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민이가 사라졌다.
그날 나에게 영문 모를 질문을 하고 비 맞은 고양이처럼 쓸쓸하게 돌아가던 하민이의 뒷모습을 이후로, 나는 하민이를 만날 수 없었다. 단순하게 학교를 결석하고 만나지 못하는 것이라면 그냥 걱정되고 신경쓰이는 정도에서 끝났겠지만, 그게 아니었다.
"자, 다 모였으니 이제 연습 시작하자!"
"네? 아직 하민이가 안 왔는데요."
"응? 하민이? 그게 누군데?"
나 채봉구. 만 16세 인생, 근 한 달 가까이 정말 상식으로 이해 안 되는 일들을 겪고 정신이 혼란스러웠지만, 지금 이 순간 당황스러운 순간이 또 갱신될 줄은 몰랐다.
사람이 진짜 놀라면 아무 소리도 안 나오고 숨도 못 쉰다는데 나는 최근에 그걸 계속 겪고 있었다. 진짜 진절머리 날 정도로.
이번에도 진짜 정말 무지하게 생각도 못 한 상황이라서 손끝이 차갑게 식어가는 기분이었다. 이러다 수족냉증 걸리겠다. 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있잖아요. 우리 중에서 제일 키 크고, 잘생겼고. 눈매가 살짝 내려갔는데 고양이 같이 생긴 우리 막내..."
"그거 은호 아냐?"
"봉구 형이 저한테 잘생겼다 소리 할 사람은 아닐 텐데. 그리고 전 고양이보단 늑대 같은 스타일이죠!"
"으잉, 은호는 늑대보단 개 같은데."
"…노아 형, 어감이 좀 이상한 것 같은데 기분 탓이겠죠?"
"그러엄~"
아무도 하민이를 기억하지 못한다. 마치 그런 사람은 처음부터 없었다는 듯 존재 자체가 싹 지워져 버렸다. 하민이가 밴드부에 있었다는 증거는 오직 내 머릿속에 있는 기억뿐이었다. 나보다 더 밴드부에서 오래 알고 지냈을 예준이 형과 노아 형조차 하민이를 전혀 기억하지 못했다.
"하민이요. 유하민! 우리 베이시스트잖아요."
"…우리 베이시스트 자리는 공석이잖아?"
"잠시만요. 여기 같이 찍은 사진이 있을 텐데-"
대화를 시도하면 할수록 나를 이상하다는 듯 보는 시선들에 속에 돌이라도 얹은 듯 답답해져서 휴대폰을 켜 갤러리에 들어갔다. 하지만 증거를 찾기는커녕 오히려 뒤통수를 오함마로 얻어맞은 기분만 얻을 수 있었다.
동아리 부원끼리 함께 찍은 단체 사진에서
하민이가 없었다.
마치 지우개로 지워버린 듯 하민이가 있던 자리엔 아무것도 없이 비어있었다.
"어…. 아?"
휴대전화를 잡고 있는 손이 떨리기 시작했다. 내가 귀신에라도 홀리기도 한 걸까? 사실 이쯤이면 내가 이상한 거 아닐까? 나 말고 아무도 기억 못 하는데 사실 내가 미친 걸지도 몰라.
이 세상이 나를 상대로 골탕을 먹이고 있는 게 분명해. 피가 싹 빠지고 냉기가 채워지는 것 같은 기분이 계속되고 있을 때 예준이 형이 놀라며 내 어깨를 붙잡았다.
"봉구야 너…. 안색이 창백해."
"…."
"대체 무슨 일- 아니, 손이 왜 이리 차가워!"
은호가 다가와서 휴대폰을 잡은 채 덜덜 떨고 있는 손 위로 손바닥을 얹고는 깜짝 놀라 소리쳤다. 노아 형도 당황해서는 어쩔 줄 몰라 하며 손을 뻗었다가 내렸다 반복하며 발을 동동 굴렀다.
예준이 형이 침음하며 눈살 찌푸리고 고민하는 듯하다 내 가방을 들어 건네주며 말했다.
"안 되겠다. 보건실 가서 좀 쉬어. 너 진짜 쓰러질 것 같아."
