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의 물방울

18_안 괜찮아 #사실

[예린 시점]

가끔 하루하루 버텨내다 보면 드는 의문이 있다.

사람들 모두, 비참하고 처절하게 살아갈까?

사람들 모두, 눈 뜨는 게 두렵고 싫을까?

나 자신에게 질문 하나를 던져본다.

삶을 살아가고 있는 걸까, 버텨내고 있는 걸까

나는 그에 대답하지 못했다.

그냥 시간 흘러가는 대로, 숨이 쉬어지는 대로 달리다 보니 이렇게 되어있다.

그러나 하나, 아마 나는 " 삶을 살아가 "고 있진 않을거다.

숨 쉬는 게 싫은데, 눈 뜨는 게 두려운데,

누가 이걸 " 살아간다 "라고 칭할까

숨 쉬면, 내 삶이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것이기에,

나는 또 달려야 한다는 뜻이기에,

이미 다리는 풀어질 듯 하고, 땀은 온몸을 적셨는데

멈추지 못하고 또 달려야 한다는 뜻이기에

나는 숨 쉬는 게 그렇게도 싫다.

눈 뜨는 거?

눈 뜨면 또 나와 상반되는 아침햇살이 나를 반긴다.

또 내 바램과 상반되게 눈은 그 아침햇살을 담는다.

오직 나 혼자일 수 있어서 좋아하는 밤조차,

가로등과 별빛 달빛으로 반짝인다.

길가의 가로등, 별빛, 달빛.

그것들을 담고있는 밤까지.

모두 빛나는데, 나만, 나 혼자만 어둡다.

그렇게 어둑한 내가 밝은 아침을 만난다는 것은

해바라기가 달을 바라보는 것과 같다.

절대 일어날 일도 없으며 일어나서도 안되고 그럴 필요 또한 없다.

근데도 나는 그 시간을 견뎌야 한다는 게, 그저 고통스러울 뿐이다.

눈을 감으면 눈 앞이 캄캄해진다.

무의식 속으로 들어간다.

그대로 멈췄음 좋겠다.

다신 눈 뜨지 못하게,

다신 의식을 찾지 못하게

그리고 그대로 숨이 멎어, 조용하게 고통 없이 사라지고 싶다.

사라지는 순간까지 고통스러우면, 너무 억울할 것 같아서ㅎ

이미 충분히 고통스러웠으니까, 마지막만큼은 고통스럽지 않게,

떠들썩하지 않게, 조용히 고통없이 사라져버리고 싶다.

마음의 눈을 떠 세상을 보는 것도 두렵다.

무슨 말이냐면, 세상의 잔혹함을 마주하는 게 무섭다는 뜻이다.

눈을 감아도 느껴지는 그들의 차갑디 차가운 한기는

눈을 뜨면 더욱 날 괴롭고 외롭게 할 거라는 걸,

눈을 감고도 예측이 가능하기에

무섭다.

눈을 뜨면, 더 잔인하고 냉정한 사람들과 마주해야 한다는 게

그게 그렇게도 무섭고 두려워서,

눈 뜨는 게 그렇게도 싫다.

어떤 눈이든 눈을 뜨고 바라본다는 건,

어떤 숨이든 코 끝으로 내쉬어진다는 건,

정말 그 어떤 것보다 비참할 수 있겠다,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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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예린

...하아 -

지독히도 밝고, 지독히도 맑은 태양과 하늘이 나를 감싼다.

그들과 상반되는 나는 거부반응을 보여 한숨을 내쉰다.

오늘도 내쉬어지는 숨과 아무 일 없다는 듯 올라간 눈꺼풀은 이 하루를 더 버텨야 한다고 알려준다.

그런 달갑지 못한 알림에 따를 수 밖에 없는 나는

그저 한숨만 쉬어대며 또 하루를 준비한다.

아침에 일어나, 씻고, 교복을 입는다.

방문을 열고 사람을 마주하기 전, 짧게 숨을 내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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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예린

후우 -

방문을 열어제낌과 동시에 싱긋 웃어보이며 식탁에 자리한다.

조금 뒤에 현관문을 나선다.

이게 내 하루의 시작이다.

별 거 아니지만, 시작부터 괜찮은 척 웃음이 함께해야 한다는 게

참 어이없기도, 피곤하기도 하다.

학교로 올라가는 길.

이어폰을 귀에 꽂고 플레이 리스트에서 노래를 선곡한다.

누군가 어깨를 두드려 이 길을 함께해주리라곤 조금의 기대도 않은 채, 혼자 걸어나가고 있다.

자연스레 무표정을 하곤.

그러다 교문 앞에 서있는 선생님을 보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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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예린

안녕하세요~~ㅎㅎ

무표정이 뭔지 모르는 사람마냥 웃으며 인사하고

선생님께 뒷모습을 보일 때 다시금 무표정을 드러낸다.

