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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다

그가 가는 길마다 모래먼지가 피어났다. 아득하게 흐린 시야를 향해 한발자국씩 내딛는 이의 걸음은 곧 죽을 사람처럼 휘청거렸다. 온 거리가 그를 비웃으며 조롱했다. 피로 얼룩지고 푸르고 붉은 멍이 가득한 몸에 지워진 육중한 나무의 무게에 그는 비틀거렸다. 걸음이 멈출 때마다 사람들은 침을 뱉거나 돌을 던지거나 삿대질을 하거나 발길질을 했다. 그것도 아니라면 그저 울었다. 그러나 반역죄의 길을 걷고 있는 그에게 주어진 동정은 거의 없었다. 비척비척 걸어가던 그의 발은 돌부리에 걸렸다. 그는 지고 있던 나무와 함께 큰소리를 내며 넘어졌다. 가는 길이 지체되는 것에 성가심을 느꼈던 군인들이 채찍을 팽팽히 쥐고 마른 등을 무자비하게 후려쳤다. 그는 몇번이고 일어서려 했지만 채찍에 살갗이 터져 다시 길바닥에 고꾸라졌다. 찢겨져 피를 흘리는 피부 사이로 모래알이며 작은 돌 같은 것들이 박혔다. 군중들과 군인이 거리가 떠나가라 소리쳤다. 일어나! 끌어라! 쉬지 마! 빨리 움직여! 바닥에 쓰러진 몸이 말을 듣지 않았다. 뼛속 깊이 사무치는 고통에 그의 마른 몸뚱아리는 병든 새처럼 파르르 떨렸다. 몸 여기저기를 짓이기는 발길질이 느껴졌다. 딱지가 앉은 입술에서 피가 흘렀다. 우악스럽게 잡아 일으키는 손길 때문에 그는 다시 제 몸보다도 큰 십자가를 졌다. 목적지는 골고다 언덕. 골고다라 함은 해골이라는 뜻이었다. 엉성하게 얽힌 가시관이 씌워진 머리에서 피가 흘러내리는 중에 그는 고개를 들어 멀리 언덕을 보았다. 앙상하게 마른 나무에 목을 맨 남자가 힘없이 흔들거렸다. 그의 충혈된 두 눈에서 기어코 눈물이 흘렀다. 고개를 숙였다. 아아, 저 이는 태어나지 않는 것이 제게 좋을 뻔하였으리라.




유다는 기억하고 있었다. 상인에게 내밀던 따스한 손을. 그 다정한 손에서 스승과 그의 인연은 비롯되었다. 그리고 지금, 유다는 못마땅한 듯이 팔짱을 끼고 군중 속에 둘러싸인 제 랍비를 바라보았다. 새하얀 옷을 입은 그는 성별에 구애받지 않고도 몹시 아름다웠고 그의 입에서는 지혜의 말이 흘러나왔기에 랍비의 주변에는 언제나 사람이 많았다. 제자들이자 유다의 동료들은 전부 랍비의 곁에 있는데 유다만이 홀로 무리에서 나와 이렇게 지켜보고 있는 것은 다름아닌 며칠전 그의 랍비에게 꾸짖음을 당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유다는 자신이 잘못했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꾸짖음을 당해야 한다고 생각하지도 않았다. 그게 다 마리아라는 여자가 랍비의 몸에 그토록 비싼 향유를 부었기 때문이다. 마른 몸에서 어떻게 그런 힘이 나왔는지는 모르겠지만, 그의 랍비는 화를 내는 유다를 쳐다보면서 차갑고 고요하게, 그리고 단호하게 일갈했다.

“당신이 어떻게 그럴 수 있습니까? 가난한 자들을 위하겠다는 당신의 가르침도 다 거짓입니까? 당신 한 몸에 부어진 향유가 길바닥의 저들을 얼마나 많이 살릴 수 있는지 아십니까?”
“……유다, 너는 저들의 고통을 그따위 돈으로 구원할 수 있다 믿느냐?”
“또 다시 그렇게 말을 돌리시는겁니까? 어떻게 그리 이기적이십니까? 또 천국 이야기나 하시려고요? 하늘에 계신 아버지 이야기나 하시렵니까?”

저 여인은 나의 장례를 치렀다. 랍비는 그렇게 말했다. 이 무슨 미치광이의 말인가 하여 유다는 분에 못이겨 높이 쳐들었던 팔을 늘어뜨렸다.




유다는 젊은 상인이었다. 랍비와 그는 나이 차이가 별 나지 않았다. 유다와 랍비가 만났을 때, 랍비는 이미 꽤나 유명한 사람이 되어있었다. 유다는 장사치답게 자신이 속한 무리를 관찰했다. 누구는 어부였고 누구는 세리였고 누구는 로마를 혐오하는 열심당원이었다. 어느하나 그토록 빛나는 젊은 랍비에게 어울리지 않는 제자들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자들을 사랑스럽게 바라보는 푸른 눈은 유독 유다에게 머물 적에만 복잡한 시선을 하고는 했다. 유다는 그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스승은 온화했지만 차가웠고 다정했지만 단호했다. 그런 그에게 유다가 스며들 수 있는 자리란 존재하지 않는 것 같았다. 그 젊은 스승은 엘리야 같은 선지자라고 불렸고, 모세의 현신이라고 불렸고, 위대한 스승이라고 불렸다. 유다는 그것에 모두 동의했다. 하지만 딱 거기까지였다. 따라서 한낱 천한 어부 베드로의 말은 어이없기 짝이 없었다.

“당신은 신의 아들, 우리가 그토록 고대해온 메시아이십니다.”

유다는 그 자리에서 벌떡 일어날 뻔 했다. 유대를 주시하는 로마제국의 눈이 얼마나 매서운지 알면서도 그따위 망언을 입에 담다니. 그들의 랍비는 나사렛 출신이었고 목수의 아들이었다. 이 자리에 그를 미워하는 자가 없기에 망정이지 그렇지 않았더라면 랍비는 당장에 대제사장의 집으로 끌려갔을 것이다. 유다는 랍비가 베드로를 꾸짖기를 바랐다. 그렇게 경거망동하다가는 그 자신은 물론이고 다른 사람들까지 위험에 빠뜨릴테니 말이다. 그러나 랍비는 이렇게 말했다.

“너의 말이 참으로 옳다.”

