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아가지 못하는 시간들 속 우리
다섯번째 페이지 | 니 마음 속 죽은 꽃



나는 니가 지금도 나를 생각하면 단단했던 마음이

한순간에 와르르 무너졌으면 좋겠어.

니가 다른 여자를 만나도 평생 나를 잊지 못하며 살아갔으면 좋겠어.

난 니가 나한테 헤어지자고 말한 날, 내 세상은 되돌릴 수도 없이 산산조각으로 무너졌는데

어떻게 그게 나한테 아무것도 아닐 수가 있어.

그니까 너도, 내 기분을 평생 느끼면서 살아줬으면 좋겠어.

매일 밤 우리가 함께 한 추억을 회상하며 눈물 흘려줘.

그럼, 용서할게.



전정국
아까 제가 누나한테 고민상담 할 거 있다고 했던 거 기억 나요?


전정국
그거 지금 말할게요.



정여주
…진지한 얘기야?


정여주
들어줄게, 말해.



전정국
제가 전에 좋아하는 사람 있다고 했잖아요.


전정국
근데 제가 더이상 그냥 뒤에서만 좋아할 수는 없을 것 같은데,


전정국
그냥 고백할까요?


전정국
아님, 조금 더 지켜보다가 할까요.



정여주
그 친구는 준비가 된 것 같아?


정여주
니 고백 받아 줄 준비 돼보여?



전정국
그런 것 같지는 않네요, 지금 보니까.


전정국
연애가 아직은 무서워 보이기도 하고.


정여주
그럼 좀 기다려줘_ 그리고, 무서워 보일 땐


정여주
니가 어필해, 난 무섭게 하지 않겠다고.


전정국
어필?


전정국
알겠어요, 한 번 열심히 해볼게요ㅎ



정여주
이제 됐어?


전정국
네ㅎ


전정국
이제 내가 누나 집 데려다줄게요.


정여주
나 혼자 갈 수 있어, 집에 같이 가는 건 그냥 같은 길만 같이 가면 돼.


전정국
어필하는 거 연습해야죠_


정여주
…나한테?


전정국
내가 전에 말하지 않았나_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 누나일 수도 있는 거라고.


정여주
그런 말 함부로 하는 거 아니다_


전정국
왜요? 막 설레나?


전정국
설레요?


정여주
아니? 애기가 앵앵 거리는 것 같아.


전정국
애기이?! 앵앵!?


정여주
어, 앵앵.


전정국
우리 겨우 2살 차이에요_


정여주
2살도 차이가 나는 거야.


정여주
까불지마.


전정국
누가 보면 5살은 차이 나는 줄 알겠네_



정여주
여기서 저쪽으로 조금만 더 걸어가면 우리 집이야,


정여주
넌 이제 가봐도 돼.


정여주
오늘 데려다줘서 고마워.


전정국
음...알겠어요, 들어가요, 누나.



전정국
우리 내일 또 봐요ㅎ



정여주
그래, 들어가_


그렇게 니가 내 시선에서 없어질 때까지 계단에 서서 지켜보다

집 쪽으로 걸어갔다.




정여주
* 여보세요_


정선우
* 언제 들어오냐 -


정여주
* 너 내 퇴근 시간까지 알고 있냐?


정선우
* 당연하지, 난 니 일거수일투족을 다 알고 있어.


정선우
* 근데 오늘은 좀 늦네?


정선우
* 남자 생겼어?


정여주
* …너 진짜 내 스토커야?


정선우
* 진짜구나.


정선우
* 진짜 생겼어?


정여주
* 시끄럽고, 저녁으로 치킨 시켜 먹을까?


정선우
* 그럴래?


정선우
* 내가 주문 해놓을 테니까 얼른 와라_


정여주
* 오늘 정호석은 또 외박이야?


정선우
* 걔가 미쳐가지고.


정여주
* 어머니한테 연락을 해드려야 되는 거 아니야?


