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오니아스

[단편] 목마른 계절

희미한 숨소리가 좁은 병실을 가득 채웠다. 작은 가습기가 끊임없이 쉬익- 쉬익- 돌아가고, 심장 박동기가 일정한 기계음을 내대며 귓가를 맴돌았다. 그 소리가 조금은 거슬렸던 모양인지, 간이 침대에 겨우 몸을 구겨넣고 있던 누군가가 부스스- 머리를 털며 일어나서는 굽혔던 허리를 세워보였다. 

아직 새벽이 어둠을 다 걷어내지 않은 시각. 남들보다 조금 이른 하루를 맞이한 그가 잠에서 깨어난 뒤 가장 먼저 하는 일은 따로 있다. 눈을 다 뜨지도 않은 채 옆에 있는 병실 침대의 이불을 정리하고, 가냘픈 호흡이 답답하지 않게 산소마스크를 살포시 조절하는 것. 그의 손길은 마치 작은 아이를 다루듯 누구보다 조심스럽고 섬세했다. 몇 분이나 손을 움직이고 나서야 손의 주인은 제대로 기지개를 폈다. 



"오늘은 날씨가 유난히도 더 좋네."
"산책이라도 가볼까?"


"......"



산소마스크에서 흘러나오는 대답은 없었다. 그저 초점을 잃은 두 눈이 덧없이 깜빡이기를 몇 번, 그런 동공에 눈을 맞추던 그는 희미한 미소를 지으며 화장실로 들어섰다. 그의 키보다 약간 낮은 세면대에 얼굴을 들이미니 밤새 참아왔던 허리 통증이 밀려왔다. 신음 소리가 새어나가지 않게 말보다는 표정으로 아파하는 남자. 그에게는 이미 일상인 듯 호흡을 가다듬더니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으로 침대 옆으로 돌아온다. 

여전히 깜박이는 눈에는 천장만이 가득 들어차있고, 주변을 움직이는 그의 큰 키가 이따금 왔다 갔다 거렸다. 

어느새 아침이 밝아오고 담백한 반찬 냄새가 복도를 가득 메울 때쯤, 두 사람의 병실에도 누군가가 들어섰다. 다만 병식을 배식해 주시는 아주머니가 아닌, 링거 바늘과 영양팩을 두 손에 든 간호사가. 




"오늘도 계시네요, 보호자 분."


"아, 안녕하세요. 잘 부탁드립니다."


"네, 잠시 바늘 갈게요."



간호사가 얇은 팔뚝을 잡고 익숙하게 바늘을 갈았다. 이내 폴대에도 밤새 들어갔던 약 대신 새로운 팩이 걸쳐졌다. 순식간에 헌 바늘과 팩을 집어든 간호사는 꾸벅- 인사를 하더니, 문을 나서려다 남자에게 한 발짝 다가서서는 조심스레 물었다. 




"그... 얼마 전에 요양보호사 한 분이 새로 오셨거든요."
"정말 고용하실 생각 없으세요?"


"......"


"시험도 만점으로 합격하시고 
손재주도 좋으신 분이세요. 보호자 님도 덜 힘들텐데..."




간호사의 말을 들은 남자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잠시 침묵을 유지한 그는 애써 웃어보이더니, 병실 밖으로 나와 문을 닫고는 조금씩 떨리는 어조로 대답했다. 간호사의 눈을 마주보지 않으려고 애쓰며 말이다.




"마음은 정말 감사하지만... 제가 계속 오고 싶습니다."
"다른 분들을 못 믿는 건 아니지만,
우리 혜영이... 저 없으면 안 되거든요."


"... 죄송합니다. 제가 괜히 심란하게 해드렸네요..."


"저랑 혜영이 생각해서 해주신 말씀인데 심란은요.
저희야 감사드리죠."
"조심히 들어가세요."




담담하게 간호사를 돌려보낸 뒤 다시 병실로 들어선 남자가 문에 기대어 툭- 주저앉았다. 흔들리지 않던 시선에 눈물이 고이고, 그 와중에도 혜영의 눈에 띄지 않으려 사각지대에 몸을 숨긴 채 소리 없이 흐느꼈다. 문득 자신의 처지에 설움이 밀려오다가도 혜영의 얼굴을 보며 참아냈지만, 그날따라 고장 난 수도꼭지처럼 감정은 잠글 새도 없이 넘쳐흘렀다. 그 순간만은 어떤 모진 말이라도 혜영에게 쏟아부을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삐- 삐삐-




귓가에 내리꽂히는 심장박동기 소리만 아니었다면 말이다. 

퍼뜩 정신을 차린 남자는 침대로 달려가 혜영의 상태를 살폈다. 




"혜... 혜영아..."


"......"



다행히도 영양제가 들어가 생긴 일시적인 증상인 듯 했다. 심장박동은 금세 정상으로 돌아왔고, 혜영의 상태도 별 이상이 없었다. 가슴을 쓸어내린 남자는 혜영의 얼굴을 뚫어져라 쳐다보더니, 이내 황망한 초점에 맺힌 자신의 두 눈에 고인 눈물을 발견했다. 



"... 흑..."
"혜영아... 내가 너를 상대로 무슨 생각을 한 걸까..."



