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녀지묘(魔女之猫)

마녀지묘(魔女之猫)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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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녀의 고양이)

-마녀의 고양이-

W. 설하










트리거 경고,

폭력적인 장면이 다수 존재하며, 거부감을 일으킬 수 있는 잔인한 묘사가 있을 수 있습니다.

주의해 주세요.










본래 이야기꾼이라 함은, 단지 세상 천지에 떠도는 수많은 이야기들을 수도 없이 알고있다는 것 만으로는 모자란지라, 단순히 지겹기만 한 이야기를 늘어놓는 치 보다는, 입담 좋고, 이야기를 술술 풀어내는 자가 더욱 유명세를 타는 것이 당연하였으니, 호국의 수도에 나타난 웬 이야기꾼 또한 그런 자라 하더라-,


난데없이 불쑥 나타난 이 이야기꾼이 어느 날부터 수도의 저잣거리를 죄 쓸고 다닌다더라, 어찌나 사람을 잘 이끄는지, 사람으로 바글바글하던 장터도 그 이야기꾼이 나타나기만 하면 죄다 너른 장터의 중앙으로 사람이 몰리는 탓에 텅 비어버린다는 것이었다. 그 수많은 이야기들을 어찌 그리 맛깔나게 풀어내는지, 하루아침에 그 이야기꾼은 수도의 유명인사가 되어버렸더랬다.


그 이야기꾼이 수도의 시장바닥에 나타난지 딱 이틀째 되던 날에는, 온갖 사람들을 죄 모아놓고는 시작하는 이야기가 참으로 괴이한지라. 어둑어둑해진 하늘을 배경으로 하여금 이야기꾼이 꺼낸 이야기는 수도의 사람들에게는 퍽 낯선 것이었으니, 이야기꾼이 이야기를 시작하고도 고개를 갸웃거리는 이들이 태반이었다. 그럼에도 말재주가 워낙에 좋은지라, 수많은 사람들의 이목을 끌었던지라, 대체 그 이야기가 무엇인고 하니-,




“...’동백’, 이라는 마녀를 알고 계십니까?”










홍월이 찻잔을 소리나게 내려놓았다. 드물게 커진 그 눈이 제 앞의 사내에게 향했다. 동백이라 하였다고? 하는 그 물음에 홍월의 앞에 자리하던 사내가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분명 동백의 마녀라 하는 것을 저가 들었노라-, 하는 그 대답에 홍월이 입술을 깨물었다. 





“그 말고는, 다른 수상쩍은 점은 없다더냐,”


“마지막에 동백의 마녀 이야기를 하고는 홀연히 자취를 감추었다 합니다. 그 외에는 죄다 평범한 이야기꾼이 할 만한 이야기들 뿐인지라...”


“하, 그렇단 말이지.”




홍월의 붉은 눈동자가 냉기를 가득 머금었다. 잔뜩 쥐어뜯은 입술에 불그스르한 핏방울이 맺혔다. 정국의 수하라 하였나, 하는 홍월의 물음에 사내가 고개를 끄덕였다. 예, 하는 그 대답에 홍월이 잠시간 머뭇거리더니, 혹 다른 수상쩍은 소문이 들린다면 당장에 알려다오, 하는 그녀의 말에 사내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하겠습니다. 하며 손에 쥐었던 찻잔을 내려놓고는 몸을 일으켰다. 제 주인을 닮아 온통 검은색 옷을 걸친 사내가 가벼이 창틀로 올라섰다.


어렵지 않게 화빈당의 바깥으로 뛰어내린 사내를 확인한 홍월이 창문을 닫았다. 처소로 들어서던 바람이 멎었다. 한참이나, 창문의 손잡이를 쥔 채로 홍월은 생각에 잠겼다. 분명 ‘동백’이라 하였다. 수상쩍기 그지없다. 마녀가 자리하고 있다 소문이 자자한 이 수도에서, 굳이 ‘동백’과 관련된 마녀의 이야기를 흘린 사내. 마치 보란듯이 저가 무언가를 알고 있음을 내비추는 꼴 아닌가. 헛웃음을 삼킨 홍월이 긴 숨을 내뱉었다. 느껴지는 두통에 눈을 꾸욱-, 감았던 홍월이 이내 제 감정을 추스렸다. 창문의 손잡이에서 손을 떼고는, 온전히 제 두 발로 버티고 섰다.


