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 모음집

우연과 수면


그저 우연에 이끌렸을 뿐.

클래식이 끝없이 흘러나오는 집 안. 이렇게만 말하면 마치 내가 상류층이 된 것만 같았다. 클래식은 예로부터 상류층이 즐기는 음악이었다. 하지만 나는 어둡고 삭막한 삶을 살고 있었다. 온갖 편의점 음식의 포장지가 굴러다니고 빛도 잘 들어오지 않는 반지하에서 클래식은 내가 누릴 수 있는 가장 커다란 사치였다. 힘이 빠진 몸을 있는 힘껏 일으켜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클래식을 끄고는 피아노 앞에 앉았다. 얼마나 오래 묵혀뒀으면 먼지가 수북할까. 입으로 먼지를 후 불어 내자 제각각 흩어졌다. 날리는 먼지에 기침이 저절로 나왔다. 손으로 바람을 일으켜 얼굴 앞에 날아다니는 먼지를 다른 곳으로 옮겼다. 기침이 멎을 때쯤, 먼지가 쌓인 피아노를 조심스레 열었다. 빨간색의 천을 조심스럽게 걷어내자, 낡은 피아노 뚜껑과는 상반되게 매우 반짝이는 피아노 건반이 보였다. 의자에 앉아 건반 위에 가볍게 손을 올렸다. 오랜만에 느끼는 차가운 감촉이 반가웠다. 천천히 아까 듣고 있던 클래식을 연주해나갔다. 나의 연주는 감히 아름답다고 말하기에 충분했다. 어릴 적부터 피아노 신동이라는 이야기를 귀에 달고 살아오며 모두들 나의 성공을 확신했지만 나는 모두의 확신을 좌절시켰다.

큰 오케스트라 악단을 포기하고 작고 허접한 오케스트라 악단에 들어간 것이 그 시발점이었다. 내가 작은 악단을 선택했던 이유는 내가 짊어질 부담이 적었기 때문이다. 어릴 적부터 거대한 악단에서 많은 사람들에게 동경을 받아왔던 것이 내게는 버거웠다. 그래서 작은 악단이 부러웠다. 큰 악단에서는 결코 내가 하고 싶은 음악을 주장할 수 없었으며, 그들은 나에게 작은 실수조차 용납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큰 악단에 나 홀로 피아노를 연주하는 것보다 외로운 것은 실수를 했을 때 보듬어줄 이가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큰 악단에서 나와서 작은 악단에 들어갔다. 작은 악단의 사람들은 항상 웃는 미소로 나를 반겼다. 단 한 번도 나를 웃지 않는 얼굴로 만난 적이 없었다. 그 곳에서도 혼자 피아노를 연주하는 것은 마찬가지였지만 마치 혼자가 아닌 것 같은 착각에 빠져들게 했다. 작은 악단에서의 생활은 정말 즐거웠다. 적어도 그 악단이 망하기 전까지는 말이다. 악단의 성과는 항상 좋지 못했다. 많은 이들이 나의 영입을 계기로 이 악단이 성공할 것이라고 말했지만 전혀 아니었다. 물론 처음에는 조금 괜찮아졌던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기존 단장이 스스로 목숨을 내놓으며 새로운 단장이 임명된 후로는 이 악단은 사실상 매장당한 셈이었다. 결국 많은 단원들이 탈퇴하며 악단은 해체를 맞이했다. 그 후, 몇 번의 솔로 데뷔를 시도했지만, 나는 끝내 모든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지워졌다. 어쩌면 바라던 바였다.

한 곡의 연주가 끝나자, 공허함이 밀물처럼 밀려왔다. 연주가 끝나면 들려오던 박수소리가 문득 그리웠다. 씁쓸한 감정을 삼키며 다시 피아노 뚜껑을 닫았다. 빛도 제대로 들어오지 않는 창문을 슬쩍 열고는 담배를 꺼내 불을 붙였다. 입에서 나오는 담배연기가 창밖으로 날아갔다. 하지만 날아가자마자 이내 없어지는 연기가 마치 내 모습 같아서 반도 피우지 않은 담배를 그냥 버렸다. 머리를 거칠게 넘기며 한숨을 내뱉었다. 차가운 바닥에 앉아 다시 라디오를 틀었다. 감미롭게도 브람스의 자장가가 흘러나왔다. 벽에 머리를 기대고 눈을 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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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주씨, 연주 너무 잘 들었어. 섬세하더라.”

