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펌]아고물

5화

[백현의 회사]

아무 생각 없이 스크롤을 따르던 백현의 시선이 여주의 프로필에서 멈췄다.

매번 비어 있던 여주의 프로필에 사진이 올라와 있는 것으로도 모자라 민석과 나란히 붙어 웃고 있는 여주의 모습이 백현의 심기를 건드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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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현

...너무 가까운 거 아닌가.

환하게 웃고 있는 여주의 얼굴에는 그늘이라곤 찾아볼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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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현

되게 좋아보이네.

씁쓸한 미소를 지은 백현은 그대로 휴대폰을 내던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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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수

표정이 대박 어두우시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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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현

...언제 들어왔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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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수

사장님이 부르셨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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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현

...아. 그랬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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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수

뭐 실연이라도 당하셨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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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현

전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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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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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수

...아... 그... 주제 넘은 말이기는 합니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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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현

주제 넘은 말을 꼭 해야 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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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수

...아오. 도움 드리려고 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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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현

....도움이요?

경수의 말에 솔깃한 백현은 귀를 쫑긋했다.

한 번 숨을 고른 경수가 입을 열고, 백현은 경건한 자세로 경청을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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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수

그러고 있는다고 해결 안 된다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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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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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현

(그게 도움이냐..)

백현은 눈을 흘겼다.

여주

..아저씨 보고싶다.

무의식 중에 툭, 하고 튀어나온 말이었다.

작게 중얼거렸음에도 어떻게 들렸는지 내 자리를 향해 빼꼼 고개를 내미는 민석 오빠였다.

여주

(귀 되게 예민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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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석

너 찬 남자가 뭐가 보고 싶다고 그러냐.

여주

..그러게요..자존심도 없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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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석

........

여주

근데 진짜 너무 너무 보고 싶은데 어쩌죠?

밥을 먹을 때도 일을 할 때도 시도 때도 없이 아저씨 생각이 났다.

질투 작전이고 뭐고 다 때려치고 아저씨에게 달려가고 싶은 게, 진짜 내가 생각해도 자존심이라곤 없었다.

근데 어떡해.. 아저씨가 너무 좋은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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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석

그 아저씨가 어디가 그렇게 좋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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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석

솔직히 생긴 걸로 보나 성격으로 보나 내가 낫지 않아?

여주

헐! 막말 대박이시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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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석

뭐?

여주

앗..! 죄송합니당

방금 주먹 들었어!?!? 곧 있으면 나를 한 대 칠 것 같은 민석 오빠에 슬금슬금 옆으로 의자를 움직였다.

여주

사실 저도 처음에는 완전 밥맛이었거든요.. 첫만남부터 대박 찬바람 불고..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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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석

처음에 어땠는데?

여주

..그게요.

그건, 내가 처음 이곳에 이사 왔을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아저씨를 처음 만난 날]

엄마

여주야. 옆 집에 인사 드리고 와. 오늘 우리 이사하느라 하루 종일 시끄러웠잖아.

여주

넹!

문을 두드리고 한참이 지나 나온 남자는 이미 얼굴에 `나 어마무시하게 불쾌하다`가 박혀 있었다.

그 강렬한 첫인상에 눌려버린 나는 제대로 눈도 마주치지 못하고 중얼거렸다.

여주

..저. 옆 집에 이사왔는데요..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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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현

뭐요

여주

아..저.. 시끄럽게 해서 죄송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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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현

인지하고 있기는 하셨네요..너무 시끄럽길래 모르시는 줄 알았는데.

여주

(ㅇㅁㅇ....와.. 지인짜 싸가지 없다..)

여주

(근데 잘생겼어..)

잘생긴 게 최고야를 입에 달고 살던 나에게 옆집의 잘생긴 아저씨는 싸가지 없는 아저씨보다 잘생긴 아저씨로 남았다.

여주

아저씨! 안녕하세요! 출근하시나봐요. 전 학교 가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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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현

네.

여주

말 편하게 하셔도 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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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현

응.

심지어 재미도 없었다.

그러나 내 끈질긴 들러붙음 끝에 아저씨와 나는 꽤나 가까워져서, 이따금 복도에서 짧게 대화를 나누는 것으로까지 발전할 수 있었다.

