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erry에는 오늘도 사람들이 넘쳐난다. Cherry는 어느 골목 구석에 자리 잡고 있는 스픽이지 바의 네임이다. 여기서 ‘스픽이지 바’라는 것은 불특정 다수에게 공개되어 있지 않은, 홍보조차 하지 않는 바를 지칭하는 단어이다. 즉, 지나가다 여긴 어느 곳이지 하며 잠시 들어와 보는 사람만이 즐길 수 있는 비밀스러운 바라는 것이다. Cherry가 이런 스픽이지 바임에도 사람들이 넘쳐나는 이유는, 픽업 아티스트들의 성지이기 때문이다. 픽업 아티스트는 우리가 흔히 아는 그런 예술가들을 지칭하는 말이 아니라, 특정 상대를 주요 타깃으로 하여 관계나 금전적 이득을 얻으려고 하는 사람들을 일컫는다. 픽업 아티스트들은 주로 Cherry에 와서 과일 체리와 관련된 칵테일이나 디저트를 시킨다.
“싱가포르 슬링 하나.”
“아, 나는 헤밍웨이 다이퀴리로 한 잔.”
그러면 대기하고 있던 웨이터들이 나와 파트너를 매칭 시켜준다. 여기서 ‘파트너를 매칭 시켜준다’는 것은 픽업 아티스트들끼리 연결해 준다는 뜻이 아닌, 그냥 아무것도 모르고 바를 즐기러 온 사람 중 한 명을 막무가내로 데려와 준다는 뜻이다. 즉, 흔히 말하는 성폭행, 강간이 시도 때도 없이 일어나는 공간이라고 보는 것이 가장 정확한 듯싶다. 이런 불법 바에선 또 유명한 사람이 한 명씩은 있다. 굳이 입 아프게 말하지 않아도 모두가 알고, 바에서도 암묵적으로 VIP로 모시고 있는 사람. Cherry 사장의 10년 지기 친구이자, 강력반 팀장으로 있는 김창훈의 친동생인 김창호가 그 주인공이다. 김창호는 항상 해 질 녘 오후 6시가 되면 바 안으로 들어와 체리를 시킨다. 그러면 웨이터들이 전부터 미리 봐둔 여자를 김창호에게 데려다준다. 그 후엔, 김창호의 놀이판이 시작되는 것이다. 김창호는 여자들에게 체리의 향과 술이 잘 어울린다며 취할 때까지 술을 먹이고선 여자가 술에 많이 취한 것 같다 싶으면 바를 나와 모텔로 향한다. 김창호는 이 짓을 적어도 3번 이상은 한 후에야 직성이 풀리는지 항상 3번을 꼭 채우고선 술 한 잔 기분 좋게 마시고 집으로 돌아간다.
그리고 그런 그를 주시하고 있는 사람이 있다. 바로 강력반 형사 유기현이다. 기현은 김창호의 형이 자신의 사수인 김창훈인 것을 알고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기현이 김창호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한 이유는, 김창호에게 당한 피해자들 중 자신의 여동생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수에게 찍힐 걸 감수하고 이렇게 매일 현장에 나가지 않는 시간엔 Cherry 앞에서 잠복을 하고 있다. 마침, 방금 기현에게 정보가 하나 들어왔다. 김창호의 주변 사람들은 김창호가 픽업 아티스트 짓을 하는 걸 모른다는 사실이다. 그래서 기현은 그동안 잠복을 하며 찍었던 사진들과, 김창호에게 당한 사람들을 병원에 데려다주며 얻은 녹취록들을 김창호의 주변 사람들에게라도 보내기로 작정하였고, 잠복 12일 만에 처음으로 Cherry에 입성했다.
“주문하시겠습니까, 손님?”
“아, 혹시 여기 과일도 있나요?”

“과일이라면 여기 밑에 보이시듯 오렌지, 멜론, 딸기, 체리, 포도 등이 있습니다. 어떤 걸 가져다드릴까요?”
“그러면, 체리로 가져다주세요.”