동백을 닮은 붉은 눈동자가 서서히 뜨였다.










*          *          *










보름 중, 열흘 하고도 하루가 더 흘렀다. 황제와의 내기를 곱씹던 홍월이 초조한 낯으로 방 안을 서성였다. 고작 나흘 밖에 남지 않았건만, 저는 여즉 세 번째 비석의 내용을 알지 못한다. 의미없는 기싸움일 뿐임을 정국과 홍월 모두 알고 있었지만, 서로에게 신뢰라고는 쥐똥만큼도 없었기에 일어난 결과였다. 의미없는 눈치싸움일 뿐이었다. 지민이라도 돌아온다면 속이 편할텐데, 경국으로 떠난 뒤에는 연락 한 통 없는 지민이었다. 홍월이 제 손톱을 잘근잘근, 물어뜯었다.


창틀에 가벼이 발을 걸친 홍월이 망설임 없이 뛰어내렸다. 화빈당의 경비는 쓸데없이 엄하기만 한지라, 산책 한 번 나가고자 했다가 궁인 열댓명이 우르르, 따라나오던 참상을 겪은 뒤에는 창문이 문이라도 되는 것 마냥 이용하는 것에 익숙해진 터였다. 어디선가 경비를 서고 있을 병사들이 담소를 나누는 소리가 옅게 들려왔다. 어두운 색의 두루마기를 걸친 홍월이 빠르게 걸음을 옮겼다. 속이 답답하니, 달빛이라도 쬐야 했다.


되는대로 내딛던 발걸음은 홍월을 퍽 익숙한 궁으로 데려왔으니, 황태자를 처음으로 마주했던 장소요, 제가 정국을 내다꽂았던 폐궁의 정원이었다. 시린 달빛을 받은 폐궁이 한층 더 스산한 느낌을 더했으나, 홍월의 걸음에는 망설임이 없었다. 한 발, 내딛은 홍월이 호숫가의 돌에 걸터앉았다. 생각이 넘치도록 많았다. 대부분이 잡다한 것들이었으나, 개중에는 금방이라도 두통을 몰고 올 것만 같은 골치 아픈 일들도 몇 있었으니, 호국에 나타났다는 이야기꾼에 대한 것이 그러했다. 홍월이 가만히 턱을 괴었다. 복잡한 생각들에서 벗어나, 지금은 잠시라도 쉬고싶었다. 잔잔한 호수의 물결을 따라 시선을 흘려내는 것이 전부였으면, 싶었다.





"...이시간에 예까진 웬일이냐."





그 상념을 방해한 낮은 목소리가 홍월의 뒷편에서 들려왔다. 홍월이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멀거니 서서 저를 바라보는 목소리의 주인에 홍월이 살풋 웃음을 터트렸다. 폐하께서야말로, 예까진 어인 일이십니까. 하는 홍월의 물음에 윤기가 뒷목을 쓰다듬었다. 쉬이 잠이 오질 않더구나, 하며 내딛는 윤기의 발걸음이 점차 홍월에게 가까워졌다. 


잔잔한 호수가 바람에 일렁였다. 맑은 물이 폐궁의 정경을 고스란히 담아내니, 물 위로 비친 홍월의 모습 뒤로 윤기의 모습이 보였다. 제 뒤에 가만히 자리잡아 호수 언저리를 응시하는 것이, 잔혹하기 그지없다던 호국의 황제의 모습과는 퍽 어울리지 않았다.





“호수가 참 어여쁩니다.”


“...그리 보이느냐?”


“참으로 맑고 깨끗한 물 아닙니까.”


“사람을 집어삼킨 물이지.”


“.....”


Gravatar“이 호수를 어여삐 여기는 것은 이 황궁에 너만이 유일할 것이다.”


“누군가 이 물에 잠겨 죽기라도 했나 봅니다.”


“후궁 김 씨가 몸을 내던진 곳이지. 태자의 어머니 말이다.”





