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정에 춤추다

얼음

윤기가 집에 돌아왔을 때, 그는 극도로 피곤함을 느꼈다. 서울 문화지구의 작은 극장에서 겪었던 것과 같은 폭풍에 대한 감정과 의문이 뒤섞여 있었다.

 

소녀와 함께 극장을 나선 후, 그는 택시 승강장으로 가는 동안에도, 차 안에서도 거의 말을 하지 않았다. 소녀는 어쩐지 당황한 듯 그를 바라보았지만, 그는 달리 할 말이 없었다. 사실, 할 말이 없었다.

 

그는 그 자리에서 배가 아프다는 변명을 늘어놓았고, 어색한 침묵을 덮으려고 불필요한 세부 사항으로 거짓말을 채웠다.

 

그녀는 그를 부드럽게, 거의 동정심 어린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분명 그의 친구 김남준은 그를 좀 이상하다고 묘사했을 것이고, 그녀는 그런 소개팅에 큰 기대를 걸지도 않았을 것이다. 남준과 그는 비교적 짧은 기간 동안 서로 알고 지냈다. 그의 가족 회사는 윤기가 한 달 정도 작업하던 프로젝트의 고객이었다. 남준은 매우 카리스마 넘치는 남자였고, 그의 지성과 놀라운 교양으로 윤기를 감동시켰기에 두 사람은 친구가 되었다. 그들은 테니스 클럽에서 정식 경기를 하기 위해 만나기 시작했지만, 예술과 얼터너티브 음악이라는 공통 관심사가 많다는 것을 깨달았고, 그 유대감은 날이 갈수록 더욱 강해졌다.

 

윤기는 생각했다. 김남준이 어떻게 자신을 소개시켜 주었을지, 어떻게 설득해서 사귀게 했는지 누가 알겠는가. 그는 겉보기에는 멀쩡한 남자지만, 무뚝뚝하고 냉정하다는 평판이 자자했다. 동료들이 참석하는 공식 행사는 대부분 피하는 얼음 사나이였다. 반면 그녀는 아름다운 외모와 놀라운 작품 비전으로 한국 건축계와 예술계에서 유명 인사로 여겨졌다.

 

"오늘 밤 일에 대해 정말 미안해요. 꼭 보상할게요." 택시에서 내려 그녀가 사는 집 문으로 걸어가는 동안 그는 그녀에게 말했다.

 

"걱정 마세요. 원하시면 전화 주세요. 오늘 저녁 식사를 마치지 못한 것부터 이어서 하고 싶어요."

릴리는 살짝 몸을 숙여 그의 뺨에 재빨리 키스한 뒤 가볍게 고개를 숙였다.

 

"어쨌든 호프네 학교 댄스 공연에 가자고 설득해서 다행이야. 댄서들이 정말 멋졌거든. 주니가 댄스가 네 취향이 아니라고 했는데도 네가 정말 흥미로워하는 걸 봤어."

 

윤기는 그 말에 부끄러움을 느꼈다. 그가 생각지도 못한 그 일, 그 이름조차 댈 수 없는 그 일, 그 마법, 그가 겪었던 일시적인 무기력증이 그렇게 명백하다고는 생각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는 틀렸습니다.

 

그를 잘 알지도 못했지만, 그녀는 그의 반응을 아주 잘 알아챘다. 호기심 어린 눈빛, 푸른 머리 댄서에게 몸을 기울이는 모습, 방어적으로 꽉 쥔 팔. 그녀는 예리하고 영리한 눈을 가진, 정확하고 관찰력 있는 관찰자였다. 윤기는 이 모든 것이 그녀에게서 매우 매혹적인 특징이라고 생각했다.

그는 여전히 "남준이가 나를 아는 지 얼마 안 됐으니까. 난 놀라움이 많은 남자야."라는 태연한 말로 보상하려고 애썼다.

 

"그건 의심의 여지가 없습니다, 건축가 민. 안녕히 주무세요. 곧 뵙겠습니다." 그녀는 호기심 어린 눈빛으로 대답하며 입구 문 쪽으로 물러섰다.

