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혹동화(감춰진 이야기)
거울을 본 왕녀


옛날, 아직 원하는 일이 모두 이루어지던 시절, 자식이 없는 왕과 왕비가 있었다.

두 사람은 할 수 있는 것은 다 했는데도 왜 자식이 없는 걸까 서글퍼하면서 차츰 나이가 들어 가는 것을 한탄하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초라한 옷차림을 한 노인이 성을 찾아왔다.

왕은 흔히 신이 나그네 모습으로 변장해서 찾아오는 일이 있다는 말을 들어왔기 때문에 노인을 따뜻이 맞아 융숭한 대접을 했다.

노인은 성을 떠날 때에 모슨 소망이 없느냐고 물었다.

왕과 왕비는 입을 모아 자식이 없음을 호소하고, 아이를 얻을 수 있다면 어떤 아이라도 좋다고 말했다.

노인
정말로 어떤 아이라도 괜찮습니까?

노인은 다짐하듯 물었다.

이럴 때 욕심을 부렸다가는 자식이고 뭐고 다 허사가 된다는 이야기를 들은 기억이 있어서 왕은 잠자코 고개를 끄덕였다.

그 소원은 이루어질 것이라고 말하고 노인은 간 데 없이 그대로 사라졌다.

얼마 후 왕비는 아기를 갖게 되었고, 왕을 비롯한 온 성안이 기쁨에 넘쳐있는 동안에 마침내 여자 아이가 태어났다.

그런데 공주는 새끼돼지처럼 살이 쪘을 뿐만 아니라, 아무리 뜯어 보아도 예쁜 데가 한구석도 없었다.

게다가 왕비는 산후회복이 좋지않은 데다 못생긴 딸의 앞날을 걱정하다가 결국 숨을 거두고 말았다.

왕도 아이를 갖고 싶어했던 것을 후회했다.

그래도 겨우 얻은 자식이니 만큼 몹시 가여운 생각이 들어 주위 사람들에게 공주를 귀엽고 예쁘다고 칭찬하도록 명령했다.

또 엄명을 내려서 온 나라의 거울을 하나도 남김없이 몰수해 버렸다.

그렇게 해서 못생긴 공주는 모두에게 칭찬을 받으면서 자랐다.

그러던 어느 날, 예전의 그 노인이 다시 모습을 나타나 왕이 불평을 늘어놓자 노인은 무뚝뚝하게 말했다.

노인
당신이 어떤 아이라도 좋다고 말했으니 불평은 못할 거요.

왕은 후회했으나 이미 엎지러진 물이었다.

그러나 이대로는 공주가 자라서 자신의 못생긴 모습을 알아차렸을 때의 일이 큰일이었다.

그래서 노인에게 뭔가 좋은 지혜가 없겠느냐고 의논을 해보았다.

노인
나로서도 이제 와서 공주를 예쁘게 만들 수는 없소. 하지만 정 소원이라면 못생긴대로라도 괴로워하지 않도록 만들어 드리리다.

그렇게 말하고 노인이 가 버린 뒤, 며칠이 채 지나지 않아 공주는 눈병에 걸려 두 눈이 모두 보이지 않게 되었다.

왕은 마음에 집히는 것이 있었으나 이제 와서 어쩔 수 없었다.

다만 앞으로는 거울을 사용해도 좋다는 분부를 내렸습니다.

장님이 된 공주의 시중을 드는 데에는 특별히 못생긴 노파나 곱추 소년이 선택되었다.

성 안의 젊은 여자나 계집아이 중에서 공주보다 못생긴 사람은 한명도 없었기 때문이다.

왕은 공주 옆에 비교의 대상이 되는 인간이 있다는 것이 견딜 수 없었던 것이다.

곱추 소년은 말수가 적고, 참을성 있게 공주의 시중을 들었다.

실명한 후로는 몹시 까다로워지도 신경질이 심해진 공주도 곱추 소년만은 마음에 들어서 시녀인 노파가 죽은 후로는 곱추 소년을 항상 곁에 두고 '아름다운 맹인 공주'로 성장해 갔다.

그런데 공주는 혼기에 접어들면서 한층 더 뚱뚱해져서 움직이는 것도 힘들어 보였는데, 그러던 어느 날 별안간 아기를 낳았다.

왕은 놀라서 아버지가 누구냐고 캐물었지만 공주는 막무가내로 입을 열지 않았다.