제 어미가 죽었던 장소라 그리도 날을 세웠던 것일까, 홍월은 그 어느 날에 저같은 요괴가 올 곳이 아니라 칼을 들이밀던 태자의 모습을 떠올렸다. 겁을 먹어 손 끝을 덜덜 떨면서도, 끝까지 제게 겨누었던 칼선 칼날을,


윤기가 거슬린다는 듯,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 아마도 후궁 김씨의 이야기를 꺼낸 탓일거라, 홍월이 막연히 생각했다. 생각보다 좋은 사람이었나, 스스로 호수에 몸을 던져 목숨을 내버리고도 누군가에게 끊이지 않을 사랑을 받고 있을 만큼. 홍월이 느리게 눈을 깜빡였다. 아마도 저는, 죽을 날 까지도 이해하지 못할 것이라 되내이며 웃음을 흘렸다.





“...날이 차구나,”


“먼저 들어가시지요. 고뿔이라도 걸리면 어찌한답니까.”


“그대는 들어가지 않을 생각인가?”





꽤 거세진 바람이 윤기의 앞머리를 흩뜨렸다. 그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던 홍월이 입꼬리만 슬쩍 올리고는 다시금 호수로 눈을 돌렸다.





“저는 꽃구경이나 좀 더 해볼까 합니다.”





윤기가 주변을 살폈다. 꽃이라곤 단 한 송이도 보이지 않는 궁의 모습에 의문을 품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그럼에도 웬 쌩뚱맞은 소리냐 홍월을 타박할 마음 따윈 추호도 들지 않는 것이었다. 바람빠지는 웃음소리를 낸 윤기가 저도모르게 홍월의 고운 머리카락들을 쓰다듬었다. 결 좋은 머릿결이 손 끝에서부터 흩어진다. 네 마음대로 하려무나, 흑단같은 머리카락을 한 움큼 잡아낸 윤기가 그 위로 입을 맞추었다.


점차 멀어지는 윤기의 뒷모습을 멀거니 바라보던 홍월의 근처로 누군가가 다가섰다. 익숙하게도 홍월이 앉아있던 바위 근처에 자리를 잡던지라, 홍월은 윤기의 뒷모습에 박혀있던 시선을 거두어내고는 그를 향해 돌아앉았다. 퍽 익숙한 모습이었다. 여전히 온통 새카만 복장을 걸친 사내였다.





Gravatar"오밤중에 여기까진 어인 일이십니까."


“잘도 숨어있다 나타나는구나,"


“숨어있다는 것 다 알고 그리 바삐 황제를 내보내신 것 아닙니까."


"용케도 알아챘구나."


"시선이 몇번이고 마주하였는데 어찌 모르겠습니까."


"그래, 그래서, 황태자의 개 주제에, 주인을 떼어 놓고 잘도 나를 찾온 이유가 무엇이냐."





정국의 미간이 묘하게 찌푸려졌다. 그 개 소리좀 안할 순 없냐는 그의 말에 홍월이 옅은 웃음을 흘려내며 그러기 싫다 답하니, 찌푸려진 정국의 미간이 더더욱 깊게 패였다. 그럼에도 홍월은 그런 정국 따위는 안중에도 없다는 듯, 호숫가로부터 불어오는 바람을 맞으며 옅은 미소만을 띄고 있는 것 아니겠는가. 참으로 여유롭고, 참으로 아름답기 그지없는 장면이었으나, 정국에게는 그 모습이 마냥 답답하기만 한 것이었다. 마녀와 황제의 내기가 끝날 시기가 얼마 남지 않았다. 고작 나흘, 나흘이란 짧은 시간 내에 그녀와 저 자신이 준비해야 할 것들은 차고 넘치는 것이 분명한데도 그녀는 여유롭기만 했다. 물론, 홍월이 제 처소에서 입술을 잘근잘근 깨물며 발을 동동 굴렀다는 것을 몰랐기에 할 수 있는 생각이었다. 제 주군을 이 피비린내 나는 황궁에서 빼돌릴 유일한 단서인 호랑이꽃의 열매, 동백의 하얀 꽃잎, 설중매의 붉은 잎파리 따위의 것들은 구경도 해보지 못했다는 사실이 그를 더더욱 답답하게 만들 뿐이었다. 정국이 깊은 한숨을 내쉬며 홍월의 옆에 자리잡았다. 땅이 꺼지겠구나-, 하는 홍월의 장난섞인 목소리는 흘려들은지 오래였다.





