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저 별은 모두 당신을 위해 빛나고 있다
너는 내가 가장 위태롭던 시기와 순간에 나를 붙잡아준 사람이었다. 그 시절의 나는 매일이 불안했고, 매일이 초조했고, 매일 같이 무뎌졌다. 아마 나는 더이상 살고 싶지 않았던 걸지도 모른다. 그러니 높은 곳에 올라가 떨어지기를 몇 번 주저했겠지, 그것도 꽤 자주.
이상하게도 내가 높은 곳에 올라간 날이면, 그날의 밤하늘은 미치게 반짝거렸다. 수많은 별들이 수놓아진 밤하늘이 예뻐 갖고 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말이다. 내가 높은 곳에서 밑바닥을 향해 발을 내밀었다 주저한 뒤에는 털썩 주저앉아 별들이 가득 들어찬 밤하늘을 올려다 보곤 했다.

내 삶이 버겁다 느끼기 시작한 건, 아주 어릴 적부터 였다. 초등학교 입학도 전인 어린 시절, 나는 그때부터 부모란 작자들에게 버림을 받은 느낌이었다. 나이가 몇이었는지 기억도 잘 나지 않는 어린 날, 나는 다른 가족들 손에 넘겨져 자랐다. 희미한 그때의 기억 속 어른들의 말에 따르면 우리집 형편이 좋지 않아 부모는 늦게까지 돈을 벌어야 한다고 했다.
분명 나는 어렸다. 어렸음에도 이해했다. 아니, 버림 받은 게 아니라는 것에 오히려 안심했다. 그 어렸던 나는 여기서 잘 지내고 있으면 부모가 나를 데리러 올 거고, 부모와 함께 살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건 나의 헛된 희망이었다는 걸 깨닫는 순간은 금방이었다.
다행히 부모는 몇 달 뒤쯤, 나를 데리러 왔다. 나를 키워주던 다른 가족들한테 죄송스럽다는 이유로 말이다. 차를 타고 진짜 집으로 가던 길의 나는 마냥 행복하게 웃고 있었다. 진짜 집에서는 동생과 나, 단둘이 지내야 한다는 사실을 몰랐으니.
집으로 돌아와서도 달라지는 건 딱히 없었다. 오히려 내가 돌봐야 할 사람이 늘었지, 상황이 더 나아지지는 않았던 거다. 내가 기억하는 부모의 첫 부탁은 동생을 꼭 잘 챙기라는 거였다. 이제와서 생각해 보면 동생도 나와 같은 처지가 아니었나 싶다. 나는 내 동생한테서 나를 보고 나를 품어주듯, 겨우 두 살 어린 동생을 키우다시피 했다. 나 역시 어리다는 걸 인지하지도 못하고.

시간은 빠르게 흐른다. 하지만 그에 비해 우리에게 주어진 상황은 바뀌지 않는다. 그걸 깨달을 때쯤이 바로 초등학교 3학년이었다. 부모는 여전히 바빴고, 나는 외로웠다. 외로움에도 내가 챙겨야 할 동생이 있었다. 학교, 학원을 갈 때도 내 한 손에는 동생의 손이 있었고, 집에 올 때도, 내가 친구들과 어딘가에 놀러갈 때도 동생은 늘 내 옆에 있었다. 워낙 어릴 때부터 동생을 키우다시피 하다보니 이제는 당연하다 싶은 거였다. 동생 역시 내가 없으면 불안해 했다.
10살. 모두가 아직은 어리다고 생각하는 나이에 나는 불에 손을 댔다. 이유는 동생의 밥을 챙겨주기 위해서 였다. 배고프다는 동생을 차마 굶길 수 없어 나는 불에 손을 댔다. 어떻게 쓰는지 잘 알지도 못하는 불을, 동생에게 부모를 대신해 주기 위해 손댔고, 처음에는 대였다. 따갑고 쓰라렸다. 하지만 괜찮다 웃었다. 동생이 배부르게 먹고, 웃는 걸 보는 게 더 좋아서.