확실히 랍비는 지난 몇년간 가지고 있던 총명함을 잃어버리고 있었다. 그의 판단력은 떨어졌다. 아니, 어쩌면 미쳐가고 있는 것인지도 몰랐다. 가난한 자들을 도우라고 설파할 때까지는 좋았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고 하늘에 계신 여호와를 사랑하라 전할 때까지는 나쁘지 않았다. 랍비가 내딛는 땅마다 평화가 피어나는 것만 같았다. 그러나 다짜고짜 천국을 부르짖는 것은 미치광이나 할 법한 일이었다. 유다는 천국 따위 믿지 않았다. 부활도, 그 무엇도 믿지 않았다. 그에게 중요한 것은 현세였다. 따라서 랍비를 버리고 떠날까 생각한 적도 무의식 중에 있을 것이다. 그러나 유다는 그럴 수 없었다. 랍비는 어리석은 사람일지도 몰랐다. 아니면 악마가 씌었는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가망은 없다. 유다의 스승은 평범한 사람이었다. 그냥 사람, 언제 죽어도 아쉬울 것 없는 사람. 스승은 언젠가 죽임을 당할 사람처럼 굴었다. 생각이 그에 머무르자 유다는 코웃음을 쳤다. 그렇다면 이렇게 많은 추종자들을 거느릴 것이 뭔가. 생각이 그에 머무르자 유다는 가슴이 아팠다. 그렇다면 어째서 유다에게 그를 사모하는 마음을 주었는가. 유다는 이를 갈았다. 이 멍청하고 세상물정 모르는 도련님이 -목수의 아들을 도련님이라고 할 수 있다면 말이다.- 죽임을 당하게 둘 수는 없었다. 아니, 다른 사람에게 죽임당하는 것을 목도할 바에야 유다 자신이 먼저 그에게 칼을 겨눌 것이 자명하였다. 감히 다른 사람이 그를 가져가도록 둘 수 없었다. 그렇게 두기에 그의 랍비는 너무나도 아름다운 사람이었고, 너무나도 깨끗하였다.




며칠전부터 랍비는 예루살렘에 갈 계획을 세우고 있었다. 동료들은 환호했다. 이제 그가 로마의 압제와 폭정에서 온 유대를 구원할 것이라며 노래를 불렀다. 유다는 팔짱을 끼고 그들을 한심하다는 듯이 쳐다보았다. 조금만 눈여겨 보아도 스승의 목적은 군대를 이끄는 왕이 아님을 알 수 있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유다의 마음에 걸리는 것이 있다면, 도대체 왜 군중들을 몰고 다니며 로마의 주의를 끄는건가 하는 물음이었다. 유다는 앉아있던 바위에서 일어나 올리브 나무의 그늘 아래 홀로 무릎을 꿇고 있는 랍비에게 다가갔다. 랍비는 눈을 감고 있었다. 긴 속눈썹이 차양을 드리웠다. 그는 땀을 흘리고 있었다. 언뜻보면 랍비의 얼굴은 평소와 다를 바가 없었으나 입술을 달싹이면서 찡그리는 눈썹은 그가 심한 고통 중에 있다는 것을 알려주었다. 유다는 홀로 있을 때에는 방해하지 말라는 스승의 말씀을 무시하고 그의 이마를 짚었다. 그가 화들짝 놀라며 눈을 떴다.

“…유다?”

그의 상냥한 목소리에는 힘이 없었다. 유다는 스승을 제 몸 쪽으로 끌어당겨 그가 의지할 수 있게 했다. 그리고 멍청하게 노래나 부르고 있는 그의 동료들을 소리쳐 불렀다. 아무래도 뜨거운 이스라엘의 한낮에 오랫동안 나와있었던 것이 화근이 되어 스승의 몸에 탈이 난 것 같았다. 다행히 열은 없었다. 단순히 피로한 것이라면 다행일테고……. 요한이 수건을 물에 적셔 가져왔다. 유다는 그것을 받아들어 스승의 얼굴을 닦아주기 위해 창백한 얼굴을 살폈다. 차가운 물수건이 얼굴에 닿으려는 때에 랍비는 비틀거리며 일어나 유다를 남겨두고 그늘을 떠나버렸다. 요한이 의아하다는 얼굴로 유다와 스승의 뒷모습을 번갈아 보았다. 유다는 실소를 내뱉었다. 수건을 흙바닥에 내던지고 밟고 싶은 마음까지 들었다. 유다 또한 굳은 얼굴로 그늘을 벗어났다. 스승은 은근하게 그를 내치고 있었다. 그것은 자명한 사실이었다. 아무런 이유도 없이 그토록 순결한 사람에게 배척받는 기분은, 속된 말로 더러웠다. 유다는 침을 탁 뱉었다. 평소라면 랍비의 앞에서 상스러운 행동이라며 치를 떨었을 행동이었다.




유다는 새벽녘에 눈을 떴다. 상인의 버릇이 몸에 밴 덕이었다. 바람이 나뭇잎을 흔드는 소리를 듣다가 그는 문득 몸을 일으켰다. 스승은 벌써 자리에서 일어난지 오래인 것 같았다. 유다는 픽 웃었다. 쓰잘데기 없이 부지런하셔서는. 그는 조금 걷기로 했다. 저만치서 무릎을 꿇고 기도를 하고 있는 스승이 보였다. 어스름한 새벽빛 때문에 그의 머리를 덮은 하얀 천이 푸르스름하게 보였다. 유다가 그를 인식한 것과 거의 동일한 시각에 그 또한 유다를 눈치챈 것 같았다. 랍비는 기도를 마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유다를 향해 두 팔을 벌렸다.

“유다, 깨었구나. 이리 오지 않으련.”
“…괜히 어린애 취급 하시기는. 어제 그렇게 매정하게 가버리시고는 이렇게 하면 제가 만족하실 줄 알았습니까?”

랍비는 고개를 약간 숙였다. 그러다가 유다에게로 다가왔다. 그의 행동이 무척이나 갑작스러운 것이라 유다는 주춤거리며 물러설 틈도 없었다. 다가온 그는 누구보다 다정한 목소리로, 지금껏 그 누구에게도 보여준 적 없을 따스한 시선으로 유다의 갈색 눈동자를 똑바로 응시했다.

“유다. 네게도 신세를 많이 지는구나. 너의 쓸쓸함을 내가 어찌 모르겠느냐. 허나 항상 성난 표정을 짓고 있으면 안된다. 쓸쓸할 때에 그를 얼굴에 나타내는 일은 위선자나 하는 것이다. 그들의 불행을 남들이 알아주기를 기대하며 더욱 어두운 안색을 하고 있을 뿐이다. 네가 진실로 아버지를 믿는다면 너는 쓸쓸할 때에도 머리에 기름을 바르고 웃어야 한다. 사람들이 알아주지 않더라도 보이지 않는 곳에 계신 아버지께서 알아주신다면 그것만으로 족하지 않겠느냐. 쓸쓸함은 누구에게나 있단다.”