"이쯤 하는게 어떻겠습니까."


"무엇을?"


"서로간에 가진 감정이 어떠하든, 우리는 필요에 의한 관계가 아닙니까. 저는 당신이 알고자 하는 것을 알고 있고, 그대는 내가 필요로 하는 것을 가지고 있지 않습니까."


"흠... 그래서?"


"그대가 경국으로 보낸 구미호가 돌아오기만을 기다리다가는 필리 늦을 것이 분명하단 뜻입니다."





홍월의 눈이 크게 뜨였다. 그 붉은 눈동자가 달빛을 받아 이채를 띄는 듯 했다. 허-, 하는 단말마의 신음성이 홍월의 입에서 튀어나왔다. 순수한 감탄이었다. 여우끼리는 동족을 알아보기라도 한다더냐, 하며 그녀가 중얼거렸다. 지민은 구미호, 그 자체로 자연과 대적할만한 힘을 지닌 요괴이기에 한낱 칠미호가 그 존재를 알아채리라고는 생각도 하지 못했건만, 아니었다. 정국은 제 생각보다 많은 것을 알고 있었다. 제가 가진, 아주 커다란 패를 내려놓은 것과 다름이 없음에도 정국의 얼굴은 평온하기만 하였다.





"그래, 그래서, 너는 내가 어찌하기를 바라는가?"


"서로에게 신뢰가 없는 것은 피차 매한가지이니, 이리 하도록 합시다. 먼젓번에 제가 요구했던 것들 중 두 가지를 미리 찾아주십시오. 당신이라면 이미 가지고 있을 지도 모르니, 제가 그것을 건네받는데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는 않겠지요."


"내가 그리 한다면?"


"그것을 받은 뒤에 비석의 내용을 일러드리겠습니다. 그 뒤에 나머지 하나를 받도록 하지요."


"흐음... 꼭 내가 그 마지막 조건을 아무런 탈 없이 네게 줄 것이라 믿는 것 같구나."


"애초에 그 세 가지와 비석의 내용을 교환하는 것이 거래의 조건이었습니다만,"


"말로써 이루어진 것은 쉽게 깨지기 마련이거늘, 인간과 하도 오랜 세월을 보낸 탓에 너 또한 인간과 가까워지는 것이냐,"





참으로 멍청하기 짝이 없어-, 신랄하게 정국을 까내리면서도 홍월의 표정에는 퍽 즐거움이 가득했다. 이를 눈치채지 못할 정국이 아니었으니, 홍월의 입가에 걸린 미소를 보고는 저도 픽, 웃어버리는 것이었다.





Gravatar"그렇다면, 그대의 양심을 믿는 것으로 하지요."





이보다 더 우스운 말이 어디 있겠냐만은-, 하며 정국이 말을 이었다. 홍월은 만족스레 웃으며 말했다. 그래, 그리하도록 하자. 홍월이 비뚜름하던 자세를 바로잡았다. 펼쳐진 손에 달빛이 스며들었다.


동백, 붉은 꽃잎을 가진 꽃이 홍월의 손에서 피어났다. 제 존재를 자랑하듯, 하나 하나 피어난 꽃이 아담라기 그지없는지라, 정국은 그 장면을 빠짐없이 눈에 담았다. 원체 동백이라 함은 겨울에 피는 꽃이거늘, 여름이 물러난지 얼마 되지 않은 지금에서야 찾으래야 찾을 수 없는 꽃이었다. 그럼에도 홍월의 손에는 버젓이 동백이 피어있지 않은가, 그것도 매우 어여쁜 꽃이. 홍월이 제 손바닥에 피어난 동백을 조심스레 집어들었다.