 

윤기는 신사답게 그녀가 들어오는 것을 기다렸다가 돌아서자마자 당황한 듯 고개를 옆으로 끄덕이고 담배를 피웠다.

 

그는 오랫동안 담배를 빨아들인 후 담배 연기를 내쉬면서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거지?"라고 큰 소리로 말했다.

 

그는 걸어서 집에 가기로 했다. 그리 멀지는 않았지만, 35분 정도 걸어야 했다. 방금 겪은 끔찍한 데이트를 이해하려면 상쾌하고 상쾌한 초봄 공기가 필요했다.

 

윤기는 걸음걸이의 리듬에서부터 시작하여, 아까 들었던 음악을 머릿속에 되살려 보려 애썼고, 무엇보다도 그 남자의 움직임, 그리고 그 남자의 전체적인 모습을 되짚어 보려 애썼다. 그는 그 음악을 기억 속으로 ​​받아들이고, 그 움직임들이 자신에게 불러일으켰던 감각들을 다시 생각해 보고 싶었다. 그는 클럽에 갈 수 있는 첫 번째 자유일이 언제일지 생각했다. 그는 어떤 생각에 짓눌릴 때면 언제나 그랬듯이, 작곡을 통해 자신을 자유롭게 하고 싶은 강한 욕구를 느꼈기 때문이다.

 

그는 다음 날 아침 일찍 일어나 건축가로서의 평범한 일상을 살아야 한다는 생각이 싫었다. 작업실, 동료 정국과의 업무 회의, 현장 방문, 평소에는 무뚝뚝하다고 생각했던 작업자들과의 대화, 그리고 이번 프로젝트에서 함께 일하게 된 현장 감독 김석진에게 억지로 미소를 짓는 것까지. 그는 분명 듣고 싶지 않은 말과 농담으로 그를 압도할 것이다.

 

윤기는 가족의 유산을 통해 건축가가 되었습니다. 그의 아버지와 할아버지는 서울에서 가장 중요한 회사 중 하나를 운영했습니다.

 

그는 건축과 예술의 역사를 사랑했지만, 자신의 일에서 실용적인 측면을 싫어했습니다. 관료주의, 많은 고객들이 요구하는 만연하고 품위 없는 사치, 환경, 고요함과 우아함에 대한 무관심, 가족의 야망, 건설 현장의 거칠고 남성적인 세상, 고객 응대, 테니스 클럽 파트너들과의 회의 등, 이 모든 것이 그의 세상 전체였습니다. 그는 그 세상이 예술성과 아름다움이 결여된, 무균적이고 부패하며 오로지 겉모습에만 얽매여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반면에 그는 폭발적인 감정과 색깔로 가득 찬 남자였다. 열정적인 것은 거의 없었고, 그에게 진정으로 관심을 가진 사람도 거의 없었으며, 말이나 가식을 낭비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다. 이 때문에 그는 내성적이고 차가워 보였다. 그는 무엇보다도 자신에게 솔직했다.

 

그는 일주일에 두세 번씩 공연 전문가의 가면을 벗고 땀을 흘리고, 분노하고, 싸우고, 솔직한 거리 랩 배틀에 참여했는데, 그는 종종 큰 노력 없이도 이겼다. 그는 또한 Agust D라는 이름으로 언더그라운드에서 상당한 명성을 쌓았다.

 

늦은 겨울의 추운 서울을 걷다 보니, 푸른 댄서의 모습이 계속해서 그를 강하게 괴롭혔다.

 

"이름이 뭐니?" 그는 담배 연기를 내뿜으며 말했다. "넌 누구냐?" 머릿속에서 불안한 감정이 가슴을 훑고 지나갔다. 어떤 향기, 어떤 움직임, 그리고 공중에서 고리가 빙빙 도는 손이 빠르게 보였다. 강인하면서도 동시에 섬세한 목의 모습은 정신을 잃을 만큼 강렬했다.

