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녀지묘(魔女之猫)

마녀지묘(魔女之猫) 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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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녀의 고양이)

-마녀의 고양이-

W. 설하










트리거 경고,

폭력적인 장면이 다수 존재하며, 거부감을 일으킬 수 있는 잔인한 묘사가 있을 수 있습니다.

주의해 주세요.










“어찌된 것이냐.”




맹수와 닮은, 낮게 으르렁거리는 듯한 황제의 음성에 황의가 몸을 움츠렸다. 그, 그것이-, 하며 말을 잇지 못하는 꼴이 매우 보기 거슬리는지라. 황제가 제 앞에 놓인 탁상을 쾅-, 내리치자, 황의의 그 볼품없는 어깨가 잔뜩 떨려왔다. 어찌된 것이냐 내 물었다. 하는 황제의 말에 황의가 고개를 조아리며 입을 열었다,


독이렸다. 화빈당에 나뒹구는 찻잔의 바닥과 안쪽에 얇게 발린 것은 분명히 독이었으니, 그 사실을 안 황제가 시중을 들었던 어린 궁인을 찾아 가둘 것을 명하였으나, 그 어린 궁인은 도망친지 오래여라. 황제의 미간에 힘줄이 솟았다. 분노였다. 저도모르게 속에서부터 들끓으며 고함을 내지르는 분노에 황제가 입술을 꾹, 깨물었다.




“고정하십시오, 폐하.”




석진은 그런 황제가 못내 불만스러울 뿐이었으니, 제 말에도 이성을 잃은 채 황의를 닦달하는 그 모습을 보던 석진이 한숨을 내쉬었다. 마녀가 쓰러졌다. 그 무엇이 대수라고. 어짜피 별볼일 없는 대역 죄인일 뿐이지 않은가. 허나 이 말을 입 밖으로 내었다가는 제게 들이닥칠 황제의 분노를 감당할 자신이 없었기에, 석진은 입을 다무는 쪽을 택했다.




Gravatar“...?”




활짝 열린 창문, 마녀의 침소에 크게 자리한 창 밖에서부터 불어오는 바람에 못내 익숙한 기운이 섞여있는지라, 석진은 무심결에 창 밖으로 시선을 던졌다. 새카만 복장에 새카만 복면, 분명, 제가 아는 이일 터. 제가 시선을 둠과 동시에 재빠르게 그림자 속으로 모습을 감추는 인영에 석진이 의아한 낯을 내보였다. 저자가 이곳엔 어인 일로 걸음한단 말인가, 하며. 그 복장이나 기운은 석진에겐 익숙한 것들이었으니, 의문을 속에 감춘 석진이 다시금 황제의 곁으로 다가섰다.


온통, 수상한 것들 뿐이었다.










마녀가 눈을 뜨질 않는다. 황제는 사람을 풀어 마녀가 먹은 독에 대해 낱낱히 조사하게 하였으나, 끝끝내 그 독의 성분을 명확히 알아오는 이는 없었으니, 대전에 황제의 호통이 끊이질 않았다. 알아내지 못하면 네들이 목이 날아갈 것이다, 하는 황제의 협박어린 명에도 그 맹독을 알아내는 이가 없었으니, 죽은 듯 쓰러져있는 마녀의 안색만이 파리하게 질려갈 뿐이었다.


그 날, 저와 홍월의 다과 시중을 들었던 어린 궁인 또한 찾아헤멨으나, 그 흔적을 찾을 수가 없었다. 땅으로 꺼졌나, 하늘로 솟았나, 분명 얼굴까지 마주하였거늘, 그 길로 화빈당을 나섰단 어린 궁인의 모습을 본 이가 하나 없었으니, 황궁을 쥐잡듯이 뒤지고, 궁 내의 모든 궁인들을 끌어모아 그 얼굴을 확인하였으나, 그 비슷한 이 조차 보이질 않았다. 황제의 한숨이 짙어졌다.