친구들이 그랬다. 너는 왜 동생을 그렇게까지 챙기고, 매번 데리고 다니냐고. 나는 그 질문에 입만 벌렸을 뿐 대답을 하진 못했다. 그때의 내게는 그게 당연한 거라. 이유가 필요하지 않았던 일이라. 그날의 동생 역시 친구들보다, 부모보다, 다른 가족들보다 내가 더 편하고 좋다고 했다. 나는 그 대답에 아무 말 없이 미소만 지었다. 나는 너를 꽤 귀찮아 하고 있었으니까.
아마 초등학교 3학년 쯤의 나는 모든 것들에 익숙해져 가고 있던 게 아니었을까? 집에 잘 들어오지 않는 아빠, 밤 늦게까지 일하느라 바빴던 엄마, 나만을 의지했던 어린 동생, 모든 걸 힘겹게 받아들인 나까지. 그 나이에 벌써부터 익숙해지면 절대 안 됐는데, 그것도 모르고.

내 인생에 처음으로 추락했던 날이라고 하면 이 날을 꼽지 않을까 싶다. 초등학교 4학년, 여전히 어렸던 우리를 두고 부모는 이혼을 결정했다. 늦은 저녁, 내가 씻고 머리를 말리고 있을 때, 부모가 나를 거실로 불러냈다. 부모는 나와 동생을 바닥에 앉혀놓고 몇 번을 주저하더니 입을 뗐다.
“만약 엄마랑 아빠가 헤어지게 되면 누구랑 같이 살고 싶어?”
동생은 그 말을 정확하게는 이해하지 못했다. 하지만 나는 그게 어떤 말인지 너무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더욱 입을 꾹 다물었다. 부모는 너무 이기적인 존재였다. 적어도 나에게는 말이다. 내 옆에 앉아있던 동생은 자리에서 일어나 엄마에게 안기며 엄마와 살겠다고 대답했다. 하긴, 동생에게는 너무 쉬운 질문이었다. 집에 잘 들어오지 않아 별 기억이 없는 아빠보다는 당연히 엄마랑 살고 싶었겠지.
그렇지만 나는 달랐다. 나는 엄마보다는 아빠를 더 좋아했다. 아빠가 집에 잘 들어오지 않아도, 술을 마시고 술냄새를 폴폴 풍기며 밤 늦게 들어와도 그냥 아빠의 존재 자체가 좋았다. 그래서 나는 한참 입을 다물고 있었다. 머리로는 오만가지 생각을 다 하면서. 내가 엄마랑 살겠다고 하면 혼자 남겨질 아빠는? 내가 아빠랑 살겠다고 하면 엄마랑 살겠다는 동생은 어떡해? 속이 갑갑해 토할 것만 같던 상황이었다. 끝내 나의 답은 동생과 같았다. 아빠한테는 미안하지만 내가 키우다시피 했던 동생과 떨어져 사는 건 절대 못할 것 같았기에.
엄마랑 살겠다고 함과 동시에 나는 눈물을 왈칵 터뜨렸다. 아빠한테 너무 미안해서, 혼자 남겨질 아빠가 외로울 것 같아서. 숨이 멎을 듯 엉엉 울면서 아빠한테 안겼던 기억이 아직까지 선명하다. 또, 그날 촉촉했던 아빠의 눈가 역시 선명하다. 아빠는 오랜 시간 우는 나를 품에 안고, 머리를 쓰다듬어주고, 눈물을 닦아주고, 등을 토닥였다. 그리고 내가 철이 너무 빨리 들어서 그렇다며 나에게 미안하다고 했다. 사실 어릴 때 기억이 잘 없는 나인데, 이 날 만큼은 절대 잊히지 않는다.
부모는 이혼 서류를 내고 돌아온 날, 우리에게 케이크를 사줬다. 생일에만 사주던 작고 다양한 케이크와 함께 나는 또 한 번 눈물을 삼켰다.