그대로 교실 앞에 도착한다.

문을 열기 전에 시작과 같이 짧게 숨을 내뱉는다.

어제와 같이 오늘도

즐거운 척, 웃어보자는 의미를 담아

드륵 -

의도치않게 도착했다고 티내며 교실로 들어간다.

날 반겨주는 건 반 친구들, 그 중에서도 같이 다니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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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예원

옌니 안녕~~

예원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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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은비

왔엉??

은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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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소정

빨리 와 ~ !

소정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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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은비

옌니 오늘도 꽤 일찍 왔넹ㅎㅎ

은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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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유나

여친 포카 나눔 중이야ㅋㅋ 빨리 와!

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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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예린

헐 포카 나눔!? 와 대박 언니 사랑해요

물론 갖고는 싶지만 이정도까지 좋아하진 않는다.

그냥 " 나 "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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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예린

아 진짜? 어떤 거 있는데?

라며 차분히 물었을테지만,

사람들이 보기에 나는 이런 애가 아니다.

그래서 난 더 과장해서 좋아해야 하고 과장해서 행복해야 한다

그것도 다 " 척 "이긴 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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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은비

어 조례 시간 5분 남았어

5분 남았다는 말에 나는 일찍이 자리로 돌아가 앉아있는다.

그리고 내 앞에 5명이서 웃고 떠드는 것을 바라본다.

유나가 나와 가까이에 자리하고 있던 덕에 나는 왠지 모를 소외감을 더욱 많이 받았다.

내가 어디로 가든, 바라보지도 않는다.

난, 그렇게 활발하고 성격 좋은 애가 아니야

소심하고, 외로움을 잘 타서, 작은 행동 하나에도 기분이 좋았다 슬펐다 해.

메신저로 대화를 하다보면 너희가 보내는 " ㅋ ".

그 한 마디조차도 난 비웃는 것처럼 느껴져서, 근데 또 그걸 나한테만 해서,

그래서 난 더 소외감을 느끼고 지쳐가.

알긴 하려나 모르겠네ㅎ

*

한 3교시 중반쯤 되었다.

갑자기 머리가 아파온다.

일어서면 당장에라도 휘청일 듯.

교실과 아이들은 내 눈 앞에서 좌우로 일렁이고 있었고,

나는 그 순간마저 아무렇지 않은 척 하기 위해 고개를 숙이고 인상을 썼다 폈다.

그리곤 미간을 찌푸린 채 눈을 감았다.

몇 초 후, 나는 여전히 어지러웠고 여전히 교실은 일렁였지만

그나마 조금 괜찮은 척 할 수 있었다.

그렇게 아무렇지 않은 척, 수업을 듣고 있었다.

조금 괜찮아진 듯 싶더니, 금새 더욱 일렁이는 시야가 퍼졌고

눈 앞이 흐릿해졌다.

가까운 건 꽤 보였지만, 평소 잘 보던 모니터나 칠판은 보이지 않았고

그 덕에 나는 미간을 찌푸리고 남은 수업 시간을 보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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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세정

....예린아 어디 아파?

내 짝궁인 세정이가 내게 물어왔다.

어디 아프냐고.

아팠다.

미칠 듯 아팠다.

이 상태로는 보건실도 못 갈 것 같았다.

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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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예린

아니ㅎ 안 아파 괜찮아

나는 또 진실을 숨긴 채 거짓을 말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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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세정

응... 혹시 아프면 말해, 같이 보건실 가줄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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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예린

응ㅎㅎ 고마워

걱정해준 건 고맙지만, 여태 살아온 방식이 있던 탓에 그 걱정을 받지 못하고 튕겨냈다.

점점 시간이 지나고 있다.

시간이 지날 수록 교실은 더욱 크게 요동쳐왔고

나는 그것에 시달려 고통스러웠지만 티 내지 못하고 있었다.

점점 더 아파왔다.

이마에 이어 눈도 뜨거워지기 시작했다.

뜨거운 기운이 서서히 몸 전체로 퍼져나가고 있다.

때문에 나는 점차 힘겨워져 갔고

작게 숨을 헐떡이는 지경까지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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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예린

하아.... 하아.. ㅎ..하.....

다행히 아무도 못 들은 듯 했다.

조급한 숨소리가 커져가려는 그때, 종이 쳤다

선생님이 나가심과 동시에 나는 다음 교시인 수학을 준비했다.

서둘러 수학책과 공책, 파일과 필통을 챙기고

5명은 생각할 겨를도 없이 수학 교실로 들어섰다.

들어서자 보이는 몇몇 학생들.

그 전 시간이 수학이어서 아직 나가지 않은 아이들과 같은 반 아이들이 섞여있었다.

이 곳에선 조금이라도 마음 놓고 아파할 수가 없다는 판단 하에, 화장실로 향했다.

