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서 와 막무가내는 처음이지

금목서, 재떨이 4

Gravatar

금목서, 재떨이











.






“김태수를 왜 죽였나요.”

“…”


지하는 단 한 순간도 남자의 눈을 피하지 않았다. 오히려 뚫어져라 응시했다.









Gravatar

“그래야 했습니다.”


이게 답이 되려나. 눈동자를 한 번 도르륵 굴린 태형이 다시금 지하의 시선에 맞췄다. 지하에게선 아무런 표정 변화도 나타나지 않았다. 답은 커녕 힌트도 안 되네요.

지하는 사실이 궁금했다. 태수의 죽음을 애도한다거나 뭐 그런 같잖은 이유에서 비롯된 질문은 결코 아니었다. 단지 정말 이유가 궁금했다. 나에게도 뭣 같았던 사람이 당신에게도 뭣 같은 존재였을까 싶어서. 단순히 그 사람의 죽음에 부여된 당위성의 종류가 궁금했다.




“사랑했어요?”

“네.”



사랑했었죠. 분명 언젠가 그랬던 적이 있었겠죠. 지하가 덧붙이자 태형이 담담히 지하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묘하게 목이 메이는 듯한 소리가 나는 것도 같았다.





“아시잖아요.“

”…“

”김태수랑 나 사이 그런 관계 아니라는 거.“

”내가 무슨 수로,“

”다 봤는데.“




시도때도 없이 미행 붙여서 나 감시하는 거. 가까스로 호흡을 고른 지하가 덤덤하게 내뱉었다. 미묘한 조소가 섞인 말 소리였다. 나름 제 딴에는 비밀스럽게 잘 마쳤다고 생각한 그 만행들이 다 밝혀진 셈이라니. 태형은 예상치 못한 발언에 저도 모르게 입꼬리를 올렸다.












.


6년 전 겨울, 그러니까 태수와 지하 두 사람이 만나기도 전. 지하가 열아홉이고 태형이 스물셋일 적에

 태형은 지하를 먼저 만났다.
.


”이모, 물떡 남은 거 저한테 다 파세요!“

“오야~ 니 많이 묵으라.”


장사 마감 시간이 다 되어가는 늦은 밤이었다. 자정을 코 앞에 두고 학교에서 면접 준비를 하다 나온 고등학생이 시장 분식집 앞에 자리를 잡았다. 책가방은 아무렇게나 바닥에 던져 두고 롱패딩 지퍼를 턱 끝까지 끌어올린 채 호호 불어 먹는 물떡이었다. 학생은 열 개도 먹을 수 있겠다는 좋은 생각을 하던 참이었다.


“…”

웬 검은 정장을 입은 남자가 학생의 옆에 자리를 떡하니 잡고 섰다. 정겨운 시골 바닥에서는 극히 보기 드문 차림이긴 했다. 묘하게 비린 향과 숲내음이 섞여 나는 남자에게서 학생은 원초적인 거부감을 느꼈다고 했다.


“외상. 되겠습니까.”

“예?”


분식집 사장이 되물었다. 애초에 외상 같은 게 존재할 리 없었다. 작은 마을의 작은 시장에. 칼 같은 경제 구조로 돌아가는 이 작은 사회에. 옆에서 듣던 학생도 의아하다 싶었는지 한 마디 거들었다.



“…그냥 제 돈 쓰세요.”

“…”

“뭐 드실 건데요.”



저의 단골 분식집, 그만큼 오래 봐서 제겐 더 없이 좋은 어른인 아줌마가 곤란해하는 모습을 보고 싶지 않았다. 겉모습은 멀쩡해서 속은 어디 모자라겠거니… 남자를 안쓰럽게 생각한 학생이 다이소에서나 팔 법한 강아지 모양 동전지갑을 꺼내들었다. 남자는 혼자만 들을 수 있게 헛웃음을 내뱉었다.


“제일 맛있는 걸로 부탁합니다.”

“냉큼 잘 받아 드시네요.”



남자가 바람 빠지는 소리를 내며 잠깐 웃었다. 보통은 속으로만 할 법한 소리를 면전에다 해대는 교복 차림의 학생을 보며 당돌하다고 생각했던 듯 하다. 연이어 학생은 남자에게 제 몫이던 물떡을 건넸다. 종이컵 하나에 어묵 국물을 담아 함께 주는 센스도 발휘하며.