기현은 모르고 시킨 게 아니다. 기현은 체리를 시키면 무엇이 같이 딸려오는지 알고 있다. 기현은 그럼에도 일부러 체리를 시켰다. 왜냐하면 체리와 같이 오게 될 여자에게 부탁할 일이 있었으니 말이다. 기현은 그 여자에게 김창호의 핸드폰을 좀 가져와 달라고 부탁하려고 했었다. 하지만 기현의 작전과는 달리 체리와 같이 온 건, 방금 전 주문을 받아 갔었던 아주 어리게 보이는 남자 웨이터뿐이었다. 기현은 예상치 못한 전개에 얼굴에 당황한 기색이 퍼졌고, 웨이터는 그런 기현을 가만히 쳐다보다 말을 건넸다.
“여기 처음 와 보시는 거죠? 이거 시키면 어떻게 되는지는 알고 시키셨나 몰라. 괜히 여기 있다가 픽업들한테 끌려가지 말고 빨리 나가세요.”
“내가 일부러 시킨 거 맞으니까 원래 절차대로 해주시죠.”
“아저씨 경찰 아니었어요? 경찰이 이런 거 막 하고 다녀도 되는 건가.”
이미 기현의 정체를 알고 있는 웨이터에, 기현은 황당하다는 표정으로 웨이터를 빤히 쳐다보다 이내 웨이터의 손목을 잡고는 바를 나갔다.
“아 아픈데, 저기요, 경찰 아저씨. 이 아저씨 하나는 알고 둘은 모르시네. 이 바에서는 웨이터 건들면 안 돼요. 폭력으로든 뭐, 다른 쪽으로든. 이러고 계시다가 들키지 마시고 돌아가세요.”
“내가 경찰인 건 어떻게 알았어요?”

“뭐, 다 방법이 있죠.”
“음 그래요. 뭐, 그건 그렇다 치고. 근데 꽤 어려 보이는데 몇 살이에요? 바에서 근무할 수 있는 나이는 된 건가?”
웨이터는 기현의 마지막 말에 난처한 표정을 짓고 허공을 바라보다 금세 표정 관리를 하고선 대답을 회피했다. 그렇게 대답을 하지 않고 계속 딴청을 하다 좋은 생각이 났는지, 한껏 들뜬 표정과 목소리로 기현을 부르며 자신을 따라오라는 듯 손을 흔들었다. 그렇게 기현이 웨이터를 따라간 곳은 어느 작은 옥탑방이었다. 사람 4명이 겨우 들어갈 수 있을 정도의 크기인 옥탑방은 바와 생각보다 가까운 위치에 자리 잡고 있었고, 그곳엔 여러 해킹, 도청 장치들과 김창호의 정보가 적힌 종이, 그리고 사진들이 깔려있었다. 기현은 동그래진 눈으로 웨이터를 쳐다보았고, 웨이터는 놀라는 기현을 보곤 뿌듯하게 웃으며 말했다.
“아저씨 김창호 조사하는 거 맞죠? 내가 도와줄 테니까, 아저씨도 나한테 협조 좀 해줘요. 어때요?”
기현은 웨이터의 말에 바로 대답을 하지 않고 바닥에 놓인 종이들을 하나하나씩 살펴보며 계산했다. 기현이 대강 짐작하기에 이 웨이터의 나이는 적으면 18살, 많아도 21살이다. 이렇게 어린 사람이 바에서 근무를 하고 심지어 혼자서 그 김창호에 대해 조사를 하고 있었다. 만약 이 웨이터와 손을 잡았다가 더 큰일에 연루된다면 자신이 책임질 수 있을까란 생각에 멈칫했지만, 이내 김창호가 자신의 여동생과 같은 피해자들을 지금 이 순간에도 만들고 있다는 생각이 머리를 사로잡아 웨이터의 제안을 수락했다.
“그러면 이제 동업자니까 통성명 정도는 해야겠죠? 성하경이라고 해요. 잘 부탁해요, 앞으로.”
“아, 유기현입니다. 나도 잘 부탁해요.”
그렇게 한순간에 기현과 하경은 동업자가 되었다. 하경이 전부터 조사해 온 정보들은 기현에게 많은 도움이 되었고, 같이 조사를 시작한 후에도 하경은 계속해서 바에서 일하며 매일매일 새로운 정보를 모아 기현에게 전해주었다. 그렇게 하경과 기현이 같이 일을 하기 시작한 지 한 달째 되던 날이었다. 하경은 무슨 할 말이라도 있는지 눈치를 보며 기현의 옆에서 우물쭈물 대고 있었다. 그러자 기현이 눈치를 채곤 아무렇지 않은 척 눈치를 보고 있는 하경이 귀여워 웃음을 자아내며 먼저 말을 꺼내주었다.