정선우
* 미쳤냐? 엄마 쓰러져.


정여주
* 야, 이제 끊어


정여주
* 2분 후 집 도착.


뚝 -



정여주
뭐야.


정여주
니가 왜 여깄어.



강서준
왜, 보고싶었냐?


정여주
웃기지 마_ 내가 미치지 않은 이상


정여주
널 그리워하거나, 너한테 먼저 연락을 하진 않아.


강서준
여전하네ㅎ


정여주
요새 전남친, 전여친들이 처음으로 뱉는 말 중에


정여주
'여전하네'하는 게 유행인가.


강서준
오랜만에 봤는데 왜 이렇게 쌀쌀맞게 대해주냐.


정여주
야


정여주
넌 나한테 흑역사야.


정여주
다시 되새기고 싶지도 않은 흑역사라고,


정여주
그니까 그냥 과거에 짜져있어.


정여주
불쑥불쑥 튀어나오지 말고.


강서준
말이 너무 심하네_


강서준
요새 남자친구는 있어?


정여주
넌 그게 왜 궁금한ㄷ…


전정국
한참 찾았네.


전정국
혼자 가면 어떡해요_ 누나 집에서 같이 밥먹기로 했으면서ㅎ


정여주
전정국...?


정여주
너 여기 어떻게 왔어.


나의 물음에 대답도 하지 않고 넌 내 어깨에 니 팔을 둘렀다.


전정국
배 안고파요?


전정국
나 누나랑 같이 마시려고 맥주도 사왔는데.



강서준
누구세요?


전정국
아, 안녕하세요.


전정국
저 여주누나 남자친구예요ㅎ


전정국
처음 뵙는데, 혹시 여주누나 친구세요?


전정국
…근데 어떡하죠, 누나랑 제가 지금 너무 배가 고파서


전정국
집에 빨리 들어가서 밥 먹어야 될 것 같은데.


전정국
좀 비켜주실래요?


강서준
남자친구….


강서준
거짓말 잘하시네요?


강서준
정여주 지금 남자친구 없는 거 이미 다 알고 온 거예요.


강서준
진짜 누구예요?



정여주
강서준,


정여주
정국이 내 남자친구 맞아


정여주
그니까 넌 다시 찾아오지도 말고


정여주
그냥 꺼져.



정여주
내가 요새 얘 때문에 엄청 행복하거든_


정여주
너랑 만날 때는 행복 조차 못 느꼈었으니까,


정여주
이젠 나도 행복 좀 느껴봐야지ㅎ



전정국
듣다 보니까


전정국
좀 불쾌해지려고 하네요.


전정국
남자친구 있는 전여자친구 집에 말도 없이 찾아와서


전정국
개소리 하시는 거.


전정국
저는 못 참거든요.



강서준
좋은 남자를 만나네.


강서준
그래, 이 사람이 니 남자친구라고 치고


강서준
오늘은 이 정도에서 마무리 할게.



강서준
대신, 다음번에 또 마주쳤을 때


강서준
그때도 니가 날 이딴식으로 대하면


강서준
그땐 나도 어떻게 될 지 모른다.


전정국
야.



전정국
다시 말해 봐.



정여주
그만해.


정여주
너도 이제 가, 강서준.


정여주
다신 마주치지 말자.


가까스로 강서준을 보냈고, 난 여기에 가만히 서서 한숨만 쉬고 있는 너의 눈치만 봤다.



정여주
…저기.


정여주
너도 이제 들어가_


정여주
시간이 많이 늦었다.



전정국
누나


전정국
누나는 안 설레요?


정여주
…ㅇ, 어?


전정국
제가 막 남한테 내가 누나 남자친구라고 하고,


전정국
이런 스킨십도 하고, 진짜 남자친구처럼 얘기하고 대하는데도


전정국
안 설레요?


정여주
무슨 소리하는 건지 잘 모르겠어


정여주
근데 정국아 방금 그건….