다만 이 남자가 어딘가 이상했다. 물떡 자체를 처음 보는 사람 마냥 떡에 꽂힌 나무젓가락만 만지작거리고 앉은 것이 아닌가. 학생이 그걸 알아차리기 전에 남자가 학생이 먹는 모습을 보며 대충 눈치챈 것이 다행이었다.




“전화번호 좀.”

“네? 저 고등학생인데요.”

“…압니다.”

“…”

“돈 보내주려고.”

“…아.”



하하. 분식집 사장이 그만 못 참고 웃음을 터뜨렸다. 학생은 멋쩍은 이 상황을 무마하려 비싼 것도 아니라며 거절하기 바빴다. 됐어요, 그냥 좋은 일 한 셈 치죠. 그 말을 들은 남자가 덩달아 옅게 미소를 머금었다.

순식간에 떡 하나를 먹어치운 그가 플라스틱 의자에서 일어났다. 어묵 국물에는 손도 대지 않은 채였다. 나무젓가락 한 번, 종이컵 한 번 훑은 학생이 남자를 올려다보았다.


“착하게 사세요.”

“네?”

“제가 베푼 은혜 잊지 말고,”

“…”

“바르게 사시라구요.”



남자는 이 학생을 또 볼 수 있으면, 하고 생각을 했더랬다.











Gravatar

“그럴까 봐요. 오늘부터라도.”








그게 4년 간의 일방적인 추적으로 이어지긴 했지만 말이다.















.




다시, 현재.







“언제부터예요?”

“꽤 됐습니다.”

“김태수랑 같이 살 때부터 계속?”

“…”



지하가 태형의 두 눈을 번갈아 쳐다보았다. 당최 무슨 말을 하려 하는지 알 수 없는 사람이었다. 그냥 그런 표정이었다. 말이라도 좀 해주면 좋겠는데. 어째서 이 남자는 답이 없다.





“더 오래 전부터?”

“…”

“날 모르는데?”

“…”

“그런데도 보고만 있었다고?“







끝내 태형의 눈동자가 눈에 띄게 흔들리는 순간이었다. 내내 자신을 향해 쏟아붓던 그 입술만을 좇던 그 눈이 허망함에 일렁이는 또 다른 눈을 마주한 순간이었다. 어떤 이유였든 간에 나를 보고만 있었다고요. 매일을 죽음 직전에서 허덕이는 나를.












Gravatar

“그래서 죽였잖아.”








어떠한 변명도 하지 않고 김태수의 죽음을 말하는 태형의 한 마디에, 이번엔 지하의 눈이 흔들렸다. 그 남자가 주장하는 인과관계가 도무지 믿기지가 않아서. 그냥 하는 말이겠거니 싶다가도 좀전과는 다른 태도가 너무 이질적이라. 예를 들면 동요하는 눈동자, 미묘하게 떨리는 입술, 불규칙해진 숨소리 같은 것들. 무엇보다도 한숨처럼 그동안 안에 쌓인 것들을 해방시키는 듯한 말투가 뇌리에 박혀 잊히질 않았다.














.

다음날,







아침부터 방문을 노크해오는 소리에 얕은 잠에서 깬 지하가 잠긴 목소리로 대답했다. 네.




“아침 드실 시간입니다.”

“…네?”

“나오셔서 복도 끝까지 걸으시고,”

“아니 잠깐만요.”

“예?”

“저 무슨… 왕실 체험…“


단어를 고르다 아차 싶었던 지하가 말을 얼버무렸다. 아침은 원래 안 먹어요. 앞으론 안 챙겨주셔도 돼요. 그걸 가만 듣던 재현은 예상한 반응이라는 듯 개의치 않고 다음 말을 전했다. 예, 저도 대충은 예상했습니다. 그렇지만 사장님 지시라 저도 뭐 어쩔 수가 없습니다.

순간 사장님이라는 호칭이 낯설었던 지하가 태형을 떠올리는 데에 조금 시간이 걸렸다. 다음 말을 속으로 고르다 끝내 뱉은 질문은




“사장님은요. 어디 있는데요?“

”출근하셨습니다.“

”언제 돌아오시는데요.“

”오늘 퇴근은 좀 늦어지실 겁니다.“

“그럼 외출 좀 다녀와도 될까요?”

“예. 다만 제가 동행해야합니다.”

“네?”

“사장님 지시입니다.”





본격적인 미행의 시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