유다는 갑자기 어린아이처럼 울고 싶은 마음을 눌러 참았다. 그러니까 그의 스승도 그를 알고 있었던 것이다. 그 다정한 목수의 손으로 산산조각낸 사랑을. 유다는 부르르 떨리는 턱을 바로하고 입을 열었다. 치밀어오른 감정 때문인지 목소리가 이상하게 나왔다.

“아뇨, 저는 하늘에 계신 아버지가 알아주시지 않더라도 단지 당신 한 사람만이 알아주신다면 그것으로 충분합니다. 저는 당신을 사랑합니다. 다른 제자들이 아무리 깊이 당신을 사랑한다 하더라도 그것과는 비교도 안될 정도로 사랑합니다. 누구보다도 사랑합니다. 베드로나 야고보 같은 이들은 그저 당신을 따라 다니며 무언가 좋은 일이라도 있을까 하고, 그런 것만 생각합니다. 그러나 저만은 알고 있습니다. 당신을 따라다녀 봤자 전혀 얻는 것도 없다는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당신 곁을 떠날 수가 없습니다. 어떻게 된 일일까요. 당신이 이 세상에서 사라지면 저도 곧바로 죽겠습니다. 살아갈 수가 없습니다. 어째서 이런 저를 당신의 다른 제자들과 똑같이 대하십니까? 그 누가 당신께 이렇게 말합니까?
제게는 항상 혼자서 생각하고 있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당신이 멍청한 모든 제자들 곁을 떠나, 또한 하늘에 계신 아버지의 말씀 같은 것을 가르치지 않으며, 소박한 백성의 하나로서 어머님이신 마리아님과 저, 이 셋이서 조용히 한 평생을 오랫동안 살아가는 일입니다. 제겐 아직 아버지께서 남겨주신 집 한 채가 있습니다. 지금쯤이면 그곳엔 무화과 농사가 한창일겁니다. 당신은 무화과를 좋아하지 않습니까. 만일 그렇게 된다면 지금처럼 돈에 구애받지 않고 그 과일을 마음껏 취할 수 있을겁니다.”

그의 랍비는 유다를 잠시 쳐다보았다. 그의 아름다운 푸른 눈에는 가슴이 저리도록 오묘한 슬픔이 깃들어 있었다. 랍비는 유다에게 더 다가왔다. 새하얀 그의 존재는 유다에게 버거웠다. 그는 뒤로 몇걸음 물러났다. 하지만 문득 그는 생각했다. 그의 랍비와 이렇게 단둘이 깊은 대화를 나누어 본 적이 있던가? 해서 그는 이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았다. 그의 가슴이 마구 뛰었다. 한걸음 앞으로 다가서니 랍비는 온화하게 웃었다. 그리고 유다의 이마에 다정하게 입을 맞춰주었다. 아름다운 말이 흘러나오는 입술이 이마에 잠깐 닿았다가 떨어지는 순간 유다는 끝없는 갈증이 채워지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실소를 머금었다. 평소 스승이라면 절대 하지 않았을 일이다. 유다는 감았던 눈을 뜨고 랍비를 바라보았다. 문득 그의 얼굴에서 슬픔이 보였다.

“랍비시여, 왜 그런 표정을 지으십니까?”
“…아무것도 아니다. 다만, 곧 너와 함께하지 못할 것이라는 사실이 나를 괴롭게 하는구나.”
“도대체 무엇이 그렇게 막는단 말입니까? 그 누구도 제게서 당신을 빼앗을 수 없을 것입니다.”

랍비는 그저 은은하게 웃기만 했다. 수염 하나 없이 말끔하고 여자처럼 처연한 느낌이 드는 얼굴에 알 수 없는 감정이 묻어났다.

“그럴 수 있다면 좋으련만…….”
“당신이 무슨 말씀을 하셨는지 알기나 하십니까? 당신은 알고 계십니다. 제가 당신을 떠나지 못하리라는 것을 알고 계십니다. 제가 당신을 얼마나 사랑하는지도, 당신이 사라지면 저 또한 죽음을 맞으리라는 것도 알고 계십니다. 당신을 온전히 저만의 주님으로 신봉하고 싶은 것도 알고 계십니다. 제 삶에서 당신을 빼앗길 바에야 제가 먼저 당신을 부술 것이라는 것도 알고 계십니다. 당신은 제게 전부입니다. 당신은…당신은…내게…….”

결국 횡설수설하다가 입을 다물었다. 스승은 조용히 유다를 내려다보다 그의 이마에 축복의 징표로 입을 맞추었다. 그리고서는 다정한 목소리로, 그 누구라도 눈물을 흘릴 정도로 애틋하게 속삭였다.

“유다, 너는 나를 떠나야만 할 것이다. 나를 버려야만 할 것이다. 그것이 곧 아버지의 뜻이요, 나의 뜻이란다.”

유다의 피가 싸늘하게 식었다. 그래요, 당신은 늘 제게 이런 식이셨죠. 결국 나의 모든 행동은 당신께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것을 알았어야 했는데. 당신은 아직도 절 멀리하고 싶으십니까? 그토록 멍청한 베드로나 요한에게는 스스럼없이 자신의 슬픔을 드러내시면서 제게 당신의 감정을 보이는 것은 큰 패배라도 하는 것 같으십니까? 제가 당신과 함께 있는 것이 그토록 싫으십니까? 그러면 왜, 도대체 왜 홀로 남겨진 상인에게 그토록 따스한 손을 내민 것입니까? 유다는 주먹을 꽉 쥐었다. 스승은 언제 속삭였냐는 듯이 멀리 하늘을 보더니 말했다.

“그들은 어부다. 아름다운 무화과 밭도 없다. 그들에게는 그렇게 평생을 안락히 지낼 땅이 그 어디에도 없다.”

그것이 마지막으로 유다와 랍비가 단둘이 나눈 대화였다.




예루살렘에 이르렀을 때 랍비는 제자 몇명을 불러다가 새끼 나귀 한 마리를 구해오라 일렀다. 그것을 타고 예루살렘 성문에 들어갈 것이라고 하면서. 유다는 맥이 탁 풀렸다. 예루살렘에 이르기까지 사사건건 그는 랍비의 행동을 걸고 넘어졌다. 그러나 랍비는 그를 별로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듯 했다. 아예 없는 사람처럼 굴기도 했다. 하여 유다의 눈에 모든 것이 삐뚤어 보이는 것은 사실이었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기적의 남자’, ‘위대한 선지자’, 혹은 ‘유대의 왕’이나 ‘신의 아들’이라 불리는 그가 휘황찬란한 전차와 가마를 앞세워 가지는 못할망정 늠름한 말도 아니고 가난한 상인들이나 타는 어린 나귀를 타고 성문을 통과한다니. 유다를 제외하고는 모두들 이 상황보다는 예루살렘에 들어갈 것이라는 사실에 더욱 흥분하여 다른 것은 아무래도 좋은 듯이 굴고 있었다. 랍비는 미친 것이 틀림 없었다. 유다는 자신의 애달픈 가설에 다시 한번 힘을 주었다. 곧 자그마한 어린 나귀가 나타났다. 랍비는 그 위에 올라타 그 작은 짐승을 다정하게 어루만지며 성문을 향해 나아갔다. 여기저기에서 종려나무 가지를 든 사람들이 외쳤다.