“열심히 연습한 보람이 있네요. 다행이네요.”

“다음 연주도 이렇게만 부탁해요. 수고했어요.”

단장이 내게 어깨를 두드리며 웃는 얼굴로 말을 걸었다. 그녀의 웃음에 뿌듯함이 느껴졌다. 마음속으로 연신 ‘나이스!’를 외치며 아름다운 꽃들을 양 손으로 한 아름 안은 채 차량으로 향했다. 차량으로 향하는 길에도 많은 사람들이 나를 보며 환호성을 내질렀다. 마치 내가 할리우드 스타인 마냥 목이 터져라 소리를 지르는 이들도 많았다.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까딱이며 많은 인파를 뚫고 차량에 탑승했다. 정신없는 환호성을 뒤로하고 차량이 출발하자, 순식간에 주변의 소리들이 수그러들며 고요해졌다. 고요한 공기를 뚫고 매니저가 내게 말을 건넸다.

“연주야, 오늘 집으로 갈까?”

“아뇨, 연습실에 잠깐 들리려고요. 저 내려주고 먼저 퇴근하세요.”

“밥은? 뭐 먹을래?”

“아뇨, 괜찮아요.”

짧은 대화가 오가고, 다시 적막이 자리 잡았다. 그 적막이 어색하다는 생각이 들 때 즈음에 차량이 연습실 앞에 도착했다. 선물들을 가득 들고 연습실로 꾸역꾸역 올라갔다. 몸이 무거운 건지 짐이 많아서 그런 건지 기분이 오묘했다. 선물들을 예쁘게 연습실에 전시하고는 피아노 건반 위에 손을 올렸다. 따뜻한 느낌이 맴돌았다. 마치 방금까지 누가 연주하고 있었던 것 마냥. 기분 좋은 느낌을 안고 연습을 시작했다. 마치 신이라도 들린 듯이 어렵던 부분을 매끄럽게 연주했고, 평소보다 완벽한 연주를 해냈다. 내 스스로가 성장한 느낌이라는 것이 이런 거구나. 문득 깨달음을 얻었다. 그렇게 연습실에서 늦은 밤까지 연습을 했다.

그날 밤, 인터넷을 슬쩍 구경했다. 내 연주에 대한 소식들이 눈길을 사로잡았다. 정확히 말하자면 악단의 연주에 대한 이야기지만, 그 중에서도 특히 피아노 솔로 파트에 대한 이야기가 많았다는 것은 역시 나의 성과가 맞다. 그 거대한 악단에서 피아노 연주자는 내가 유일했으니 말이다.

다음날, 매니저에게 소속사로부터 온 소식을 들었다. 이제는 악단의 구성원의 일부가 아닌 프로 피아니스트로서 홀로서기를 해보는 것이 어떻겠냐는 이야기였다. 그야말로 영광이었다. 어떻게 보면 성공은 보장되어있었다. 대형소속사에, 대형 악단출신, 게다가 피아노 신동이라는 타이틀로 인지도도 꽤나 있는 상황이었기에 주저하지 않고 동의했다. 아마 전날에 보여줬던 나의 연주가 인상 깊었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몇 달간의 준비 끝에 결국 솔로 앨범이 나왔다. 그야말로 환상적인 앨범이었다. 1집, 그보다 의미 있는 앨범이 있을까 싶었다. 아마 내 인생에서 다시는 낼 수 없을 만큼 환상적이고 아름다웠다. 이제야 정말 내가 피아니스트로 인정받은 느낌이었다. 이보다 꿈꾸던 성공이 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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밖에서 우렁차게 울리는 슈퍼카 엔진소리에 눈을 떴다. 기분이 언짢았다. 저딴 슈퍼카가 뭐가 잘났다고. 저런 건 그냥 환경오염과 소음공해의 주범일 뿐이다. 달달한 기분이 깨지는 바람에 눈물이 나왔다. 한숨을 길게 내쉬고는 악보집을 뒤졌다. 꿈에서 연주한 노래의 악보가 보란 듯이 한 번에 펼쳐졌다. 다시 피아노 위에 손을 올렸다. 한 음, 한 음 집에 울려 퍼지는 피아노 선율이 소름끼칠 만큼 형편없었다. 온통 뭉개진 음과, 무너진 손가락이 처참했다. 꿈에서 내가 연주한 악보와 같은 악보를 보고 있다는 것을 믿을 수 없을 만큼 처참했다. 아무래도 너무 아름다운 꿈을 꿔버린 것이다.

