금 너는 아니잖아.


김태형
너 당장 찜질방 갈 돈도 없잖아.


전정국
…….


태형이 말이 모두 맞았다. 집은 다 까맣게 타버렸고, 지금 내게 있는건 사고 당일 엄마가 내 교복 주머니 안에 넣어주신 만 원짜리 몇 장 뿐이었으니까.

정신연령은 스물 일곱이라도, 지금 내 몸은 열 일곱이니 대한민국에서 당장 먹고 살 돈을 못 구한다는 태형이 말도 모두 맞았다.

눈물이 뺨을 타고 내려왔다. 억울했다. 나는 왜 도대체 이렇게 살아야하는 건지, 내 팔자는 뭐 이리 X같은지 억울했다.



전정국
미안해.


전정국
부끄럽다, 이런 내가.


전정국
나 진짜 열심히 살게.


전정국
열심히 살아서, 진짜 너 호강시켜줄게.


김태형
뭘 내 호강까지…


김태형
열심히 살아서 너만 행복해.



김태형
난 그것만으로 충분해.




김여주
벌써 한여름이네.


김여주
전정국이랑 너랑 셋이 물총놀이 해야하는데.


김여주
곧 수학 여행도 간다던데,


김여주
전정국도 같이 가면 좋을텐데…


김태형
응, 그러게.


김여주
태형이 너 요즘 너무 우울해보여.


김여주
무슨 말을 해도 안 웃고…


김태형
미안.


김여주
…….


김여주
정국이 때문에 그래?


김태형
어제도 새벽까지 일했대.


김태형
친구가 이런 상황인데 내가 어떻게 행복하게 웃어.


김여주
…….


김여주
정국이 상황이 안타까운 건 맞는데,


김여주
나도 좀 신경 써주면 안돼?


김여주
솔직히 말해서, 걔는 걔고 우리는 우리 아니야?


김여주
네가 정국이 가족도 아니고…


김여주
왜 몇 달째 우울해하는건지 나는 이해 못하겠어.


김태형
응.


김태형
너는 이해하지마.


김태형
여주 너는 이 상황 이해할 필요 없어.


김여주
야.


김여주
너 말 그렇게 할래?


김태형
……


김태형
저렇게 생고생하다 죽을 수도 있는데 내 마음이 편할리가 있나.



김여주
그게 무슨 말이야?


김여주
죽어? 누가?


김태형
……


김태형
내가 그냥 헛소리 한거야.


김태형
가자.



김여주
야, 김태형.


김여주
너 나한테 숨기는 거 있지.


김태형
잘못 말한거라고.


김여주
지금 말 해.



김여주
아니면,


김여주
나 너랑 헤어질거야.




김태형
…….



김태형
그래.


김태형
그럼 헤어지자, 우리.



댓글 꼭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