한 번의 추락은 영원한 추락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할 때쯤, 어느새 나는 중학교 2학년이 되어 있었다. 서로를 미치게 싫어하던 부모로 인해 쫓기듯 다른 지역으로 이사를 갔다. 지역을 옳겨 다닌지 벌써 세 번째, 새롭게 만난 친구들은 나를 싫어했다. 그 시절의 나는 세상을 살면서 들을 법한 욕은 다 들어본 것 같았다. 재수없다. 왜 살고 있냐. 죽어라. 누군가는 나와 스치기만 해도 재수가 옮붙는다며 소름끼쳐했고, 하루는 누군가 일부러 던진 공에 얼굴을 맞아 눈을 크게 다칠 뻔했다.
처음으로 죽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여태 힘들고 구질구질하긴 해도 아직은 더 살아볼만 하다 느꼈던 하루들을 처음으로 포기하고 싶었다. 처음에는 그럴 수 있다고 생각했다. 이런 날들을 질풍노도의 시기라며 곱게 포장했다. 정말 미련하게.
나를 죽도록 싫어하는 친구들을 버티고 이겨내기도 벅찬데, 나를 더 힘들게 했던 게 있다. 질풍노도의 시기라는 그때는 사람의 마인드 자체를 바꾸게 했다. 꾸역꾸역 살아내다 보니 어느 순간 내 머릿속에는 의문이 가득했다.
‘나는 왜 이렇게 살고 있지?’
내 주변 사람들 중 아무도 나처럼 살고 있지 않았다. 누구는 목표를 가졌고, 누구는 하고 싶은 걸 찾았고, 누구는 자신에게 주어진 갈림길에 대한 선택을 했다. 하지만 나는 그 무엇도 한 게 없었다. 나는 갈림길이 나타난다면 부모가 가라는 대로 가는 게 당연하고, 하고 싶은 게 있어도 삼키는 게 당연하다는 세상에 살고 있었던 거다.
나는 처음으로 하고 싶은 걸 입 밖으로 꺼냈다. 무서웠다. 그것도 아주 많이. 어려서 그랬을까, 마음 한 켠에는 혹시나 하는 기대도 있었다. 하지만 그 기대는 조금의 시간도 지나지 않아 깨졌다. 내가 하고 싶은 건 그들이 원하는 길이 아니었다. 나는 로봇과 같이 책상 앞에 앉아 문제집만 계속 풀어야 했고, 그들이 원하는 점수를 따내야 했다.
싫었다. 정말 죽기보다 싫었다. 이때의 나이가 참 이상한 게, 예전에는 절대로 할 수 없던 말과 행동과 생각을 계속 하게 만든다. 부모는 이때의 내가 정신이 나간 것 같다고 했지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그날의 내가 한 말과 행동은 이 시절이었기 때문이 아니라 그동안 두고두고 쌓아뒀던 것이라는
걸 지금 와서야 깨달았다. 더이상 이렇게 살기 싫다는 생각이 들었던 나는, 주먹을 꽉 쥐고서 집안을 뒤엎었다. 무작정 울고, 소리 지르고, 발버둥쳤다. 어렸던 나는 이게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것이라고 생각했다. 내가 이렇게 함으로서 부모가 나를 조금만 놔주길 바랐다. 아니, 내가 이 정도 하면 부모가 먼저 나를 놓을 거라 확신했다.
그로부터 일주일 뒤, 안타깝게도 변하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나는 그 전과 다를 거 없이 부모가 시키는 걸 하고, 부모가 정해준 길을 걸었다. 딱 하나 달라진 거라고는 어느 순간 삐딱해진 나의 마음이었다.

비뚤어진 나의 마음이 그들에게 보여진 건 중학교 3학년 때였다. 그것도 고등학교 원서를 넣을 때쯤? 학생이건 선생이건 아주 바쁜 시기였다. 나는 그 시기를 마지막 기회라고 생각했다. 내가 이 기회를 잡지 않으면 정말 여기서 벗어날 수가 없겠다는 생각에 눈을 감고, 귀를 막고 걸었다.
