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문 묘사가 다수 있습니다.
__1942년 4월 26일
눈을 뜨니 퀴퀴한 냄새가 났다. 무명천으로 된 이불이 덮여 있었고 낯선 옷이 입혀져 있었다. 황토색 일본 옷이라. 기어코 살리네. 낮게 중얼거렸다. 허투루 살려둔 것은 아닐 터, 연준은 그들의 의도를 다분히 짐작할 수 있었다. 혀를 깨물고 죽어야 할지 고민했다. 그래, 동지들을 파느니 이 짧은 목숨을 바치는 편이 나을 것이다. 어차피 들꽃처럼 하릴없이 죽을 목숨을 아껴 어디 쓴단 말인가. 검은 벽지를 바른 방에 매인 몸이 이토록 가볍게 느껴진 적이 처음이었다. 벽에 늘어선 도구들이나 고문당하는 자의 공포심을 유발하기 위해 끼운 채도 낮은 전구도 가소로웠다. 그것이 한낱 자만이었음을 깨닫기에 그는 너무 젊었다.
“젊고.(젊군.)”
수염을 민 헌병이 말했다. 연준이 씩 웃었다. 부러 의자에 고정된 손을 꽉 쥐었다. 헌병이 들고 있던 몽둥이로 그의 턱을 들어 올렸다.
“独断的にしたことか、それとも誰かの社主を受けたのか。(독단적으로 한 일인가, 아니면 누군가의 사주를 받은 것인가.)”
"뭐. 혼자였는지, 공범이 있었는지?(글쎄. 혼자 했을까, 공범이 있었을까?)"
“똑바로 대답하지 않아?(똑바로 대답 안 해?)”
헌병이 연준의 머리채를 잡으며 소리쳤다. 긴 머리칼이 속절없이 붙들려졌다. 형무소에 배정되기는 처음인 듯 헌병은 씨근거리며 분을 삭였다. 나름 깔끔하게 묶고 있던 머리가 헝클어저 얼굴에 금을 그었다. 긴장감이 감돌았다. 헌병은 저보다 아래인 듯 보이는 두 남자를 향해 손짓을 했다. 직감적으로 눈을 감았다. 곱게 죽기는 글렀네. 새빨갛게 달아오른 인두를 보며 진작 모든 희망을 버렸다. 아니, 애초에 가지고 있기는 했나.
“여. 끝나면 제대로 밥을 줘 주세요.(야. 끝나면 밥이나 제대로 줘라.)”
“합니다.(해.)”
한 사내가 반항 없는 고개를 쳐들게 하고 다른 사내가 인두를 꺼내 스스럼없이 눌러 피부를 지졌다. 피부에 붉은 쇳덩이가 닿는 순간 정신을 그러잡으며 이를 갈았다. 헌병은 그것을 지켜보기만 하며 고통에 못 이겨 치는 몸부림조차도 하나의 오락이라는 듯이 웃었다. 승리감이 떠오른 얼굴에 조명이 비추어져 더욱 기괴해 보였다. 피가 흐르고 인두가 머무르는 자리에서는 연기가 피어올랐다. 옷가지가 타서 피부에 눌어붙었다. 인두를 뗀 뒤 헌병은 다시 물었다.
“소속은 어디입니까?(소속이 어디냐?)”
가쁜 숨을 몰아쉬고서 연준은 힘겨이 고개를 들었다. 카악 퉤. 헌병의 오른쪽 볼에 피가 섞인 침이 떨어졌다. 그는 얼떨떨해하며 침을 닦아냈다. 그리고선 가소롭다는 듯이 웃었다. 감히 조센징 따위가…. 그가 뇌까렸다. 연준은 지나간 고통의 잔재에 짓눌리지 않으려 애쓰며 입을 열었다.
“그래. 감히 조센징 따위가 그랬다.”
“最後に尋ねる。(마지막으로 묻는다.)”
헌병이 피부에 눌어붙은 옷자락을 보더니 그것을 힘으로 뜯어냈다. 고통에 찬 소리와 함께 피가 온 방 안에 튀었다. 찢어진 피부 조각이 뜯겨진 옷자락에 매달려 덜렁거렸다. 피가 흩뿌려진 얼굴은 이루 말로 할 수 없을 정도로 섬뜩해 보였다. 피부가 뜯겨나간 자리에는 어린아이의 주먹만 한 핏자국이 생겼다. 탁한 공기 위에는 고통스러운 만큼 더운 숨이 얹어져 더욱 호흡이 힘들었다.