나는 숨을 삼키며 고개를 끄덕였다. 은호가 데려다주겠다고 따라나서는 걸 손을 저으며 거절하곤 동아리실에서 나왔다.
누구도 없이 조용한 복도를 걷고 있자니 조금 진정되는 기분이다. 천천히 심호흡하고 있으니 떨림이 줄어들고 생각 회로가 조금씩 다시 돌아가기 시작했다.
"진짜 세상이 날 상대로 짜고 치는 트루먼 쇼일지도 몰라…."

기타 가방끈을 쥔 손에 힘을 주며 보건실 문을 드르륵 열었다. 보건쌤은 잠시 자리를 비우셨는지 비어있는 책상과 의자만이 눈에 들어왔다. 침대 커튼은 전부 열려 있고 누워있는 사람 하나 없는 걸 보니 보건실에는 나 혼자 밖에 없는 것 같-
"어?"
안쪽에 있는 침대로 가서 기타 가방을 내려놓고 있으니 저 창가 쪽에 누가 있는 것을 발견했다. 하얀 한복 같은 걸 입고 있는 단발머리 여학생이었다.
…. 우리 학교에 코스프레 동아리가 있었나? 아니면 패션 동아리?
학교에서 교복도 아닌 근현대사 흑백사진에서 보일 법한 옷이 신기해서 힐끔힐끔 쳐다보고 있으니, 상대와 눈이 마주쳤다.
쳐다보고 있던 것이 들켜서 머쓱한 기분에 나는 머리를 긁적이며 물었다
"…저, 보건 선생님은 어디 가셨어?"
그 애는 내가 말을 걸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는 듯 눈을 크게 뜨며 나를 쳐다봤다. 댕그랗게 뜬 눈을 끔벅거리다 고개를 좌우로 돌려가며 주변을 휙휙 둘러보더니, 굉장히 당황한 듯한 목소리로 검지 손가락으로 자신을 가리키며 내게 되물었다.
“…. 너 혹시 나한테 물어본 거야?”
"어? 응…."
내가 긍정하자마자 마치 못 들을 것을 들었다는 듯 입을 떡 벌리며 귀신이라도 본 얼굴로 말없이 굳어있었다.
뭐지, 내가 못 물을 걸 물었나? 눈썹을 찌푸리며 고개를 갸웃거리고 있으니, 아까 보지 못한 것이 눈에 들어왔다.
하얀 치마 아래로 점점 반투명해지는…. 다리가 없는….
"…. 아?"
뭐야. 다리가 왜 없어. 나는 세차게 흔들리는 눈으로 비어있는 다리와 여자애의 얼굴을 번갈아 가며 쳐다봤다.
거울을 보지는 않았지만 내 얼굴이 새파랗게 질렸다는 것은 스스로 느낄 수 있었다.
흔들리는 손끝으로 여자애를 가리키며 어버버거리던 나는….
"귀, 귀신이야아아아아악!!!"
귀신이라도 본 얼굴이 아니라 본인이 귀신이었던거냐!
비명을 지르면서 문 쪽으로 뛰쳐나갔다. 아니, 나가려고 했다.
발이 한 번 꼬여 넘어질 뻔했지만 엎어지진 않고 다급하게 보건실 문으로 향하려던 순간.
"얘, 잠깐만!"
"끼야아아아아아악!!!"
내 눈앞에 갑자기 나타난 여자애 얼굴에 기겁하며 뒤로 쓰러졌다.
그리고 암전.
*
"얘! 정신 좀 차려봐!"
"흐, 흐억! 처, 처녀 귀신!"
"누구보고 처녀 귀신이라는 거야!! 난 옛날 옛적에 결혼했다고!"
눈을 뜨자마자 보이는 아까 그 귀신의 얼굴에 나는 다시 한번 기겁하며 뒤로 물러났다. 내 또래로 보이는 귀신은 일어나지도 못한 채 다리만 재빠르게 움직여 겁에 질린 나를 보며 양손을 들어 올렸다.
"해치지 않아. 나 그렇게 나쁜 귀신 아니라니까?"
쿵쾅대며 뛰는 심장을 부여잡으며 숨을 들이쉬고 있으니 그 귀신은 내가 좀 진정했다고 생각했는지 허리 위로 양손을 얹으며 생긋 미소 지었다.