사람들은 황제가 미쳤다 떠들었다. 해가 뜨기 직전의 어스름한 새벽만 되면 황제의 걸음은 화빈당으로 향하였다. 그 뒤를 퀭한 안색의 도제조가 뒤따르니, 해가 뜨고, 조찬이 시작되기 직전까지 황제가 화빈당서 나오질 않는다더라-, 하는 소문은 궁인들의 입을 타고, 대신들의 입을 타고, 흘러 흘러 수도까지 퍼졌으니, 호국의 39대 황제가, 이제는 마녀에게 홀렸다 하더라-, 는 소문이 파다했다.


석진은 제 이마를 부여잡은 채 책상에 머리를 박았다. 제 주군은 어찌하여 이리도 어리석은 일을 벌인단 말인가. 몰래 사람을 시켜 돌아본 수도의 거리에는 온통 황제와 마녀의 이야기로 가득하니, 민심을 잃기 직전과도 같았다. 처음에야 마녀가 빨리 자리를 털고 일어나길 바라던 석진 또한, 이제는 그냥 콱, 숨통이 끊어져버렸으면-, 하고 바라게 되는 것이었다. 석진은 한숨을 내쉬었다. 초와 의학에 능한 이가 있다면 황궁으로 불러들이거라, 하는 석진의 명을 받은 그 수하가 방을 나설때 까지도, 석진의 찌푸려진 미간은 펴질 줄을 몰랐다.










"도제조를 뵙습니다."




석진은 찬찬히, 제 앞의 낯선 사내을 살폈다. 몸에 걸친 옷이나, 그 손에 낀 가락지나, 하나같이 값이 나가 보이는 것들을 죄 걸친 채 찾아온 이를 보는 그 눈빛이 사납기 그지없어, 낯선 사내를 직접 이끌고 온 석진의 수하가 제게 불똥이 튈 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눈을 질끈 감았다 떴다.




"약초와 의술에 능하다고?"


"예, 의술은 어디 내놓기 부끄러운 실력이라 생각하오나, 소인, 어릴 적 산속에서 살았던 세월이 있기에 온갖 초에 대해서는 잘 안다 자신할 수 있습니다."


"허면, 독초에 관해서도 잘 안다 자신할 수 있느냐."


"예,"


"허면 독을 치료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은 아닙니다. 섭취한 독이 무엇인지만 안다면, 해독제가 존재하는 이상은 치료할 수 있습니다."


"...그래?"




그렇단말이지, 석진의 입꼬리가 살풋, 올라갔다. 그 고운 자태를 보고도 사내는 미동도 하지 않았으니, 석진을 보며 마주 미소지을 뿐이었다.




Gravatar"네가 지금부터 치료할 사람. 아니, 치료할 것이 마녀라 해도 말이냐?"




석진은 제 앞의 사내를 시험해보고 싶었다. 이 궁에 들어와서, 제 눈 앞에 직접 당도하기 까지, 그 긴 시간동안에도 주눅들지 않은 저 곧은 어깨가 움츠려드는 것을 보고싶었다. 올곧게 제 눈을 마주하는 저 깊고 깊은 푸른 눈동자가 짙어지는 것이 보고싶었다. 악취미가 따로없구나, 석진이 생각했다.




"물론입니다."




그 입에서 나온 대답은 석진이 바라던 대답이 아니었으니, 석진이 주름 한 줄 없는 고운 미간을 찌푸리며 물었다. ...왜지? 하는 그 물음에 사내는 깊은 보조개를 내보이며 이리 말하는 것이다.




"마녀라 해도 다 같은 생명인데, 꺼릴 이유가 무엇이 있겠습니까?"



"...입에 발린 대답이구나."




사내는 그저 은은한 미소를 내보일 뿐이었다. 폐하께 데려가거라, 하는 석진의 말에 궁인이 조심스레 사내를 이끌었다. 석진의 입가에 쓴웃음이 걸렸다.










