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서 와 막무가내는 처음이지

아득해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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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득해지다























”야, 야. 왔다.“

“바로 찍어줘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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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텅 빈 눈의 남자가 빈소 앞을 지키고 앉은지 하루가 족히 지났다. 담배를 피우느라 빈소를 지키지 못한 잠깐 새에 기자들이 우르르 들이닥쳤다. 눈 앞으로 터지는 셔터 불빛에 저항할 힘을 잃은 듯 그는 가만히 눈을 감았다. 곧이어 들려오는 기자들의 외침에 다시 눈을 떴다.

“고인의 극단적인 선택,
 평소에 짐작하고 계셨습니까?”

“향후 활동 계획이 어떻게 됩니까-”

“타살로 의심되는 정황은 없나요-“

”한 말씀만 해주십시오-“



그가 입을 열었다. 셔터 소리 마저 줄어들었다. 모두가 숨을 죽인 가운데, 모든 시선이 그에게로 향했다.
























두 달 전,

창 밖으로 하얀 솜이 흩날리던 어느 날이었다. 빠른 속도로 내리꽂히던 그 눈이 점점 더 많아져 온 밤이 하얘졌다. 통창 밖으로 보이는 눈을 하염없이 쳐다만 봤다. 눈이 정말 차갑겠다 하고 실없는 생각을 하며.

그때 네가 온 것이다. 무척이나 반가운 초인종을 울리며. 나는 인터폰으로 한참을 보았다. 코 끝과 턱 끝이 붉어진 채로 옅은 웃음을 띠고 있는 너를. 머리에 맺힌 눈송이를 털어도 보고, 너무 추운 나머지 손에 호호 입김을 불어도 보는 너를. 바로 문을 열어주지 않는 내가 의아했는지 너는 한 번 더 초인종을 눌렀다. 그제서야 나는 현관문을 향해 길게 이어진 복도 위를 뛰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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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고싶었어“



그는 문이 열리자마자 내 허리를 감싸안았다. 잠옷 위로 느껴지는 차가운 손의 한기에 잠시 움찔했다. 그는 내 어깨 위로 고개를 떨어트렸다. 역시나 차갑다.

그는 나를 안은 채로 현관문을 비집고 들어왔다. 오리 마냥 뒤뚱뒤뚱 뒤로 걸었다. 한두 번이 아닌 사람처럼 현관 앞에 놓인 실내 슬리퍼에 발을 밀어넣었다. 한기와 뒤섞인 그의 체향이 코 끝으로 밀려들어왔다. 나를 소파에 앉히고서는 부엌으로 가 물을 따랐다. 



”우리 얼마만이더라?“

”한 달 정도 됐지”

“잘 다녀왔어?”



아니
그가 말했다. 그는 최근 영화 촬영 스케줄 때문에 쉴 새 없이 일을 해왔다. 지난 한 달 간 잡힌 해외 촬영으로 정신 없이 바쁜 날을 보낸 그와 오랜만에 만나는 날이었다. 귀국하자마자 나에게로 달려온 그가 기특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나 아팠어
말이 떨어지자마자 나는 그에게로 다가가 상태를 살폈다. 다행히 이마에는 열이 없다. 체온계로 재봐도 이상 증세는 없다. 


“지금은 괜찮아”

“정말?”

“몸살이었나봐”


안도의 한숨이 절로 나왔다. 어려서부터 겨울의 감기 만큼은 매번 피할 줄을 모르던 너였다. 몸이라도 건장한 서른이 되어 망정이지, 너의 유년은 병원에서 보냈다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너는 자주 아팠다. 양가 엄마들의 친분으로 나는 항상 그런 너의 옆을 지켰다. 제 손만한 주삿바늘을 손등에 꼽고 숟가락질 조차 하기 힘들어하는 너에게 밥을 먹여주는 것은 나의 몫이었다.

그럴 때마다 너는 우스갯소리로 나와 결혼을 하겠다고 했다. 당시엔 10살이었다. 너의 밥 위에 반찬을 올려줄 때마다, 천둥을 무서워하는 너의 옆에서 자장가를 불러줄 때마다, 병원 밥을 싫어하는 너를 위해 딸기 맛 사탕을 손에 쥐어줄 때마다. 너는 동갑내기인 나에게 청혼 비슷한 걸 자꾸 해댔다. 내가 크면 결혼은 꼭 너랑 할거야 하면서.



“무슨 생각해?”

