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도치's 사담방인데.. 이제 단편선을 곁들인

#[단편] 戀潸: 그리워하여 눈물흘리다

*이 글은 역사적 사건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픽션입니다.
보시는데 유의하여 주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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戀潸: 그리워하여 눈물흘리다
























































1498년 김일손(金馹孫) 등 신진사류가 유자광(柳子光) 중심의 훈구파(勳舊派)에게 화를 입은 사건이 일어나니 이를 무오사화(戊午士禍)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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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이 울었다. '그날'에도 하늘은 울었다. 하늘에 구멍이 뚫린 듯
폭우가 쏟아지던 '그날' 에도 하늘은 천지가 개벽하듯 우렁차게도
울었다. 하늘이 정한 운명을 거스른 자에 대한 분노였을까. 아니면
기어이 운명을 거스른 체 지옥의 아가리로 머리를 들이밀은 자에 대한 환영이었을까. 나는 미련하게도 아직 그날을 잊지 못한다.
당신을 죽이지 않은것에 대한 미련인지, 그대로 그곳에 내버리고
돌아선 것에 대한 미련인지는 묘연하지만. 
나는 그저 이렇게나마 당신을 그리워하지밖에 못하기에.





























뭇 백성들이 그리도 기다려 마지않던 가뭄이 끝나던 날,
바닥에 쏟아져내리는 장대비에 주변의 소리조차 다 잡아먹힌 날.
날이 서린 칼끝이 절박하게 주저앉아있는 이의 목을 향했다.
거창부원군(居昌府院君) 신승선의 막내딸 신제인. 이 나라의 중전이신 귀한 몸이 바닥에 널브러져 사시나무 떨듯 떨리고 있었다. 


제게 무엇을 바라느냐 발악하는 목소리조차 빗소리에 묻혀갈 때쯤,
칼을 겨눈 이 뒤로 작은 인영이 드리운다. 얼굴에 드리운 장옷을 거두자 희미하게 보이는 얼굴에 그녀의 표정이 일그러진다.
' 어찌하여 네가...! ' 차마 잇지 못한 말끝에 핏물이 스몄다.
풀썩 쓰러진 가벼운 몸체와, 그 모습을 그저 바라보는 또 다른 여인.
그리고 그녀를 바라보는 아직은 앳돼보이는 남성까지.












" 태야 "



" 네, 누님 "



" 이렇게까지 함께 해야겠느냐. " 
" 내 개인적인 복수에 불과하다."



" 누님의 일이 제 일이고, 누님의 뜻이 제 뜻입니다. "
" 제 가족도, 그날 모두 죽었습니다. "












칼끝에서 흐른 핏물이 강을 만들었다. 그녀의 아비가 죽어나간 그날처럼. 1498년, 미친 폭군이었던 국왕이 이조정랑 김일손을 비롯한 신진사류들을 무자비하게 죽이고, 《조의제문》을 편찬하였던 김종직을 부관참시하였다. 그리고 그의 편찬을 도왔던 제 아비마저 죽이라
명하였다. 자신의 삶이 송두리째 바뀐 연유가 바로 그날이었음을
그녀는 자조한다. 경남에서 이름있는 양반가의 고명딸이였던 그녀는 한순간에 홀로 남겨졌다.


초여주, 그게 그녀의 이름이었다. 허나 이제는 그 이름을 버리고자
한다. 한낱 여인의 몸이지만 그러므로 가능한 일도 있는 법이었다.
나는 이 이름을 버리고 다른 이로 다시 태어나겠다.
 ...내 아비를 죽이고, 어머니와 오라비에게 사약을 명하였던 당신의 반려가 되겠다. 그리하여 사는 것이다. 그러다가 죽는 한이 있대도
그리하여 한맺힌 복수를 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전국을 뒤덮은 폭우가 그쳐갈때쯤 궁으로 가마 한 채가 들어갔다.
바로 중궁전으로 향하는 가마 안에 마치 인형처럼 앉아있는 이는
잠행을 나갔다던 중전 신씨. 아니, 이제는 다른 이가 되었지만.


창을 열어 궁을 둘러보니 숙원궁에 불빛이 어른거렸다. 왕이 한낱
기녀에게 정신을 빼앗겼다는건 소문이 아니었나? 오히려 좋다. 국정을 기민하게 살피는 군주일수록 제 손안에 두기가 까다로운 법이니. 되려 여인과 향락에 빠져있는게 제겐 더 쉬운 상대였다. 조선.
이 나라에 군림한 폭군인 그가.


다행히도 바뀐 제 얼굴을 알아보는 궁중 사용인은 없었다. 하물며
중궁전의 지밀나인조차 잠시 눈길을 보내다 말 뿐이니 더 할 말은
없겠지. 국왕이 중전이었던 그녀를 얼마나 하대하였는지 느껴진다.
어스름하게 동이 트는 새벽까지 후궁과 놀아대는 판에
뭘 기대하겠냐마는 이제 그녀는 그때의 중전이 아니기에. 