"지, 진짜 안 해칠 거지? 막 나를 학교에 가둬둔다거나, 저승길 길동무로 삼는다거나. 그, 그런 거도 안 하는 거지?"
"내가 그렇게 악귀로 보여? 아닐 텐데."
"다리가 안 보인다는 거 빼곤 평범해 보이긴 한데…."
아니, 애초에 다리가 안 보인다는 것부터 평범에서 아웃이잖아. 나는 침을 꿀꺽 삼키며 긴장을 놓지 않은 채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다리가 덜덜 떨려서 다시 주저앉는 건 아닐지 걱정했지만 별 탈 없이 일어설 수 있었다.
"놀라게 해서 미안, 날 볼 수 있는 사람이 또 있을 줄은 몰라서 들이대 버렸네."
"귀, 귀신 보는 사람이 또 있다고?"
"응, 키가 무지 큰 남자애. 이름이 하민이랬나?"
"뭐? 하민이? 유하민?"
생각지도 못하게 하민이의 얘기를 듣게 되어 나는 깜짝 놀라며 긴장했던 것도 잊고 되물었다.
"하민이를 알아? 혹시 하민이도 귀신이야? 요 며칠 안 보이던데 어디 있는지 알아? 설마 성불해서 사라졌어!?"
"잠, 잠깐. 천천히 하나씩 물어봐!"
자기를 무서워하던 애가 갑자기 돌변해서 와다다다 질문을 쏟아내기 시작하니 당황했는지, 진정하라는 듯 손을 뻗었다. 귀신은 잠시 고민하는 듯싶다 이리 오라는 듯 손짓하며 소파 쪽으로 향했다.
"일단 앉고 좀 진정해 봐."
소파에 앉아 맞은편을 가리켰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귀신의 맞은편에 앉아 천천히 숨을 골랐다.
"자, 진정도 할 겸 소개부터 해보자. 이름이 뭐니?"
"어…. 봉구. 채봉구."
"좋은 이름이네! 난 춘옥이야. 김춘옥."
내 이름 보고 진심으로 좋은 이름이라고 칭찬해 주는 사람은 거의 없었던지라 좀 신기했는데, 상대 이름을 들어보니 상당히 옛날 사람인 것 같았다. 내 이름이 현대에 흔하지 않은 케이스지만 상대는 귀신이니까.
"나이는?"
"고 2…. 열여덟."
"아하, 나보다 어리네! 난 열아홉에 죽었거든!"
그거 그렇게 웃으면서 말할만한 일은 아니지 않아…?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모를 기분에 애매한 표정을 지으며 궁금한 걸 물어봤다.
"저기, 혹시 몇 년생이야?"
"나? 32년생이었을걸."
“…설마 1932년?”
“응.”
"그, 그러셨구나…."
아니 그러면 내가 몇 살이어도 손주뻘이잖아. 조상님까지는 아니어도 한참 윗세대였다. 내가 02년생이니까 나이 차이가 70이다. 뼛속에서 흐르는 한국인의 유교 본능에 나도 모르게 자세를 바르게 하고 말을 높였다.
이런 내 생각을 눈치챘는지 춘옥, 아 아니 할머니께서는 웃으면서 손을 내저었다.
"뭘 말을 높여. 그냥 편하게 말해. 나 그렇게 까다로운 사람 아냐."
"아니, 그래도 제가 할머니께 어찌…."
"연생으로 따지면 맞긴 한데 할머니라고 불리니 기분 좀 묘하네. 그냥 막 부르라니깐?"
"그치만-"
"어허."
"네, 춘옥…. 누님."
"…. 그래 그게 편하다면야."
반말 듣기는 포기했는지 약간 해탈한 얼굴이었다. 실없는 대화를 해서 그런지 긴장했던 몸이 싹 풀려 편안해진 상태였다. 내가 진정됐다고 생각한 모양인지 춘옥 누님이 소파 위로 손바닥을 대고 소파에 등을 푹 기대며 말했다.
"자, 이게 궁금한 거 하나씩 물어봐. 아는 건 다 대답해 줄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