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관심

오늘도 취향을 요리합니다.



숙연한 장례식장 안, 분위기를 무겁게 만든 당사자인 형원이 혜인의 영정사진 앞에서 곧장 바닥으로 곤두박질칠 것 같은 눈물을 참으며 절을 올리고 있다. 혜인의 죽음을 부정하면서 꾸역꾸역 두 번의 절을 다 끝마친 형원은 그제야 죽음이라는 현실이 실감 난 것인지 혜인의 이름을 애처롭게 부르기 시작했다. 형원의 입에서 혜인의 이름이 떨어지자, 아슬아슬하게 맺혀있던 투명한 눈물이 결국엔 뚝- 무릎을 꿇는 형원의 다리 위에 떨어져 검은 자국을 만들어냈다.



 

“혜인아… 혜인아, 혜인아.”Gravatar





평소 주위의 시선을 신경 쓰며 정갈하고 완벽한 모습만 보여줬던 형원이었다. 그런데 지금의 형원은 옷매무새를 다듬는 게 아니라 오히려 넥타이를 풀어 헤치며 소리를 지르고, 머리를 헤집어놓고. 반쯤은 미친 사람처럼 행동했다. 정확히 말하면 얼빠진 사람 같았다. 또한 혜인의 죽음이 형원에게 끼친 가장 큰 변화는 스타일링이었다. 혜인이 살아있었을 때만 해도 꼬박꼬박 정장을 쓰리피스로 갖추어 입던 사람이 이젠 후드티나 후드집업, 트레이닝복 같은 것만 찾아서 입었다. 그렇게 바뀐 코디로 돌아다니는 형원이 내뿜는 분위기는 삭막하기 그지없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형원은 단기간에 예전과 다름이 없어 보일 정도로 정상적으로 돌아왔다. 그래도 3주나 지났다고 나름 표정 관리도 하고, 웃어도 보고. 하지만 스타일링은 그대로였다. 처음보단 차려입는다는 느낌이 드는 코디를 했지만 그래도 정장을 갖추어 입지는 않았다. 가끔가다 정장을 입는 건 결혼식이나 그런 공적인 자리 정도. 그렇게 혜인의 죽음으로 인해 형원의 스타일링이 바뀌고, 형원은 워커홀릭의 표본이 되어갔다.



형원은 정부에 소속된 비공식 단체에서 일을 하고 있는 연구원이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인조인간을 만드는 일. 아직 온전하지 않아 사람과 완전히 흡사한 인조인간을 만들 수는 없지만, 살아있는 사람들의 DNA를 조합하여 만드는 것이니 조금만 더 연구한다면 완전한 인간을 만들 수 있는 단계였다. 형원과 연구원들은 인조인간을 더 견고하게 만들어달라는 정부의 요구를 받아 어떻게 하면 더 사람 같아질 수 있을까라는 생각을 하며 연구에 매진했고, 형원은 다른 연구원들보다 더 연구에 매달렸다. 일에만 집중하면 혜인을 조금이라도 잊을 수 있지 않을까 하고. 하지만 이미 형원의 바로 옆에서 많은 시간을 가져간 혜인을 잊는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다. 혜인도 형원과 같은 연구원이었으니까. 연구소에 가면 혜인이 활짝 웃으며 반겨줄 것 같고, 연구를 하고 있으면 좀 쉬다 하라며 자신에게 도시락을 챙겨줄 그런 혜인이 눈에 아른거려 형원은 더욱더 연구에만 몰두하며 살았다.



그러다 형원의 머릿속에 번뜩 어떤 생각이 하나가 자리 잡았다. 형원이 하는 일이 무엇인가. 인조인간을 만드는 것. 형원은 바로 혜인의 DNA를 가져와 인조인간을 만들기 시작했다. 외형도 자신이 기억하는 한 최대한 혜인을 닮을 수 있도록, 취향도 입맛도 성격도 심지어 성격까지도 혜인과 닮을 수 있도록 설정해가며 정부에서 내려오는 명령을 다 무시한 채 혜인의 인조인간을 만드는 일에만 전념했다. 아직 인조인간이 세상에 나오지 않아, 정책상 자신의 개인적인 일로 인조인간을 만드는 일은 금지되어 있었지만 형원은 혜인을 다시 볼 수 있다는 생각에 정책 따원 가볍게 무시한 채 DNA를 조합해 갔다. 동료 연구원들은 형원이 혜인의 인조인간을 만드는 것을 꿈에도 모른 채 점점 쌓여가는 형원의 일들을 대신 처리해 주었다. 그동안 형원이 자신들의 일을 대신 해 주었으니까, 이제는 지쳤을 수도 있겠다 싶어서. 좋은 마음으로 한 일이 형원에게 독이 되어가는 것도 모르고.



