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작 과몰입한 미친 자까의 망상이니 무시하세여
※과도한 망상은 몸에 좋지않아요

[1945.1.××]
님은 결국 떠났습니다
당신을 미치도록 그리워하고 사랑하는 저에게 단
하나의 편지만 남긴채 저에게서 멀어져 갔습니다
조국을 위한 그대의 마지막 발걸음이 마지막일줄
알았더라면, 조심스레 저를 안아주는 그 따뜻한 품이 마지막일줄 알았더라면, 조금이라도 더 오래 같이
있을걸 그랬습니다 평소보다 더 어리광 부리고 가지
말라고 그대를 잡아놓을걸 그랬습니다
평소와 같은 그대의 미소에 나는 안도감을 느꼈던
걸수도 있습니다 꼭 돌아오겠다는 그 미소에 나는
속았던 걸수도 있습니다
왜 그때 평소와 같은 미소를 지으셨나요 마지막일줄 알았다면 평소랑은 다르게 그대를 더 오래 붙잡고
있었을텐데 왜 저에게 안도감을 주셨나요
저는 이렇게 허무하게 떠난 그대가 미칠듯이 밉지만 또 미칠듯이 보고싶습니다 그대가 다시 돌아온다면
살아생전 한번도 해주지 않았던 연모한다는 말을
해주고 싶습니다
항상 그대가 저를 연모한다고 했을때 부끄러워
하지 못했던 말들이 그대가 떠나고 나서야 이렇게
도착지없는 편지처럼 떠도는거 같습니다
[1945.2.××]
저는 그대의 마지막을 보지못한게 한스러워 그대가
임무를 수행했던 장소에 찾아왔습니다 지금 이곳은
그대의 목숨과 맞바꾼 작전을 성공하여 조금은
편히 쉴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대의 동료들이 저에게 말씀을 건네시지만 저는
그만 도망쳐 방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대의 동료들을
보면 그대가 생각나 눈물만 날거 같았기 때문입니다
저는 그대가 이렇게 사무치게 그립고 또 그리운데
그대는 위에서 이런 저를 보고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아니, 그대는 제가 있는 땅 아래에서 저를
올려다 보실수도 있겠습니다 그대의 부검은 아직
발견되지 못했다고 합니다
그대의 마지막 모습도 못본 저는 하염없이 그대가
보고싶습니다 차가운 몸이여도, 연모하는 눈으로
저를 바라보지 않아도 괜찮으니 그대를 꼭 보고
싶은 마음뿐입니다
[1945.3.××]
그대의 주검이 드디어 발견되었다는 말을 듣고 저는
맨발로 뛰어나갔습니다 발이 까지고 돌이 박혀도
저는 상관이 없습니다 그대가 우선이니까요
그대의 싸늘해진 주검을 본 저는..또 도망치고
말았습니다 그토록 보고싶었던 그대인데..왜 하필
이런 모습으로 보게되었는지..오늘따라 그대가
더 밉고 생각나는 날입니다
[1945.4.××]
저는 그대의 유골을 들고 집으로 왔습니다
저희의 신혼집은 예전 그대로입니다 그대가 저를
위해 심어뒀던 꽃은 예쁘게 만개했고 그대와 함께
잠을 자던 침실은 언제나 그랬듯 이불이 잘 정리되어
있었습니다 마치 어제도 이곳에서 잔것 같다는
착각이 들 정도였습니다
그대를 마지막으로 보았던 때는 추운 칼바람이 불던
겨울이었는데 어느새 날이 꽤 풀리고 길거리를
걸으면 꽃이 피어있습니다
새로운 계절은 찾아왔는데 그대는 왜 저에게 찾아
오지 않는것인가요 이 모든게 거짓말이라고,
눈을 뜨면 그대가 제 옆에서 눈을 감은채 깊은
잠을 자고 있을거라고 매일 생각합니다
그대가 떠나는 그날, 봄이 오면 같이 꽃놀이를 가자며
약속했던 그대는 어디계시고 이 넓은방을 저 혼자