무슨 수를 써서라든 왕을 제 밑에 두어야 한다. 저를 사랑하지
않더라도 신뢰라는 비수를 가슴팍에 쑤셔 넣어야 한다. 
그러려면 어떻게 해야 하지? 먼저 저 후궁이라는 기녀를 내쳐야 하나? 그녀가 중전 신씨로써 중궁전에 거처한 이후, 칠일간 고민한 것이
바로 그것이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왕은 한번도 그녀에게 걸음하지 않았고. 아마 중전이란 자가 잠행을 나갔다 왔는지도 모를 테지.
떨떠름한 감로차를 입에 머금다 삼킨 그녀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오늘은 정해진 날마다 돌아오는 합궁날이라 익히 들어 알고 있었다. 슬슬 국왕의 얼굴이 궁금해지던 차였으니 이보다 더 좋을 때가
어디 있겠는가. 제 가족을 몰살시키고 느긋하게 기녀들과 노닥거리는 그 작자의 낯짝이 궁금하다.

































피부를 곱게 만들어준다는 한약재와 꽃잎이 흐드러지게 떠다니는
탕에서 목욕재계를 하던 그녀의 눈이 가늘어졌다. 저야 물론 이미
명을 달리한 전(前) 중전과 외양은 비슷하다 자조하지만 혹여 그가
알아보면 어찌할까. 이래뵈도 지아비였으니, 바뀐 얼굴에 기민하게
반응하면 어찌해야 할까. 무릎이라도 꿇어 도리어 당황하게 만들어야 하나, 아니면 끝까지 당당한 태도를 보여야 하나.
간만의 긴장이며, 설렘이다. 답지않게 생각이 많아지는 것을 보니.


목욕을 마친 뒤 입은 속적삼에 비단옷을 걸치고 강녕전까지 걸어가는 길이 길었다. 본디 왕은 중전을 싫어했다 들었다. 아니, 단지
'싫어하였음' 보다 한층 더 복잡하고 얽힌 감정임을 보지 않아도 안다. 제게 눈길 하나 주지 않는 지아비를 보러 이 길을 반복하여 걷던
그녀의 심정이 어떠하였을까. 길 위에 기억이 있고, 걸음 속에 다짐이 새겨든다. 과거야 어찌하였든, 이미 신제인은 죽었다.
그러므로 이곳에 지금 내가 있으니, 미래는 다름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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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하여 그 화려한 낯짝을 바라본다. 긴장에 뻣뻣한 등허리를 괜히 곧게 뻗으며 바라본 그 이의 얼굴은 ...어리구나. 매일 밤 기녀들과 향락을 일삼고, 충신들의 머리를 베어 높게 걸어두며,밤에는 한낱 후궁의 치마폭에 싸여 잠에 든다는 이 나라의 주상. 그대가 내 가족을 죽였구나. 시큰해지는 눈에 힘을 주고 쳐다보니 마치 하얀 도자기를 빚은 듯 백옥같은 피부와 수려한 콧대, 그 아래 굳게 다문 입술이 차례로 보인다. 허나 그 눈은 어찌한가. 치켜올려뜬 형형한 눈이 삐딱하게 나를 바라본다. 순간 마주친 눈에 목구멍이 텁텁하게 말랐다. 왕의 눈가에, 저리 큰 흉이 있다니.










" 누구냐. 너는 중전이 아니구나 " 


" 감히 이 궁궐을 농락하느냐? "







" ........ "

 " 전하, 소인 중전입니다 "



 " 중전인 제가 지금 전하의 앞에 있는데
다른 이가 도대체 어디 있겠습니까 " 












미처 다잡지 못한 떨림이 목청에서 느껴진다. 왕의 칼이 목에 닿았다. 그날 닿지 못한 칼날이 이제야 닿는 것인가. 어린 왕은 너무나 치기어리다. 그 가벼운 칼날로 베어댄 것이 무슨 의미인지 정녕 헤아리지
못하면서. 마치 주변을 경계하는 맹수처럼 발톱을 내세운 그가 금세 씨근덕거리는 숨을 내쉰다. 고작 이런 자였다. 궁궐의 범도, 천하를
호령하지도 못한다. 그저 어리고, 여리고, 예민하여 금방이라도
부서질것만 같다. 


고작 이런 이의 명에 우리 집안이 처참히 와해되었다는 사실이
사무치게 다가왔다. 속이 울렁거리고 메슥거려 제대로 된 목소리를
낼 수조차 없다. 억눌린 목소리가 참지 못하고 튀어나왔다.









" 저를 정녕 죽이시려는 셈입니까. "


" 처참히 폐위시키고 사약을 먹여 피를 토하게 하실 작정이십니까. "


" ..저는 중전입니다. 이 나라에서 중전은 오직 저뿐입니다. "


" 억울합니다 "







그래. 나는 억울하다. 내가 중전이 아님을 오해받는 지금이 아니라
내가 그간 걸어왔던 삶이 억울하다. 길에는 기억이 있다 하였지.
당신이 나의 삶을 송두리째 짓밟아버린 이후 나의 길은 온통 가시밭길이었다. 그러니 이 울음은 나의 울음이다. 


