_1942년 날짜 미상
“참말로…슨상님 그게 참말이어라?”
수소문도 못한 동지의 마지막 소식은 비보였다. 태현이 고개를 떨구자 호석은 터져나오는 감정을 막았다. 그리 창창하신 분이…우짜쓰까…우짜쓰까…. 수빈의 집안 어른들은 모두 죽거나 연락을 끊고 어머니만이 남아있었으므로 태형과 지민이 그 시신을 넘겨받아 조선 땅으로 데려왔다. 유골함을 가져오는 내내 두 사람은 말이 없었다. 순백의 새하얀 천으로 싸인 마지막 몸은 평온했다. 다만 통곡하는 것은 남겨진 사람들이었다. 도대체 그들이 어떤 짓을 한 건지, 그 고통의 시간을 어떻게 그리도 견디었는지 수빈의 뼛가루는 아무것도 이야기해주지 않았다. 따라서 수빈은 다만 홀로 죽었다.
수빈의 어머니를 모셔오기 위해 태현과 남준이 북간도로 향했다. 남준은 기차 안에서 말이 없었다. 심장께가 저릿거리는 통에 그것은 마치 형벌처럼 느껴졌다. 얼마만큼 왔을까. 평양을 지났을까 헌병이 들어왔다. 표와 불령선인들의 탑승 유무를 확인하기 위함이라고 했다. 사람들은 순순히 고개를 끄덕이며 조사에 응했다. 피를 피하기 위한 움직임이었다. 모친상을 당해 북간도로 향하는 친형제로 미리 위장해두었으므로 긴장감은 없었다.
“ 간지마행 기차는 왜 타고 있었나요?(간도행 기차는 왜 탄 건가?)”
“ 어머니가 죽어 경성서에 귀향하기 때문입니다.(모친상을 당해 경성서 귀향하기 위함입니다.)”
남준의 설명에 다수의 헌병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한 헌병이 총구로 창가에 우두커니 앉은 태현을 겨냥했다. 열차 안에 침묵이 흘렀다.
“이 사람은 왜 아무 말도 하지 않나?(이 자는 왜 아무런 말도 없지?)”
“ 내 동생이지만 아무 말도 할 수 없습니다.(제 동생인데 벙어리올시다.)”
“ 신분증을 내보자.(신분증을 내 봐라.)”
신분증을 본 헌병은 귀찮다는 듯이 그것을 다시 던져 주었다. 남준은 그것을 받아들어 태현의 옆에 앉았다. 열차의 소리가 점점 멎어들었다. 신기하게도 그제서야 다리가 떨려왔다. 남준은 열차에서 내려 그 땅에 큰 절을 했다. 흙내음이 깊게 스몄다. 고향의 향내가 물씬 풍겨왔는데도 기쁘지 못했다. 남준은 자신이 그리워하던, 그래서 더 가기 싫은 그곳으로 터덜터덜 발걸음을 재촉했다. 태현이 그 뒤를 따랐다. 웅덩이에 비친 꼬질꼬질한 행색에 남준은 헛기침을 했다. 낮게 가라앉은 목소리로 남준이 입을 열었다.
“숙모.”
저 왔어요.
태현으로서는 수빈의 모친을 처음 보는 것이었다. 그녀는 키가 크고 단정한 흰색 한복을 입고 있었다. 태현이 큰절을 올렸다. 수빈의 모친은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죽으라 했습니다.”
수빈의 모친이 말했다. 남준은 몸을 돌려 그의 숙모를 바라보았다.
“그리도 독립운동을 하고 싶거들랑 안 선생님처럼 (이토 히로부미를 암살한 안중근 의사를 가리킨다.) 처럼 목숨을 구걸하지도 말고 잡히면 당당하게 죽으라 했습니다.”
“……”
들어와 앉으라며 그녀가 손짓했다. 태현이 따라 들어갔다. 남준만이 홀로 서 있었다. 뭐하니, 어서 들어오지 않고. 숙모의 목소리가 들렸다. 남준은 그저 흙바닥에 무릎을 꿇고 앉았다. 이러한 행동에 숙모가 의아한듯이 눈을 크게 떴다.
“숙모, 저는…….”
남준이 고개를 떨군 채로 띄엄띄엄 말했다.
“숙모를 뵐 자격이…없는 것 같습니다.”
“…괜한 죄책감이다. 그 아이가 선택한거야. 나와 네가 함께 말렸어도 그 애는 그랬을게다.”
“아뇨, 숙모. 제가 생각하기로는…….”
남준이 고개를 들어 수빈의 모친을 바라보았다. 안경알 뒤편으로 소리없이 눈물이 흘러내렸다. 때이른 풀벌레 소리가 들렸다. 헌병의 군홧발 소리와 사람들이 웃고 떠드는 소리가 풀벌레의 자그마한 목숨과도 같은 소리를 짓밟았다.