방금 전까지 들었던 생각이 너무나도 부끄러워 견딜 수가 없었다. 남자는 또 한 번 울었다. 다만 혜영의 손을 잡고, 소리를 내며, 그 감정이 혜영에게도 닿기를 바라며. 보는 이마저 가슴이 아릿하게, 그렇게 한참을 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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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 목마른 계절




다 지나간 여름이 무색하게도 약간의 더위가 공기를 감싸던  날. 남들과 다를 바 없는 설레는 연애를 하던 우리 둘에게도 비극은 소리 없이 다가왔다. 

생각해 보면 그날은 처음부터 운수가 좋지 못했다.  휴가 일정을 맞춰 제주도로 여행을 떠나려던 첫날. 나는 캐리어를, 혜영이는 여권을 두고 오는 바람에 어쩔 수 없이 공항에서의 만남을 기약하고 헤어진 후였다. 좀 더 빨리 도착해 출국 수속까지 마친 나는 한없이 혜영을 기다렸지만, 이륙 시간이 다 되어가는데도 나타나지 않는 그녀에 점점 짜증이 몰려오던 참이었다. 





"혜영아, 어디야? 우리 이제 들어가야 하는데..."
"기사님께 좀 더 빨리 와달라고 할 수 없어?"




알고 보니 그날따라 차가 막히는 바람에 내가 공항으로 들어섰을 때는 이미 도로가 마비되다시피 한 상황이었지만, 그런 것을 알 턱이 없던 나는 쉴 새 없이 전화를 걸며 혜영을 재촉했다.

몇 분이 지났을까, 핸드폰이 울리며 발신인에 [혜영이💕] 라고 적힌 전화가 왔다. 드디어 왔구나- 하며 기쁘게 전화를 받는 순간, 나에게 떨어진 것은 그녀의 도착 소식이 아닌 웬 구급대원이 전하는 사고 브리핑이었다.




"김석진 씨 맞나요? 김혜영씨 보호자 되십니까?!"


"제가 남자친구인데, 무슨 일로...?"


"김포공항 입구 근처에서 택시 교통사고가 나는 바람에 탑승자인 김혜영씨도 크게 다쳤습니다.
OO 대학 병원으로 이송중이니 빨리 와주세요!!"


"... 네?"




전화를 받고 달려간 병원 응급실은 이미 아수라장이 되어버렸고, 그 중심엔 혜영이가 있었다. 이성을 잃고 하이브리드 룸으로 달려들 뻔한 나를 간호사 여럿이 붙잡아 겨우 말렸고, 울다 지쳐 대기석에서 탈진하기 직전까지 가서야 겨우 혜영이의 상태를 들을 수 있었다.



"목숨은 건졌지만, 뇌손상이 큽니다."
"징후가 좋아지지 않는다면 식물인간이 될 수도 있으니, 마음의 준비를 해두시는 게..."


"... 아."
"아아... 아아아..."

















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악_































끝내 혜영이는 평생 병원신세를 면하지 못하게 되었고, 나는 죄책감에 간병인을 자처해 병원에서 살다시피하게 되었다. 본래도 재택근무를 했던지라 생활에 있어 큰 무리가 가진 않았지만, 내 곁을 항상 떠나지 않던 그녀의 목소리와 웃는 표정을 다시 볼 수 없다는 것이 가슴을 아프게 쑤셔댔다. 

마치 해결되지 않는 갈증이 계속되듯, 하루종일 혜영이와 붙어있었지만 도무지 채워지지 않는 마음 한 켠에는 계속해서 죄책감과 외로움이 아린 여백을 키워나갔다.




"... 혜영아, 들려?"


"......"


"계절 정말 빨리 지나간다. 좀 춥지?"
"여기 왔을 때가 8월이었는데... 벌써 9월 중순이야."


"......"




혜영이는 여전히 아무런 미동이 없었지만, 나는 계속해서 돌아오지 않는 대답을 향해 말했다. 무슨 말을 했는지는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아마 잠결이었을까?




"... 내년 여름에는, 꼭 같이 제주도 가자."
"제주도 네가 정말 많이 보고싶어 했잖아. 그치..."




아, 그래. 이거 하나는 기억이 나.

아마 맨 마지막으로 한 말이었을 테니까.

그리고... 














네가 마지막으로 들은 나의 음성이었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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삐___











































장례식은 빠르게 치러졌다. 사인은 뇌사. 의사들도 정확한 원인을 모른다고 했다. 허망하게 며칠 밤을 지새운 나는 상주가 되어 혜영이의 조문객들을 받았다. 수고했다며 어깨를 두드려주는 사람, 상심이 크겠다며 큰 조의금을 내고 가는 사람 등 저마다의 위로법은 가지각색이었다. 

긴 시간일 것만 같던 사흘도 빠르게 흘러가고,  모든 일정을 마치고 집에 돌아온 날. 그날은 비가 내렸다. 기상청에서도 예측 못한 가을로 넘어가는 여름비. 전국을 적신 비는 창을 넘어 나에게도 스며들 듯 다가왔다. 



너의 마지막 흔적일까, 어쩌면 나를 만나러 온 것일까. 



뺨을 타고 흐르는 게 비인지 눈물인지 모를 정도로 흠뻑 젖어들고 나서야 비로소 나는 지난 2개월간 묵혀왔던 감정에 충실해질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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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나 함께였지만 가장 외로웠던 우리의 목마른 계절이, 점차 옅어지는 비와 함께 저물어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