그렇게 형원의 ‘혜인과 닮은 인조인간 만들기 프로젝트‘는 계속되었다. 이미 앞서 만들었던 여러 인조인간이 있지만 죄다 혜인과 똑같지 않았다. 어떤 것은 외모부터가 혜인이 아니었고, 어떤 것은 성격, 어떤 것은 식성, 어떤 것은 체형, 어떤 것은••, 어떤 것은••. 그렇게 계속해서 실패하며 형원의 연구실엔 폐기 처분할 인조인간들만 쌓여갔다. 형원은 점점 지칠 대로 지쳐갔고 하도 많이 시도를 해 이젠 DNA 조합 순서까지 다 외워버려 레시피가 적혀있는 종이도 계량도 확인하지 않고 인조인간을 만들었다. 그 과정에서 지금까지 형원이 시도했던 조합에 무언가가 살짝 더 추가되었고, 그렇게 만들어진 인조인간은 유일하게 형원의 마음에 든 인조인간이 되었다. 한 가지 흠이 있다면 혜인의 기억을 가지지 못했단 걸까. 하지만 그런 건 문제가 되지 않았다. 몇십 번의 시도 끝에 만들어진 혜인과 똑 닮은 인조인간. 형원은 그것만으로도 만족했다. 곧 인조인간이 눈을 뜨고, 형원은 조심스레 인사를 건넸다.





“…안녕.”Gravatar



”안녕하세요..?“





머리에 아무런 기억도 남아있지 않은 혜인의 인조인간은 잔뜩 경계하며 형원의 인사에 답했고, 형원은 인조인간을 천천히 달래며 자신이 만들어낸 인조인간의 간단한 인적 사항을 읊었다. 이름이랑 나이 같은 거.





“네 이름은 하연이야. 이하연. 지금 24살이고, 앞으로 나랑 같이 살게 될 거야.”



“제가 왜 아저씨랑 같이 살아요? 저희 부모님은요?”





형원은 아저씨라는 호칭에 잠깐 멈칫했지만 이내 사람 좋게 웃으며 ‘네가 널 샀으니까.’라는 거짓말로 하연을 살살 구슬리곤 같이 밖으로 나갔다. 연구실 밖에는 바로 형원의 자차가 주차되어 있었고, 형원은 연구실에 들어온 지 3개월 만에 혜인과 닮은 인조인간을 데리고 집으로 돌아갔다. 곧 집에 들어간 형원과 하연의 얼굴이 잔뜩 찡그려졌다. 하지만 얼굴이 찡그려진 이유는 서로 달랐다. 형원은 3개월이 지났음에도 여기저기 남아있는 혜인의 흔적이 신경 쓰여서였고, 하연의 표정은 아무래도 사람이 3개월 동안 들어오지 않다 보니 여기저기 먼지가 쌓여있었는데, 혜인을 닮아 깔끔한 성격인 하연이 이런 더러운 곳에서 살아야 한다는 생각에 나온 절망감이었다. 하연은 한숨을 푹푹 내쉬며 정리를 시작했다. 그리고 입에서 나오는 잔소리는 덤이었다.





“아저씨는 무슨 일을 하길래 집도 안 치우고 살아요? 이게 사람 사는 집이야, 동물 우리야. 아니 먼지는 또 왜 이렇게 많이 쌓였대. 무슨 몇 년 동안 집 안 들어오셨어요? 아님 먼지랑 룸메이트라도 하신 건가.”