“호산나! 우리를 구원하실 왕이시여!”

유다는 창피한 마음에 굴이라도 파고 들어가고 싶었다. ‘유대의 왕’의 개선 행렬은 모래먼지가 가득한 바닥에서 주변을 호위하는 무사도, 나팔을 부는 사람도, 하물며 사소한 금붙이조차 없이 종려나무 가지를 흔드는 가난한 자들과 그들이 왕의 행렬을 위해 벗어 깔아놓은 옷 위에서 이루어졌다. 군중들은 더욱 흥분하여 호산나를 소리쳤다.

“우리를 구원하실거죠?”
“우리를 치유하실거죠?”
“우리를 구하실거죠?”
“우리를 위해 희생하실거죠?”
“우리를 위해 죽어주실거죠?”

유다는 섬뜩한 기분에 랍비를 올려다보았다. 그는 마치 그 무서운 말들을 듣지 못한 것처럼 사람들에게 온화하게 웃으며 앞으로 나아갔다. 그러나 유다는 다정한 웃음 사이로 그의 파란 동공이 흔들리는 것을 볼 수 있었다. 결국 그도 그들의 외침을 들었던 것이다. 피를 갈망하는 목소리를. 군중은 피를 원하고 있었다. 어린양을 도살장으로 끌고나가는 그들의 얼굴은 더할나위없이 밝았다. 유다는 직감했다. 이 사람을 멈추어야만 했다. 그가 이 저주받은 길에서, 저들의 손에 도살되기 전에 막아야 했다.




유월절이 다가왔으므로 모두들 바빴다. 스승과 유다, 그리고 나머지 동료들 또한 이를 기념하여 어느 저택의 다락에서 저녁식사를 하기로 하였다. 매일같이 제대로된 자리에서 먹지도 못하고 휴식을 취하지도 못했던 동료들은 아늑한 공간을 보자마자 뛸듯이 기뻐했다. 유다는 콧방귀를 뀌었다. 그래봤자 몇 없는 예산을 최대한 쪼개어 마련한 식사자리였으니. 아니, 정확한 이유는 그것이 아니었다. 랍비가 어디로 갔는지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스승님이 안 보이시네. 어떻게 하지? 웅성거리는 동료들 사이로 유다는 제 자리에 털썩 앉았다. 그러자 다른 이들도 쭈뼛거리며 앉는 것이었다. 그때, 그들의 랍비가 나타났다. 평소처럼 새하얀 옷을 입고 있는 그의 허리춤에는 하얀 수건이 동여매여져 있었다. 그의 손에는 깨끗한 물이 찰랑이는 대야가 들려 있었다. 의아해하는 제자들 사이로, 그는 가까이 앉은 제자의 앞에 무릎을 꿇고 앉아 온갖 흙먼지와 오물이 묻은 발을 부드럽게 들고, 물로 씻어내려가기 시작했다. 모두들 경악하며 벌떡 일어났다. 유다도 마찬가지였다. 발을 씻기는 것은 가장 비참한 노예가 하는 일이었다. 그것을 어째서 그들의 스승이 하고 있으며, 어떻게 감히 그 손길을 받겠는가. 그러나 랍비는 조용히 발을 씻기고 허리춤에 맨 수건으로 물기를 닦아주었다. 얼떨떨해져 있다가 발이 씻기는 제자들이 대부분이었다. 마침내, 그가 유다의 앞에 꿇어앉았을 때, 유다는 문득 지금까지의 모든 불만과 끔찍한 생각들이 가시고, 오로지 그의 스승에 대한 사랑만이 샘솟는 것을 느꼈다. 그는 말하고 싶었다. 안심해주세요. 이제 오 백의 관리, 천의 군대가 온다해도 당신의 몸에 손가락 하나 대지 못할 겁니다. 아시지요, 놈들은 당신을 노리고 있습니다. 위험합니다. 아, 그래. 지금 당장 여기서 도망치는 것이 좋겠습니다. 베드로도 오라, 야고보도 오라, 요한도 오라, 모두 오라, 우리의 선한 주를 지키고 평생 오래도록 살자. 그날, 그때까지 느껴보지 못했던 일종의 숭고한 영감에 감명을 받은 탓이었다. 뜨거운 눈물이 볼을 따라 흘렀으나 유다와 스승을 제하면 아무도 눈치채지 못했다. 이윽고 유다의 발도 스승에 의해 조용히 정성껏 씻겨지었고, 허리에 둘렀던 수건으로 부드럽게 닦아지었다. 수건이 발끝에 닿았을 때, 아아, 그 때의 촉감이란. 유다는 처음으로 천국을 믿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스승은 일어선 뒤, 다음에 앉은 제자, 그 다음에 앉은 제자의 발을 씻겼다. 마침내 베드로의 차례가 되었다. 그러나 베드로는 그처럼 우직한 자였으므로 수상한 마음을 숨겨둘 수가 없었던 모양이었다. 그는 다소 불만스럽게 입술을 내밀며 물었다.

“주여, 당신은 왜 제 발 같은 것을 씻으려 하십니까?”

그러자 스승의 얼굴에는 옅은 미소가 지어졌다.

“나의 하는 것을 네가 이제는 알지 못하나 이 후에는 알리라.”

그토록 은유적으로 말한 뒤에 그는 베드로 발 밑에 앉았다. 하지만 여전히, 베드로는 기꺼이 거절하며 ‘아뇨, 안됩니다. 영원히 제 발 같은 것을 씻으시면 안 됩니다. 너무도 황송합니다.’ 따위의 말을 하며 발을 오므렸습니다. 유다는 그를 한 대 때려주고 싶은 심정이었다. 만일 그 부드럽고 다정한 손길을 다시 한번만 더 느껴볼 수만 있다면 그는 기꺼이 목숨이라도 내놓을 텐데. 실랑이가 이어지자 랍비는 조금 큰 목소리로 말했다.

“내가 너를 씻기지 아니하면 네가 나와 상관이 없단다.”
“아아, 잘못했습니다, 그렇다면 제 발만이 아니라 손과 머리도 마음껏 씻어 주십시오.”

베드로가 머리를 깊이 숙여가며 부탁을 하자 유다는 저도 모르게 웃음이 터져 나왔으며, 다른 제자들도 몰래 미소를 지었다. 어딘지 모르게 방안이 밝아진 듯했다. 스승 또한 소리 없이 빙그레 웃었다.