"어여쁘지 않느냐,"





홍월이 말했다. 입가에는 여전히 미소를 걸친 채였다. 꽃을 쥐지 않은 다른 손을 펼쳐낸 홍월이 제 손바닥을 뚫을 듯 바라보기 시작하였다. 정국은 홍월을 감싸던 기운이 일렁이는 것을 느꼈다. 실로 강한 기운이었다. 눈 깜빡할 새 붉은 기운으로 뒤덮여버린 홍월의 손에서, 그는 눈을 뗄 수 없었다. 영롱하기 그지없는, 화려한 붉은 빛이었다. 눈이 부실만큼 영롱하던 빛이 옅어졌다. 새빨간 붉은 빛이 점차 옅어져, 산호와도 같은 색을 띄었다. 그마저도 점차 색을 잃어가는지라, 홍월의 손을 감싸던 그 기운들이 한데 뭉쳐 작은 구(球)의 형태를 띄게 되었을 때 즈음에는 완전한 백색으로 변하였다. 톡-, 구슬이 홍월의 손 안으로 떨어졌다. 깨어질 듯 보이던 백색의 구슬을 집어든 홍월이 동백꽃 위로 구슬을 떨구었다. 환한 빛이 그 꽃을 감싸니, 붉어 영롱하던 꽃잎이 서서히 백색으로 물드는 것이 아닌가. 이윽고 빛이 가라앉은 뒤에야 홍월의 손 위에 자리한 것은, 실로 하얀 꽃잎을 가진 동백이었다.


홍월이 정국의 손에 그것을 건네니, 얼떨떨한 표정을 채 숨기지 못한 정국이 백동백을 소중히 감싸안았다. 그 우스운 꼴을 지켜보던 홍월이 다시금 제 손 안에 꽃을 피워내니, 피어난 꽃은 필히 홍매화여라, 꽃을 무심히 내려다보던 홍월이 제 날카로운 이빨로 반대 손을 물어뜯었다. 정국이 기겁하여 그녀를 말릴 새도 없이, 홍월은 제 손을 갓 피어난 홍매화 위로 가져다대었다. 붉디 붉은 핏방울이 희미한 혈향을 내며 꽃잎 위로 추락했다. 붉은 핏방울을 머금은 꽃임이 그 무게에 축 늘어지니, 이윽고 마녀의 피를 죄 흡수하여 원체보다 배는 붉은 꽃잎으로 물드는 것이었다.





"가져가거라."


"...."


"뭘 그리 멍청하게 보고만 있는 것이냐? 네가 원하는 대로 세 가지 중 두 가지 재료를 먼저 만들어 주었지 않나,"





정국의 입이 달싹였다. 백동백을 소중히 안은 채로, 채 홍월의 피를 머금은 매화는 건네받지 못하고는 멍하니 어딘가를 응시하기만 하는 것이었다. 홍월은 정국의 시선 끝이 제 손에 달아있는 것을 느꼈다. 제가 물어뜯었던 손이 분명하였으니, 생각도 못한 정국의 행동에 홍월이 웃음을 터트렸다. 홍월이 제 손을 내밀었다. 되었느냐? 하며 묻는 그 목소리에 웃음기가 가즉했다. 물어뜯겼던 손은 흉 하나 없이 깨끗하기 그지없었으니, 홍월의 소매에 묻은 핏자국만이 상처의 흔적을 남겨두었다. 정국이 그 큰 눈을 깜빡이며 홍월의 손을 응시하다, 이내 그녀의 손에 들려져 있던 설중매, 홍매화를 건네받았다. 손 끝이 잠시간 스친 것도 같았다.





"전정국,"





쩡-, 하고 얼어붙은 정국의 손이 그대로 허공을 배회했다. 그 날선 목소리의 주인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기에 그러했다. 홍월의 시선 또한 시린 목소리의 주인에게 향하니, 그 끝에는 차갑게 굳은 낯으로 이쪽을 응시하는 사내가 서 있었다. 홍월은 문득 떠올렸다. 황제와 함께 거닐던 정원에 잔뜩 피어있던 장미들을. 그 붉은 꽃잎들이 추락하던 장면이 눈 앞에 생생히 그려졌다. 그래, 장미를 닮은 이는-,





Gravatar"...네가 감히,"





분노로 이를 가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래, 장미를 닮은 이는 저가 아니었다. 홍월이 태형을 응시했다. 장미를 닮은 소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