....그런데 어찌하여. 어찌하여 내게 칼을 겨눈 당신의 눈자위도 시리도록 붉어지는가.











" ............. "









" ............. "
















그날 밤. 왕은 더이상 아무런 말도 덧대지 않고 강녕전을 나갔다.
아직 남아있던 그 긴 밤을 그는 어디에서 보냈을까. 그리도 총애한다던 후궁 장녹수가 있던 숙원궁에서? 그게 아니라면 기녀들을 위해
사시사철 연등이 꺼지지 않는다는 경회루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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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지금 마주한 주상이란 작자는 전래없던 폭군이다. 그는 충신이라 추앙받던 자헌대부 김처선의 극간에 그의 다리와 혀를 잘라 죽였으며, 이미 죽은 자의 무덤을 파헤쳐 다시금 그의 목을 베는 짓도 서슴없이 했다. 그런 자가 이유없이 저를 그냥 내버려 두고 가버렸으리가
있겠는가. 분명 자신의 심기를 거슬렸는데도 불구하고.














그날 아침, 생각이 많아진 체 중궁전을 거닐던 차에 내게 서찰이 하나 도착했다. 간단한 안부로 시작하는 서찰에는 거사를 치르기 위한 준비를 하고 있다는 소식과, 이 서찰이 닿을 즈음이면 한양에 다다른다는 소식. 그리고 내가 가장 기다렸던 왕에 대한 소식이었다.


서찰에 따르면 왕의 어린시절은 외로웠다고 하지. 그의 아버지였던
성종께선 재대로 된 사랑 한 번 주지 않았고, 왕은 넓은 궁에서 홀로
궁녀들에게 무시받기나 하는 삶을 살았다고. 아, 혹 이게 주상이 자신보다 나이가 많은 숙원 장씨. 즉 장녹수에게 그리 의지하는 이유일까. 어머니었던 중전에게 사랑을 못 받고 커서, 아직 크지 못한 내면이 그렇게나마 위로받고 있는것일까.


장씨는 그런 그의 유약한 속내를 알아보고 그리하여 이 궁에 머무는 거겠지. 속이 훤히 보이는 행동에 헛웃음이 나왔다. 아, 결국 그녀도 어리석구나. 사실 내게 서찰을 보내어 도움을 준 태조차도 아직 모르는 것이 있었다. 왕의 어미였던 중전. 그녀의 말로가 어떠하였는가.
폐비 윤씨로 강등되어 사약을 마시고 죽었다지.
이제 어째서 어젯밤 주상의 눈시울이 시리도록 붉어졌는지 알았다.
이제 그가 왜 나를 내치지 못하였는지를 알았다.
이제, ...어찌하면 그를 내 손 아래 둘 수 있는지도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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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또한 그의 유약함을, 그의 외로움을 이용해야겠구나.
그간 장씨는 그의 외로움만을 딱히 여겨 그를 제 밑에 둘 수 있었겠지. 허나, 단지 연민만을 어루만진다 하여 그가 저를 진심으로 사랑했겠는가. 결국 그의 갈증과 애증이 향하는 존재는 제 어미였던 중전이였을텐데. 깨달은 진실에 고양감이 몰려들었다. 나는 결국 그를 사랑해야 하는가. 진실은 어째서 이리도 매정한가. 이내 떨리는 손을 주먹쥐어 꾹 누르니 손톱이 살에 파고드는 고통이 선연했다. 그래. 이깟것보다 더한것도 각오하고 들어온 궁이 아니였는가.
그러니, ...이제 저 어린 범을 나의 것으로 길들여야겠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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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요한 밤이었다. 입술을 짓씹으면서까지 다짐한게 무색하게도
요 며칠간은 중궁전에서 발을 떼지도 못했다. 그도 그런것이 강녕전에 자객이 들었다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궁은 생각보다 침입이 수월한 곳이었고, 제대로 조정을 돌보지 않는 국왕 덕에 궁의 사용인들도 해이해져 있던 터였다. 강녕전에 든 자객은 그곳에서 바로 죽었다 한다. 아무런 이유도, 연유도, 뒤에 누가 있었는지도 묻지 않은 체. 변명도 구걸도 못한 죽음이었다. 그런 자잘한 사건들은 중요하게
여기지도 않는다는 걸까.


왕은 자신의 침전인 강녕전에서조차 칼을 빼들어 자신을 죽이려는
사람을 죽였다. 그의 삶이 어떠하였는지, 침상에서 잠에 들 때조차
곁에 칼을 두고 사는 삶은 서글펐으나 이유를 부여하고 싶지는
않았다. 나조차도 그를 죽이러 궁에 들어온 몸이기에. 입안이 썼다.
나는 자주 궁에서 생각이 많아진다.