“무슨 할 말 있지?”“네. 경찰이면 총 있죠?”
“응. 있지? 근데 그건 왜?”
“저, 그것 좀 빌려주시면 안 돼요? 내가 뭐 좀 해볼까 하는데.”
아까 말할까 말까 고민하던 소심한 하경은 어디 가고, 총을 빌려달라는 당당한 사람이 기현의 앞에 서있다. 기현은 총을 빌려달라는 말에 적잖이 충격을 받았는지, 아니면 화가 난 것인지 무표정으로 한동안 하경의 얼굴을 응시했다. 하경은 갑자기 말이 없어진 기현에, 눈을 도로록 굴리며 딴청을 하다 변명을 하기 시작했다.
“아니, 내가 막 나쁜 쪽으로 쓰려고 하는 게 아니라 김창호랑 뭐 좀 하려구요.”
“뭐를? 나한테 숨기는 거면, 좋은 일은 아닌 것 같은데.”

하경은 기현의 계속된 추궁에 진땀을 뻘뻘 흘리다 결국엔 사실대로 실토했다. 김창호와 러시안룰렛을 하려고 한다고. 하경은 김창호가 픽업과 동시에 도박도 하고 있었기 때문에 러시안룰렛을 제안하면 무조건 찬성할 것이라며 기현을 설득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한 번 굳은 기현의 표정은 풀어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고, 하경은 자신이 할 수 있는 최대한의 애처롭고 슬픈 표정을 지으며 기현에게 호소했다. 절대 위험한 일 없을 거라고. 자기 말고 김창호가 죽을 거라고. 하지만 기현은 그걸 어떻게 확신하냐며 그리고 자중에 가서 그 총이 경찰 총이라는 것이 알려지면 자기는 죽은 목숨이라며 단호하게 거절했다. 하경은 잔뜩 토라져 옥탑방 문을 쾅 닫고 밖으로 나갔다. 그리고 새벽이 훌쩍 지난 시간이 되어서도 돌아오지 않았다. 기현은 하경이 옥탑방이 아니면 잘 곳이 없다는 걸 잘 알고 있기에, 점점 걱정이 되기 시작했고, 하경이 나간 지 4시간이 넘어서야 하경을 찾으러 밖으로 나갔다.
그렇게 기현이 동네를 돌고 돌다 하경을 찾은 곳은 바 구석, 사람들이 몰린 쪽이었다. 바 안이 어수선하길래 들어갔다가 하경을 마주친 것이다. 하경은 몰린 사람들의 중심에서 김창호와 러시안룰렛을 하고 있었다. 잔뜩 달아오른 분위기와 두 사람의 신경전 속에 속이 타들어가고 있는 사람은 기현뿐이었다. 총은 또 어디서 구해왔는지, 하경의 손엔 자신의 머리를 겨누고 있는 총이 들려있었다. 하경이 방아쇠를 당기고, 철컥- 하는 소리와 함께 리볼버가 돌아갔다. 이어서 재 장전한 총이 김창호의 손에 들렸다. 김창호가 방아쇠를 당겼을 때도 돌아오는 건 철컥-하는 리볼버 돌아가는 소리였다. 그렇게 차례가 돌고 돌아 다시 하경의 차례가 되었다. 벌써 25번째로 당기는 방아쇠였다. 하경은 이번에도 피해 가리라 믿고 가벼운 마음으로 방아쇠를 당겼다.