“제가…제가 그 아이를 지키지 못한 것 같습니다…. 모든 게 다 제 탓 같아요. 그날, 그때에 그렇게 말하지만 않았더라도…수빈이는 저희와 함께 있었을 것만 같습니다. 제가 다……제가 다 망친 것만 같습니다.”
만일 수빈을 조금이나마 더 품어주었더라면. 독립운동에 둔 뜻이 크든 작든 결국 애국이라는 마음은 같았을텐데. 하염없는 벚꽃잎처럼 떨어지는 목숨을 고깝게 여기는 저가 어찌 수빈에게 그토록 많은 것을 바랐는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만주행 열차에서 그는 자기 자신을 되돌아볼 수 밖에 없었다. 그는 수빈을 나무랄 자격이 있었던가. 그에게 과연 타국에서 외로이 죽어간 청년을 비난할 자격이 있었던가.
마당에서 숨이 막힐 것만 같은 침묵이 흘렀다. 그때에 지푸라기 울타리 안으로 수빈과 같은 교복을 입은 사내가 뛰어들어왔다. 그는 이 상황에 혼란스러워하기도 잠시, 수빈의 모친에게 작은 책자를 내밀었다. 그녀는 책자의 끝머리에 적힌 이름을 보고 입을 틀어막았다. 그러다 띄엄띄엄, 흔들리는 목소리로 태현에게 말했다.
“까막눈이라서……. 읽어주실 수 있으십니까…?”
사내는 책자가 태현에게로 옮겨지는 것을 보다가 자리를 떠났다. 태현이 천천히 읽어내려갔다.
“하늘과…. 바람과……. 별과…….”
입술이 파르르 떨렸다. 남준은 익숙하고도 애달픈 끝을 지었다.
“…시.”
태현이 놀란 듯이 남준을 바라보았다. 남준이 고개를 떨구며 일어섰다. 그래, 알고 있었습니다. 제 사촌이건만 그 아이가 무슨 일을 하고 다니는지조차 모를까요.
“…이건 동지께 드리겠습니다.”
태현이 남준에게 책자를 건넸다. 초여름의 매미소리가 아득하게 들렸다. 어디선가 화약냄새가 나는 것 같기도 했다. 태현은 다음날 새벽에 떠났다. 남준은 몰랐다. 아니, 알고 있었다.
“독립군 기지가 예서 멀지 않다더구나.”
숙모가 말했다. 남준은 고개를 끄덕였다. 어젠 왜 그러셨습니까? 숙모께서 까막눈은 무슨……. 남준이 물었다. 숙모는 한쪽 다리를 끌어안고서 먼녘을 응시했다. 남준 또한 그녀의 시선을 따랐다. 까막눈이었으면 얼마나 좋았을 것 같으니. 차라리 아무것도 모르는 년이었더라면…. 그녀가 한숨을 쉬었다.
__1942년 4월 25일
“지 왔어라! 슨상님들 이것 좀 먹고 하셔요잉!”
호석이 사탕이 가득 든 봉투를 흔들며 소리쳤다. 모두들 종이에 파묻었던 고개를 들고서는 호석의 곁으로 모여들었다. 태현이 사탕 한 알을 집어 입에 넣었다. 달군요. 그가 짧게 말했다. 호석이 함박웃음을 지었다. 아, 사탕이라니께네. 당연히 달지 않겄소. 태현이 옅게 미소를 지었다. 박 동지, 와서 드시지요. 태현이 말했다.
“전 조금 이따가 먹겠습니다.”
지민이 사람좋게 웃으며 말했다. 갑작스런 단맛에 다들 여유를 즐기고 있을 때에 훤칠한 청년들이 안으로 들어왔다.
“다들 쉬고 계셨나보군.”
제 몸집만한 소포를 내려놓은 태형이 말했다. 그 소포 안에 무엇이 들었는지는 아무도 묻지 않았다. 따스함이 만연할 시기인 탓에 태형은 셔츠의 소매를 걷어올리고 있었다. 지민은 태형을 한번 쳐다보았다. 태형이 고개를 끄덕였다.
“다른 단원들도 오기로 한 것 같은-”
“오는 중입니다.”
태형이 자르듯이 말했다. 오는 중이랍니다. 제법 나이가 많은 학회원의 얼굴이 살짝 굳자 지민이 생글생글 웃으며 말했다.
“벗이 좀 과묵한 분이신 것 같소, 박지민 회원.”
“예. 끼리끼리 사귄다 하던가.”
“정말요? 지금은 이렇게 밝기만 하신데.”