형원은 오랜만에 들어보는 혜인 표 잔소리와 비슷한 말들에 푸스스 웃음을 흘렸지만 이내 울상이 되어갔다. 그동안 연구에만 집중하며 조금은 무뎌졌다고 생각했는데, 집에 발을 들이자마자 몰아쳐 오는 추억들과 자신의 눈앞에 있는 자신이 만든 혜인과 똑닮은 인조인간까지. 비록 자신이 혜인을 그리워하며 만든 인조인간이었지만, 인조인간과 혜인을 겹쳐보는 것 자체가 혜인에게 죄를 짓는 것 같아 마음 한구석이 좋지 않았다. 거기엔 하연이 정말 아무것도 모르는, 형원을 요리사라고 생각하는 순수한 사람이라는 사실도 한몫했고. 하지만 형원은 자기도 몰래 너무나도 닮은 분위기, 말투, 목소리, 외모, 습관 때문에 하연의 행동 하나하나에서 혜인을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하루하루 지나갈수록 형원의 마음엔 짐만 쌓여가고, 하연은 밖으로 티 내지는 않지만 어딘가 불편해 보이는 형원을 보며 덩달아 불안한 기분을 느꼈다. 그래도 한집에서 같이 산다고 시간이 지나며 두 사람의 거리는 조금씩 줄어들어 언뜻 보면 친구 사이인 줄 알 정도로 가까워졌다. 서로를 짖궂게 놀릴 수 있을 만큼.





“아저씨, 도대체 왜 그러고 다니는 거예요? 잘생긴 얼굴 꾸미고 좀 살아라.”



“안 꾸며도 내가 너보단 나을 걸. 목 늘어난 티셔츠는 왜 계속 입는 거야? 다른 이쁜 옷도 많은데.“Gravatar





이제 형원은 가끔가다 옷장 저 구석에 묵혀뒀던 수트도 꺼내 입는다. 오히려 하연이 덜 꾸몄으면 덜 꾸몄지, 형원이 덜 꾸민 날의 비중은 점점 줄어들었다. 그리고 둘 사이엔 암묵적인 규칙이 하나 정해졌다. 아무래도 하연이 인조인간이기에 하연은 꼭 형원과 같이 집을 나서야 한다는 것. 이것 때문에 하연이가 형원의 연구실에 가는 일이 잦아졌는데, 하연은 어떤 이유인지 형원을 요리사라고 생각한다. 깐깐하게 DNA를 조합하는 모습이 꼭 셰프와 닮았다고 생각하던 혜인과도 유사한 생각이었다. 또한 인조인간이라는 것 외에도 어떤 특정인을 많이 닮았다는 이유가 있긴 하지만, 굳이 말하지 않은 이유는 형원에게만 존재하는 또 하나의 규칙 때문이다. 하연에게 혜인의 이야기를 하지도, 사진을 보여주지도, 자신이 인조인간을 만드는 사람이라는 사실도 절대 밝히지 않는 것. 원래 처음엔 다 알려주고도 했었다. 하지만 혜인을 닮아도 너무 닮은 하연은 상처를 잘 받는 것까지 닮아, 형원은 하연이 혹여 도망이라도 갈까, 자신이 싫어질까라는 두려움에 입을 꾹 닫아버렸다. 



그렇지만 세상에 비밀은 없는 법. 오랜만에 자기가 일하는 모습을 보고 싶다던 하연이에, 형원이 청소를 하러 간만에 연구실에 다녀온 날, 돌연 하연이 사라졌다. 형원의 서재에 깨진 액자와 그 밑에 깔려 있는 어느 커플의 사진을 두고. 형원이 찌뿌둥한 어깨를 두드리며 집으로 돌아왔을 땐, 이미 차갑게 식은 집 안만이 형원을 반겨주었다. 형원은 집 이곳저곳을 둘러보다, 마지막으로 서재를 확인하고서 밖으로 뛰쳐나갔다. 길도 모를 텐데, 갈 곳도 없을 텐데, 배고플 텐데. 하연을 향한 걱정들이 머릿속 가득히 자리 잡다 저 밑에서 치고 올라오는 어두운 생각에 잠식되어버렸다. 내가 처음부터 혜인이에 대해서 말을 해줬더라면, 처음부터가 아니더라도 조금이라도 친해졌을 때 미리 언질이라도 해주었었다면. 그렇게 꼬리에 꼬리를 물고 늘어지던 생각들이 무심코 뱉은 한마디에 전원이라도 꺼진 듯이 고요해졌다.