부모는 내게 가장 대중적이고 평범한 고등학교를 가라고 했다. 널리고 널린 고등학교에 가서 3년동안 죽었다 생각하고 공부만 하라고 했다. 다른 부모들도 마찬가지겠지만 내 부모는 특히나 성적을 중요시 여겼다. 대학 다음으로 남들에게 보여지는 큰 것이니 쓰러져도 학교에서 쓰러지라고 했다. 그렇지만 진작 눈을 감고, 귀를 막은 내게 그딴 개소리는 들어오지 않았다. 마음이 삐딱해진 뒤부터 곰곰이 생각해보니 나는 인간이었다. 부모가 못 이룬 것들을 대신 이루기 위해 그들의 손에 놀아나는 인형이 아닌, 나는 인간이었다.
그래서 나는 또 한 번 큰 일을 저질렀다. 같이 살던 엄마의 도장을 몰래 가져가 나 혼자 쓴 고등학교 원서에 도장을 찍었다. 아, 내가 원서를 넣은 고등학교는 꼴통 중 꼴통이라 불리는 특성화 고등학교였다. 전국에서 알아주는 양아치들만 모인다는 그런 고등학교 말이다. 부모가 그 사실을 알았을 때는 이미 내 원서가 그 학교에 도착하고 나서였다. 엄마는 고개를 저었고, 아빠는 그날 이후 나와 몇 달간 연락을 하지 않았다. 그들이 내게 등을 돌린 기간동안 나는 외로움에 심장이 굳어갔지만 아무렇지 않은 척 그들을 비웃었다. 나는 이때도 1년 전과 같은 생각을 했다. 이 정도 했으면 부모가 나를 놔주겠지 하는.

나의 최종 내신으로는 과학고, 외고 같은 명문 고등학교도 가능했다. 그렇지만 나는 다 버렸다. 그들이 원했던 걸 더이상 하기가 싫어서, 나를 더 망가뜨리고 싶지 않아서. 그렇게 온 꼴통 학교는 생각보다 괜찮았다. 모두들 나에게 우호적이었고, 그들의 손에서 벗어나기 위해 기숙사까지 들어온 나를 품에 안아주고 토닥인 건 꼴통이라는 소문에 둘러싸여있던 친구들이었다.
고등학교에 들어와서 정말 오랜만에 걱정 없이 웃었다. 부모에게서 벗어나려던 나의 발버둥이 이제서야 먹힌 듯 싶어 광대가 아플 정도로 웃었다. 나 보고 죽으라고 했던 과거의 것들은 잊어버리고, 새로운 친구들과 함께 진실된 나의 삶을 살았다. 수업시간에 교실 뒷바닥에 누워 하루종일 잠도 자보고, 새벽에 기숙사 창문을 통해 밖에 나가 술도 마셔보고, 애들끼리 무단으로 학교 수업을 빠지기도 하는 등 정말 자유롭게 살았다.
진실로 행복할 때, 늘 불행이 찾아온다는 말을 어디선가 들은 적이 있다. 그 말과 같게 나의 불행은 금방 찾아왔다. 몇 달간 연락도 없던 아빠는 기숙사 입사 소식과 함께 매일 밤 하루도 빠짐없이 전화가 걸려왔고, 엄마는 잘 먹고 잘 지내던 내 기숙사 방을 빼버렸다. 그날 나는 다시 한 번 느꼈다. 나의 목줄은 완벽히 풀린 게 아니라 그들이 잠깐 놓친 거라는 걸.
아빠는 매일 같이 전화해 본인의 생각을 강제 주입시켰다. 내 선택은 다 잘못된 선택이고, 나는 실패했고, 본인의 선택에 따라야만 한다고. 내가 고등학교를 다니면서 가장 힘들었던 게 아빠의 목소리였다. 아빠는 단 하루도 빠짐없이 전화해 한 글자도 틀리지 않고 저 위의 말들을 똑같이 했다. 하루, 이틀, 사흘, 일주일까지는 괜찮았다. 그렇게 말을 해도 내 생각은 절대 흔들리지 않을 거라 맹세했기에. 그 전화 역시 얼마 가지 않아 멈출 거라 생각했기에.