게다가 자신이 낳았다는 사실도 인정하지 않는 말투로 함부로 지껄였다.


공주
분명히 돼지가 낳은 새끼일 거야.

왕이 곱추 소년의 일을 입에 올리기만 해도 그런 천한 놈 때문에 말도 안되는 의심을 받는 게 분하다며 공주는 미칠듯이 화를 냈다.

하지만 태어난 아기를 보면 돼지처럼 못생긴 얼굴이 공주를 쏙 빼닮았고 등에는 곱추 소년처럼 혹이 달려 있었다.

왕은 신하에게 명하여 갓난 아기를 숲속에 버리게 했다.

그리고 곱추에게 왕위를 물려줄 마음은 눈꼽만큼도 없었지만, 두사람이 사실상의 부부인 것만은 인정하여 지금까지와 마찬가지로 함께 살도록 해주었다.

그렇다고는 해도 낮동안의 두사람은 누가 보더라도 주종관계로 밖에는 보이지 않았다.

어느 날 그 노인이 또 성으로 찾아왔다.

이것으로 벌써 세번째이니 소원을 들어 주는 것도 이번이 마지막이라고 말했다.

왕은 두번 다시 노인에게 소원을 부탁할 마음이 없었으나 혹시나 해서 공주와 곱추를 불러서 뭔가 바라는 게 있는지 물어보았다.

그러자 공주는 잘 보이는 눈을 달라고 말했다.

모든 사람에게 예쁘다고 칭찬받아 온 자신의 모습을 꼭 한 번 보고 싶다는 것이 공주의 소원이었다.

곱추는 얼굴색을 바뀌며 반대했으며, 그보다도 자신을 공주와 같이 장님으로 만들어 달라고 부탁했다.

보고 싶지 않은 것을 보지 않고도 지낼 수 있게 되면 '아름다운 맹인공주의 남편'으로서 살아갈 수가 있는 것이다.

왕은 두사람의 이야기를 듣고나서 곱추의 소원이 이루어지는 쪽이 좋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공주가 불같이 화를 내며 너는 내가 눈이 먼 채로 살아가길 바라느냐며 곱추를 야단치는 바람에 결국 공주의 고집에 따라 노인은 다음에 올 때 영험한 효력이 있는 샘물을 떠와서 공주의 눈을 뜨게 해주겠다고 약속했다.

곱추는 큰일났다고 생각하여 먹을 것도 제대로 삼키지 못했다.

공주가 눈을 뜨게 되면 결국 자신의 추한 모습을 자기 눈으로 보게 될 것이다.

곱추는 그런 잔혹한 일은 상상만 해도 견딜 수가 없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공주가 눈을 뜨게 되면 곱추의 흉한 모습도 밝은 빛 가운데 드러나게 될 거다.

그렇게 됐을 때 저 자존심 강한 공주는 자신의 추한 모습에 절망하기에 앞서 자기 남편의 추한 모습을 알고 미친듯이 화를 낼 게 틀림없었다.

곱추는 보이지 않는 거울앞에 앉아서 기쁜 마음으로 자신의 얼굴을 보게 될 날을 기다리는 공주 옆에서 대책없이 하루하루를 보냈다.

그로부터 며칠이 지난 어느날 밤, 성에 수상한 자가 숨어들었다.

그 자는 공주의 침실에 들어가 보석함을 훔치고 나서 잠든 공주에게 나쁜 짓을 하려다가 그만 들켜서 주위가 시끄러워지자 당황한 나머지 펄펄 끓고 있는 주전자를 내던지고 도망쳤다.

공주는 얼굴에 뜨거운 물을 뒤집어 쓰고 실신하고 말았다.

곱추는 떠드는 소리를 듣고 딸려나가 수상한 자를 뒤쫓아갔으나 흠씬 두들겨 맞았는지 정원에서 정신을 잃은 모습으로 발견되었다.

왕은 이상한 사건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증거가 있는 것도 아니고 함부로 이러쿵저러쿵 말할 수 없었다.

그보다도 공주의 화상을 치료하는 것이 중요했다.

나라안의 명의를 불러모아 최선을 다한 결과 생명에는 별 지장이 없고, 화상도 생각 밖으로 빨리 치료되었다.

하지만 어떤 명의의 솜씨로도 끔찍한 화상 흉터만은 어찌 할 수가 없었다.

