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상과 현실 언저리

안녕, 나의 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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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 나의 세상
: 안녕, 내 세상















세상에서 가장 쓸데없는 짓이 인간관계에 무언가를 쏟는 일이다. 그게 돈이건, 몸이건, 마음이건. 내가 보고 있는 세상은 전부 그 쓸데없는 짓을 하고 있다. 그것도 아주 절실하게.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깟 관계가 뭐라고 그렇게 안절부절하며 버림 받은 개 마냥 떨어대는지. 바람 빠진 웃음 소리가 새어나갔다. 그들에게 전하는 명백한 비웃음이었다. 사람들이 불쌍해 보였다. 어느 하나라도 놓으면 금방 끊어질 사이를 꾸역꾸역 유지하려는 모습이 꼭 아슬한 외줄타기를 하고 있는 것만 같았기에. 몇 평 되지 않는 회색빛 컨테이너 속 헤진 매트리스 위 창가에 비친 나를 마주했다. 아무것도 담기지 않은 공허한 두 눈, 차마 닦아내지 못한 눈물이 자국을 남긴 뺨, 너무 많이 짓이겨 상처 투성이인 입술. 너무 커 흘러내리는 하얀색 반팔티 위로 목에 걸린 은색 반지가 반짝이면 나는 그제서야 깨닫는다. 그러니까,





“… 나쁜 새끼.“





쓸데없는 외줄타기를 한 것도 이로 인해 불쌍해진 사람도 전부 나였다. 한 쌍이었던 반지는 어디로 가버렸는지 알 수 없었고, 나는 남은 반지 하나만 두 손으로 꼭 쥘 뿐이다.










안녕, 나의 세상
: 안녕, 내 세상










부르고 싶어도 부를 수 없고 보고 싶어도 이젠 더이상 볼 수 없었다. 그를 잃었을 때, 나는 어릴 적 부모에게 버림 받아 보호 시설에 들어갔던 날보다 더 슬펐다. 사실 어릴 적의 나는 아무것도 몰랐기에 부모의 손을 잡고 시설에 들어가며 방긋 웃었다. 그게 그들과의 마지막이 될 줄도 모르고. 그들이 내게 말했던 시간은 딱 7일, 일주일이었다. 일주일 뒤에 데리러 올 테니 잘 지내고 있으라는 말을 끝으로 나는 부모의 어떤 흔적도 아니 소식 조차 듣지 못했다. 거지 같은 꼴을 하고 있는 지금 역시 그렇다. 내 기억 속에서 그들은 사라진지 오래다. 이젠 부모든 뭐든 다 필요 없다. 단지 내 목에 걸린 반지의 다른 한 쌍만 찾을 수 있다면, 그의 이름을 다시 한 번 부를 수 있다면, 한 번이라도 그의 뺨을 쓸어볼 수 있다면. 난 더 바랄 것이 없을 텐데.

메트리스 위로 털썩 몸을 뉘었다. 온몸에 힘이 빠져 쓰러지듯 팽개쳐졌다는 말이 더 어울렸다. 와중에도 절대 놓지 않은 반지에는 그의 이름이 새겨져 있다. 반지를 바라보며 각인된 부분을 엄지 손가락으로 몇 번 쓸면 비릿한 쇠 냄새가 은은하게 난다. 나는 새겨진 이름을 부르려 상처 가득한 입술을 움찔댔다.





“준아,“





한참을 망설이다 내뱉은 이름의 끝 글자가 컨테이너 전체에 울린다.





“최연준, 다시 온다면서…“





결국 또 무너지고 만다. 내가 그의 이름을 함부로 부를 수 없는 이유였다. 눈물이 한 방울, 두 방울 얼굴을 따라 흐르면 어느새 메트리스엔 크고 작은 눈물 자국들이 가득이다. 다시 오겠다는 말 하나로 너를 기다린지 벌써 2년. 2년간 너만을 기다리며 망가진 듯한 몸이 가늘게 떨린다.

