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별 공식
W. 망개찐떡
- 미리 알립니다. 트라우마를 유발할 요소가 있습니다. 불편하신 분들은 안 보시는 것을 추천드립니다.
뜨겁고 무거운 무언가가 목을 짓눌러왔다. 그동안 어떻게 살았냐고?. 죽지 못해서 살았다. 하지만 이 말을 너한테 어떻게 하겠나… 힘이 풀려 약 봉투를 떨어뜨릴 것 같은 기분에 손에 힘을 실었다. 나는 최대한 아무렇지 않은 목소리로 너의 뺨에 손을 올렸다. 그리고 네가 가장 좋아했던 나긋한 목소리로 물었다.

“무슨 일… 있었어?.”
나긋한 목소리를 듣자 너는 더욱 눈물을 흘렸다. 정확히는 품에 매달려서 우는 말이 더 맞는 말이였다. 아무말 없이 울기만 하는 너를 달래려 어깨에 손을 올리자 잔 떨림이 더 심해졌다. 대체 왜 우는건지 묻고싶었지만, 입을 다물고 가만히 토닥였다. 슬펐다. 나를 만나기만 하는 우는 네가, 내가 너를 울리는 것만 같아서.
“다, 들었어… 우리 헤어지고 지난 5년간의 얘기.”
어깨를 토닥이는 손길이 멈췄다. 지난 5년간의 얘기를 모두 들었다고?… 고개를 내려 여주를 내려보았다. 대체 어디서 들었냐고, 누구한테 들었냐고 따지고 묻고싶었지만 그럴 수 없었다. 얘기를 들은 너의 잘못이 아니니까. 하지만 그렇다고해서, 그 얘기를 들려주고 싶었던 것도 아니였다.
네가 없던 지난 5년은, 불행이였던 내 인생에 가장 최악 이였으니까.
.
.
.
.
.
5년 전 여주와 이별을 맞이하고 한 달. 나는 그동안 모은 돈으로 아주 작은 반지하 하나를 구했다. 수돗물에서는 녹물이나고, 쥐와 바퀴벌레는 고개를 돌릴 때마다 나왔지만 괜찮았다. 졸업을 하고 얻어낸 첫 결과물 이였으니까.

“후우… 이 정도면 괜찮겠지?.”
뿌듯한 마음으로 먼지 투성이던 집을 청소하고 바닥에 주저앉았다. 비록 크지도 않고 벌레도 득실 대지만 기뻤다. 그 거지같은 집구석에서 나와 나만의 집이 생겼다는 사실이. 하지만 그 행복은 오래가지 못했다. 얼마안가 저장되지 않는 번호로 걸려온 전화 한 통화.
그래. 이 집에 들어온 것이 불행의 시작이였을지도 모른다.
“…연락 받고 왔는데요!.”
전화를 받고 황급히 발걸음을 돌린 곳은 서울 남대문 경찰서. 4년만 이였다. 대학을 입학 하고서 연락을 끊었던 아버지를 만난 것은. 형사의 전화를 받고 한달음에 달려가 마주한 것은 수갑을 찬 아버지의 모습이였다. 애초에 바뀔거라 생각한 것은 아니였지만, 내가 원한 모습은 적어도 이런 것은 아니였다.
“아이씨… 거봐요. 저 놈, 별로 안 좋아한다니까?.”