“誰の指令を受けたの?(누구의 지령을 받은 거지?)”
헌병이 물었다.
“총구의 방향이 자유롭다. 누구든지 쏠 수 있고 누구든지 죽일 수 있었어. 허나 그렇게 하지 않았지. 왜인 것 같아?”
헌병은 기껏 취조해야 할 죄수가 인두질 한 번에 정신을 잃은 것일까 불안해했다. 분명 정신력 하나는 경성 바닥에서 알아주는 자라 했다. 그런 자가 고작 그것 하나에 미칠 리가. 간신히 정신을 차린 연준은 입꼬리를 당겨 비웃음을 머금었다.
“잘 생각해. 이 말의…답이 내 답변이니까.”
헌병은 욕지거리를 하며 뺨을 내리쳤다. 의자가 넘어가며 큰 소리를 내었다. 아이고. 연준이 미친 자가 으레 그러하듯이 방이 떠나가라 웃었다.
“아파라.”
대일본제국에선 사람을 이리 다루나 보지? 아직 재판도 안 받은 자를. 연준이 말했다. 뭐해, 안 세워주고. 더 할 것이 아직 남은 것으로 아는데. 의자가 다시 세워졌다. 헌병이 의자에서 일어나 방 벽을 두루 살폈다. 펜치를 잡고 다시 돌아온 그는 의자 손잡이에 고정된 엄지손가락에 벌린 펜치를 놓고서는 다시 한번 죄수를 응시했다.
“대한청년회의 다른 회원은 누구?(대한청년회의 다른 회원은 누구지?)”
연준은 고개를 돌렸다. 헌병이 직접 펜치로 검지 손톱을 잡고 뒤로 힘껏 당겼다. 방 안에서는 고통에 찬 비명이 울렸고 피 냄새가 진동을 했다. 떨어진 작은 그것은 과거 그의 손톱이었음이 틀림없었다. 대일본제국을 이렇게 우습게 보다니. 헌병이 말했다. 목구멍을 무엇이 막은 듯 소리가 잘 나오지 않았다. 열 손가락의 손톱이 모두 빠지고 의자 팔걸이 밑이 피로 웅덩이가 생길 무렵에도 입을 열지 않았고 고대 로마인이 예수에게 자행했다던 쇠고리 달린 채찍을 받아도 입을 열지 않았다. 허나 그것은 오직 목을 꽉 틀어쥔 고통 때문이었다. 과연 일제라는 자들은 극악무도하구나. 끝내 정신을 잃는 것이 마음이 편할 듯한데 매질에 정신을 잃을 때마다 찬물을 서슴없이 끼얹어대니 눈을 감을 수도 없었다. 이미 경성 바닥에서 유명한 ‘지붕 위 암살자’ 에게서 받아낼 수 있는 자백은 모두 받아낼 셈인지 그들은 죽음과 삶의 희미한 경계로 연준을 몰아갔다. 기어코 그들은 흐릿한 정신임에도 입에 수건을 물렸다. 혀를 깨물고 자결하지 못하도록 함이었다.
__1942년 4월 28일
“어찌 이런 꼴인겁니까, 어찌!”
남준이 버럭 소리를 질렀다. 모두가 얼굴에 근심과 공포가 역력한데 연준만이 바람 빠지는 소리를 내며 웃었다. 그는 손톱이 없는 손을 내밀어 창살 너머로 뻗어 동지들의 얼굴을 만졌다. 참으로 안타까운 얼굴들이구려. 다 쉰 목소리가 말했다. 태현은 성한 곳이 없는 동지의 몸을 보며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무릇 대한청년회의 의장을 맡았을 적에 생과 사를 가리지 말자 다짐했으나 막상 앞에 닥쳐온 그것의 경계란 잔혹하기 짝이 없었다. 차례로 남준, 지민, 태현의 얼굴을 만진 그 손이 다시 창살 안으로 들어갔다.
“진짜 여기 있는 건가.”
“……”
“아니면 내가 진정 미친 건가.”