그리하여 결국 마주본 그의 얼굴은......


여전히 오만하고 시리다.














" 합궁일이 오늘은 아닌걸로 아는데. " 



" 강녕전에 자객이 들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



" 중전은 뒷북이 심하군. 이미 며칠 전에 일어난 일이다. "



" 그리하여 숙원궁에 호위를 늘려주셨다고도 들었습니다. "
" 중궁전엔 사람이 없는 터라 소식이 자주 늦어 지금에서야
알았습니다. "












작은 호롱불만 켜진 강녕전 안. 곧 나갈 채비라도 하는 듯 속적삼에
곤룡포를 걸친 왕의 얼굴이 의아한 듯 기울어졌다. 여전히 삐딱하고 형형한 눈빛으로, 마치 내가 오지 말아야 할 곳을 온 것처럼.
왕의 얼굴은 오늘로써 두번째로 마주보는 것이지만 그 얼굴은 결코
어색하지 않았다. 강녕전으로 걸어오는 길에서조차도 잃지 않고 떠올린 얼굴이기에. 이 얼굴이 볼썽사납게 일그러지다가도 결국에는
무너지게 만들 것이다.














" 그래서? 중전이 아는 것이 도대체 무슨 의미가 있지? "


" 잠시간 거처를 숙원궁으로 옮기신 것은 저를 은연중에 걱정해주신 이유이시죠? "


" 뭐라? "













왕의 얼굴에 순간적으로 조소가 띄었다. 비웃듯 좁혀진 눈썹과
우스운 듯 피식 올라가는 입꼬리. 내 말이 퍽도 어이없었는지
드러나는 표정이 평온한 내 표정을 보고 서서히 굳는다.








" 혹여 중궁전에서 머무셨다가 자객의 침입이 드리울것을 걱정하셔서 숙원궁에 머무신것 아닙니까. 그대신 호위를 늘리셨고요. "


" 전하께서 은연중에라도 저를 생각하시고 걱정해주시는것.
익히 깨닫고 있습니다.

그리하여, ..저 또한 이제부터 전하를 돌보아 드리겠습니다. "





" 하..! 이제 보니 건방지기까지 하구나. 네까짓게 뭐라고- "



" 중전이지요. "



" ....... "







" 한 나라의 군주이자 지아비이신 분을 
마땅히 돌보아 드릴 의무가 있는 사람. "


" 지금까지는 제가 어리석어 소홀했지만 
지금부터는 그러지 않으려 합니다.

미숙하겠지만, ... 저는 중전이ㄴ, "





" 꺼지거라. "




" ......... "




" 꺼지라고 "












강녕전의 문이 등 뒤에서 닫혔다. 왕은 내게 서슴없이 상스러운 말을 내뱉었고, 이제 아마 며칠간은 그의 얼굴을 마주하기 힘드리라 예상한다. 왕과 독대를 한 것은 겨우 두번이지만 그가 어떤 이인지는 알겠다. 썩어빠진 연민과 비뚤어진 증오, 닿지 못하고 타버린 애정이 꽝꽝
얼어 하나의 덩어리로 뭉쳐진 인간. 바스라진 잿가루를 탄 잿물처럼
혼탁하고, 어지러워 향락과 술에 기대야 온전할 수 있는 정신머리로 지금까지 잘도 살았던, 살아 내었던.


이제 그렇게 굳어버려 안전하던 호수에 돌을 던졌으니 그 꼴은
어떠할까. 돌멩이 하나로 광활한 호수를 출렁이게 할 수는 절대
없지만 내가 원한것은 가느다란 실금뿐이었으니. 나는 그러기 위해
몇번이고 돌을 던질것이고. 어찌 생각하면 그가 나를 절대 죽일 수 없다 가정했기에 할 수 있는 도박이고 객기였다. 허나 애석하게도 내게 남은것은 그런 것 뿐이니. 손이 부르트고, 찢기고, 허물어진대도 돌을 던지리라. 그 호수에, 얼어버린 그 기억에.






























그 날 이후로 한 달이 지나갔다. 나는 하루가 멀다 하고 강녕전을 찾았고, 뻔뻔하게도 드나드는 내 모습을 보며 그는 소리치며 분노하기도, 서슴없이 상스러운 말을 내뱉기도 하였지만 그도 결국은 한순간이었다. 그를 보는건 항상 사나운 괭이를 다루는것 같아. 매일이 살얼음을 걷는것같대도 그저 고깝기만 했다. 어찌하였든 그가 숙원궁을 찾는 날은 점차 줄어갔고, 그만큼 매일 마주하는 얼굴은 긴장이 풀려갔으니.