*          *          *










길고 긴 꿈은 언제나 홍월의 목을 죄여오듯 찾아왔으니, 그 꿈의 주인을 옥죄는 것은 꿈이라기보다는 옛날의 기억에 더욱 가까우리라. 묻어두고는 꺼내볼 생각보자 하지 않았던, 아주, 아주 먼 옛날의 일일 뿐이었다.


소녀는 짐승에게 살점을 죄다 뜯어먹힌, 형체를 알아볼 수 없는 시신을 끌어안은 채였다. 소녀의 작디작은 몸에 검붉은 핏자국이 끈적하니 늘어붙었으나, 그럼에도 소녀는 그 시신을 더더욱 소중히 껴안을 뿐이었다. 울부짖었다. 누구의 것인지 알 수도 없게 일그러진 얼굴을 가진, 풀어헤쳐진 채 내던져진 것이 분명할 천의 조각들이 핏물을 잔뜩 머금고는 여인의 몸에 달라붙어 있었다. 산짐승의 이빨과 발톱의 자국이 형형하리만큼 선명하여, 소녀는 그 끔찍한 몰골에 몸서리치면서도 시신을 손에서 놓지 못하였다. 피로 얼룩진, 여인의 몸에 자리한 그 상처들이 소녀의 마음을 들끓게 만들었다. 명백한 분노였다.


그 다음은 온통 붉은 색으로 물든 마을이었으니, 하늘마저 익숙한 핏빛이라. 소녀의 검은 눈이 붉게 빛났다. 누군가의 고통에 찬 비명소리가 가득했다. 귀가 찢어질듯 울리는 굉음에도 소녀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마을 속으로 걸어들어갔다. 그 붉은 눈동자는 공허하기 그지없다. 검붉은 색으로 가라앉은 짙은 눈동자가 닿는 곳에는 불길이 일고, 그 가벼운 발걸음이 닿는 곳마다 재가 되었다. 그 뜨거운 화염에 몸을 반쯤 내던진 채, 소녀를 향한 명백한 원망을 담은 사람들이 그녀에게 돌을 던지면, 소녀는 기꺼이 그 돌에 맞아주었다. 진득한 피가 소녀의 하얀 이마를 타고 흘러내렸다. 아무렇지도 않게, 여전히 가볍디 가벼운 발걸음으로 마을을 헤집는 소녀를 보던 사람들이 절규하는 소리가 울려퍼졌다.


폐허와 다름없는 모습으로 변한 마을에 뒤늦게 다른 마을의 사람들이 찾아왔을 때에는, 생명의 흔적이라곤 하나도 없는 피폐한 땅과, 누가 세웠을지 모를 비석 하나만이 그들을 반겨주었다. 불에 탄 시체가 여기저기 나뒹구는 것을 본 사람들의 얼굴이 경악에 물들었다. 모두가 그 끔찍한 광경을 눈에 담고는 도망칠 때, 한 소년은 돌로 세워진 비석 앞의 꽃을 마주했다. 답지 않게 생기를 가득 머금은, 주홍빛의 호랑이꽃이었다.










눈을 떴을때 그 시야에 들어온 얼굴이 익숙하면서도 못내 낯선 얼굴인지라, 홍월이 살풋-, 인상을 찌푸렸다. 붉은 눈을 깜빡이며 몇 차례 초점을 잡아보더니, 제 시야에 선명하게도 잡힌 이의 얼굴에 그동안 찾아볼 수 없던 멍한 표정을 지어보이는 것이었다. 사내가 웃음을 터트렸다. 입꼬리가 올라갈때 마다 볼 중앙에 위치한 보조개가 쏘옥-, 깊게도 들어갔다. 예쁜 웃음이었다.




"이제 정신이 좀 드나?"


"네가 왜 여기있지?"


"오랜만에 구미호가 날 찾아왔길래, 편히 왕좌를 맡기고 나올 수 있었지."