“…어떻게 된거에요?.”
한껏 경직된 얼굴로 물으니 투자를 구실로 사기를 치다가 잡혔단다. 아버지. 나에게 있어 그 세글자는 짐승보다 못한 단어였다. 건달 출신이던 아버지. 그리고 룸살롱에서 만나 여자 사이에서 태어난 난, 그에게 있어 골칫거리였다.
하룻밤의 불장난으로 아이가 생겨버린 여자는, 낙태를 할 수 없는 기간까지 기다렸다가 아버지를 찾아갔다. 돈을 뜯어내기 위해. 처음엔 아버지도 지우던지 말던지 알아서 하라고는 했지만, 어머니였던 그 여자도 보통 내기는 아니였다. 돈을 내놓고 아이를 데려가지 않으면 강간범으로 신고해버리겠다. 라고 말하자 그제서야 폭탄을 떠안듯 나를 데려온 아버지란 작자는, 시도때도 없이 내게 손을 뻗었다.
가정폭력. 차라리 그것만 했으면 다행이지, 아버지의 손에 이끌려 퇴폐업소를 드나들기를 여러번. 진한 화장과 코를 찌르는 듯한 향수 냄새에 휩싸여 ‘성폭행’ 을 당했다. 여자 혐오는 그로부터 비롯된 것이였다. 조금이라도 반항을 했다가는 건달 출신 아버지에게 얻어맞았기에, 살기 위해선 죽은 듯 가만히 있으며 눈물을 흘릴 수 밖에 없었다. 눈물을 흘리면 늙은 여자들은 귀엽다며 돈을 주었으니까. 그 맛을 알아버린 아버지는 날 일부러 때려 울리기도 하였다.
그런짓을 10년. 불행중 다행인 것은 아버지는 늙고, 나는 몸이 커지는 것이였다.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아버지는 노화하지만, 내 힘은 더 커졌기에 중학교 3학년 이던 시절. 아버지를 향해 크게 반항했다. 그날 이후 퇴폐업소는 가지 않아도 되었지만 가정폭력은 여전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아버지의 손에 힘이 줄었다.
그리고 그것도 어느새 익숙해져 있었다.
“아무튼 보호자로써 작성해주실 서류가 있어서요.”
아버지를 힐끔- 째려보고서 나는 펜을 들었다. 그로부터 1년 뒤에 여주를 만나 사랑이란 것을 알게되었지만, 속으로는 불안했다. 아버지가 여주를 만날까봐. 이미 이야기를 다 아는 여주는 괜찮다고 이해했지만, 마주하고나서도 그런 말이 나올까?. 사람은 모르는 일이였다. 하지만… 이젠 그것도 불가능했다. 여주와 나는 헤어졌으니까. 차라리 다행이라 생각했다.
“다 작성했습니다.”
“아, 네. 그리고 잠시만 기다려주세요.”
서류를 가지고 잠시 자리를 비운 형사와, 그리고 수갑을 찬 채 가만히 앉아있는 아버지. 나는 조소를 지었다. 참 어울린다 생각했다. 멀찍히 떨어져 의자에 앉았다. 그러자 의자 등받이를 팔 거치대삼아 올려 뒤돌아 본 아버지가 말했다.
“왜. 이제 아비와 겸상도 하기 싫으냐?.”
“당연한걸 왜 묻지.”“그런데 왜 여기는 왔나?. 싫었으면 안 오면 되지.”
사실은 너도 아비가 보고싶었던거야. 그렇지?. 라고 말하며 피식- 웃는 모습에 난 순간 분노의 충동을 느꼈다. 지금 저걸 말이라고 하나?. 겨우 분노를 억누른 나는 한숨을 내쉬며 주머니에서 담배를 꺼내들었다. 지금 당장 담배를 피지 않으면 가라앉지 않을 분노였다.
“어이, 너 그거 아냐?.”
“……하아, 또 뭐. 뭐가 문제인데.”
“그 룸살롱 년, 죽었더라?.”
순간적으로 커진 눈과 함께 뒤돌아 보았다. 아버지가 말하는 룸살롱 년. 그건 나를 낳아준 어머니였다. 엄마가 죽었다고?… 입술을 움찔거리며 아무말도 못하는 나에게 비죽거리며 미소를 지은 아버지는 결정타를 날렸다.
“그래. 몸 팔다가 손님한테 죽었다던데. 스킬이 예전같지 못했던 모양이야?. 그 반반한 얼굴도 늙으면 다- 똑같지. 못 조였나봐?.”

“씨발……”
결국 입술 새로 나오는 욕지기까지는 참지못했다. 어머니. 다정한 말 한 마디는 해주지는 않아도, 생일마다 찾아와 돈까스를 사주고 가던 어머니였다. 그런 어머니가 죽었다고?. 좌절했다. 최악이던 아버지. 미웠어도 종종 생각나던 어머니. 우리 가족은 처음부터 잘못되었다.
뒤늦게 어머니의 납골당에 찾아갔지만, 그곳에서 난 더 충격받을 수 밖에 없었다. 빚 5천만원. 대신 갚아야 한다고 했을 때 눈 앞이 노랗게 변했다. 반지하를 마련하는데도 이렇게 힘들었는데 5천만원?. 가능할리가 없지. 그나마 다행인 것은 주변 법대생이 알려준 바로는 ‘상속 포기’를 하면 빚을 갚지 않아도 된다기에 나는 법원에 찾아갔다.
어머니와 유일하게 이어져있는 것이 ‘빚’ 이라 생각한 나는, 그와중에 바보같이 죄책감도 들더라.

이런 뭣같은 이야기를 네가 안다고 생각하니, 속이 뒤틀리다 못해 짓뭉게지는 느낌이 들었다. 내 인생의 최악, 불행의 순간… 너만은 알고싶게 하지 않았는데. 숨이 가빠오는 것을 느낀 나는 뒷걸음질 치며 입을 손으로 틀어막았다.
“숨, 숨 쉬어. 정국아, 제발…”
다시금 눈물을 흘리며 울먹이는 너는 나를 끌어안으며 등을 토닥였다. 절대 싫어, 최악이야. 제발 알지말아 줘… 속으로 몇 번을 되뇌였다. 따뜻한 품 임에도 전혀 편하지 않았다.
“…병원에서 오랜만에 만난 강민이한테서 들었어. 그때 경찰 실습 중이였는데, 그 얘기를 경찰 선배한테서 들었다면서.”
“… …”
“…미안해. 제 멋대로 물어봐서.”
“… …”
“그리고 또 미안해.”
그때 네 옆에 있어주지 못해서.
[찐떡이의 사담]
분량이 많아진 건 아닌가ㅎ…
댓 20개 업.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