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주왕자님은 오늘도 아름답습니다
03


나플리
으음...

나플리는 잠에서 깨 눈을 스르륵 떴다.

주위가 선명해지자 나플리의 눈이 커졌다.

나플리
뭐야..여긴 게임 속 시녀 방이잖아?

나플리
분명히 로그아웃 하고 잠들었는데...꿈인건가?

볼을 슬쩍 꼬집어보자 얼얼하다.

나플리
아으..아픈데. 게임 속이면 나가면 되지 뭐. 로그아웃.

하지만 아무런 반응이 일어나지 않았다.

나플리
...로그아웃. 로그아웃, 로그아웃!

여전히 별 반응 없는 게임 시스템. 그 때였다.


시스템 ???
[ 플레이어 나플리, 당신은 이 곳에서 노아 왕자의 해피엔딩을 수집해야 합니다. ]

눈 앞에 갑자기 글자창이 생성되어 나에게 말을 걸었다.

나플리
..뭐? 아니, 잠시만. 이게 도대체 무슨..


시스템 ???
[ 예준, 밤비, 은호, 하민 왕자의 해피엔딩을 수집하고 노아 왕자의 해피엔딩을 수집하지 못한 채 게임 속에서 일정 시간을 채우면 히든 엔딩 루트가 열립니다. 그 조건을 플레이어께선 완료한 겁니다. ]

나플리
히든 엔딩...? 그러니까 지금 하나 남은 해피엔딩이랑 히든 엔딩을 수집하라 이거야?


시스템 ???
[ 그렇습니다. 당신은 해피엔딩과 히든 엔딩을 수집하기 전까진 이 곳에서 나갈 수 없습니다. ]

나플리
아니, 그건 안 되지! 그런 법이 어딨어? 나 회사 출근도 해야한단 말이야.


시스템 ???
[ 현실은 걱정하지 않아도 됩니다. 현실에서의 하루가 여기선 1년 입니다. 현재 현실의 시간은 밤 11시. 당신의 기상 시간까진 8시간이 남아있으니 이 곳 시간으론 4개월 정도 남았군요. ]

나플리
뭐, 뭐야 그런 거까지 알고 있어?

막힘 없는 시스템의 말에 나플리는 놀라더니 이내 한숨을 쉰다.

나플리
뭐 아무튼..4개월 만에 노아 왕자 해피엔딩을 수집하라고?


시스템 ???
[ 그렇습니다. ]

나플리
그게 가능하다고 생각하니..?

나플리는 왠지 모르게 화가 났다. 클리어하기 위해 거의 한 달 가까이를 현실과 게임을 왔다갔다 하며 찾아다녀도 노아 왕자는 코빼기도 안 보이는데 어떻게 하란 건지.


시스템 ???
[ 특별히 플레이어를 위해 시스템 특전을 드리겠습니다. ]

시스템의 말이 끝나자마자 나플리의 눈 앞에 편지봉투가 나타난다.

나플리
...릴리아의 편지?

릴리아라면 게임 속 나플리의 절친한 친구인 릴리아 레브가 맞을 것이다.

나플리가 편지 봉투를 열어 편지를 읽었다.

편지에는 큰일을 당하고 소식이 없는 나를 걱정하는 릴리아의 안부 인사와 내가 여기 있다는 소식을 겨우 듣고 레브 저택으로 초대할테니 꼭 와달라고 쓰여있었다.

나플리
이게 특전이라고?


시스템 ???
[ 편지에 쓰여진 대로 진행하다 보면 실마리를 얻을 수 있을 겁니다. 행운을 빌지요. ]

행운을 빈다는 글과 함께 시스템 창이 사라졌다.

나플리
하아...그러니까 어쨌든 릴리아에게 가보란 거네.

나플리는 편지에 친절하게 쓰여진 레브 저택의 주소를 내려다봤다.

나플리
며칠이 지난 뒤 휴일을 맞은 나플리는 마차를 타고 릴리아가 있는 레브 저택에 도착했다.

게임 상 설정으론 나플리의 유일한 친구인 릴리아지만 나플리는 본 적이 없다. 왕자들을 공략한다고 릴리아의 만남을 계속 무시했기 때문이었다.

나플리
후..이럴 줄 알았으면 몇 번 만나둘 걸 그랬네.