“베드로야, 발만 씻으면 이제 그것으로 네 온몸은 깨끗해졌다. 아아, 너뿐만이 아니라 야고보도 요한도 모두 흠 없는 깨끗한 몸이 된 것이다.”

깨끗한 몸. 유다는 그 말의 의미가 매우 큼을 알고 있었다. 여전히 사랑의 감정이 가슴에서 샘솟는 채로, 그는 황홀한 눈으로 랍비를 바라보았다. 그러나 랍비는 말을 더 잇지 않았다. 그는 문득 허리를 피고 순간 고통을 참는 듯이, 매우 슬픈 눈을 하는 것이었다. 곧 그 눈을 세게 감더니, 감은 채로 말했다.

“……모두가 깨끗하면 좋으련만.”

그제서야 유다는 다시금 환상에서 깨어났다. 당했다! 하는 생각이 뇌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그의 스승은 여전히 그를 밀어내고 있는 것이었다. 불과 몇 분전까지의 어두운 마음을 꿰뚫어보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 때는 아니었다. 그는 스승의 말대로, 깨끗했다. 마음마저 변해있었다. 유다는 머리를 쥐어뜯으며 아아, 그 사람은 그걸 모른다, 그걸 몰라! 아니! 아닙니다! 하고 소리치고 싶다는 충동을 겨우 누를 수 있었다. 목구멍까지 나오려던 절규를 약하고 비굴한 마음이 침을 삼키듯 삼켜버렸다.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스승으로부터 그런 말을 들으니 역시나 저는 깨끗해지지 않았는지도 모른다는, 나약하게 긍정하는 마음이 고개를 들더니 점점 그 비굴한 반성이 추악하고 흑암처럼 부풀어올랐다. 그의 스승이 원했을 것과는 반대로 점차 분노의 불길이 타오르기 시작한 것이었다.
안되겠다. 나는 안 된다. 그 사람에게 철저히 경멸 당하고 있다. 그 사람을 죽이자. 그리고 나도 함께 죽는 것이다.
전부터 마음먹었던 결의가 다시금 눈을 뜨고는, 완전히 복수의 악귀가 된듯한 기분이 그를 휘감았다. 그러나 그러한 마음을 들게한 사람은 이윽고 복장을 바로 하여 편안히 자리에 앉고서는 실로 창백한 얼굴로 입을 여는 것이었다.

“내가 너희에게 행한 것을 너희가 아느냐. 너희가 나를 주라 또는 선생이라 하니 너희 말이 옳다. 나는 너희들의 주 또는 선생임에도 너희 발을 씻겼으니 너희도 서로 사이좋게 발을 씻도록 해야 한다. 내가 너희들과 언제까지나 함께 있을 수가 없으므로 이번 기회에 본을 보인 것이란다. 내가 너희에게 행한 것같이 너희도 행하도록 하려무나. 스승은 반드시 제자보다 크니 내가 하는 말을 잘 듣고 잊지 않도록 해라.”

그 뒤, 매우 우울한 듯한 말투로 소리 없이 식사를 시작하고서도 랍비는 유다의 심장을 짓밟는 행위를 멈추지 않았다. 그는 문득 고개를 들었다. 우수에 찬 푸른 눈동자가 어렴풋이 눈물로 빛났다.

“너희들 중 한 명이 나를 판다.”

고개를 숙여 신음하는 듯하기도 흐느끼는 듯하기도 하듯이 괴로운 목소리로 말했기에 제자들 모두 크게 놀라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유다는 그 난리통에서도 초연히 앉아 있었다. 여전히, 멍청한 제자들은 그 사람 주변에 모여 각각 주여, 저입니까, 주여, 그건 저를 말씀하십니까, 하고 난리를 쳤다. 스승은 그 소음에 휘말리지 않았다. 원체 그러한 사람이었다. 다만, 죽는 사람처럼 슬며시 고개를 흔들고는 빵을 갈랐다.

“내가 지금 그 사람에게 한 조각 빵을 주노라. 그 사람은 매우 불행한 사람이로다. 그 사람은 차라리 나지 아니하였더면 제게 좋을 뻔하였느니라.”

그는 한 조각 빵을 들고 팔을 뻗은 후, 망설임 없이, 보란듯이 유다의 입에 갖다댔다. 유다는 그때까지도 표정의 변화가 없었다. 이미 마음을 정한 상태였다. 그를 수치스러워하기 보다는 증오했다. 그는 스승이 부르짖는 천국을 믿지 않았다. 신 따위도 믿지 않았다. 랍비가 언제나 강조했던 부활도 믿지 않았다. 당연히 예언도 믿지 않았다. 왜 그 사람이 이스라엘의 왕이란 말인가. 멍청한 제자들은 그저 흔한 랍비 중 하나인 그를 하나님의 아들이라 믿고, 그리고 하나님 나라의 복음이라는 것을 전해듣고는 흔희작약하고 있었다. 머지않아 실망할 것이다. 왜냐하면 랍비는 거짓말쟁이니까. 말하는 것, 하나부터 열까지 엉터리, 정신병자의 말이었다. 유다는 그의 말을 아무것도 믿지 않았다. 하지만 괴롭게도, 그 사람의 아름다움만은 그토록 굳게 믿고 있었다. 그만큼 아름다운 사람은 이 세상에 없다는 것을. 유다는 그 사람의 아름다움을 순수하게 사랑하고 있었던 것이다. 아무런 보수도 바라지 않았다. 그 사람을 따라 걸으며, 천국이 가까웠고 그 때 가서는 훌륭히 우의정이나 좌의정이 되고자 하는 생각도, 그런 천박한 욕심도 유다에겐 없었다. 아니, 적어도 자신이 그렇다고 느꼈다. 그저 그 사람 곁을 떠나고 싶지 않았던 것 뿐. 그저 그 사람 곁에 있어, 그 사람의 목소리를 듣고 그 사람의 모습을 바라보고 있으면 그것으로 유다는 만족했을 것이다. 그는 지금 이 현세의 기쁨만을 믿는 사람이었으니 말이다. 다음 세상의 심판 같은 것을 조금도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이었으니. 매우 역설적이게도, 유다는 그러한 이유 때문에 대제사장의 집 문을 두드리고서는 두 팔을 쳐들고 외쳤다.

“아아, 그 사람을 죽여주십시오. 나으리. 저는 그 사람이 있는 곳을 알고 있습니다. 안내해드리지요.”