쓰고 있나요
꽃을 좋아하는 저를 위해 나갔다 들어오면 자주 꽃을
사들고 수줍어 하시며 꽃을 건네셨던 그대가
생각납니다 그대가 주셨던 꽃들은 모두 물병에
넣어놨었는데 어느새 그 꽃들는 모두 시들었습니다
시든 꽃들은 다 버렸던 저였지만 왠지 이젠 저
꽃들마저 없으면 제가 그대를 잊어버릴까봐 두려워
그대로 두고있습니다
이 모습을 그대가 보았다면 얼른 새 꽃을 하나
사다주면서 시든 꽃을 버리고 꽃병에 새 꽃을
넣으라고 하셨겠지요
[1945.5.××]
제 생일이 있는 5월입니다 몇년전 저희 아버지께선
매년 주시던 생일 선물 대신 충격적인 말 하나를
하셨지요 그게 바로 그대와의 정혼 약속이었습니다
그때는 어려서 무조건 싫다고만 했었습니다 정혼
자체가 두려운것도 있었지만 제 정혼자가 어떤
사람일지가 가장 무서웠던거 같습니다
혹시나 나를 때리진 않을지, 친일을 하는 사람의
자식이진 않을지, 저를 암살하려 일부러 접근한건
아닌지 온갖 불행한 생각들을 했었습니다
허나 그대는 처음부터 저애게 친절했고 대대적인
독립운동가의 자제였으며 저를 위해 무엇이든
해주셨습니다 그리고 저를 진심으로 연모하고
계신다는것을 표현해주셨지요
그래서 저도 그대에게 마음을 열고 그대를 연모하고
있었던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경성에서 제일가는
미모로 유명했던 그대인데 당연한 결과였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대와 처음 만났던 몇년전 5월은 제가 살아온
18년의 인생에서 제일 뜨겁고 행복했던 생일이
있었던 해였습니다 그대를 만남으로써 최고의
생일선물을 받기도 했었고요
그 이후로 매년 제 생일때마다 저의 생일을 잊지
않고 챙겨주는 그대가 너무나도 좋았습니다 조심스레
저를 안는 행동과, 부끄러운지 고개를 숙이고 선물을
내미는 것과, 살며시 제 손을 잡고 손등에 가볍게
키스해주는 당신의 행동이 모두 좋았습니다
아, 프랑스 대사관에서 배워왔다던 그 손등키스를
받을때 저는 그대의 두 귀가 빨갛게 물드는것을
보고는 그만 웃음이 터지기도 했었지요
그대에게서 나오는 행동 하나하나가 저를 배려하고
생각해서 하는 행동이라는것이 보여서 저는 정말
행복했습니다 물론 그대와 함께하는 것만으로도
저에겐 크나큰 행복이었지만요
[1945.6.××]
슬슬 날이 더워져 옷차림은 예전보다 훨씬 가벼워
졌습니다 오랜만에 장에 나가 잔치국수를 먹어보니
예전에 그대와 함께 잔치국수를 먹었던 기억이
떠올랐습니다
길거리를 걷다보니 멋진 만년필이 제 눈에 띄어
몇개를 구매하니 파시는 분께서 저에게 질문을
하셨습니다 남편분의 선물을 사가는거냐고.
그 질문에 저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니 파시는 분이
이렇게 예쁜 부인이 선물을 사가니 남편분은
좋겠다며 말씀하셨습니다
그말에 저는 차마 그대가 저 멀리 가있다고 말하지
못하고 그 자리를 서둘러 빠져나왔습니다 이젠
그대 생각만 해도 눈가에 별이 떠오르듯이 눈동자가
촉촉해집니다
집에 돌아와 오랜만의 그대의 옷장을 열어 그대의
정장 앞주머니에 사온 만년필을 끼워 놓으니
원래 있던것처럼 잘어울렸습니다
옷장을 여니 그대의 향기가 나서 괜히 그대가 생각나
조용히 눈물을 훔쳤습니다 옷위에 소복히 쌓인
먼지를 털어내면 그대의 향기도 사라질까 두려워
그냥 그 자리에 앉아서 울었습니다 오랜만에 맡아보는
그대의 향기가 너무 그립고 좋아서..