예상은 언제나 빗나가기 마련이다. 아빠의 전화는 일주일을 넘어 한 달, 두 달, 세 달까지도 계속됐다. 노이로제에 걸린 것만 같았다. 전화를 끊어도 아빠의 목소리와 함께 그 말들이 귀에 맴돌았고, 정신을 차리기 힘들었다. 동시에 나는 방 안에 갇혀 음악의 볼륨을 최대치로 틀고, 아무런 초점이 없는 눈에서 눈물만 뚝뚝 흘리고 있었다. 나는 내가 미친 줄로만 알았다. 말로만 듣던 우울증인가 싶었고, 정신병에 걸린 것 같았다. 그때의 나는 몸도 마음도 정신도 온전치 못했다.
하루하루가 고통스러웠다. 밤이든 새벽이든 귀가 터질 듯한 음악을 하루종일 틀어놓고 눈물만 흘려보냈다. 그냥 뭔가를 하지 않아도 눈물이 나던 때였다. 그 와중에도 아빠한테서 똑같은 연락이 매일 왔다. 전화를 몇 번 무시해 봤지만 아무런 소용이 없었고, 나는 더 병들었다.
그러던 날들 중, 팔 한 쪽이 다 젖을 만큼 울다 책상에 놓여진 커터칼을 들었던 적이 있다. 커터칼을 뽑아 손에 쥐고 내 몸에 직접 상처를 내려던 날을 나는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한다. 상처를 내려고 마음 먹었을 때, 아빠한테서 전화가 왔고, 나는 여전히 커터칼을 손에 쥔 채로 아빠의 전화를 받았다. 전화를 받자마자 나는 미친듯이 울었다. 나는 그날 모든 걸 내려놓고 아빠한테 빌었다.
“나 힘들어, 아빠. 힘들어서 죽어버릴 것 같아. 나 좀 살려줘… 살려달라고, 제발……“
아빠한테 목놓아 운 것도 처음이었고, 힘들다고 죽을 것 같다고 한 것도 처음이었다. 얼굴 전체를 덮은 눈물을 닦지도 못한 채, 살려달라고 외쳤다. 이대로면 정말 죽을 것 같아서 살려달라고 애원했다. 처음이었던 나의 호소에 돌아온 답은 나를 아주 차갑게 만들었다. 피가 식는다는 느낌을 이해하지 못했던 나는 그날에서야 이해했다.
“그거 다 네가 나약해서 그래. 난 네가 그렇게 나약한 사람인 줄 몰랐는데, 실망이다.“
하염없이 흐르던 눈물이 단번에 멈추며 커터칼과 핸드폰을 들고 있던 양손에 힘이 쭉 빠졌다. 커터칼이 바닥에 떨어지며 둔탁한 소리를 냈다. 어쩌면 나는 그날 모든 걸 포기했을지도 모른다. 더이상 내가 뭘 해봤자 이 상황이 계속 될 거라는 걸 알았고, 내가 가장 좋아했던 사람한테 더 상처받고 싶지 않았다. 나를 저렇게 밖에 생각하지 못하는 인간인데, 그 인간한테서 버림 받고 싶지 않아서 나는 모든 걸 포기했다. 그날의 내가 바란 건, 괜찮냐는 말 한 마디 뿐이었는데.
모든 것에 굴복하고 내 인생의 반환점이었던 고등학교에 자퇴서를 내던 날, 나는 많이 울었다. 나와 함께 했던 대부분의 사람들이 나를 위해 울어줬고, 학교를 떠나는 나의 뒷모습을 지켜봤다. 그날, 날 위해 울어주는 사람이 있다는 것에 내가 아예 잘못 산 건 아니라는 걸 깨달았다. 친구들과 다같이 넘어가던 교문을 나 혼자서 걸어나갔을 때의 그 미묘한 감정은 다들 모를 거다. 교문을 넘어 보이지 않는 곳에 주저앉아 펑펑 눈물을 쏟아낸 나, 그리고 오늘의 내가 그 선택을 얼마나 후회하는지 역시 아무도 모를 거다.