“근데 내가 왜 얘를 찾아다니고 있지?”Gravatar





형원은 그 말을 뱉은 순간 머릿속에서 탁하고 무언가 끊어지는 느낌을 받았다. 지금까지 수도 없이 많은 인조인간들을 만들고 폐기 처분하며 한 번도 들지 않았던 걱정이라는 마음에 형원은 혼란스러울 뿐이었다. 형원은 그 자리에서 잠시 멈춰있다, 이내 다시 하연을 찾으러 여러 곳을 뛰어다녔다. 하연이가 혜인이와 닮아서 그런 것이라고 합리화를 하려고 해도 하연과 같이 있을 땐 이상하게 혜인의 생각이 나지 않았다. 혜인이 예전에 자신에게 했었던 행동을 똑같이 반복하고 있는 하연을 볼 때도, 혜인과 너무나도 닮은 외형을 볼 때도. 형원은 하연에게서 혜인을 떠올리는 것이 아닌, 인조인간인 하연을 또 다른 하나의 인간으로 대우하고 있었다. 너무 늦게 알아버린 마음에 더 애타게 하연을 찾아다니고 있었을 때, 형원의 핸드폰이 시끄럽게 울렸다. 하연이일 수도 있다는 생각에 황급히 핸드폰을 꺼내 확인하면, 정말로 하연이 맞았다.





“어디 갔었어요?”





문자를 본 형원은 바로 자신의 집으로 출발했고, 걸어서 30분 정도 되는 거리를 뛰어서 10분 만에 도착했다. 숨을 몰아쉬고 있으면, 문 앞에서 기다리고 있던 하연이 해사하게 웃으며 형원을 맞이했다.





“어디 갔었어. 찾았잖아.”Gravatar



“그냥, 돌아다니면서 생각할 게 있어서. 근데 나 말할 거 있어.“



“들어가자. 들어가서 얘기해.”



“아니, 그냥 여기서 얘기해.“



”뭔데.“



”나 이제 아저씨랑 같이 살기 싫어졌어.“



”… 왜?“



”아저씨 집 들어갔었으면 그것도 봤겠네, 액자 깨진 거. 일단 먼저 사과할게. 서재에 함부로 들어가고 소중한 액자 깨뜨린 거. 미안해. 근데 아저씨, 나 보면서 그 사진에 있는 언니 생각한 적 있어?“





질문 뒤에 붙은 ’사실대로 말해줘. 난 괜찮으니까.‘라는 말에도 형원은 하연의 물음에 대답을 하지 못하고 우물쭈물 대기만 했다. 하연은 형원이 대답을 할 때까지 기다리려는 눈치였지만, 형원은 입을 더 꾹 다물며 대답하기를 거부했다. 왜냐면 점점 혜인의 생각이 나지 않기 시작한 거지, 처음엔 하연을 보며 혜인을 많이 떠올렸었으니까. 그렇게 몇 분 동안 평온한 표정으로 형원을 지켜보던 하연이 침묵을 깼다.





“왜 아저씨랑 같이 안 살고 싶냐고 물어봤지?”
“왜냐면, 내가 아저씨를 너무 많이 좋아해서. 근데 아저씨는 나 보면서 저 언니 생각 안 할 수 없잖아. 그래서.“





그 말을 끝으로 하연은 다시 형원의 집으로부터 멀어졌다. 형원은 또다시 자기를 떠나가는 그 사람을 붙잡을 수 없었다. 이번엔 완연히 형원의 잘못이었으니까. 하지만 그렇게 한 사람에게 상처를 줘놓고도 그게 잘못인 걸 알면서도 형원은 혜인이 아닌, 이제는 하연을 닮은 인조인간을 만들고 있다. 형원은 기어이 그 둘을 닮은 사람이 없으면 남은 삶을 살아갈 수 없을 지경까지 이르렀다. 그렇게 깐깐한 형원은 오늘도 하연을 만들었던 방식대로 인조인간을 만들며 말한다. 오늘도 취향을 요리한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