“그냥… 별 생각 아니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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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도하 얼굴 좀 보자”



어느새 물 한 컵을 비운 그가 내 옆으로 왔다. 무릎을 베고 누워 나를 올려다봤다. 가만 보면 참 그대로 컸다. 한쪽은 쌍커풀이 있지만 한쪽은 없는 눈. 때로는 장난기가 섞여보이면서도 평상시엔 한없이 깊은 눈동자. 너의 얼굴을 훑는 내 눈을 의식한 그가 이목구비를 한껏 구기며 웃긴 표정을 지어보였다. 실없는 웃음이 튀어나왔다.



”완전 못생겼다 너“

”무슨 생각하냐고 너“

“…”



내가 어떻게 말할 수 있을까. 너랑 하는 연애를 온 대중이 알게 된 이후로 제대로 숨을 쉬어본 적이 없다고. 매일같이 밤이 되면 알 수 없는 누군가로부터 전화가 수십 통씩 걸려온다고. 매일 아침 현관문을 열면 악의적으로 눈이 찢어진 내 사진들이 바닥을 나뒹굴고 있다고. 잠에 들면 누군가로부터 칼에 찔려 죽기 직전의 꿈이 반복된다고. 수면제를 먹어도 그 효과가 들지 않는다고.



“안아줘”

“…”

“추워”

“…”


물어도 대답하지 않을 거라는 걸 눈치챈 너가 나를 보챘다. 누워있던 네가 일어나서 내 옆에 앉았다. 기다렸다는 듯이 너는 내 품에 들어오려고 한껏 몸을 구겨넣는데, 그 모습이 웃겨 나도 모르게 웃었다. 네가 없던 그동안 내가 꾸었던 악몽이 다 날아갈 것만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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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열셋이 되던 그해는 네가 유독 감기를 심하게 앓았다. 몸의 염증 수치가 높아 한 달 가까이 입원 생활을 하던 너에게 설상가상으로 안 좋은 소식이 전해졌다. 어머님이 교통사고로 돌아가셨다는 소식. 상태가 좋지 못해 의사는 네가 병원에 있기를 권했다. 그런 이유로 넌 엄마의 마지막을 지키지 못했다.

네가 걸음마를 떼기도 전에 너의 부모님은 이혼했다. 어머님 홀로 너의 병원비를 부담해가며 살고 계셨다. 돌아가신 이후로 넌 말이 없어졌다. 원래도 없었지만 더욱 입을 열려고 하지 않았다. 나의 가족 역시 부유한 처지는 못 되기에 계속해서 도움을 줄 수 있는 형편도 아니었다. 우린 그저 희망이라는 같잖은 말로 가녀린 목숨을 연장하고 있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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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 연예계의 발을 들이게 된 것은 자의가 아니었다. 돈이 없었고, 돈을 마련해야했다. 마침 너에겐 빼어난 외모가 있었다. 그게 돈이 됐다. 너는 열다섯이 되던 해에 김태형이라는 이름으로 영화계에 데뷔했다. 예상했던 대로 대중의 반응은 뜨거웠다. 그렇게 열다섯 해가 흐른 것이다.

엄마 말에 따르면 나는 어릴 적, 그러니까 지금은 기억도 없는 네다섯 살 즈음에 의류 광고를 촬영하던 모델이었다고 한다. 그걸로 벌어들였던 수익이 꽤 됐기에 엄마는 계속하기를 원했다고 하지만, 보수적인 아빠로 인해 이후에는 학업에 매진했던 것 같다.

다른 길을 걷게 된 너와 내가 멀어질 줄 알았다. 이제 다시는 못 보는 줄 알았다. 하지만 내 걱정과는 달리 그는 나와의 만남을 허투루 하는 법이 없었다. 매일 하굣길 골목에서 나를 기다리고, 아침저녁으로 안부를 묻는 연락을 해왔다. 때로는 영상통화까지. 어렸을 적 입버릇처럼 말하던 청혼을 정말이라도 할 기세였다. 너랑 내가 정말… 한다면? 썩 나쁘진 않다고 생각했던 것도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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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 괜찮아?”



내 삶이 통째로 흔들리기 시작한 건 그때부터였다. 영화와 드라마, 광고계까지 섭렵한 배우 김태형이 일반인과 오랫동안 교제해온 사실이 만천하에 드러났을 때. 그는 기사가 뜨자마자 전화를 해왔다. 어차피 신상이 밝혀진 것도 아니고 뭐, 별 문제 없잖아? 걱정하는 너를 생각해서라도 태연한 척 했다.