이쯤에서 다들 궁금하지 않을까. 최연준은 대체 어떤 사람이고 나와는 어떤 관계를 가졌던 사람인지. 간단하게 말하면 최연준은 나와 같은 날 보호 시설에 들어왔던 사람이다. 내가 왔던 날, 최연준 역시 부모인지 모를 어떤 어른의 손을 잡고 시설에 들어왔다. 많고 많은 아이들 중 내 눈에 최연준이 들어왔던 이유는 단 하나, 나와 같은 웃음을 가지고 때문이었다. 부모가 자신을 버린 거라고는 절대 상상하지 못할 그 해맑고 순수한 웃음을 말이다. 처음이었다. 그렇게 부끄럼 많던 내가 또래의 누군가에게 먼저 말을 걸었고, 최연준은 그런 나를 본인 특유의 사람 좋은 웃음으로 맞았을 뿐이었다. 이제 와서 말하는 건데, 내가 보호 시설에서 버틸 수 있었던 건 다 최연준이 옆에 있어서 였다. 나는 원래 외로움이 많은 아이라 주변에 누군가가 있지 않으면 미치게 불안하고 우울했다. 처음 부모가 나를 버린 거다 깨달았던 날, 내 옆에는 유일하게 최연준이 있었고 그는 나를 자신의 품에 안았다. 그리곤 지금의 나보다 작았을 손으로 내 등을 쓸며 앞으로는 자신이 내 세상이 되어주겠다는 그런 말을 했다. 그때가 한… 열살 쯤이었나? 워낙 막 살아서 나이 따위는 희미하지만 최연준에 대한 기억만큼은 선명한 게 그 이유다. 우리는 그날 서로가 서로의 세상이 되어주리라 약속했거든.

사실 어렸으니까, 우는 애를 달래려고 그런 말을 했을지 모른다. 나 또한 그런 의심을 여태 한 번도 안 해본 건 아니었고. 우리가 몸도 마음도 점점 커가고 있을 무렵에 나는 흘리듯 옆에서 하늘을 구경하던 그에게 물어본 적이 있다. 너 예전에 나한테 했던 말 기억 나? 그… 내 세상 어쩌고 했던 말. 나는 무슨 이유에선가 최연준이 당연히 그 말을 기억하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로부터 벌써 몇 년이 지난 후였고, 얼마 후면 곧 보호 시설에서도 나가야 하는 나이였으니. 뭐, 그가 기억하지 못한다 해도 나는 평생 그 말을 가슴에 품고 살 생각이었다. 내가 무너지던 날마다 그 말 하나로 다시 일어났던 건 사실이었으니까. 순간적으로 별 생각이 다 들었던 것 같다. 기억하지 못한다면 왠지 실망할 것 같았고 기억한다면 그건 또 그거대로 문제일 것만 같아서. 내 물음에 한참 하늘만 바라보던 그는 피식 웃음을 터뜨리며 분명 그렇게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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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걸 까먹었으면 내가 너랑 이러고 있겠냐, 바보야. 나는 여전히 네 세상이고 넌 여전히 내 세상이야.’





최연준의 웃음을 마주한 순간 나는 그 말을 믿을 수밖에 없었다. 이미 한 번 내 세상이었던 사람들이게 버림 받은 적이 있었음에도, 다시는 누군가를 믿지 않겠다 다짐했던 게 무색하게도 나는 내 세상을 믿었다.

보호 시설에서 나올 무렵 나는 바깥 세상이 퍽 무서웠다. 한 번도 나가본 적 없는 세상에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막막할 뿐이었지. 최연준과의 약속도 시설을 나가는 순간 끝이 날 거라고 예상했어서 시설에서의 마지막 날 밤 나는 최연준을 찾아갔다. 그동안 내 세상이 되어줘서 고맙다고. 덕분에 무너지지 않을 수 있었다고. 마지막 인사를 하기 위함이었다. 별 하나 없이 유난히 까맸던 밤하늘 아래 나는 생각보다 덤덤했다. 처음에는 웃었고, 중간에는 아쉬운 마음에 시선을 발끝에 뒀다가 마지막에는 결국 눈물을 뚝뚝 흘렸다. 슬퍼 그랬던 게 아니다. 마지막 인사를 건네는 나를 세상이 되어주기로 약속한 그날처럼 꽉 안아서, 여기서 같이 나가 바깥에서도 다시 한 번 내 세상이 되어주겠다 약속해서. 심장이 터질 것 같은 벅참에 눈물이 났던 거다. 최연준은 그 뒤로 정말로 나와 함께 시설을 나왔다. 그것도 내 손을 꽉 잡고서.










안녕, 나의 세상
: 안녕, 내 세상










생각해 보면 우린 정말 거지보다도 못한 삶을 살았다. 후진 공사장 컨테이너 하나에 둘이 들어가 살면서 알바도 여러개 뛰고 몸이 아플 만큼 일했지만 나는 생각보다 나쁘지 않다는 생각을 했다. 환경은 전보다 훨씬 열악하지만 여전히 내 옆에는 그가 있었으니. 불과 2년 전까지 최연준의 존재 하나만으로 내 세상은 충분히 잘 돌아가고 있었다는 게 참 웃기다. 어느 날 밤, 자기가 처음으로 번 돈으로 은색 반지에 서로의 이름을 새겨오더니. 손에 끼고 있으면 빠질지 모른다며 체인으로 목에 걸어주기까지 하더니. 새벽에 평소처럼 똑같이 금방 다시 오겠다고 해놓곤 2년 째 소식이 없는 나쁜 놈이 최연준이었다. 하긴 우리가 무슨 사이였던 것도 아닌데. 우리가 쌓은 건 겨우 어릴 적 추억과 여태 함께한 정 뿐이었을 텐데. 최연준도 2년 전 그날 나를 혼자 두고 가면서 의문이었을 거다. 우리가 대체 어떤 관계였던 건지. 사랑이라기엔 너무 구질구질하고, 친구라기엔 너무 많은 걸 공유했으니. 헛웃음이 계속 나온다. 피식 세어나오는 웃음 소리와 달리 울음을 참느라 얼굴은 잔뜩 일그러져 못나 보인다.