이게 다 내 친화력 덕분이다 이거야.

여주

아저씨. 나 남친이랑 헤어졌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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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현

잘 됐네. 별로라며.

여주

그죠. 근데 좀.. 기분이 별로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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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현

그래?

그 다음 날 아침.. 우리 집 문 앞에는 내가 좋아하는 과자가 박스 채로 놓여져 있었다.

`기분 나아지라고.` 라는 쪽지와 함께.

이러니 내가 아저씨를 싫어할 수가 있나.

차가운 척 하지만 누구보다 따뜻한 사람이었다.

아.. 이러니까 진짜 아저씨 너무 보고 싶어.

[다시 회사]

'카톡!' [잠깐보자] - 아저씨♡

여주

...? 헐. 아저씨가 잠깐 보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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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석

봐봐. 내가 통한다고 했지? 일단 한번 튕겨.

여주

튕기라구요..? 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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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석

야. 지금 넌 화난 상태잖아.

여주

히잉.. 안 튕기면 안 되나...

울며 겨자 먹기로 `지금 좀 바쁜데요.` 라고 문자를 보냈다.

마음 같아서는 당장이라도 달려나가고 싶었으나 나를 노려보는 민석 오빠에 그럴 수 없었다.

'카톡!' [그럼 기다릴게 끝날 때까지] - 아저씨♡

여주

..아 맴찢...ㅜ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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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석

참아라 ㅡㅡ

퇴근 시간까지 일을 어떻게 해냈는지 모르겠다.

손에 잡히지도 않고 화면에 있는 글자도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퇴근 시간이 되자마자 화장실로 달려간 후에 얼굴을 조금 매만지고 바로 밖으로 뛰쳐나갔다.

[퇴근 후 로비]

여주

무슨 일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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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현

..아직도 나한테 많이 화 났어?

여주

...ㄷ.. 당연하죠.

아뇨 화 안 났습니다 1도 안 났어요ㅠㅠㅠ 마음 속에서 하고 싶은 말들이 꿈틀거렸으나 정작 그 중에 입 밖으로 나오는 말들은 아무것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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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현

프로필 그 남자랑은 사귀는 거야?

여주

..그게 아저씨가 왜 궁금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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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현

........

여주

아저씨 나 좋아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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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현

.....

여주

그런 거 아니잖아요.

또 울컥해버렸다. 그러지 않으려고 했는데.

멋대로 지껄이는 입은 막아지지도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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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현

..좋아하면.. 궁금해 해도 돼?

여주

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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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현

좋아하면. 궁금해도 되는 거냐고.

여주

......?

이게 무슨 말이야.

그러니까, 아저씨가 나를 좋아하기라도 한다는 거야? 멍해져버렸다.

예상치 못한 말이 나와버리니 생각이 그대로 멈춰버리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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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현

..내가 그렇게 좋아해줬으면 좋겠어?

여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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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현

그러면.. 좋아할게.

여주

....아저씨.

고백 같지도 않은 고백을 받았다고 뭐라 할 사람들이 떠올랐다.

옆구리 찔러 받은 고백을 받고도 바보같게 좋아한다며 혀를 찰 게 분명했다.

근데 어떡해. 이런 고백이라도 나는 좋은데..

여주

그럼 우리 사귀는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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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현

어.

여주

정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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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현

어.

조금 씁쓸했으나 나쁘지는 않았다.

사귀게 된 게 어디야.

사귀면서 아저씨가 나 없으면 안되게 만들면 되지.

여주

그럼 나 다시 아저씨 집으로 들어갈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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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현

..그래.

여주

완전 좋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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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현

?! ...야..

확! 아저씨에게 안기자 아저씨는 말을 더듬었다.

한참을 아저씨에게 안겨 떨어지지 않았는데, 살며시 나를 밀어낸 아저씨가 차 문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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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현

타. 집에 가자.

여주

...대박. 나 방금 좀 설렜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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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현

..뭐래.

여주

어? 쑥스러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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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현

아니거든.

민석 오빠의 계획은 90프로 정도 성공인 듯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