그렇게 한참을 울었습니다
[1945.7.××]
오랜만에 그대의 사진을 꺼내보다가 문득 그대와
제가 함께 찍은 사진이 없다는걸 깨달았습니다
이렇게 될줄 알았더라면 한장이라도 찍어놓을걸
그랬습니다 이번 작전만 마치면 꼭 같이 사진을
찍자던 그대와의 약속은 영원히 못지키게 되었네요
차라리 약속이라도 잡지 않았으면 괜찮았을텐데
왜 이런 약속을 잡아서 내가 그대를 생각나게
하시나요 오늘따라 먼저 떠나간 그대가 더 그립습니다
그대가 부검이 되어 저에게 돌아왔을때 그대의
앞주머니에 있던 지갑 안에는 제 사진이 소중히
넣어져 있었습니다 왜 그대가 지갑을 볼때마다
그리 환히 웃으셨는지 이제서야 알게 되었습니다
그 지갑은 제가 그대의 생일때 사준 선물이었는데
그대는 그 지갑을 항상 지니고 다녔던게 기억에
납니다 너무 낡아서 바꾸라고 할때에도 그대는
싱글벙글 웃으며 안된다고 하셨지요
저는 그 지갑에 묻은 흙을 닦아 그대가 자주 가시던
서재 책상에 놓아 두었습니다 그대가 먼곳에서
돌아오실때 꼭 그 지갑을 보시며 행복해하시길
간절히 바랍니다
[1945.8.×]
정말 광복이 다가오나 봅니다 길거리만 걸으면 보이던
일본 관리들과 순경들은 어느샌가 보이지않고
상점에 태극기가 걸려있어도 때리거나 총을 쏘는
사람이 없어졌습니다
그대도 이 자리에 있었다면 아마 같이 태극기를 들고
대한 독립 만세를 외쳤을지도 모릅니다 그 누구보다
조국의 광복을 간절히 바라던 그대이기 때문이죠
그대와 함께 작전을 갔던 동료들도 모두 안전하게
돌아왔습니다 허나 왜 그대만이 돌아오지 않는걸까요
같이 갔던 7명중에 오직 한명만이 돌아오지 못한채
작전은 성공했습니다 아니, 과연 성공한건가요
이런 생각을 하면 안되지만 왜 하필 돌아오지 못한
한명이 그대일까 원망도 합니다 차라리 다른 사람이면
좋겠다는 생각도 했습니다
하지만 그대는 그 죽음마저 조국의 위한 숭고한
희생이라고 생각하겠지요 예전엔 그대가 조국을 위해 하는 일들이 정말 멋졌고 좋았습니다
하지만 오늘만큼은 그대의 생각이 꽤 밉습니다
[1945.8.15]
그대가 떠난지 반년이 지난 지금, 조국을 위해
희생되었던 그대의 목숨이 헛되지 않았다는걸
보여주듯이 우리는 광복을 맞이했습니다
허나 그대는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그대는 조국의
사람들을 위해 행복을 주었지만 그대를 가장 사랑하는저에겐 슬픔만을 주시고 떠났습니다
길거리엔 태극기가 널려있고 사람들은 모두 나와
다함께 대한 독립 만세를 외치는 중입니다 저도,
그대의 동료들도, 우리의 부모님들도 서로 부둥켜
안으며 광복의 행복을 만끽하는 중입니다
그대도 이 행복을 느꼈으면 좋았을텐데 뭐가 그리
바빠 일찍 가셨는지요 그대가 그토록 원하던 광복을
드디어 이루었는데 왜 그대만이 광복을 보지못하는
것인가요
하루종일 부른 배로 밖에 있다가 집에 들어오니
그대의 동료들이 우리집을 찾아와 저는 그들을
집에 들였습니다 그리곤 그들이 저에게 인사를 하며
하나의 편지를 건네길래 저는 그 편지를 읽었습니다
'이 편지를 읽게 된다면 나는 아마 당신 곁에 없다는
뜻이겠죠 그래도 너무 슬퍼하지말아요 부인
난 언제나 부인곁에 있으니 너무 슬퍼하지도 말고
날 너무 오래 기억하지도 말아요
내가 원하는건 딱 2개 뿐이에요 하나는 조국의 광복,
하나는 부인이 우리의 아이를 잘낳아 잘키워줬으면
좋겠습니다
나는 결국 우리의 아이를 못보고 이렇게 가네요 얼굴 한번 못보여준 못난 아빠지만 이름은 생각해놨으니
아이가 태어나면 제가 생각해둔거로 아이의
이름을 지어주세요
여자 아이라면 라온, 남자 아이라면 가온으로
지어주세요 그리고 아이가 태어날쯤엔 광복이
되어서 제 희생이 헛되지 않은걸 보여주면 좋겠네요
부디 우리의 아이는 다신 이런 끔찍한 상황을 겪지
않게 아빠가 많은 노력을 했다고만..그것만 우리의
아이가 알아줬으면 좋겠습니다
이만 편지를 줄이겠습니다 많이 사랑했고,사랑하고,
제가 멀리 떠나서도 많이 사랑할겁니다
연모합니다 부인'
그 편지를 읽은 저는 그만 제자리에 주저앉아 눈물을
하염없이 흘렀습니다 그대가 저를 마지막으로 볼때는
배가 부르지도 않아서 알아채기 쉽지 않을텐데 그대의
시선을 줄곧 저를 향해 있으셨는지 제가 아주 조금
달라진게 그대의 눈엔 보였나 봅니다
제가 그대를 볼때마다 눈이 마주친게 제 착각만은
아니였나봅니다 그대가 저를 항상 보고 있었기에
제가 볼때마다 눈이 마주쳤던 것이겠죠
그대가 오늘 제 꿈에 나온다면, 눈을 보고 말할래요
"보고싶었어요"
라고 말해주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