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펌]아고물
6화


[여은의 집 앞]

여주
..여기 사장님네 집 아녜요? 아저씨 집으로 다시 데려가기 싫어요..?


백현
..뭐래. 네 짐 다 여기 있잖아.

여주
..아.. 난 또 ㅎㅎㅎ


백현
차 안에 있을래 아님 나 따라 올라갈래.

여주
같이 올라가요!

아무리 그래도 며칠 간 재워주셨는데 인사도 없이 집을 나오는 건 예의가 아니다 싶어 아저씨를 따라 올라가기로 했다.

엘리베이터 안에 단둘이 있으니 갑자기 떠오르는 궁금증.

성격으로 보나 뭐로 보나 아무런 접점이 없어 보이는 아저씨와 사장님은 어떻게 만나게 됐을까-

여주
아저씨. 아저씨는 사장님이랑 어떻게 아는 사이에요?


백현
고등학교 동창.

여주
헐. 정말요?


백현
어.

여주
그럼 대박 오래 된 친구다.

아저씨의 지금 나이 (.....) 를 생각하면 사장님과는 어림잡아 10년이 넘게 친구인 셈이었다.

나랑 아저씨는 이제 2년인 걸 생각하니 갑자기 조금 벽이 생긴 기분이었다.


한여은
..? 여주 왜 이런 혹을 달고 왔어.


백현
..야.

여주
그게.. 저.. 제가..

죄송해서 말이 쉽게 나오지 않았다.

다시는 아저씨랑 만나지 않음은 물론이요 집에 들어갈 일은 더더욱 없다고 운 게 고작 며칠 전이다.

일주일도 아니고 며칠 전.


백현
얘 다시 우리 집으로 데려가려고.


한여은
뭐? 왜? 납치?


백현
...아오 진짜.

여주
ㅇㅍㅇ..


백현
야. 너 말 좀 해봐. 내가 진짜 납치범 같잖아.

여주
(그치만 진짜 너무 죄송한걸요..)

아저씨의 재촉에 나는 어쩔 수 없이 입을 열었다.

여주
아저씨한테 고백 받았어요!


한여은
...헐.


백현
아니 야. 그렇게 말하면..

여주
왜여. 맞잖아여.


백현
아니. 그렇긴 한데...

내가 고백했나? 자기가 고백했지. 뭐 고백같지 않은 고백도 고백이잖아.

난감해하는 아저씨를 보니 더 놀려주고 싶어졌다.


한여은
도둑놈.


백현
........


한여은
아으. 암만봐도 우리 여주가 너무 아까운데...

여주
ㅇㅍㅇ..


한여은
여주야. 언니한테 시집 오지는 않겠니?

순간 혹했다. 정말이다.

그러나 아저씨가 매섭게 째려보는 바람에 티를 내지 않기 위해 노력해야 했다.

여주
죄송해욧 사장님....


한여은
그래서. 짐 가지러 왔어?


백현
어. 그것만 가지고 갈 거야.


한여은
그러세요.

애초에 들어올 때도 얼마 없었던 짐인데다 제대로 풀어 놓지도 않아서 금방 챙겨 나올 수 있었다.

내가 들려고 했으나 별로 무겁지도 않다며 양손 가득 짐을 챙겨 든 아저씨가 조금은 고마웠다.


한여은
흑.. 우리 여주 회사에서 봐.

여주
네 사장님! 정말 정말 감사해요


한여은
그래. 항상 변백현 조심하고!


백현
..끝까지 진짜 그럴래?"

다시 움직인 차는 아저씨의 집에 닿았다.

집을 비운 지 며칠 밖에 되지 않았음에도 몇 달 만에 들어오는 것 마냥 어색하고 반가운 게, 안 들어오고 어떻게 버텼을까 싶다.


백현
자. 네 방에 짐 풀어. 손 안 댔으니까.

여주
아저씨 방에 풀까욥 'ㅡ' ?


백현
미쳤냐.

여주
왜요? 우리 이제 사귀는데!


백현
...들어가서 자라.

여주
(너무햇..)

'카톡!'

[아조씨 나 오늘 야근 ㅠㅠ 나 보고 싶어도 참기!] - 꼬맹이

'카톡!'

[아니야 참을 수 없으면 굳이 안 참아도 괜찮아요 >_<] - 꼬맹이


백현
(..참 나.)

백현은 여주가 보내 온 메시지에 자기도 모르게 웃었다.

단지 신경 쓰이는 것이 있다면 여전한 여주의 프로필 사진.

민석과 다정히 웃고 있는 사진이 프로필에 걸려 있으니 기분이 묘했다.


백현
아니. 나랑 사귄다면서 프로필 사진은 안 바꿔도 되는 거야?


백현
..눈만 조금 작지. 다른 건 내가 더 나은데.

백현은 민석과 거울을 번갈아 보며 중얼거렸다.


백현
(키도 내가 조금 더 크고.)


백현
(돈도 내가 더 잘 벌테고..)


백현
(김여주도 나를 좋아하고.)

묘한 승리감에 기분이 좋아진 백현이었다.

여주의 회사는 점점 더 바빠지기 시작했다.

여주가 할 일도 늘어나고, 자연히 늦는 일이 늘어났다.

덕분에 백현과 여주가 만나는 시간은 배로 줄어들었다.

여주가 일찍 들어오면 백현이 늦거나, 백현이 일찍 들어오면 여주가 늦거나 하는 것이 반복 됐다.

그러니 우연히 서로 깨어있는 채로 만나기라도 하면.

여주
'..히잉. 같이 사는 데 나는 아저씨 얼굴이 왜 이렇게 오랜만이죠?'