고등학교 자퇴 후 반년쯤, 나는 아빠가 그렇게 원하던 인문계 고등학교에 진학했다. 아빠는 내가 특성화고 자퇴를 선택했을 때, 그 누구보다 좋아했고, 인문계 고등학교를 간다하니 날아갈 듯 기뻐했다. 나는 결국 아무것도 벗어나지 못하고 제자리로 돌아온 거였다. 아무것도 하지 못한 나 자신에 대한 원망이 속에 가득 쌓인 채,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려 애썼다.
그 어떤 것보다 불편했던 건 중학교 시절 나를 죽은 사람 취급했던 그들이 같은 학교 선배로 있다는 것이었다. 나이는 같은데 그들이 나보다 위에 있다는 건 생각보다 무서웠다. 나는 그들과 마주치지 않으려 급식도 잘 먹지 않았고, 그들이 옆을 지나가면 혹시나 나를 알아볼까 황급히 몸을 숨겼다.
범죄자가 된 기분이었다. 나는 잘못한 게 아무것도 없는데… 잘못은 그들이 내게 했는데 말이다. 그렇게 살아간 결과, 나는 새학기가 시작되고 두 달 안에 몇 번이고 아팠다. 어릴 적부터 약했던 장기들이 꼬이고, 다리 뼈가 부러지는 등. 내 몸이 이곳을 거부한다는 걸 확실히 느꼈고, 또 한 번 생각이 들었다.
‘내가 왜 이렇게 지내야 하는 거지?’
누군가의 손에 이끌려 억지로 다니고 있는 이 공간에서 왜 내 몸까지 아파가며 열심히 지내야 하는 건지.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아 나는 마지막 발버둥을 쳐 보기로 한다. 약 1년동안 살아내 봤으니 이번에는 꼭 성공하리라 다짐한 채, 나는 내 목을 조이는 목줄을 풀기 위해 마지막 발버둥을 치기 시작했다.

모든 계획을 그즘 다 세워갔을 때, 일이 터졌다. 그것도 연달아. 하나는 엄마와 동생의 싸움이었다. 그날 밤, 엄마와 동생은 목소리를 높이며 크게 싸웠고, 둘이 싸우는 도중 엄마는 내게 하면 안 될 말을 했다.
“너도 네 누나처럼 살게?“
심장에 칼이 들어온 느낌이었다. 엄마는 내가 얼마나 힘들어 했는지 다 알면서도 저런 말을 했다. 나처럼 산다는 게 대체 어떤 것이길래 저런 말을 악에 받쳐 하는 걸까 하는 생각이었다. 그날 새벽, 나는 눈물을 뚝뚝 흘리며 짐을 싸 집을 나왔다. 나는 부모에게 항상 미안했다. 그들에게 투정 몇 번 부리지 않았고, 아무리 미워도 속에 담아두고만 있을 뿐 꺼내지 않았다. 심지어는 그들에게 손을 빌리기 싫어 알바까지 하며 용돈을 벌었다. 나는 그렇게 노력했는데 내 노력까지도 그들의 눈에는 일탈으로 밖에 보이지 않았던 거다.
새벽에 집을 나와 친구의 집으로 갔다. 친구는 우는 나의 등을 쓸어줬고, 그렇게 삼일 정도 집에 들어가지 않았다. 첫날은 연락조차 없었다. 둘쨋날에는 전화를 걸어왔지만 받지 않았고, 세쨋날에는 아빠에게서까지 전화가 왔다.
아빠의 전화는 언제나 문제가 된다는 걸 나는 그제서야 깨달았다. 아빠는 내가 전화를 받자마자 소리를 꽥꽥 지르며 나를 욕했다. 드디어 정말 미친 거냐, 지금 그게 네가 할 짓이냐, 썩을 년아 등. 그 말들을 가만히 듣고 있자니 내 머리가 허락하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아빠에게 감정을 토해냈다.