겟세마네 동산에는 어둠이 내려앉아 있었다. 횃불을 앞세워 제사장들의 병사들과, 종들과, 유다는 걸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나지막한 말소리가 들려왔다. 유다는 흠칫 놀라며 제 옆의 사람들을 쳐다보았다. 그러나 아무도 그것을 듣지 못한 듯 했다. 하지만 그는 알 수 있었다. 스승은 괴로워하고 있었다. 심한 고통중에 있었다. 마치 야자수 아래의 그날처럼. 당장이라도 그에게 달려가고 싶다는 것을 자각했을 때, 유다는 깨달았다. 그 사람을 사랑한다는 것을. 그가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바친 스트로게임을. 그의 스승이 죽으면 유다 또한 죽을 것이었다. 그래. 그 사람은 누구의 것도 아닌 유다의 것이었다. 누가 유다만큼 그를 헌신적으로 보필했으며 누가 그를 그토록 따랐는가? 아버지를 버리고 어머니를 버리고, 태어난 땅을 버리고 그는 오늘까지 스승을 따라 걸어왔다. 하여, 누가 유다가 아니라면 누가 감히 그를 배신할 수 있단 말인가? 유다는 부러 풀 한 포기를 밟았다. 바스락거리는 소리에 스승이 고개를 들었다. 유다는 제 행동에 의아함을 품었다. 소리죽여 다가가 그를 덮치지는 못할망정 왜 들으란듯이 풀을 밟았는가? 스승의 눈과 마주치는 순간 그는 그 이유를 떠올렸다. 단지 그가 봐주길 원했던 것이다. 스승이 그를 봐주기를. 하여 그 돌발행동에 후회는 없었다. 푸른 달빛 속에 그의 눈은 빛났다. 그가 눈물을 흘리고 있었음을 알 수 있었다. 그 눈을 보자 유다는 결심이 섰다. 그는 당당하게 걸어가 스승의 귀에 대고 속삭였다.

“나의 랍비시여.”

그리고 평상시처럼, 그에게 입을 맞추었다. 입술이 살에 닿는 순간, 랍비는 눈을 감았다가 떼어지는 순간 떴다. 그는 여전히 눈물이 가득한 눈으로 유다를 올려다보았다. 그가 속삭였다.

“…유다.”
“……”
“그렇게 나를 배신해야겠더냐?”

내게 입을 맞추며? 그렇게 묻는 스승의 얼굴에는 감히 형용할 수 없는 감정이 깃들어있었다. 그는 두려워보였다. 그는 슬퍼보였다. 무엇보다도……

“…왜 저 따위를 위해서 그딴 표정을 지으십니까.”

유다는 낮게 으르렁거렸다. 저쪽에 선 다른 사람들이 듣지 못하도록. 스승은 슬프게 웃었다. 그리고 유다의 어깨를 어루만졌다. 그리고 나지막하게 말했다.

“괜찮단다. 네 잘못이 아니다, 유다.”

유다는 짐승의 사체를 넘기듯이, 거의 내동댕이치다시피 하며 자신의 스승을 그들에게 넘겼다. 곧 그곳은 아수라장이 되었다. 도망치는 동료들과 그 중에 랍비를 지키겠답시고 그를 에워싼, 부질없는 저항의 무리들. 긴 실랑이 끝에 마침내 제사장의 한 종의 귀가 떨어져나갔다. 종은 자신의 귀가 있었을 곳을 감싸며 처절하게 비명을 질러댔다. 그러나 아무도 그에게 연민을 보이지 않았다. 종은 원망하듯이 자신의 주인을 올려다보았다. 그의 주인은 대답하지 않았다. 오로지 하얀 옷의 아름다운 청년이 그를 감싼 제자들의 무리에서 조용히 걸어나왔을 뿐이다. 피범벅이 된 귀를 아무렇지도 않게 손에 들고 그는 그것을 다시 원위치에 붙였다. 마치 한번도 잘린 적이 없었던 것처럼 종의 귀는 멀쩡해져 있었다. 랍비는 말했다.

“베드로.”
“……”
“칼을 내려놓아라. 무릇 칼로써 흥한 자는 칼로써 망하는 법이다.”

유다는 머리가 멍해졌다. 그가 정신을 차렸을 때, 이미 제사장들의 병사들이 스승의 팔을 쥐고 있었다. 그들은 가져온 밧줄로 그의 손을 묶고서는 개를 끌고 가듯이 욕설을 하고 침을 뱉으며 떠들썩하게 조롱했다. 유다는 직감적으로 깨달았는지도 모른다. 마치 저가 모욕을 당한 것처럼 자신의 가슴이 아팠다는 것을. 자비없는 주먹질에 스승이 휘청거리며 주저앉을 때마다 저 또한 다리에 힘이 풀렸다는 것을. 그러나 유다는 주먹을 꽉 쥐었다. 그의 스승은 미쳤다. 그 광기가 그 자신을 잡아먹는 것을 막으려면 이렇게 해야만 했다. 산헤드린의 회당에 다다르자 또 다시 한번 그들의 ‘포로’를 향한 폭행이 이루어졌다. 모든 모욕과 고통에도 초연했던 랍비는 그제서야 몸이 한계에 다다랐는지 무릎이 꺾이다시피 하며 주저앉았다. 파르르 떨리는 몸을 차마 볼 수 없어 유다는 등을 돌렸다. 전부 당신을 위해서였어요. 믿어주십시오. 아니, 당신은 믿지 않으려나요.




광장에서는 채찍의 소리가 한창이었다. 유다는 오늘 또 어떤 죄인이 어떤 죄를 지어 그토록 가혹한 짓을 당하고 있는지 궁금해졌다. 그는 흙먼지가 자욱한 거리를 가로질러 걸어 로마식 광장으로 들어섰다. 대리석으로 만들어진 바닥에서 붉은 죄인의 피가 흥건해 끄트머리에 선 유다의 발까지 가 닿았다. 죄인은 듣기 힘들 정도로 처절한 비명을 지를 법도 한데 꽉 다문 입술은 피가 줄줄 흘러내리도록 조용했다. 오히려 소란스러운 것은 홀로 묶인 죄인을 비난하는 목소리였다. 죄인은 법을 어긴 자이므로 죽어 마땅했다. 형틀에는 사람인지 갓 도축한 고깃덩어리인지 모를 살덩이가 매여 고통으로 파르르 몸을 떨었다. 그의 등에는 저절로 눈이 질끈 감길 만큼의 채찍 자국이 나 있었다. 수와 함께 채찍이 한번 더 날아들 때마다 꿋꿋이 인내하려는 몸뚱이는 힘없이 무너져내렸다. 유다는 사람을 헤치고 앞으로 걸어갔다. 오 맙소사, 제발 그가 생각하는 그 사람이 아니기를. 하지만 그는 곧 비틀거리며 뒤로 물러설 수 밖에 없었다. 멍한 느낌밖에는 들지 않았다. 마지막 39번째 채찍질이 마른 몸을 휘감았다 놓는 순간 유다의 기억 속에서 총명하게, 그리고 아름답게 빛나던 새벽빛의 푸른 눈은 빛을 잃고 늘어졌다. 유다는 입을 벌렸다. 그의 입에서는 무언가가 나왔어야 했다. 하지만 무엇이? 어떻게 감히 유다가 그를 동정할 수 있겠는가. 내뱉어지지 못한 말들은 그대로 눈물이 되어 흘렀다. 유다는 벙어리처럼 꺽꺽거리며 바닥에 주저앉았다. 오, 랍비여. 당신은 이것을 예상하신겁니까. 죄인이 기절하자 채찍을 휘두르던 군인도, 수를 세던 군인도 조용해졌다. 끔찍하게 피를 흘리는 몸을 만지고 싶지는 않겠지. 그들은 서로 눈치를 보며 색색거리며 숨 쉬는 죄인을 곁눈질했다. 그 순간 군중들 속에서 큰 돌이 날아와 매달린 죄인의 머리를 정통으로 맞혔다. 통증에 죄인은 신음하며 눈을 떴다. 죄인의 머리 위로 붉은 피가 흘러내려 여전히 아름다운 얼굴을 적셨다. 군인들이 돌을 던진 사람을 찾으려던 찰나에 군중 속 목소리가 외쳤다.