게임 속 나플리의 신분은 몰락 귀족이었다. 풀네임은 나플리 리즈.

리즈 자작가의 장녀였지만 의문의 사고로 가족을 잃고 친척들에 의해 재산은 공중분해 되면서 갈 곳이 없어져 시녀가 된 것이었다.

릴리아는 리즈 자작가의 장녀로 살아가던 나플리의 어린 시절 친구였다.

레브 저택에 도착해 마차에서 내린 나플리가 저택의 입구에 다다르자 집사가 다가와 인사를 건냈다.

레브 저택 집사
어서오십시오, 나플리 아가씨.

나플리
안녕..하세요. 릴리아를 보러 왔어요.

레브 저택 집사
아가씨께서 계신 곳으로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집사가 문을 열어 나플리를 들어오게 한 다음 곧장 앞장섰다.

집사를 따라 복도를 쭉 걸어가던 나플리는 주위를 구경하며 발걸음을 옮겼다.

레브 저택은 겉으로는 브라운 계열에 무난하고 단정한 느낌이었다면 안은 레드 계열로 곳곳에 포인트를 줘 지루해 보이지 않았다.

이윽고 집사는 응접실에 도착해 나플리에게 문을 향해 손짓했다.

레브 저택 집사
릴리아 아가씨께선 여기서 기다리고 계십니다.

그리곤 목례 후 어디론가 사라져버렸다.

나플리는 심호흡을 한 번 하고는 응접실 문을 열었다.

문을 열고 들어오는 나플리를 보며 릴리아가 앉아 있던 자리에서 일어섰다.

릴리아
세상에...나플리!

릴리아는 울먹이며 달려와 나플리를 끌어안았다.

릴리아
어쩜..나에게 편지 한 통도 안 할 수가 있니 넌..흑

나플리
어...미안, 릴리아. 그동안 내가 정신이 없었어..

'왕자들과 해피엔딩 볼 거라고 거기에 미쳐서 다른 데 한 눈 팔 정신이 없었지.'

그런 나플리의 생각을 알지 못하는 릴리아는 나플리를 테이블 쪽으로 데려갔다.

그 때 나플리의 눈에 반대편에 앉아 있는 한 여자가 보였다.

옅은 갈색 머리를 길게 늘어뜨린 좀 사나운 인상의 미인이었다.

릴리아
나플리, 여긴 빈첸 백작가의 세이라 영애셔. 세이라 영애, 여긴 제 절친한 친구인 나플리에요.

릴리아의 소개에 세이라 영애가 나플리를 아래위로 훑어보더니 코웃음치며 입을 열었다.

세이라
흥, 그렇군요. 릴리아 영애와는 영 어울리지 않는데도 절친한 사이라니 놀랍네요.

릴리아는 싸늘한 세이라의 태도에 나플리에게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자리에 앉아 나플리에게 차를 따랐다.

릴리아
세이라 영애께서 오늘 갑자기 방문하셔서 동석하시게 됐는데.. 괜찮니, 나플리?

릴리아가 미안하단 눈빛을 보내며 말했다.

나플리
응, 괜찮아. 난 상관없어

나플리는 그저 세이라 영애고 뭐고 노아 왕자에 대한 실마리를 찾기 위해 온 것이었다.

세이라
참, 릴리아 영애. 제가 한 가지 들은 게 있는데 말이죠.

세이라
릴리아 영애의 고모님께서 왕자님들의 유모셨다죠?

릴리아
네, 에릴 고모께선 왕자님들의 유모셨어요. 지금은 은퇴하시고 저택에서 지내고 계시구요.

세이라
그래요, 그런데 한 가지 소문이 돌더군요.

릴리아가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쳐다보자 세이라가 한쪽 입꼬리를 말아올렸다.

세이라
고모님의 저택에 숨겨진 공주님이 살고 계시다죠.

'으잉? 이건 또 무슨 전개야.. 숨겨진 공주?'

나플리는 세이라의 말에서 뭔가 냄새가 나는 걸 느꼈다.

릴리아
....네?...수, 숨겨진 공주라니..요..

당황한 표정을 감추지 못한 채 말을 더듬는 릴리아를 보며 세이라는 확신에 찬 눈빛으로 입을 열었다.