“아빠는 적어도 나한테만은 죄인이어야 해. 아빠는 나한테 평생 미안한 마음으로 살아야 하고, 용서 받을 생각조차 하면 안 된다고. 그리고, 다시는 나한테 연락하지 마. 돈이고 뭐고 다 필요 없으니까 절대 연락하지 마.“
나는 그날 아빠에게 차마 하지 못했던 말들을 쏟았고, 그게 아빠와 나의 마지막 연락이었다. 그날 그 전화로 인해 나는 애써 외면해 왔던 것들과 정면으로 마주쳤다. 아빠한테 나는 자랑거리일 뿐이었고, 내가 아닌 나의 성적을 사랑했고, 본인의 압박으로 인해 자퇴한 것에 대해서도 쪽팔려 하고 있었다는 걸. 아빠는 단 한 순간도 내게 진심이었던 적이 없었다. 나는 그 사실을 알고 있었음에도 그 사람에게 버려지기 싫어서, 내가 그 인간을 너무 좋아해서 외면했다. 나는 또 어느 순간 깨달았던 게 아닐까? 내 목줄을 끊어내기 위해서는 이 관계를 끊어내야 한다는 걸 말이다. 그날의 전화를 빌미로 나는 그 사람과 관련된 모든 것들을 끊었다. 그 사람이 가라고 했던 인문계 고등학교도, 공부도, 성적도, 연락도. 그렇게 내가 지나온 길에는 두 번의 자퇴가 남겨졌다.

길었던 머리카락을 잘랐다. 이제 정말 자유로워지겠다는 내 자신에게 하는 약속 같은 거였다. 어느새 짧아진 머리카락을 손으로 한 번 쓸며 허탈한 웃음을 보였다. 그 인간만 끊어내면 될 것을… 뭐 그렇게 어려운 거라고, 얼마나 사랑받겠다고 그랬던 건지. 과거의 내가 안쓰럽고 한심했다. 하지만 지금의 나는 그때와 다르다는 생각에, 이제는 행복할 거라는 생각에 긴 숨을 내쉬었다.
인간에게는 누구나 채워지지 않는 구멍이 하나 있다. 어쩌면 내게 그 구멍이란 가족이었을지도 모르겠다. 다른 지역 친구들이 놀러와 시골집에 내려간 날, 우리는 밤에 가볍게 술을 몇 잔씩 마셨다. 나는 애초에 술을 잘 하지 못했기에 맥주 두 캔으로 끝냈고, 친구들은 바닥에 널브러졌다. 친구들 모두가 잠들고, 나는 눈물을 뚝뚝 흘렸다. 내 주변에는 사람이 이렇게 많은데 나는 왜 여전히 외로운 건지 이유를 몰라 답답해 울었다.
사무치게 외로워 눈물을 쏟아내면서도 혹여 친구들이 깰까 손으로 입을 막았다. 도저히 참을 수 없을 것만 같을 때, 술냄새가 가득한 집을 벗어나 근처 건물 옥상에 올라갔다. 내 눈에 여전히 아무런 초점이 없었고, 나는 여전히 울고 있었다.
옥상에 올라가 아래를 내려다 보니 모든 것들이 작게만 보였고, 하늘을 올려다 보니 수많은 별들이 빛나고 있었다. 별들이 가득한 하늘을 보자마자 나는 옥상 바닥에 쓰러지듯 주저앉고 말았다.

“무서워… 죽기 싫어…… 살고 싶어, 나.”
그래, 나는 단 한 순간도 진심으로 죽고 싶었던 적이 없었다. 그만하고 싶다는 마음만 조그맣게 있었을 뿐. 온 마음을 다해 죽고 싶었던 적은 없었던 거다. 옥상에 주저앉아 큰 소리로 엉엉 울었다. 숨이 넘어갈 듯이 울었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그날의 나는 하늘을 가득 채운 별들에게 위로를 받았던 게 아닐까 싶다. 내가 스스로 빛나기를 벅차한다면, 하늘에 떠있는 별들이 나를 위해 빛을 내주겠다고.
그날, 옥상에서 올려다 본 별들은 모두 나를 위해 빛나고 있었다. 이와 같이 지금 하늘을 수놓은 저 별은 모두 당신을 위해 빛나고 있을 거다.
이 글은 WORTH IT COMPANY 크미로 작성된 글임을 알려드립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