“네가 정녕 신의 아들이라면 당장 일어나보지 그래? 형틀을 부숴보란 말야!”
“신의 아들이 채찍이나 맞고 있으니 이거야 원, 황송해 죽겠네.”

아니야. 그렇게 말하지 마. 유다는 외치고 싶었다. 어째서 이 모든 사람들이 하나의 약하고 야윈 개인을 향해 그 모든 분노를 쏟아내는지 그는 이해할 수 없었다. 그의 랍비는 로마의 형틀에 두 손목이 매여 로마의 군인에게 로마의 채찍을 맞았다. 그의 여린 살갗을 갈기갈기 찢어놓은 것은 로마였으며 그는 또한 유대인에게서 난 사람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군중은 저들의 동족을 찢는 로마가 아닌 살가죽이 덜렁거리도록 매질 당한 한 아름다운 청년에게 분노했다. 돌을 던지고 귀에 스치는 것조차 상스러운 욕을 해댔다. 아, 이럴 수는 없었다. 유다는 구역질을 하며 군중 속을 뛰쳐나오려 애를 썼다. 모래와 먼지가 가득한 땅에 질질 끌려가는 죄인의 흔적은 오로지 붉은 피였다. 사람들은 늘어진 그를 둘러싸고 주먹질을 하고 발길질을 했다. 더러는 바닥을 나뒹구는 나뭇가지로 얼굴이며 등을 때리는 자들도 있었다. 군인들은 흥분한 군중들에게서 죄인을 떼어놓으려 애썼다. 로마의 반역자가 그 죗값조차 치르지 못하고 죽어버린다면 그야말로 난감한 상황이기 때문이다. 유다는 힘겹게 사람들을 헤치고 스승에게로 다가갔다. 더욱 더 과격해진 사람들에 스승의 마른 몸은 이리저리 휩쓸렸다. 그 순간 스승의 푸른 눈이 유다의 눈과 마주쳤다. 바짝 마른 입술이 벙긋거렸다. 로마 군인 하나가 채찍을 바닥에 세게 내리쳤다. 그제서야 군중들은 점차 물러나기 시작했다. 유다는 그저 그 자리에 주저앉아 있었다.

“어이! 뭐하는거야? 썩 꺼져라.”

군인이 호통을 쳤다. 유다는 그제서야 비틀거리며 일어섰다.

“이름이 뭔가?”
“아, 저 말씀이십니까?”

과하게 굽실거리면서 유다는 실실 웃었다. 마치 다른 사람들이 그렇듯 죄인의 비참함을 즐기러 온 것처럼 말이다. 로마 병사는 반푼이로 보이는 그를 향해 눈썹을 찌푸렸다.

“그래.”
“저는 이스가리옷 유다라고 합니다, 헷헤. 그저 미천한 장사치이죠.”

그리고 유다는 곧바로 그 자리에서 벗어났다.




“분명 그를 멈추기만 한다 하지 않았습니까? 방금 그 채찍질은 도대체 무업니까?!”

유다는 겁도 없이 제사장들의 앞에서 버럭버럭 소리를 질렀다. 그를 어떻게 그 고통 속으로 내몰 수 있냐고 외쳤다. 저주받을, 썩을 독사의 자식들입니다! 당신들 모두! 유다는 씩씩거리며 숨을 골랐다. 아직 더 퍼붓지 못한 저주의 말이 그의 가슴에서 씨근거리고 있었다. 그러나 제사장들은 모두 정신병자라도 본다는 듯이 유다를 쳐다보았다.

“…이봐, 젊은이.”

대제사장의 장인, 안나스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자넨 그를 팔았어.”
“…뭐라고요?”
“그를 팔았다고. 그것도 은화 30냥에 말이야.”
“……”
“아직도 모르겠나? 자넨 노예가 황소에게 부딪혀 상해를 입었을 때 배상해주는 값에 그의 생을 팔았어. 그 정신병자를! 모두 자네가 와서 말한 것이지 않나? 자네의 입으로 그를 멈추어달라고 하지 않았나? 신을 모욕하고 감히 메시아를 외친 그에게 이러한 처벌은 합당한 것이 아니겠나? 자네가 원한 것이네. 이것은.”

안나스가 무어라 더 말을 덧붙이려 입을 열었지만, 유다는 광인처럼 소리를 지르며 그곳을 떠나오고 말았다. 더 들을 용기가 없었다. 그가 뱉어버린 말에 질식할 것 같았다.