그 날 또한 그저 그런 밤이었다. 그 날은 내가 그를 보러 강녕전에 걸음한지 달포가 지났을 즈음이었고, 여전히 내게 눈길 한번 없는 그를 보다 슬슬 중궁전으로 돌아가려 자리에서 일어났을 때쯤 처음으로 그가 내게 말을 걸었다. 날이 서린 말투도, 깊게 잠긴 체 소리치는 목소리도 아닌 그저 자신의 말로. 아무렇지 않은 듯 담담히 울리는 조금 낮은 목소리로.









" 중전은 내가 무섭지 아니한가. "






" ............ "



" 무서워함을 물어보시는 겁니까. 
아니면 두려워함을 물어보시는 겁니까. "





" 그게 무슨 차이가 있지, "





" 전하를 마주뵐때면 무섭진 아니하나 두렵습니다. "


" 마음이 꺼리거나 염려스러움을 두렵다는 단어로 지칭한다면..... 
항상 그렇습니다. "








" 그러니, ..그게 무슨 의미가 있냐 물었다. "





" .......... "


" 전하께옵서는.. 매 순간 긴장을 놓지 못하고 사시는것 같으시기에. 조금의 위협이 있으면 서슴지 않고 곁에 두시는 칼이 
언젠가 전하를 베어낼까, 그것이 두려워집니다. "









왕의 말이 일순 멎었다. 그날은 유독 날씨가 좋아 열어놓은 창에서
선선한 바람이 들어왔기에. 나는 돌아본 그의 얼굴을 시린 눈으로
담아낼 수 있었다. 앉아있는 왕의 모습이 순간 어린아이처럼 보였던
것은 분명 바람의 탓이리라. 그리하여 시큰해진 눈도, 저도 모르게
흐른 눈물을 닦아내는 왕에게 다가가 그를 마주 안은 것도
결국 다 바람의 탓이리라.







































그리고 그는 거짓말처럼 변했다. 자주 중궁전에 걸음했고, 가끔은
다과를 몰래 가져와 손에 쥐여주기도, 밤에는 곁에 나란히 누운 체 잠을 자기까지 했다. 의아한 일이었다. 어찌 보면 이런 나날들을 위해 한 달이 넘는 기간동안 무수히 많은 헛걸음을 해야 했지만. 지금 내게 보이는 그의 모습은 너무도 순한 양 같아서. 고양감이 들고 이질적이기까지 했다. 나와 대화를 하며 눈을 마주보고, 순간마다 살풋 웃으며
풀어지는 모습까지.


왕은 결국 제 어미를 그리워하고 있었다. 역시 그에게 중전이라는
존재는 애증이었구나. 세상 모든 아이가 그러하듯 세상이 무너질 듯 증오하다가도 조금의 애정에 이리도 마음을 여는구나. 다시금 깨달은 진실은 가슴을 따끔거리게 만들었다. 어찌 이런 이가 내 가족을 죽인 이일까 하는 의문까지 들어왔다. 드디어 미치기라도 한 걸까. 하해와 같은 마음씨를 지닌 중전이 되어보겠다고 내 다짐까지 바꿔버린 걸까. 사흘에 한 번씩 편지를 보내오는 태는 매일 거사의 진행을 보고하고, 나는 왕의 동태를 살피며 그에게 세부적인 사항을 지시한다.
애초에 그런 관계였다. 복수를 위해 서로가 서로를 뭉개뜨리는.










어두운 밤. 몸을 부르르 떨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여름이 다 지나가는 계절인데도 손 발이 차갑고 온 몸에 흐른 식은땀이 식으며 한기가
몰려왔다. 뒤따라 일어난 왕이 놀라며 내 몸을 살폈다. 제대로 말을
잊지 못하는 나를 걱정하고, 흐른 땀을 닦아주며 혹 악몽을 꾸었냐,
세심히도 묻는 말이 이리도 잔인할 수가 없다. 조심히 이마를 짚는
손은 뜨겁고, 귓가에 닿는 말은 다정하다. 이 모든게 다 지나가는
순간일 뿐이라 속삭이며 끌어안는 품 또한 아늑하다.
아늑하고 아득하여 어쩐지 두렵다. 이제는 나조차가 두려워진다.




































며칠 뒤, 나를 찾아온 이가 있었다. 처음 보는 얼굴이었지만 대단한 감흥따윈 없었던 이. 언젠가 한번쯤은 직접 찾아오겠거니 예상하였지만, ..이렇게 이르게 올 줄은 몰랐는데. 인내심이 부족한걸까. 그도 아니면 지금 상황조차 못 견딜만큼 불안한걸까.
숙원 장씨.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국왕이 가장 총애하였다던 .
숙원궁의 주인. 장녹수가.


중궁전의 문을 열고 나가보니 태연히도 서있는 그녀가 있었다. 어찌 보면 연적. 투기의 대상이 됐었을지도 모르겠지만, 어떻게 보면 나와 그리도 닮은 이. 허나 어리석은, 자신의 아집과 치기로 뭉쳐져 있으니 제대로 앞을 보지 못하고 제자리걸음 뿐이겠지. 찬찬히 내려다보다 눈을 마주하니 생각보다는 평온한 모습으로 나를 마주했다. 물론, 그게 언제까지 갈지는 모르겠지만. 