전정국
알아요, 누난 연기였다는 거


전정국
근데 전 진심이었어요ㅎ



전정국
진짜 누나는 눈치가 없는 거예요, 아님 모르는 척하는 거예요?



전정국
이 정도면 눈치 챌 때도 됐다고 생각하는데_



정여주
…진심이야?



전정국
난 관심 없는 여자한테 같이 집에 가자고 하고, 남자친구라고 해주지 않아요.


전정국
내가 전에 만났던 여자분들도 이렇게까지 마음 표현하지는 않았는데


전정국
누나한테는 놓치면 안될 것 같다는 생각이 계속 들더라고요ㅎ


전정국
처음엔 내가 일이 많이 힘들어서 잠시 미쳐서 그런건가_ 싶었는데.



전정국
내가 가슴에 손을 얹고 생각해보니까, 내가 누나를 많이 좋아하더라고.



전정국
좋아해요.


전정국
…너무 갑작스럽나?



정여주
…어.



정여주
생각 할 시간을 좀 주라.


전정국
얼마든지_



전정국
배고프겠다ㅎ, 얼른 올라가서 밥 먹어요.



전정국
누나 번호는 누나가 대답해주는 날 물어볼래요_


정여주
누가 준대?


전정국
아_ 진짜.


전정국
누나 진짜 치사한 거 알죠.


정여주
시끄러워, 얼른 집에 가.



전정국
내일 봐요_


쪽 -



전정국
나 가요ㅎ


정여주
…뭐야...?


전정국
나 간다_





정선우
미쳤지?


정호석
미쳤지_


정호석
근데, 나?


정선우
너 말고.


정선우
정여주.


정여주
나?


정여주
나 왜_


정선우
너 왜 볼이 빨개?


정선우
집에 2분 후 도착이라고 했으면서 20분이 지났어?


정선우
너 뭐 했어, 밖에서.


정여주
내가 뭐가 빨개….


정호석
들어올때 토마토인 줄_


정여주
조용히 해라.


정여주
집도 3일에 한 번씩 들어오면서.


정호석
나 바빠.


정호석
근데, 오빠는 버렸냐?


정호석
나 너보다 오빠야 -


정선우
오빠면 모범을 보이던가.


정선우
엄마한테 다 말한다?


정호석
치킨 닭다리는 너 먹어.


정선우
넌 영원히 나 못 이겨ㅎ


정여주
유치한 것들.



정선우
그래서, 밖에서 뭐 했는데.


정여주
진짜 궁금해?


정호석
내가 제일 궁금해.


정선우
나도.


정여주
내가 원래 이런 거에 별로 떨리지도 않고


정여주
긴장하지도 않았는데...


정여주
왜 이러지.



정호석
고백 받았어?


정선우
그러네_


정선우
누구야, 정여주 꼬신 사람?



정여주
있어...



정선우
너보다 나이 많아?


정호석
연상 만나, 여주야.


정호석
내가 살아보니까, 연하는 별로더라.


정여주
…연하야.



정선우
뭐해...? 당장 결혼하지 않고.


정호석
미쳤지.



정여주
잘생기긴 했어...


정선우
결혼해.


정호석
당장 버려.



정여주
둘 다 조용히해_


_

_



너와 눈을 마주치며 시덥잖던 농담을 주고 받으며 웃던 그때가 난 그리운데,

지금의 너도 그때를 그리워하고 있을 거란 확신은 없네.

난 요새 그렇게 잘 지내고 있진 않아_ 근데 넌 잘지내고 있진 않았으면 좋겠어.

혹시나 새 여자친구가 생겼어도

울때 안아주진 마.

그건 니가 나한테만 해줬던 걸로 간직하고 싶어.


아름답던 꽃으로 피웠던 우리의 추억이 지금은 꽃잎만 남고, 메마른 뿌리 뿐이지만

난 아직 간직하고 있어, 우리의 꽃잎 중 하나.



너도 간직하며 날 하루하루 되새겨주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