하지만 이번에는 탕-하는 소리와 함께 피가 튀기며 하경의 머리를 관통한 총알이 바닥에 굴러떨어졌다. 기현은 머리에서 피가 흐르고 있는 하경을 똑바로 쳐다보지 못하고 주먹을 꽉 쥐며 부르르 떨고 있었다. 김창호는 자신이 이겼다며 세레머니라는 듯이 재 장전하지 않은 총을 6번 연속으로 자신의 머리에 쏘았고, 6번째 되는 차례에 탕- 소리와 함께 김창호의 머리를 관통한 총알이 바닥에 떨어졌다. 바 안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술렁이며 하경과 김창호가 죽은 현장을 바라보고 사진을 찍어댔다. 기현은 사람이 죽었음에도 놀라지 않고 오히려 구경거리라는 듯이 사진을 찍고 있는 사람들을 보며 치가 떨렸다. 곧이어 기현은 “경찰입니다.”를 크게 외치고 시신들에게서 사람들을 떼어낸 뒤, 경찰서에 지원을 요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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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사건이 일단락되고, 기현은 일주일 동안 넋이 나간 사람처럼 방 안에서 꿈쩍도 하지 않고 멍하니 앉아있기만 했다. 그러다 경찰서에서 하경의 시신은 어떻게 하냐는 말을 듣고선 정신을 차리고 하경의 장례식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꾸역꾸역 올 사람도 없는 하경의 장례식을 치러주고, 기현은 매일마다 하경의 묘를 찾아왔다. 오늘은 날씨가 좋아서 찾아왔다, 오늘은 기분이 안 좋아서 찾아왔다, 오늘은 날씨가 안 좋아서 찾아왔다, 오늘은.., 오늘은.., 오늘은. 그렇게 하경의 묘에서 기현은 오늘 자신에게 있었던 일들을 모두 말하며 마치 옆에 친구라도 서 있는 것처럼 수다를 떨었다. 오늘은 기현이 처음으로 하경의 묘 앞에 주저앉아 목 놓아 울었다. 왜 그랬냐고. 굳이 그랬어야 하냐고. 목숨을 버리는 방법 말고도 다른 방법이 많았을 텐데, 왜 굳이 그런 방법이었어야 했냐고. 하경을 원망하며 눈물이 말라 더 이상 나오지 않을 때까지 운 기현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하경의 옥탑방으로 향했다.
하경의 옥탑방에 온 기현은 하경의 물건을 하나하나씩 정리하기 시작했다. 컴퓨터부터 옷, 신발, 모자.. 등 하경의 물건을 전부 한대 모았다. 방을 다 정리한 뒤, 욕실에 들어가 수건을 꺼냈을 때였다. 수건에서 편지같이 생긴 무언가가 떨어졌고, 가장자리엔 ‘기현이 형에게’라는 문구가 삐뚤빼뚤하게 적혀져 있었다.
{ 이 편지를 본 거면 아마 나는 죽었겠죠? 아 아쉽다, 안 죽고 싶었는데.. 형. 기현이 형. 내가 형이라고 불러주는 거 계속 기다리고 있었죠? 미안해요. 글로 밖에 못 전달해 줘서. 러시안룰렛은 어쩔 수 없었어요. 나는 진짜로 김창호를 죽이고 싶었거든요. 미안해요 내가 너무 나쁜 놈이라서 이런 나쁜 생각 만하고 결국 결과가 이렇게 돼버렸네. 그래도 후회한다고는 안 할게요. 내가 선택한 거니까, 내가 혼자 한 결정이니까. 그동안 나랑 같이 있어줘서 고마웠어요. 형은 내 친형이니까. 어쩌면 친형보다 날 더 아껴주는 것 같으니까 오글거리지만 그래도, 사랑해요. 미안해요.
- 성하경. }
쓰다가 울었는지, 중간중간 번진 글씨들과 쭈글쭈글한 종이, 그리고 기현이 그렇게 원했던 ‘형’이라는 호칭에 기현은 편지를 꽉 껴안고 그 자리에서 눈물을 또 쏟아냈다. 아까 그렇게 울어서 더 이상 나올 눈물이 없을 줄 알았는데, 눈에서 홍수가 난 것처럼 눈물이 줄줄 흘러내렸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많은 정을 나눈 두 사람이기에, 그 많은 정이 슬픔으로 돌아와 기현의 가슴을 후볐다. 기현은 손에 힘을 너무 줘버렸는지 다 꾸겨져버린 편지를 다시 고이 접어 봉투와 함께 자신의 외투 안주머니에 넣었다. 그렇게 하경의 죽음과 함께 온 소중한 편지는 기현의 주머니 속에서 아주 천천히 색이 바래져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