 

"그를 어떻게 찾지?" 그는 다시 중얼거렸다. 그의 근처를 지나가는 커플이 호기심 어린 눈으로 그를 쳐다보자, 그는 큰 소리로 떠드는 듯한 독백을 감추려 애썼다. "내가 미친 사람처럼 보여." 그는 중얼거렸다. "춤추는 남자를 보니까 뭔가 깨달은 것 같아."

 

잠시, 그의 인생에서 사귀었던 몇몇 사람들이 떠올랐다. 대학 시절 몇몇 여자애들이 있었는데, 그 이야기들은 그에게 별로 남지 않았다. 얼터너티브 음악과 예술의 세계에 발을 들이기 시작하면서, 그는 더욱 열정적이지만 언제나 덧없는 다른 경험들에 마음을 열었고, 그 경험들은 그에게 범성애자라는 자각을 가져다주었다. 큰 고통 없이, 고요하고 유려하게 받아들인 자신의 현실이었다.

 

하지만 그토록 신비롭고 모호한 외모의 사람이 그토록 본능적으로 그의 관심을 사로잡은 적은 없었다. 이 모든 것은 그의 확신을 흔들기에 충분했다. 그는 상당히 절제된 사람이자 예측 가능한 반응을 보이는 사람이었다.

 

그의 마음에 다가가거나 그의 관심을 끌었던 사람들은 어느 순간 결정적인 통로가 닫히고 가시관이 그들을 기다리고 있음을 깨달았고, 그들은 큰 드라마 없이 하나씩 멀어졌습니다.

 

그는 이제 자신이 고독한 사람이라는 확신을 가지고 살았고, 다른 현실을 알지 못한 채 이 현실에 안주했습니다.

 

그날 저녁까지는요.

 

그는 모든 감각을 꽉 붙잡고 싶었다. 마치 세상이 갑자기 색깔을 얻은 것처럼.

"파란색. 파란색 머리," 그는 다시 말했다.

 

윤기는 아버지가 어떤 표정을 지을지 생각했다. 보수적이고 실용적인 사람이었다. 만약 평행 우주 어딘가에서, 한 번도 만나본 적 없는 천사처럼, 혹은 로마 황제의 궁정에서 사티로스가 춤을 추는 것처럼, 턱과 목, 그리고 몸의 선에 반했다고 고백한다면 말이다. 그 말이 자신에게도 너무 황당하게 느껴져 그는 웃었다.

 

그는 집에 들어서자마자 냉장고로 향했다. 거기에는 반쯤 비어 있는 위스키 병이 있었다. 그는 병을 집어 들고 잔에 따라 마셨다. 별다른 의식 없이 비웠다. 그는 사무실 복장을 벗어 검은색 트레이닝복 바지와 흰색 티셔츠로 갈아입었다. 기타와 다시 채워둔 잔을 들고 커다란 갈색 고양이 슈키가 자고 있는 소파에 앉았다. 슈키가 도착하는 것을 보자마자 그는 게으르게 눈을 뜨고 돌아서서 엉덩이를 내밀고 계속 코를 골았다.

 

"난 이상해. 이상한 고양이랑... 그리고 멍청한 고양이도 있고. 누구나 자기에게 어울리는 애무를 받는 법이지." 그는 그 동물의 주둥이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그 주둥이는 마지못해 애무를 받아들였다.

 

그는 유리잔을 탁자 위에 올려놓고 눈을 감았다. 머릿속에 각인된 기타 음표를 떠올리려 애썼다. 그 음표들을 바탕으로 뭔가를 작곡하고 싶었다. 그날 저녁 극장에서 느꼈던 믿을 수 없는 온기를, 움직이면서 그의 깊은 내면을 일깨웠던 검푸른 형체를 다시금 떠올리고 싶었다. 원초적인 부름이었다. 그에게는 전혀 익숙하지 않은 따뜻함, 움직임, 그리고 아름다움이었다.

 

나는 당신의 이름을 모릅니다

나는 당신의 이름을 모릅니다

 

음악조차도 그를 생각에서 깨우지 못했습니다.

그는 휴대전화를 들고 댄서의 이름을 강박적으로 검색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