어쩜 이름도 명연주일까. 내가 이 이름을 쓸 자격이 있을지 의구심이 들었다. 명연주의 형편 없는 연주를 누가 들어줄 거라고 생각하고 달려왔던 것일까. 이토록 불쾌하고 어두운 선율을 그 누가 감히 감상했다고 표현하겠는가.

신경질이 나서 피아노를 주먹으로 내리쳤다. 듣기 불쾌한 불협화음이 불화를 이뤘다. 머릿속을 온통 꿈속의 나의 피아노가 메웠다. 가능하다면 다시 그 꿈으로 돌아가고 싶었다. 의미 없는 불안감에 압도되어 손톱을 뜯었다. 피가 조금씩 새어나왔지만 개의치 않았다. 이 순간만큼은 내 손가락의 존재를 잊고 싶었다. 그 아름다운 선율을 이렇게 망쳐놓다니 용서가 되지 않았다. 다시 꿈으로 가야겠다고 생각했다. 다시 꾸는 꿈이 그 꿈이 아닐지라도 우연에 몸을 맡기고 싶었다. 찬장에 있는 수면제를 손에 한 움큼 쥔 채로 우연을 믿고 수면으로 뛰어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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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달 뒤, 집주인이 요란스럽게 문을 두드렸다. 몇 달 째 밀린 집세를 받으러 온 것이었다. 집 주인이 한숨을 내쉬며 마구 소리쳤지만 집 안은 쥐새끼 하나 없는 마냥 조용했다. 이내 집주인의 얼굴이 굳더니 경찰에 전화를 했다.

“몇 달 째, 월세를 안 내는 청년이 있는데 집에서 통 나오는 꼴을 못 봐서요.”

잠시 후, 경찰이 도착했고 가까스로 문을 따고 들어간 집 안은 고요했다. 천천히 발걸음을 옮겨보니 이불 위에서 편안히 눈을 감은 연주가 보였다. 주변에 벌레들이 가득했고 말로 형용하지 못할 악취를 풍겼다. 손에 쥔 플라스틱 수면제 통만이 썩지 않고 멀쩡할 뿐이다. 보호자에게 연락을 하려했지만 연락이 불가한 상태였고, 집에서 겨우 찾은 휴대폰에도 딱히 연락할만한 사람이 없었다. 경찰이 한참을 고민하다가 집주인을 제외한 가장 최근에 통화했던 기록에 놓여있는 사람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 마저도 1년 전이었다. 그는 평소 연주와 친하던 기자였다. 음악과 관련된 사건이나 행사를 주로 취재하던 기자였는데, 연주가 몰락한 이후로는 거의 연락을 주고받지 않았다. 하지만 그는 연주의 사망 소식을 듣고는 바로 집으로 달려왔다. 그 역시도 연주의 죽음을 알지 못했다. 그는 연주의 시체를 직접 두 눈으로 확인하고는 사진을 한참을 말을 아끼더니 경직된 얼굴로 현장을 떠났다.

그 날 저녁, 연주의 이름이 인터넷을 흔들었다. [피아노 신동 명연주, 생활고로 결국 극단적 선택]. 세상에 연주의 죽음이 알려지자 사람들이 밀물처럼 밀려왔다. ‘진짜 피아노 잘 쳤는데 왜 그랬을까...’, ‘한동안 안 보이더니...’, ‘그러게 악단을 왜 바꿔서... 안타깝네.’와 같은 반응들이 이어졌다. 연주가 세상에 존재하지 않음에도 연주의 선택을 모두가 비난하고 있었다. 죽은 이에게도 잣대를 내미는 세상은 생각보다 더 잔인한 곳이었다. 어쩌면 이 세상에서 행복은 사치였을지도 모른다.

연주는 항상 세상에 반항을 시도했다. 화려하고 거대한 악단보다는 편안하고 조그만 악단을, 성공을 위한 발악보다는 평화를 위한 몰락을, 꿈을 현실로 실현하기보다는 꿈에 중독되기를 선택했다.

그 결과 클래식을 사랑한 빈민은 결국 사치에 눌려 죽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