" 중전마마를 뵙습니다. 어찌, 뵐때마다 새로운 느낌이니 
인사를 어떻게 올려야 할지 묘연하여. "




" 지금처럼 그대로 하게. 예의바르게. "




" ......... "


" 바람이 좋으니 누각에 올라 다과를 나누시는게 어떻겠습니까. 
계속 이곳에서 얘기하기도 그러니. " ((싱긋








마치 어린아이를 다루듯 나긋한 말투였다. 내가 어른이고, 내가 너보다 이곳에 오래 있었느니, 너는 내 말을 따라야 한다는 투의 우스운 텃세. 중궁전의 구조를 이미 꿰고 있다는 듯 뒤뜰, 누각이 있는 곳을 주시하는 시선이 느릿했다. 








" 아니, 그냥 여기서 얘기해도 좋아. 
내게 하고 싶은 말이 있어 온것 아닌가."

" 요새 내가 잠을 설쳐 몸이 따분하니 할 말이 있으면 어서 하게. "





" ............. "


" 전하께서 요즈음 중궁전에서 밤을 지내신다 들었습니다. 
매번 함께 지내던 밤을 요 며칠 홀로 있으니 낮에도 적적해서요. "


" 중전마마께 안부도 전할 겸 다과를 나누러 왔는데 
몸이 안좋으시다니, 아쉽지만 어쩔 수 없지요. "








" 아쉬워하진 말게. 그대가 기뻐할 일이지.
 부부가 금슬이 좋은건 곧 나라의 평안 아니겠나. 

이제는 슬슬 새로운 취미를 찾아보는것도 좋을것 같네. "










입가에 미소를 띠고 잔잔한 말투로 대답하니 그녀의 휘어진 입꼬리가 잠시 멈칫했다. 아마 대화가 원하는 대로 안풀리는 것이겠지. 딱 봐도 왕이 선물한 듯 보이는 귀한 노리개와 여러 머리 장식. 수수한 차림인 나와 퍽 대비되는 모양새지만 전혀 잘나보이지 않는걸. 누군가의 투기의 대상이 되는걸 즐길 여유도, 그런 취미도 없지만 어떻게든 나를 깔아뭉개려는 자라면 한번쯤 처지를 일깨워주는것도 나쁘지 않겠지.


어찌 보면 안타까운 이였다. 사람의 본질은 결국 더 큰 부와 명예를 위해 달려드는 불나방과도 같겠지만, 그저 하나의 가능성에 모든것을 갖다바쳤으니. 왕의 공허한 애정과 중전에 대한 증오. 그것 하나만을 믿고. 필히 실망과 증오는 상대에게 큰 기대나 애정이 있었을때 비롯되어 오는것이지. 아무리 증오하던 존재라도 곁에서 그를 계속 상기시켜준다면 언젠가는 그 이를 제일 먼저 내칠거라는걸. 어찌하여 간과하지 못해서. 







한참 밑에서 나를 올려다보는 눈빛에 여러 감정이 밑돌았다. ..그러니 장녹수. 그대가 잘못 생각한거야. 그대가 정말 그를 제 밑에 두고 싶었다면 그 자리가 아닌 이 자리를 탐했어야 했어. 물론, 꿈꿔봤으려나 모르겠지만.



























더이상 말이 없는 그녀를 내버려두고 중궁전에 들어오니 이상하게도 숨이 막혀왔다. 내가 지금 있는 이 궁은, 이 성은 너무도 편협하고 답답한 곳이라고. 고개를 돌려 주위를 둘러보니 벼루에 먹을 갈다 만 자리가 보였다. 이제 이 곳은 내 향이 아닌 다른 이의 향이 섞여서 나고, 홀로 있을때보다 함께 있을때가 더 많다. 그만큼 답신하지 못한 서찰은 쌓여가고, 나는 무뎌져가겠지.










가장 최근에 온 서찰을 뜯어 읽어보았다. 익숙한 태의 글씨다. 
순간 머리가 깨질듯 아파왔다. 



궁에, 누가 왔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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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하, 소인 거창부원군 신승선 아뢰옵니다..! "


" 석 달 전, 제 딸이자.. 중전이셨던 신가 제인이 죽었습니다. "




" 전하..! 부디 왕실을 더욱 오롯이 챙기시어 잘못된 부분을 바로잡아 엄밀히 하소서. "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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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뭘 믿고 그리 말하는가. "


" .....중전은 오늘 아침까지 나와 함께 있었어. "




" 그대야말로 감히 이 지엄한 궁을 모함하는것 아닌가. "














 " ....전하..! "












" 감히 이 궐에서 입을 함부로 놀린 저 자를 옥에 가두거라. "



" 중전이 죽다니, ..... 늙어서 노망이라도 났나 보지? ㅎ, "