지민은 이번에 대답 대신 웃었다. 단것 하나 드셨다고 다들 여유로우십니다? 그가 말했다. 그때에 문이 다시 한번 더 열렸기 때문에 지민도 손에서 만년필을 놓을 수 밖에 없었다. 열린 문으로 연준이 들어왔고 뒤이어 어학회에서 부탁한 책을 한가득 든 채 수빈과 남준이 들어왔다. 다들 허겁지겁 달려와 남준에게서 책을 받아들었다. 구하기 힘들었을텐데, 정말 고맙소. 별 말씀을요. 대한청년회 회원이라면 모두 발벗고 나서야 하는 일이 아닙니까. 남준이 웃었다. 수빈은 그것을 바라만 보고 있었다. 수빈 동지께서도 고생하셨습니다. 여회원들이 입에 미소를 띤 채로 물을 건네주었다.
“이게 누구여!”
저기 방의 끝에서 쾌활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호석이 저만치서 달려와 수빈을 얼싸안았다. 몸집과 기골이 호석보다 훨씬 컸음에도 불구하고 수빈은 휘청거렸다. 아따, 밥은 먹고 다니셔요? 이래 말라서는 부모님이 걱정하셔야. 호석이 말했다. 수빈은 얼떨떨하여 간신히 고개만 끄덕였다. 호석이 수빈의 손을 덥석 잡고는 힘차게 흔들었다.
“아직꺼정 통성명도 안 한것 같아서! 지는 정호석이라 하는 광대여요.”
“최…수빈이라고 합니다…….”
“이름 하나 허벌나게 곱네예. 대학생이셔요?”
수빈이 도움을 요청하는 눈길로 남준을 쳐다보았다. 남준은 피식 웃으며 고개를 설설 저었다. 식사 하셨어야? 호석이 물었다.
“네…얼마 전에…….”
“그라모 배가 부르시겄네. 지랑 동네 한바퀴 돌아야. 뭐시기 동의보감에서두, 밥을 먹고 나면 백보를 걸으라고!”
“저 진짜 괜찮은데…….”
“괜찮기는 무신. 자! 걸어봅시다요!”
호석이 힘차게 팔을 흔들었다. 슨상님도 하실래예? 그가 연준을 보며 물었다. 그 뒤에서 수빈이 도와달라는 듯한 눈길을 열렬히 보냈다. 연준은 그런 눈빛에 안타깝기도 하고 웃기기도 하여 옅게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떼잉, 안타깝게 됐구먼야. 자! 가봅시다! 호석이 소리쳤다. 수빈이 손목이 잡혀 끌려갔다. 조선어학회 회원들과 대한청년회 회원들은 그 모습을 바라보며 웃음을 참아야 했다.
“…최 동지 괜찮은 것 맞습니까.”
연준이 시가를 입술에 물며 물었다.
“…즐기는 중입니다. 내버려두지요.”
남준이 ‘못말린다니까’ 하는 표정으로 어깨를 으쓱했다. 연준도 숨길 생각을 않고 빙긋이 웃으며 담배연기가 새어나오는 시가를 손에 들었다.
“어뗘? 이래 나오니께 좋지요?”
“네….”
“저기 꽃이 참 이쁘게 피었는디, 보러가실텨요?”
“음…….”
수빈은 잠시 고민하다가 결국 고개를 끄덕였다. 4월의 꽃이라……. 그가 동경하던 시인들도 자주 쓰던 소재였다. 4월의 꽃은 다른 것들과 무엇이 다르길래 그토록 시적인지. 언제 거기까지 갔는지 호석이 먼저 가로수로 선 벚꽃나무 아래에 달려가 있었다.
“멋지지요잉? 이래서 동의보감에서 걸으라캤나벼.”
“…네, 그런가봐요.”
“불쑥 끌구 나와서 지송혀요. 근데 하도 말이 없으시니께네…친해지고 싶어서…….”
“아….”
수빈은 괜히 부끄러워졌다. 저기…다음부터는…그냥 편하게 말 걸어주세요. 그러자 호석의 눈이 반짝 빛났다. 참말이지요?
“무르기 없습니더?”
“네.”
“꼬박꼬박 말 걸겁니더?”
“네.”
호석이 빙긋이 웃었다. 그때에 봄바람이 불었다. 벚꽃이 떨어져 수빈의 머리에 내려앉았다. 여기 머리에 꽃잎…호석이 말했다. 수빈의 머리에 떨어진 벚꽃잎을 떼어낸 호석은 휘어지게 웃었다. 휘영청 떠오른 손톱달 같이 휘어지게 웃었더랬다.
__1942년 날짜 미상
“…그때 이후로 말도 몬 걸었는데…….”
어디에선가 아득한 백일홍 향기가 물씬 풍겼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