세이라
그 숨겨진 공주님이 노아 왕자님과 쌍둥이처럼 닮은 걸 본 사람이 있다더군요.

세이라의 말에 릴리아가 딸꾹질을 하기 시작했다.

세이라
노아 왕자님은 어디에도 보이시도 않고.. 릴리아 영애의 고모님 저택에서는 그런 소문이 들려오고. 흐음, 어떻게 된 영문일까요?

릴리아
그, 글쎄요.. 세이라 영애. 끅, 어멋.

릴리아는 딸꾹질을 멈추기 위해 급히 차를 한모금 마셨다.

세이라
릴리아 영애, 그대는 내가 노아 왕자님을 오랫동안 맘에 둔 걸 알고 있으시죠. 그렇지 않습니까?

세이라의 직설적인 말에 열심히 엿들으며 차를 마시던 나플리가 콜록하며 찻잔을 내려놓았다.

'뭐야, 세이라 영애가 내 라이벌인 건가?'

세이라를 경계하던 나플리는 이내 세이라가 한 말들을 곱씹었다.

'그러니까..어디에도 보이지 않는 노아 왕자와 릴리아 고모님 저택에서 보였다는 노아 왕자와 닮은 숨겨진 공주님이라...분명 뭔가 있다.'

나플리가 눈을 빛내며 세이라를 쳐다봤다.

세이라
릴리아 영애. 단도직입적으로 말하죠. 고모님 저택에 방문할 수 있도록 도와줘요.

릴리아
하지만...그건 제가 어떻게 할 수 있는 게..

세이라
릴리아 영애라면 얼마든지 저택에 방문할 수 있을테죠. 노아 왕자님을 찾을 수 있게 해줘요.

세이라가 이글거리는 눈빛으로 쳐다보자 릴리아가 어색하게 웃으며 난처한 시선을 던졌다.

하지만 나플리에게도 기회였다.

나플리
그..릴리아. 실은 나 에릴 고모님 저택에 놀러가고 싶은데.

나플리
아주 어릴 적에 뵙고 못 뵌 지 오래돼서 인사드리고 싶어.

나플리는 슬픈 표정을 지으며 울망이는 눈빛을 릴리아에게 보냈다.

그런 나플리의 모습에 마음 약해진 릴리아가 한숨을 쉬었다.

릴리아
하아, 어쩔 수 없네. 에릴 고모께 편지를 보내볼게.

릴리아
그리고 세이라 영애, 영애께서도 고모님의 답장이 올 때까지 기다려주세요.

릴리아
고모님의 답장이 오면 모두에게 알려드리죠.

릴리아의 고모님 저택 방문 건은 이렇게 마무리 되고 그 후론 일상적인 이야기가 오갔다.

어느덧 해가 질려는 시간이 되자 나플리와 세이라 영애는 돌아가기 위해 릴리아의 배웅을 받으며 저택을 나섰다.

세이라
당신.

나플리
네?

세이라가 서늘한 표정으로 나플리를 노려봤다.

세이라
무슨 꿍꿍이인진 몰라도 그 저택에서 노아 왕자를 찾는 건 나야.

나플리는 애써 모른 척 하며 어깨를 으쓱였다.

나플리
누가 뭐라 했나요? 전 에릴 고모님 안부 차 방문할 거에요.

속으론 뜨끔했지만 좋은 명분이 있어서 다행이라고 나플리는 생각했다. 안 그러면 세이라와 머리채라도 잡는 상황이 올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세이라
흥, 두고 보도록 하죠.

세이라는 나플리를 흘겨보곤 자신의 마차로 들어갔고 이내 출발했다.

나플리
나도 이제 돌아가볼까.

왕성으로 돌아가는 마차 안에서 나플리는 아까의 상황을 천천히 상기했다.

그리곤 왠지 모를 에릴 고모님의 저택에 뭔가 있을 거란 확신을 느꼈다.

그로부터 얼마나 지났을까.

나플리가 오늘의 할일을 마치고 방으로 돌아오니 책상에 편지가 놓여있었다.

나플리
릴리아의 편지!

편지엔 고모님께서 허락하셨으니 다음 휴일 때 고모님을 뵈러 같이 가자고 쓰여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