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완성 단편

[1980] 1

"형, 안돼, 최연빈, 너도 안돼, 제발!"

"수빈아, 이건 반드시 누군가가 언젠가는 해야할 일이었어. 이 집에서 나오지 말고. "

"형, 이건 진짜 아니야.. 정말 아니라고 생각해.."

"오빠, 다녀올게. 내가 꼭 돌아올테니까 오빠는 그때까지 어디 다친 곳 하나 없이 잘 지내고 있어야한다? 울지마, 나까지 울고 싶어지잖아."

"연빈아, 너까지 그러지마. 제발 그러지 마.. 그깟 민주주의가 뭐라고! 이렇게 너희가 피를 흘려가면서, 목숨의 위협을 받으면서..."


연빈은 눈을 게심츠레 뜨고 최수빈을 쳐다봤다. 그깟 민주주의라니 오빠, 우리에겐 그게 목숨보다 더 중요한건데, 
까랑까랑 울리는 연빈의 맑은 목소리가 오늘따라 더 최수빈의 귀를 심하게 파고 들었다. 아무리 제 형제자매들과 원수같이 지낸다지만, 제 피가 섞인 혈육들이 피와 비명이 난무하는 저 전쟁터에 나간다니, 당연 말려야 하는 것 아닌가. 그럼에도 최수빈은 이들을 이길 수 없었다. 민주주의와 자유에 대한 열망은 자신의 목숨따윈 쉽게 불사지를 수 있을 정도로 강했고 그 열망을 겨우 그깟 말 따위로 말릴 수 있을리가 만무했으니. 최수빈은 목까지 올라와 숨까지 막아버리는 울음을 참을 수 없었다.
결국 최수빈은 그 둘이 떠나간 자리하며 집안 곳곳에 남겨진 흔적을 보며 울 수 밖에 없었다. 



*
최수빈은 입에 손수건을 대충 두르고 식량을 구하러 바깥으로 나갔다. 그러나 곧 나온 것을 후회 할 수 밖에 없었다. 바깥의 끔찍한 정경에 할 말을 기어코 잃고야 말았고. 이제 제 고향이나 다름없는 이 광주에 남은 것은 매캐한 최루탄의 뿌연 연기와 길바닥에 정리도 채 되지 못한채 무참히 짓밟혀 버려진 시민들의 시체 뿐이었다. 아, 신이시여. 신 따윈 믿지 않는 최수빈이 처음 신에게 기도를 할 정도로 끔찍한 풍경이었다.
에라이, 최수빈은 눈을 감고 삼선슬리퍼를 끌며 재빨리 집 앞 단골 슈퍼로 처 들어갔다.


"할머니, 저 왔어요."

"아유, 수빈이 아이가!"

"네, 오랜만이네요.. 먹을 것 좀 사러 왔습니다."

"그려그려, 얼렁 사가지고 어여 들어가. 근데 학생은 데모는 안혀?"

네, 할머니. 제가 그럴 깡이 없어서요. 짧은 대답을 마치고 최수빈은 라면 몇가지를 들어 계산을 하고 나왔다. 


"아이고...신이시여. 이 어린 것들 에게 무슨 잘못이 있다고.."

"에휴.. 쯧. 요즘 세상이 말세여, 말세.. 어느 군인이 저래 앞길이 창창한 학생을 짓밟나.. 불쌍한 것.."


길가는 자식을 잃거나, 배우자를 잃거나, 친구를 잃거나. 사랑하는 사람들을 잃은 사람들의 통곡 소리로 가득 찼다. 울분에 가득차 소리를 지르는 사람도 있었고, 이게 꿈인가 생시인지 확인하기 위해 제 몸에 폭력을 가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솔직히 말하자면 최수빈은 광주민들을 빨갱이라 칭하며 그래도 자신들 나라의 국민인데 무차별 폭행을 가하는 정부도 이해가 가지 않았고, 자유, 오로지 그 하나를 위해 모든 것을 바치는 광주의 시민들도 이해가 가지 않았다. 어차피 다 부질없는 짓이야, 무장한 군인들을 평화시위로 이길 수 있을 것 같나. 최수빈은 민주주의에 대한 열망이 그닥 강하지도 않았고 총과 칼을 든 무장군인들에게 맟서 덤빌 깡도 없었다. 차라리 나가서 싸우다가 죽어 목숨을 잃는 것보단 방관자가 차라리 더 나았다. 누구는 자신을 비겁하고 비열한, 나야말로 진짜 빨갱이라고 칭할지 모르겠다만 나는 그냥 그렇게 위선자로 남을 것이다. 

최수빈이 길바닥에 늘어져 있는 사람들을 요리조리 피해 집을 향해 가고 있던 그 때, 익숙한 얼굴 둘이 보였다. 이럴리가 없는데. 길바닥에 피칠갑을 해 널부러져 있는 얼굴, 그래도 못 알아볼리가 없었다. 자신의 형제들인데. 바로 최연준과 최연빈. 왜, 왜? 최수빈은 들고있던 검정색 비닐봉지를 손에서 툭, 떨어트리고 말았다. 온몸이 파르르 떨렸다. 


"너네가 왜 여기있어, 왜? 왜?"


죽은사람은 말이 없다고 했지 않는가. 이미 싸늘하게 식어 시체가 되어버린 그 둘에게 물어봤자 돌아오는 대답은 없었다.

"아닌데.. 여기있으면 안돼, 얘들아. 꼭 살아 돌아 온다며.. 온다며.."


최수빈은 주저앉아 둘을 껴안고 울었다. 꺼이꺼이 울었다. 얼마나 애달프게 울었는지 주변 사람들이 하나 둘 모여들어 등을 토닥여주거나 위로의 말을 전하고 갔다. 그러거나 말거나 최수빈은 정말 세상을 잃은듯 크게 울었다. 아직도 몇주전에 날 껴안았을 때 느껴지는 온기가 그대로 남아있는 것 같은데, 꽉 껴안아 차가워진 몸에 온기를 불어 넣으려 해도 그 짓거리는 애꿏은 짓거리였다.


분명 5월은 새로운 생명이 솟아나고 모든게 푸르르게 변해갈 시기인데, 1980년 5월의 광주는 황폐하기만 했다. 생명이 죽어나가고 모든게 붉게 물들어가고. 분명 신이 있다면 이러지 말았어야 했다. 





pho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