" .......... "














어이가 없다는 듯 올라갔던 그의 입꼬리가 금세 내려갔다. 아무런 동요도 없다는 듯 자리에서 내려온 왕은 그대로 정전을 나가버렸고, 홀로 남겨진 이의 비애는 하늘을 찌를 듯한 통곡이 되었다. 8월의 마지막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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궐의 뒤뜰 후원_


 처음이었다. 그가 중궁전이나 강녕전이 아닌 곳에서 보자고 한 것은. 아 결국, 그와 만난 것인가..? 태가 보내온 서찰에는 본래 중전의 아비, 신승선이 입궁하였다는 내용이 적혀있었다. 내가 이 궁에 들어온지도 어렴풋이 석 달이 다 되어가니 딸의 장례를 마치고 걸음을 재촉하였다면 이맘때가 되겠구나. 이제는 흐릿하여 혼미한 미래에 대한 불안감보다 단지 씁쓸함이 앞섰다. 지금 왕과 마주하고 있는 순간까지도. 


그가 화를 내며 진실을 추궁한다면 어찌 답해야 할까. 처음에는 뻔뻔히 굴었지만 지금은 상황 자체가 틀어졌으니. 그래. 차라리 그렇게 분노해주었으면. 날이 서린 칼날을 내게 들이밀고 온갖 상스러운 말을 내뱉으며 왕실을 능욕하였으니 처참히 죽이겠다 저주해주었으면. 나는 부디 그래주길 어렴풋이 바랐는지도 모르겠는데.









" ............ "









" ...거창부원군 신승선이 다녀갔네. "

" 그이도 이제 많이 늙었지. 노망이 날 만도 해. "





" .......... "


" 그대가 죽었다더군. "







" ........... "








" 참 우습지 않나. 그대는 지금 버젓이 내 눈 앞에 서있는데. "


" ....중전이 죽다니. 이 나라에서 중전은 오직 그대뿐인데 말이야. "














의심이라고는 전혀 해본적도 없다는 듯 담담한 목소리. 손을 뻗어 바람에 날린 잔머리를 정리해주는 손길이 조심스럽다. 
마치 제 앞에 서있는 나라는 존재를 확인하기라도 하듯, 이마에서 잠시 머무르던 손길이 느리게 점점 아래로 스쳐내려갔다.
그러다 마침내 다다른 목빗근에서 멈칫하는가 싶더니 이어진 손길은 귓불을 살살 쥐었다 놓으며 마치 나를 재촉하듯 군다.

오롯이 나를 바라보는 눈빛. 귓불을 쥐었던 손은 이제 내 귓바퀴를 살살 쓸어내리고 있고, 가끔씩 뺨을 스치는 엄지손가락은 어떤 눈물이든 닦아낼 준비를 하고 있는것만 같다. 제대로 호흡하기가 힘들고 잇새가 바르르 떨려온다. 아무런 흔들림도 없이 그저 나를 직시하는 눈빛에 도리어 내 시선을 어디에 둘지 차마 모르겠어서. 



치가 떨릴만큼 역겹고, 심장이 마치 내달리기라도 할 듯 요동친다. 차마 마주치지 못한 시선에 어렴풋이 그의 얼굴이 담기는것 같았는데.


어느새 지척에서 느껴지는 그의 숨결에, 억눌린 목소리가 귓가에서 들려온다.











" .......... "






" .....그대가 중전인데, ..응? "
















지금 걷잡을 수 없이 호흡이 가빠지고, 눈가가 시리도록 아파오는건 진짜 중전이였던 그녀의 눈물일까. 이제 시야에는 그의 얼굴밖에
보이지 않는다. 아, 언젠가 한번 눈가의 저 흉을 더듬어보고 싶었던 적이 있었는데. 






























.
.
.


" ............. "





" .....나들이를.. 나가고 싶습니다. "












" 어...? "











" ..전하와 함께 궁 밖으로 나가 나들이를 즐기고 싶습니다. "









왕이 한 걸음 물러났다. 잠시 말이 없자 고개를 들어 그를 바라보니 목울대가 움직이는게 보였다. 숨을 고르곤 그렇다면 곧 나들이를 나가기 좋은 의복 한 벌을 선물하겠다 대답하는 그의 얼굴이 불투명하다.






그날 밤, 어떤 심정으로 중궁전에 되돌아왔는지는 아직도 기억나지 않는다. 그날 왕은 나와 함께 밤을 보내지 않았고, 그 덕에 나는 홀린듯이 태에게 서찰을 남길 수 있었다. 글씨체마저 허물어져 제대로 알아볼 수 없던 서찰의 내용은 하루빨리 거사를 진행해야 한다는 내용이었다.





