백현
'그러게.'

여주
'아저씨도 나 보고 싶었어요?'


백현
'....밥 먹자 밥.'

아직 여주와 사귀는 게 실감이 나지도 않았던 백현은 애정 표현에 있어 남들보다 더더 서툴었다.

대단한 변화를 기대하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사귀게 되었으니 조금은 다를 줄 알았던 여주는 예전과 똑같은 백현의 모습에 실망하지 않을 수 없었다.

참다 못 해 하루는 이런 적도 있었다.

여주
'아저씨.


백현
'응?'

여주
'나 오늘 어때요?'


백현
'옷이 이상하네.'

제가 가진 옷 중에서 가장 짧은 옷을 골라 입은 여주가 백현의 앞에 나타났을 때.

백현의 반응은 마치 친 오빠가 여동생에게 보이는 반응과 일치했다.

여주
'...옷이.. 이상해요?'


백현
'응.'

여주
'그게 끝이에요? 정말로?'


백현
'..뼈에 바람들겠다?'

아 진짜 너무한 거 아니냐고! 백현의 그런 반응 덕분에 여주는 잔뜩 머쓱해진 채로 다시 옷을 갈아입고 나와야 했다.

이게 정상인가? 원래 커플들이 다 이러나? 아무리 그래도 이건 아니지 않아..?

여주
'아저씨. 나 좋아하는 거 맞죠?'


백현
'응.'

여주
'...나 보면 설레요?'


백현
'응.'

여주
'...영혼 좀 넣어봐요.'

매번 이런 식이니 점점 지쳐가는 건 여주였다.

아무리 백현이 좋아도 매사에 튕김을 당하니 하늘을 찌를 듯 높던 애정도 조금씩 낮아지고, 언제까지 이런 패턴이 계속 되어야 할까 싶은 거다.

여주
사쟝님...


한여은
오냐.

여주
아무래도 아저씨. 저 안 좋아하는 것 같아요.


한여은
헤어지면 되겠다.

여주
우씨..

여은에게 진지한 조언을 구하려고 해도 기승전결 헤어지라는 식이니 속이 터지지 않겠는가.

진전이 없는 관계에 여주가 바싹 말라갈 즈음 아저씨한테서 전화가 왔다.


백현
'회사. 구경 올래? 주말에.'

여주
'정말요? 그래도 돼요?'


백현
'안 그러면 조만간 찾아올 것 같아서.'

여주
'헉. 어떻게 알았지? 그냥 찾아가려고 했는데..'

백현이 운영하는 회사가 어떤지, 어떤 곳에서 일하고 있는 지가 궁금했던 여주는 틈만 나면 회사를 구경 시켜 달라고 찡찡 거리곤 했었다.

그럴 때마다 안 된다며 단호하게 거절했던 백현이었으나 계속 되는 부탁에 결국 두 손 두 발 다 들었다.


백현
'나 바빠서 오늘은 철야해야할 거 같고, 내일 회사로 너가 찾아와야 돼. 괜찮아?'

여주
'그럼요 괜찮죠.'


백현
'그래 그럼. 푹 자고 주말 오후 쯤에 와'

여주
'완전 좋아요!'

뭐 입고 가지? 잔뜩 들 뜬 여주를 보니 허락한 걸 잘했다는 생각이 드는 백현이었다.

아저씨의 말대로 푹 자고 일어나니 어느덧 11시였다.

여러가지 일들로 힘들다 보니 더 깊게 잠든 듯 싶었다.

덕분에 퉁퉁 부어 있는 눈은 말이 아니었고 차갑게 해 둔 숟가락을 눈두덩이에 올려둔 채로 천천히 준비를 시작했다.

여주
이건 너무 요란한가.

여주
..이건 너무 우울해.

옷을 많이 사두지 않다 보니 딱히 마음에 드는 옷이 없었다.

월급 타면 제일 먼저 옷부터 사야겠다.

어쩔 수 없이 자주 입던 옷을 꺼내 입는데,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여주
이 시간에 누구지? 사장님인가?

여주
누구세ㅇ..

아줌마
...여주?

여주
아줌마..

아저씨의 엄마.

나도 잘 알고 있는 아줌마였다.

사고가 있은 후로부터 한 번도 만나지 못했는데.. 아무래도 좋지 않은 상황이었다.

아줌마
..여주 네가 왜 여기 있니? 백현이는?

여주
..아. 아저씨는 회사 갔고, 그게 어떻게 된 거냐면요..

아빠가 사고를 당한 부분에서부터 시작 된 이야기는 한참이 지난 후에야 끝이 났다.

내 얘기가 끝나자 아줌마의 표정은 상당히 굳어졌고, 나는 바짝 긴장해야만 했다.

아줌마
그래서. 백현이랑 사귄다는 거야?

여주
..네.

아줌마
제정신이니? 여주 너. 아줌마가 그렇게 안 봤는데 말이야..!

여주
..아줌마.

아줌마
아줌마 오늘 여기 백현이 여자 소개 시켜주려고 온 거야.

소개..? 아줌마의 말에 심장이 땅으로 쿵 하고 떨어지는 듯 했다.

모든 소리가 아득해지는 느낌.

아줌마
근데 이게 뭐니 이게. 백현이도 그렇고 너도 그렇고 생각들이 없는 거야?

여주
.......

아줌마
네가 우리 백현이 꼬셨니? 일 밖에 모르는 아이였는데..

터져 나오려는 눈물을 꾹 참아 냈다.

힘을 풀면 금방이라도 눈물이 터질 것 같아서 꽉 쥔 주먹에 힘이 더 들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