다 쉰 목소리에 지민의 눈에 눈물이 고였다. 그는 창살 안의 피칠갑을 한 손을 잡았다. 아픈걸 보니 허상은 아니네. 연준이 중얼거렸다. 태현은 연준을 등지고 섰다. 차마 고문의 흔적들을 볼 수 없었음이었다. 파들파들 떨리는 입술 사이로 나지막하게 떨리는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보석을 신청할 겁니다.”
“…”
“조금만 기다리십시오.”
어이. 연준이 말했다.
“괜찮냐?”
“…괜찮습니다. 괜찮고말고요. 몸조심하십시오.”
도망치듯이 말한 태현은 면회소에서 걸어 나갔다. 형무소의 공기가 한없이 버거웠다.
“이건 뭐냐?”
하숙집 책상에 원고지가 어지럽게 놓여 있었다. 수빈은 그것들을 살피며 적다가 생각하다가 다시 쓰다가 지우기도 하고 구겨서 던져버리기도 했다. 남준의 말에 수빈이 고개를 들어 그를 응시했다.
“시…쓰고 있었어요.”
“아니, 그러니까 내 말은……”
남준이 머리를 쓸어 넘겼다. 동그란 안경 뒤 그의 눈이 번득였다. 그러나 수빈은 아랑곳하지 않고 원고지에 문장 몇 개를 끼적였다. 그것은 한창 날선 남준을 자극했다.
“지금 시를 쓸 때야?”
남준의 목소리에 수빈이 다시 고개를 들었다. 제가 들은 것을 인정할 수 없다는 듯한 눈이었다. 허나 그것은 남준도 마찬가지였다. 동지가 체포당했는데 이토록 평온하게 시 따위나 쓰고 앉아 있다니. 지금껏 부끄러움 운운한 것이 모두 거짓이었나. 이 아이도 결국 제 살길을 찾아 떠나는 건가. 남준은 배신감에 끓어오르는 분노를 누르려고 노력했다. 수빈이 쓰고 있던 조국의 독립은 아마 나중에서야 볼 수 있을 터였다.
“방금 뭐라고……”
“지금 최 동지뿐만 아니라 수많은 사람들이 독립을 부르다 죽어가고 있어. 회선 동지도 그렇고, 월송 동지, 정국이 걔는 어른도 아닌데도 총 들고 싸우고 있다고. 너는……너는 그런데 지금 뭐 하는 거야? 너 혼자 가만히,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로…!”
수빈이 원고지를 바닥으로 집어 던졌다. 충동적인 것이었는지 그의 안색이 새하얬다. 남준은 수빈의 눈에 비친 저의 모습도 그러리라 짐작할 수 있었다. 형무소에서 본 연준의 모습이 환각처럼 눈 앞을 떠다녔다.
“…주워.”
“싫어요.”
“주우라고!”
지금 우리끼리서 이럴 때가 아니잖아. 우리끼리 싸울 때가 아니잖아. 남준은 답답한 마음에 목이 콱 막혔다. 소리를 질렀음에도 꽉 막힌 듯한 느낌은 사라지지 않았다.
“형.”
수빈이 입을 열었다.
“형에게 시는 도대체 뭐에요?”
“…”
“나한테 계속 쓰라며. 아무도 내 시 따위 봐주지 않아도 계속 쓰라며. 그게 독립운동과 같은 이치라고. 등단이고 뭐고 난 아무것도 바라지 않아요. 아니, 그런 걸 갈망하던 때도 있었어요. 하지만 이젠 아니잖아요. 난 이걸로 조선을 사랑하는 거에요, 형! 이걸로 조선을 그리워하는 거에요, 문학으로!”
“……문제는…문제는 말이야 수빈아.”
남준이 힘없이 두 팔을 늘어뜨렸다. 수빈의 눈이 새빨갛게 충혈되어 있는 것을 지금 보았기 때문이며 저 또한 제 몸뚱아리가 갈가리 찢겨나가는 듯한 기분이었기 때문이었다.
“문학은. 힘이 없어.”
어쩌면 그래서 이런 말을 내뱉었는지도.
“…말 다했어요?”
“……”
“형 우리가 어떻게 여기까지 온 건데, 어떻게 그런 말을 할 수가 있어요? 우리가 애초에 독립운동 왜 하자고 했는데…!”
“…힘이 없는 글 몇 자 가지고 조선은 독립되지 않아. 이제는 총을 들어야 한다.”