그때 너는 말하지 않았다. 기자가 기사를 터뜨렸다는 건 내 얼굴을 알고 있는 거라고. 나라는 존재를 언제든지 대중들이 알게 될 수 있는 거라고. 내가 힘들어질 거라고.























사흘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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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락이 안 된다고?”


태형이 물었다. 매니저의 연이은 통화 시도에도 도하는 묵묵부답. 전화를 받지 않았다. 분명 오늘은 스케줄이 없어 집에만 있을 텐데 연락이 안 된다. 태형은 왜인지 모르게 불안해졌다. 이 상황에서 앞으로 30분 뒤에 잡힌 생방송은 뒷전이었다. 티를 안 내려고 하지만 다 드러나는 얼굴이었다. 


“안 되겠어“

“뭘 어쩌게?”

”가야 해“

”농담이지…?“



태형이 메이크업을 받다 말고 일어섰다. 급기야 매니저의 턱을 따라 땀방울이 흐르기 시작했다. 정말 가기라도 한다면 이건 대형사고였다. 소속사 차원에서 수습하기도 힘든 사고. 자리를 뜨겠다는 그의 한 마디에 대기실의 분위기가 가라앉았다. 매니저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기어코 가겠다고 코트까지 챙기던 참이었을까. 매니저의 기본 벨소리가 들렸다.

도하였다.



“여보세요 도하야”


매니저가 놀라기 무섭게 태형이 바로 집어들었다. 온 신경이 핸드폰 너머의 소리를 향해 곤두서있었다. 모두가 덩달아 숨을 죽였다.


“강도하. 대답 좀 해.“

”…응 태형아.“



살짝 잠긴 듯한 도하의 목소리에 숨 쉬는 법을 잊고 있던 태형이 가까스로 호흡을 뱉었다. 그제서야 스태프 모두가 가슴을 쓸어내리며 안도하는 분위기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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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이렇게 전화가 안 돼.”

“…수면제를 좀“

“응”

“많이 먹었나봐”

“…”

“약이 안 들어서”

“…”

“무작정 털어 넣었거든”

“…”

“자느라 몰랐어…”



태형은 알고 있었다. 도하가 불면증에 몇년 째 시달리고 있다는 사실을. 하지만 해줄 수 있는 게 없어 매번 옆에서 지켜만 봐줄 뿐. 도하가 악몽을 꾸다 중간에 깨곤 하면 말 없이 등을 토닥여주고 안아주는 게 그의 할 일이었다.

극성 팬들로 인해 도하가 시달리는 것 또한 알았다. 소속사 측에 수 차례 말을 했고, 또 소속사 나름대로 배우와 그 측근 보호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막을 수 없는 피해가 종종 있었다. 태형은 도하가 겪고 있는 피해에 대해 전부 다 알지 못했고, 도하는 알려주려고도 하지 않았다.


“그러면 위험하다고 했잖아.”

“…응 알지”

”먹고 싶은 건.“

”귤 먹고 싶어“


태형은 왜인지 가슴이 먹먹해지는 걸 느껴 다른 화제로 돌리기에 급급했다. 일상적인 대화를 하면 조금은 괜찮아질 것 같았다. 그렇게 나중을 기약하고 전화는 끊겼다.

태형은 몰랐다. 그 통화를 끝으로 다시는 도하의 목소리를 듣지 못할 거라는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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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때 오늘 나 괜찮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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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꽃이고 누가 사람이야? 어렵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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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지금 청혼하면 받아줄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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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고 싶은 거 있으면 말만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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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잘못했어 한 번만 봐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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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을 둘러싼 기자들의 웅성거리는 소리에 속이 다 답답해졌다. 태형은 신중해야했다. 기자들이 도하의 이름을 더럽혀서는 안 됐다. 스스로가 하는 말 하나하나가 그들에겐 먹잇감이 될테니까 조심스러워야 했다. 짧은 시간에 거듭되는 고민에도 불구하고 태형은 결론을 내리지 못했다. 답은 정해져 있었다. 





제가 진작에 말했으면 좀 달라졌을까요.
그랬다면 살았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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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퇴합니다.“


도하 곁에 제가 있어줘야 합니다. 건강하십시오.
그 말을 끝으로 태형은 자리를 피했고, 기다리던 경호원들이 기자들을 바깥으로 몰아냈다. 소란스럽던 장례식장 안에 고요가 찾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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