왕은 내 터무니없는 요청을 아무런 말 없이 들어주었다. 그가 말했던대로 얼마 지나지 않아 명나라에서 들여온 귀한 비단으로 지었다는 의복이 왔고, 우리가 궁 밖으로 나간건 9월 초하루.
퇴궁하는 궁인들 사이에 섞인 체 궁 밖을 나오니 거짓말처럼 요동치던 심정이 가라앉아지는 기분이였다. 그저 감정을 잃어버린것처럼 아무렇지 않았다. 웃음조차도, 눈물조차도.


입가에 웃음기를 띤 체로 나오니 좋지 않느냐며, 혹 가고 싶은 곳이 있냐 묻는 왕의 얼굴을 가만히 바라봤다. 어찌 보면 이리도 순수할 수가 없는 얼굴. 우리 앞에서 퇴궁한 궁인들이 모두 제 길을 가자 탁 트인 거리가 눈에 들어왔다. 해가 지는 저녁시간. 광화문의 앞은 시끌벅적하나 어수선하다. 그러다 순간, 익숙한 이와 눈을 마주쳤다.





아, 그가 나를 보며 확신에 찬 듯 손짓한다. 결연한 눈빛이다. 의아한 순간이었다. 모든 시간이 마치 느리게 흘러갔고, 나는 왕의 곁이 아닌 태에게로 다가갔다. 걸음이 점차 빨라지며 왕과 멀어져가자 아무것도 모르는 그의 손이 나를 붙잡으려 뻗어나간다. 그러다 순간, 더 뻗지 못하고 그대로 떨어진다.












_'퍽 '












" ............ "








" ..... "






















궁 위에서 쏜 화살이 그대로 그의 등에 박혔다. 차례로 어깨와 다리에도 하나씩 박힌다. 이제 내 곁에는 태가 있고, 나는 무릎을 땅에 댄 체 거칠어진 숨을 들이쉬는 왕을 바라본다.




어디선가 행인들의 비명소리가 들리운다. 무슨 일이냐 웅성거리는
소리도. 허나 그 모든 것들이 불투명하다. 그저 귓가에 들리는건 누구의 것인지 모를 거친 숨소리이다. 등에 박힌 화살에서 번져나오는 핏물이 점점 바닥을 스몄다. 실핏줄이 온통 터져 붉어진 눈으로 그가 나를 올려다본다. 마치 태초의 모습이다. 내가 그와 처음 마주한 날.
온통 날 경계하는 모양새로 나를 노려보며 씨근덕거리는 숨을 내쉬던 유약하고 어리석은 왕.





















" ............ "


" ....굴욕적이십니까. "






" ............ "







" 우리의 군이 곧 궁을 점령할겁니다. "




" .......그대에게... 나, 말고,... 우리가 있었나...? "




" .... 우리의 승리입니다. 당신의 패배이고. "




" .....그대의, 진짜 이름이.. 뭐지..? ...신제인이., 아닌 ..."




" 당신이 내 가족을 모두 죽였을 때 내 이름은 버렸어. "








" ...하...! 하, 하하.... ... "








내 대답이 웃기기라도 한 듯 왕이 웃음을 터트렸다. 그 역시 잠시 웃다 못해 다시 신음으로 변하긴 했지만. 제대로 몸을 가두지도 못하면서 별안간 들썩이는 어깨에도 피가 흥건하다. 


그의 눈이 형형하다. 올라간 입꼬리와는 달리 눈가 또한 붉게 물들었다. 그의 눈에 비친 나는 어느 모습일까. 빗방울이 하나 둘 떨어지기 시작하다 금세 길을 흠뻑 적셨다. 아무 말 없이 그를 바라보던 차에 태가 내게 묻는다.









" 지금 여기서 베시겠습니까. "


" ........... "





" .....누님, .. "




" 지금 여기서 죽이면 이 반정의 굴욕을 그대로 잊게 되지 않겠느냐. "

" ....최대한 오래 살려두어 대대로 기억하게 해 줘야지. "




" 강화도로 유배시켜라. "








" ............. "


















온 몸이 떨려왔다. 이로써 내 복수를 다 했는데도. 홀가분하지도, 웃음이 나오지도 않았다. 오히려.. 가슴 한 구석이 텅 빈 듯 공허하기만 했다. 그렇게 그를 뒤로했다. 태는 나의 뒤를 따랐고. 그의 모습은 더 이상 보지 못했으나 그저 허무했다. 


그리하여 나는 이 날을 잊지 못한다.
복수의 끝이자 화려하고 허망한 승리였다.


어디선가, 우리의 환영이 보였다.

그래.
완전한 환영이.
























































































1506년 9월, 유순정(柳順汀), 성희안(成希顔) 등이 폭정을 일삼던 왕을 몰아내니 이를 중종반정(中宗反正)이라 한다. 


강화도의 교동으로 유배된 왕은 그곳에서 역병으로 두달만에 죽었다. 다만 죽기 전 이리 말하니, 중전 신씨가 보고 싶다 하였다.


왕이 폐위되었음으로 군호를 정하니, 
그리워할 연(戀) 눈물흘릴 산(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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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산군으로 하라.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