“… 이럴 거였으면 그딴 거짓말은 말은 왜 해.”





드디어 뭔가를 결심한 듯 매트리스 위에서 일어났다. 자그마치 2년을 최연준 하나로 망가져 있었던 내가 망가진 몸을 씻어내기 시작한다. 갑작스럽긴 하다. 나는 내가 평생을 이렇게 살 줄 알았는데. 생각을 고쳐먹은 건 2년은 그리워 울고 잔뜩 망가졌으니 앞으로 2년은 멀쩡히 잘 살면 혹시나 다시 만날 수 있을지 모른다는 바보 같은 이유에서 였다. 예전 최연준이 일하던 곳을 내가 채워 일하고, 최연준이 자주 걷던 길을 내가 따라 걷고 최연준과 살던 컨테이너에서 계속 지내다 보면 언젠가는 최연준이 다시 찾아오지 않을까 생각했다. 인간은 원래 자신이 자주 다니던 곳을 한 번쯤은 생각하고 발걸음을 옮기게 되니까. 솔직히 오기다. 혼자 지내는 법을 알려주지 않은 네가 조금 많이 밉지만 혹시나 네가 다시 나타났을 때 내가 너보다 더 잘 살고 있으면 적어도 억울하진 않겠지. 근데 있지,





“난 네가 나보다 잘 지냈으면 좋겠어,“





온몸을 물과 비누로 헹궈내고 수건으로 대충 물기를 닦아낸 머리카락에서 물이 뚝 떨어진다. 하필 타고 내린 곳이 눈가라 내가 흘리는 건지 머리카락에서 떨어지는 건지 알 수가 없었다.





“그래야 내가 숨 쉴 수 있을 것 같아…“





또 한 번 이 거지 같은 세상에 버려진 것에 대한 원망은 없다. 피가 섞인 그들에게 버려진 것은 원망했을지 언정 그에게 버려진 것은 절대 원망할 수 없었다. 멍청한 마음이겠지만 내 가장 소중한 청춘을 함께했던 너를 감히 미워할 수도 없었다. 아, 이제서야 겨우 정의한 우리의 관계는, 너에 대한 나의 감정은,

우정보다는 조금 깊고 애정이라기엔 약간 모호한. 뭣도 아닌 그저 그런 것이었다. 그런 감정들과는 별개로 너는 내 세상이 분명했지만. 이상한 감정들이 가득했던 회색 컨테이너를 나와 마지막으로 바라보는 나의 입가가 씁쓸하다. 언젠가 다시 만난다면 그때는 네가 날 먼저 기억하길 기도하며 나의 세상에게 인사를 건넸다. 안녕, 나의 멋진 세상아. 덕분에 외롭지 않았어. 덕분에 많은 걸 배웠고, 이젠 혼자 일어나는 법도 배우네. 우린 서로의 얼굴은 기억하지 못한대도 서로의 이름만은 앞으로도 분명히 기억하겠지. 누군가는 비웃을 뭣도 아닌 관계가 언젠가는 확실히 마무리 될 수 있길, 그때까지 누구보다 잘 지내길 너무나 바라. 그래야 내 시간들이 억울하지 않을 테니. 나 역시 아등바등 살아볼게. 네가 내 세상이 되어준 시간이 헛되지 않게 정말 잘 지낼게. 고마웠어. 여전히 많이 고맙고, 앞으로도 고마울 거야. 아, 이러니까 나 되게 구질구질해 보이네. 그러긴 정말 싫었는데…





“… 안녕, 내 세상.“





내 세상에 안녕을 전할 용기가 생겼을 땐 어른이 되고 난 후였다. 그렇게 나는 곧 무너져도 전혀 이상하지 않을 녹슨 컨테이너를 등졌다. 분명 완벽한 안녕은 아니었음을 알고 있다. 그의 이름이 박힌 은색 반지는 여전히 목에 걸려 반짝이고 있었으니. 아마 내 이름이 박힌 반지 또한 그에게서 빛나고 있겠지. 이건 나중에라도 서로를 알아보기 위한 무언의 약속 같은 거라고 나는 그렇게 믿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