나도 오랜만에 네 얼굴이 보고싶어서 말이지, 여전히 보조개를 내놓은 채 사내가 말했다. 구미호라 함은 분명히 지민을 말하는 것이렸다. 홍월이 눈을 가늘게 뜬 채 제 앞의 사내를 샅샅히 훑었다. 이곳에 있을 자가 아니었다. 정확히는 있어서는 아니 될 이였으니,




Gravatar"오랜만에 얼굴 보니까 좋다."




그는 일국의 왕이었기 때문이었다. 경국, 작지만 부강한 나라의 왕은 현명하고 어질기로 유명하였니, 선대의 폭정을 제 목숨 걸고 저지하여 그 목을 베고는, 직접 제 머리에 왕관을 쓴 채로 왕위에 오른 자였다. 피도 눈물도 없다 하였으나 제 나라를 아끼는 마음은 그 누구에게도 비할 이가 없는지라, 그는 경국의 23대 왕이요, 백성들에게 칭송받는 경국의 성군이라 알려져 있었으나, 그렇지 않았다. 그는,




"어쩌다 독을 마신 거야? 네가 버티기엔 좀 힘들었을 것 같은데. 물론 죽진 않겠지만."


"...됐으니까 얼굴에 그 비늘이나 어떻게 해보지 그래."


"아, 이런-,"




뱀이었다.


고래, 바다의 왕을 모시던 경국이 여우들의 손에 들어간 것이 몇백 년 전, 그 왕위를 오를 이는 필시 구미호여라, 천년의 세월에 걸쳐 아홉개의 꼬리를 가지게 되는 여우, 그 억겁같은 세월을 버텨 경국에 군림한 구미호는 단 하나였으니, 제 아들의 손에 직접 목을 베인 경국의 선대 왕이 그 구미호였다. 경국 선왕의 아들은 온 대륙을 떠돌았다. 제 아비처럼 살진 않으리라. 국정을 나몰라라 한 채, 여인과 음주에 빠져살지 않으리라. 한때는 성군이라 불리던, 끝끝내 폭군이 되어버린 제 아비와는 다르게, 저는 한때 성군이라 불리게 된다면, 끝까지 성군이고 싶었으니, 아홉개의 꼬리를 가진 선왕의 아들은 그길로 경국을 떠났다. 왕좌에는 제 대리인을 세워둔 채로.




"진짜 왕이 오셨으니, 나같은 가짜 왕은 좀 쉬어도 되지 않겠어?"


"왜, 성군이라고 칭송까지 받는 왕이면서."


"글쎄, 나한텐 딱히 그런 칭송은 필요가 없어서."




독에 취한 몸이 말을 듣지 않아 휘청였다. 몸을 일으키려다 크게 휘청이는 홍월을 남준이 가볍게 안아들었다. 닷새만에 깨어났으니 조심해야지-, 하는 그 말에 홍월이 눈을 홉떴다. 닷새? 하며 되묻는 꼴이 꽤 우스운지라, 남준이 입가에 웃음을 띄운 채로 대답했다. 응, 닷새.


남준은 제가 마신 독이 맹독 중의 맹독이라 하였다. 평밤한 인간이었다면 입에 대는 순간 온몸에 퍼져 단 몇초만에 숨이 끊길 수 있는 맹독. 어쩐지 그 말을 듣고 나니 괜스레 목이 칼칼해지는지라, 홍월은 제 옆에 놓여있던 찻잔에 담긴 물을 빠르게 들이켰다. 황제와 마주앉아 마셨던 차에서 나던 기분나쁜 혈향은 없었다.




"어떻게 여기 들어왔지? 황제가 곱게 들여보내 줬을 리가 없는데."


"아아, 환각을 좀 걸었지. 내가 경국의 왕이라는건 꿈에도 모를거야. 아예 다른 사람으로 보일 테니까."


"그렇다고 해도, 여기까지 오기 쉽지 않았을 텐데? 네가 뭐, 구미호처럼 재주를 부릴 수 있는 것도 아니니까..."