하늘 아래 모든 생들의 죄를 대신 사해주심으로서 유대를 구원하실 메시아. 그 어린 양의 목숨은 고작 한 줌 천주머니에 들어오는 은화 삼십 냥과 물물교환되었다. 그 세기의 배신은 터질 듯한 죄악감을 무시하듯 너무나 쉬이 이루어져서 유다는 제 손에 들린 묵직한 목숨값에도, 그 안에서 들려오는 쩔렁이는 죄의 소리에도, 제가 무슨 짓을 한 것인지 자각하지 못했다. 광장 한가운데서 채찍을 맞고 사람들에게 손가락질 당하며 짐승처럼 밧줄에 매여 개처럼 끌려다니는 그의 스승을 보면서도, 잠시 동안은 그저 끔찍한 악몽을 꾸듯 멍한 부유감만이 가득했을 뿐이었다. 그 전능하신 신의 아들께서 군중 틈에 숨은 유다의 시선을 찾아내어 언뜻 미소 짓고는 ‘괜찮단다. 네 잘못이 아니다, 유다.’ 하고 입술을 움직이기 전까지는 말이다. 그 다정한 위로를 본 순간 유다는 뒤늦게 심장을 역류하는 현실감에 벽을 부여잡고 구역질을 해댔다. 그래, 이건 속 편한 착각도, 꿈 따위도 아니었다. 이것은, 이것은 현실이었다. 제가 사랑하는 스승을 입맞춤으로 팔아넘기고, 스승의 피가 땅에 흐르고, 끝내는 십자가형을 선고받은 것까지 어느 것 하나 빠짐없이 잔인한 현실이었다. 그 당연한 사실을 저 혼자 깨달은 유다는 그 순간 견디지 못하고 광인처럼 아무렇게나 달음박질쳤다. 쉴새없이 중얼거리면서. 난 몰라. 난 몰랐어. 그렇게 심하게 맞을 줄 몰랐어. 그가 틀렸다는 걸 알길 바랐을 뿐인데. 그러나 그는 알고 있었다. 독수리의 발톱에 걸린 사람들이 얼마나 잔인하게 고통받고 죽어가는지 그는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다. 이는 모두 기만이었다. 셈을 잘 하는 상인인 그로서는 결과를 예상하는 것은 비교적 쉬운 일이었다. 그가 중얼거린 말들은 죄다 거짓이었다. 오로지 그의 비겁함을 증명했을 뿐이었다. 제 죄악을 지켜본 하늘이 두려웠고, 스승의 피를 삼키는 땅이 역겨웠다. 차라리 숨을 쉴 때마다 공기가 수천 개의 바늘이 되어 저를 쑤셔대면 이 고통을 그나마 잊을 수도 있을 것 같았으나 하늘에 계시는 그분께서는 그리 자비롭지 못하셨다. 문득 겟세마네에서처럼 그의 어깨를 어루만지는 손길이 느껴진 듯 싶었다. 유다는 비명을 지르며 경련이라도 일으키듯이 어깨를 마구 털어냈다. 그는 스승이 고문당했던 곳을 향해 버럭버럭 소리를 질렀다.

“그 손 치우십시오. 정녕 모르겠어?! 난 당신을 은화 삼십냥에 팔았다고. 천한 노예의 것보다도 못한 값에 당신의 생을 파는 것이란 말이야!”

얼마나 내달렸을까. 호흡하는 것조차 괴로워 멈춰 선 유다는 문득 제 앞에 거대한 고목이 버티고 있는 것을 발견할 수 있었다. 언제부터 그곳에 있었는지 모를 그 고목은 어찌나 훌륭한지. 가지 하나 하나가 성인 남자 한명이 매달려도 거뜬히 버틸 생명력을 자랑하고 있었다. 말라비틀어진 나무를 마치 에덴동산의 나무처럼 바라보는 유다의 입가에는 더 없이 환한 미소가 걸려있었으나 그 두 눈에서는 쉼 없이 눈물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제 아무리 쉴 곳 없이 떠돌던 광야의 삶이었어도 밧줄 따위를 구하는 것이야 어렵지 않은 일이었고, 어느새 유다는 붉은 밧줄을 쥔 채 그 나무 아래에 서 있었다. 후에 제 육신을 수습해줄 까마귀 한 마리조차 이 부근에는 얼씬하지 않으니 이 얼마나 추악한 배신자에게 타당한 최후인가.

“당신이, 당신이 절 죽이는 겁니다.”

그래, 당신이 날 죽이는거야. 분주히 움직이는 손은 자주 해왔던 일인 양 밧줄로 능숙히 올가미를 만들었다. 유다는 쉼없이 중얼거리던 입을 멈추고 나뭇가지에 걸린 그 올가미 너머 세상을 잠시 눈에 담았다.

“당신께서 옳으셨습니다. 제 잘못이 아닙니다. 이 모든 건 당신이 바라셨던 것 아닙니까? 당신께서 제게 부탁하지 않으셨습니까! 저는...저는 이리 행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저같은 상인에게 은화 삼십냥이 무어라고 제가 감히 그러하겠습니까?! 모든 건 당신의 잘못입니다! 입맞춤의 값도 제가 질 것이 아닙니다! 모두 다 당신의 뜻이었으니까요! 당신은 죽길 원했습니다! 아, 그래요. 맞아! 그겁니다! 당신은 죽길 원했어. 자신에게 주어진 힘이 버거워서 그저 도망치고 싶어졌겠죠! 저를 방패 삼아서 말입니다. 정말 놀라운 발상이지 않습니까? 당신은 성스러운 선지자로, 저는 더러운 배신자로 수백년이 지나도록 저주받겠지요! 이 모든 것을 제게 전가하고 십자가를 지시니 당신의 마음이 어디 편안해지십니까? 빌어먹을 로마의 채찍에 찢긴 몸이, 가시에 꿰뚫린 머리가, 쉴틈 없이 매질당한 곳이 아프지 않으십니까?! 그리고 이제 저마저 죽이려 하시는군요! 그토록 부르짖던 천국에서 굽어살피시며 동정하실 죄인이 필요하셨습니까? 당신이 날 죽이는거야! 그 잘난 머리로 만들어낸 희곡으로 당신이! 당신이 나를...”

그가 그리 부르짖는 이는 들을 수 없는데 유다는 악을 쓰며 발끝부터 가득 차오른 응어리를 꺽꺽 내뱉었다.
아니, 아니다. 결국 그래봐야 결말은 바뀌지 않는다. 문득 마디마다 붉고 푸르게 멍이 든 몸뚱아리가 시선을 스쳐지나갔다. 유다의 동공이 커졌다. 아, 아니야. 아니야. 내가, 내가 당신을...

“……내가 당신을 죽이는 거야.”

울먹이며 끝맺은 말 끝에 툭, 눈물이 그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붉은 대지 위로 떨어져 내리는 것이 느껴졌다. 이제 그가 사랑해 마지않았던 신의 아들은 사람들의 손에 더럽혀져 고통받고 갈기갈기 찢겨 죽게될 것이다. 새로운 미래, 새로운 언약을 위한 제물이 되어. 그 미래에 유다의 자리는 없었다. 그러나 하나도 아쉽지가 않았다. 다만 그의 고통을 조금이라도 나눠받을 수 있다면. 그렇다면 무엇이든 할텐데. 그러나 유다는 똑똑한 사람이었다. 그 고통들은 모두 스승만의 것이었다. 그가 져야할 십자가였다. 유다에게 허락된 것은 배신자가 돠어 바닥을 뒹구는 것,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유다는 천천히 올가미 안으로 고개를 집어넣었다. 이윽고 한 방울의 망설임도 없이 발밑이 무너졌다. 그의 몸은 아주 잠깐 경련을 일으킬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