공주의 얼굴은 타고 난 못생김에 화상까지 겹쳐 마치 불에 타서 일그러진 귀신같아서 누구도 똑바로 바라볼 수 없을 정도였다.

자신의 미모가 엉망이 되었다고 생각한 공주는 왕에게 이런 얼굴을 곱추 소년에게만은 보이고 싶지 않다고 하소연하면서 울었다.

공주의 말을 문 밖에서 몰래 듣고 있던 곱추는 신변의 위험을 느꼈다.

하지만 왕은 공주의 간청을 다른 의미로 받아들여, 딸이 아버지에게 애절한 여자의 마음을 털어놓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날 밤, 왕이 곱추를 부르기 위해 사람을 보냈다.

곱추는 불에 달구어진 부젓가락으로 자신의 두 눈을 찌른채 쓰러져 있었다.

치료를 받은 뒤 장님이 된 꼽추는 왕과 공주의 앞에 나가서, 공주의 마음을 헤아려 볼 때 자기로서는 이렇게 할 수 밖에 없었다고 말하고 언제까지나 시종으로서 곁에 있게 해달라고 간청했다.

공주는 흉칙한 얼굴을 움직이지도 않고 잠자코 있었다.

아무말이 없는 것은 승락의 표시라고 왕은 생각했다.

수상한 자가 사실은 꼽추 자신이 아니었는지 문책하려 했던 왕도 곱추의 행동에 마음이 풀려서 그 사건은 불문에 붙이기로 했다.

그래서 곱추는 자신을 위험에서 구출하는 데 일단을 성공했다.

그로부터 며칠이 지나 뒤, 다시 노인이 찾아왔다.

이제는 누구에게도 '초대받지 않는 손님'이었다.

왕은 노인에게 자초지종을 설명하고 공주의 눈을 뜨게 할 영천수는 이제 필요없다고 거절했다.

그러나 노인은 고개를 저으며 그렇게는 안된다며 약속은 약속이니까 반드시 지켜야 한다고 사람들이 말릴 틈도 없이 재빨리 공주에게 다가가서 병에 담긴 물을 머리에 뒤집어 씌었다.

그러자 금새 기적이 일어나 공주가 소리쳤다.


공주
눈이 보인다!

노인
소원대로 보통 사람보다 갑절은 잘 보이는 눈이다.

말을 마친 노인은 이내 어딘가로 사라지려고 했다.

왕은 놀라서 황급히 노인을 붙잡았다.


왕
기다려 주시오. 좀 가르쳐 주지 않겠습니까? 왜 우리는 이런 식으로 차례차례 불행한 일만 당하게 되는 겁니까?

노인
내 탓이라고 말하고 싶은 건가?

노인이 냉소를 띄우며 말했다.

노인
모두 당신 탓이 아닌가. 가슴에 손을 얹고 잘 생각해 보시오.

노인
당신은 이도저도 아닌 어중간한 성격으로 사물에 대한 이해력이 묘하게 좋은 것 같은데, 책임을 지지 않고 결단을 내리지 못해 언제나 판단에 조금씩 오차를 일으키는 것이오.

노인
당신의 그런 어리석은 행동이 오랫동안 쌓여 오늘의 이런 결과를 낳게 한 것이오.

왕은 한방 얻어 맞은 기분이었으나 마지막으로 어리석은 용기를 내어 호기심만이라도 만족시키려고 노인을 향해 물었다.


왕
당신은 도대체 누구입니까?

노인은 섬뜩한 눈길로 잠깐 뒤를 돌아보았지만 아무 대답도 하지 않고 그대로 성을 떠났다.

그리고 잘 보이는 눈을 얻은 공주는 곧 그 눈으로 자신의 모습과 곱추인 남편을 보았다.

그 후에 공주가 어떤 일생을 보냈는지, 눈이 먼 곱추가 어찌 되었는지도 모른다고 한다.


어중간한 소원으로 모든 일의 근원이 된 왕, 괴팍한 성격의 못난 공주, 성품만은 착한 곱추소년, 정체 모를 노인의 파국으로 이어진 이야기.

거울을 본 왕ㄴ...

아, 이 글을 쓰고 있자니 한가지 생각이 드는 군요?

거울은 자신의 외면이 아닌 내면의 추함을 보기위해 있다고.

거울을 본 왕녀 終