홍월의 말에 남준이 예의 그 미소를 띄웠다. 내가 지금은 또, 네 황제의 총애를 받고 있는 몸이라 말이지-, 하는 그 말에 홍월이 눈을 홉떴다. 어떻게? 하는 그 물음에 남준이 그간 있었던 일을 짧게 읊었다. 황제의 측근, 도제조가 초에 능한 이들을 찾았다는 것부터, 남준이 그를 이용해 화빈당으로 온 것, 그리고, 제가 삼킨 독에 걸맞는 해열제를 만들어 내 황제의 총애를 얻은 것 까지. 열이 심한 탓에, 독을 해독하고도 꼬박 이틀을 더 앓았다는 것을 전해들은 홍월이 어이없다는 듯 입을 떡 벌릴 수밖에 없는 이야기들이었다. 그도 그럴것이, 그간 경국은 호국을 달갑지 않게 여기지 않았는가, 적국의 총애를 얻는 왕이라니, 이보다 더 우스운 이야기가 어디있을까.


그들은 오랜 대화를 나누었다. 달밤이 깊었으나, 홍월의 처소를 찾는 이도, 남준을 찾는 이도 없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창 밖에 어스름히 빛나는 달빛을 조명삼아, 그들은 못다한 이야기를 풀어냈다. 남준의 행방을 전해들은 홍월은, 제가 마신 맹독에 대해 캐물었다. 무엇이 주 재료인지는 그녀 스스로가 더 잘 알았으나, 확신이 서질 않았다. 차에서 나던 짙은 혈향이 여즉 코에 맴도는 기분이었기에, 더더욱 그러했다. 혈향, 분명히 피냄새였다. 평범한 인간의 피가 아닌, 요괴의 피.




"칠미호의 피."


"그래, 그게 왜 황궁에서 발견된 거냐고,"


"나야 모르지. 난 독을 분석하는 걸로 내 역할을 다 했으니까."


"...."


"짚이는 사람 없어? 너라면 충분히 찾고도 남아. 혈향을 따르는 건 네 전문이니까."


"...."


"피를 꽤 많이 넣었거든, 그 여우."




누군진 몰라도, 미운털 하나 단단히 박아두고 왔나봐? 하는 장난어린 남준의 말에도 홍월의 미간은 펴질 줄을 몰랐다. 칠미호쯤 되는 이가, 이 호국에 버젓이 살아있단 말인가? 독성이 강한 것돠, 피의 양이 많았다는 것으로 보아 넓게 보면 수도 안, 좁게 보면 황궁 내에 있단 말이었다. 제 자취를 숨기는 데 능한 이었다. 그렇기에 그를 찾은 것이 더 쉽지 않으리라. 홍월은 코를 찡긋거렸다. 목구멍에 따갑게 흘러내리던 차의 향을 기억해내려 애썼다. 허공에 흘러드는 기운을 읽으려 애썼다. 남준은 그런 홍월의 모양새를 가만히 바라볼 뿐이었다. 홍월이 몸을 일으켰다.


가벼운 몸놀림으로 창틀을 뛰어넘은 홍월의 새카만 머리카락이 밤바람에 살랑였다. 나중에 봐-, 떨어지기 직전의 그 짧은 틈새에 남준에게 손까지 흔들어준 홍월이 밑으로 추락했다.


남준이 헛웃음을 흘렸다. 창 밖에서부터 살랑이며 불어오는 밤바람만이, 홍월이 있던 자리를 채워나갔으니, 그 입가에 걸린 미소가 지워질 줄을 모르더라. 하하하-, 하는 웃음을 크게 터트린 남준이 몸을 일으켰다. 주인도 없는 방 안에 있는 건 실례일 터이니, 순식간에 흔적을 감추어 낸 남준이 화빈당, 홍월의 침소의 문을 열었다.


그 빈 공간에 달빛만이 가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