“형아 어떻게 그래요? 독립에 대한 꿈을 갖게 해준 것도 문학이었어! 어떻게 문학을 등질 수가 있어요? 그것도 형이!”
“독립을 향한 방법은 달라지는 거야! 도대체 왜 그깟 시 좀 끄적이지 못해 안달인 거지?”
“그럼 그냥 지금 이야기해요, 내가 지금까지 너한테 한 말은 다 궤변이었다고!”
“…그래.”
남준이 수빈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궤변이었어.”
“…!”
“네가 포기하지 않길 바랐어. 너라도 문학 속에서 살았으면 했어! 잘못 타고난 이 세상을 탓하며 그냥 그렇게 살았으면 했어! 문학에서는 일본군을 물리칠 수 있어, 한 번에 수만 명씩 쳐 죽이고 조선에 독립을 가져올 수 있겠지! 근데!”
남준의 감정이 격앙되어 갔다. 말들이 두서없이 튀어나왔다. 이러면 안 되는데. 내가 하려는 말은 이게 아닌데. 머릿속이 복잡한 탓에 말은 더욱 날카로워져 마침내 하나의 단도가 되고 비수가 되었다.
“여기선 못해.”
“…”
“나라를 되찾는 방법은 총을 드는 거야.”
수빈의 얼굴에서 남은 핏기마저 사라졌다. 수빈이 입술을 꼭 깨물었다.
“형.”
“…”
“부끄럽지도 않아요?”
“…”
“사람을 죽이는 건, 그건 독립이 아니에요.”
우리가 염원하는 그 독립이 남의 피를 흘려야만 얻을 수 있는 것일 리가 없어. 남준은 수빈이 하숙집을 나가는 것을 그저 바라만 보았다. 그에겐 수빈을 붙잡을 힘이 없었다. 도대체 이 나라란 무엇인가. 왜 이렇게까지 무력한 것인가. 제 백성 하나 지켜주지 못하는 것이 무슨 나라라고. 이토록 허무하게 무너질 것이라면 어찌하여 대한이라 일컬었나. 이토록 무력하고 나약할 것이라면 어찌하여 제국이라 일컬었나. 대한제국이란 그 부끄러운 이름은 도대체 어찌하면 역사에서 지울 수 있는 것인가. 우리의 선조께서 고작 이따위의 미래를 향해 건국을 하였던가. 애달프기 그지없구나 망국의 백성이여, 빼앗긴 들의 들꽃이여. 남준은 자신의 서랍장을 열었다. 그 안의 원고지를 모두 찢어버리고서 성냥불로 태워버렸다. 연기가 하늘 높이 올라갔다. 그런 뒤 남준은 오래전 아버지께 받았던 총을 들었다. 그리고 중얼거렸다.
“결국에는 이것이 맞았나….”
수빈은 정처 없이 걷다가 어느 다방의 테라스에 앉아 연필을 들었다. 원고지에는 쓰다 만 시가 놓여져 있었다.
창밖에 밤비가 속살거려
육첩방은 남의 나라,
시인이란 슬픈 천명인 줄 알면서도
한 줄 시를 적어 볼까,
땀내와 사랑내 포근히 품긴
보내 주신 학비 봉투를 받아
대학 노-트를 끼고
늙은 교수의 강의 들으러 간다.
생각해보면 어린 때 동무를
하나, 둘, 죄다 잃어버리고
나는 무얼 바라
나는 다만, 홀로 침전하는 것일까?
수빈은 머뭇거리며 쉽사리 연필을 움직이지 못했다. 남준을 생각했다. 결국엔 그의 눈에도 수빈의 시에 대한 사랑은 쓸모 없는 것으로 보여졌을까. 홀로 싸우는 고요한 전투가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으로 보여진걸까. 시인이라는 자신의 천명에 대해서도 생각했다. 아아 푸를 청의 청춘이여. 자연의 아름다움을 노래하며 한평생 즐거이 살아가라. 그것이 넓고 편한 길이며 부모님을 걱정시키지 않는 길이다. 수빈은 그렇게 웅변하는 알지 못할 목소리를 들었다. 그러나 곧 연준이 떠올랐다. 수빈은 다시 연필을 들었다. 저 자신에게 되뇌듯이 쓰다가 결국에는 선포하듯이 눌러 썼다.
인생은 살기 어렵다는데
시가 이렇게 쉽게 쓰여지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