급히 칸 안으로 들어간 나는 비로소 어느정도 마음껏 힘겨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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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예린

흐.... 흐으... 하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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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예린

ㅎ..허억....

패딩 속에 묻혀져 있어 꽤 따뜻했던 손을 눈 쪽에 짚어보았다.

손도 따뜻한 편이었는데, 금새 더욱 열이 올랐다.

정예린 image

정예린

흐으.....

반쯤 몸이 풀린 채 화장실 벽에 기대어 있었다.

그 순간 수업 시작을 알리는 종이 울려퍼졌고 나는 수학 교실로 이동했다.

다행히 수학 선생님은 아직 안 오신 상태였다.

조용히 자리에 앉아 교과서를 펴 들었고, 그렇게 수업은 시작되었다.

*

수학 수업이 시작된지 얼마 되지 않았다.

아까보다 더욱 흐릿해지는 눈앞이었다.

마침 굳이 중요하지는 않은 내용의 영상을 보고 있던 터라 나는 아까와 같이 눈을 지그시 감았다 떴다.

그럼에도 조금도 해소되지 않는 통증에 나는 점점 힘이 빠져가고 있었다.

수업 중후반 쯤.

결국 내 눈에는 점차 물이 차오르기 시작했다.

눈물이 흘러내리기 전에, 누군가 보기 전에 해결해야 한다는 생각이 가장 컸던 것 같다.

고개를 숙이고 검지 손가락으로 속눈썹에 맺힌 방울들을 거둬냈다.

그리고 눈에 고여있는 눈물도 닦아내어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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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예린

후우....

아무도 듣지 못할 정도의 소리로 숨을 얕고 길게 뱉어냈다.

그렇게 겨우겨우 4교시를 버텨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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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은비

옌니! 왜 우리만 두고 갔어어 ㅡ3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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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유나

종 치고 들어오던데 어디 갔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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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예린

응?? 화장실ㅋ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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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소정

아하..ㅋㅋㅋㅋㅋ

어찌저찌 상황은 넘겼지만 도저히 음식을 넘길 수가 없는 컨디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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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은비

옌니 밥 먹으러 가자

그래서 밥 먹으러 가자며 오는 아이들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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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예린

아.... 나 오늘 속이 좀 안좋아서..ㅜ 미안

이라고 하며 밀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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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예원

아 진짜??ㅜㅜ 조금도 못 먹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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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예린

응... 좀 울렁거리네.. 오늘은 너희끼리 먹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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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소정

웅...ㅜㅜ 아프지 마ㅠ

애들은 걱정을 해주더니 곧 교실을 나갔고

교실엔 나와 고요함만이 남았다.

정예린 image

정예린

끄으..... 흐...

고통이 더욱 솟아오르기 시작했다.

안그래도 점심시간이라 보건 선생님께서도 식사하시러 가셨을테고,

혼자 보건실을 갈 수 있을만한 몸상태도 아니었다.

그래서 난 그저 책상에 엎드려 나올락 말락 한 눈물을 애써 삼키고 있었다.

울면, 또 애들이 눈치챌테니.

물론 부모님께 말하지도 않을거다.

분명 돈 아까워 하실 테고 나는 그러함에 상처 받을 것이 뻔했다.

괜히 이딴 아픔을 티내서 상처받고 싶진 않았다.

그냥 시간이 지나면 괜찮아 지겠지, 또 시간에 맡긴 채 고통을 호소했다.

이렇게 아픈데, 미칠 것 같은데, 맘 놓고 아프다 할 사람이 없다는 게 갑자기 서러워졌다.

사람들에게 안 괜찮다고 티내면, 그들은 꾸역꾸역 내 선 안으로 들어와 다 들춰버린다.

그래놓곤 위로랍시고 말 한 마디 던져놓고, 선 밖으로 나가 떠벌리고 다닌다.

" 힘내 "라고, 공감도 위로도 안되는 말을 남겨놓고는 다 말하고 다닌다.

알지도 못한 채, 내 처참한 상처들을 자기 멋대로 풀이하고 다닌다.

오지 말랬는데, 들어오지 말랬는데 기어코 들어와서는 나를 더욱 비참하게 만들어버린다.

그게 내가 사람을 믿지 못하는 이유고, 남들보다 한 두발짝 멀리 있는 이유다.

여기서 아리와 소정이,은비,유나,은비,예원이까지 멀어진다면

정말 사람들 두려워하고 미쳐버린 채 남은 시간을 소비할 것 같았다.

어쩌면, 서서히 미쳐가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사람이, 무서워지기 시작했으니까

단순히 무서운 게 아니라, 사람을 마주하는 게 두려워지기 시작했다.

점점 내가 망가져가고 있다는 게, 처참해져가고 있다는 게 슬프도록 잘 느껴졌다.

괜찮아?

괜찮아.

사실.... 나 하나도 안 괜찮은데..

[18_안 괜찮아 #사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