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더도그마(2021)

구원구 낙원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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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incenzo 01 구원구 낙원동 66-6
w. 스몰낫t 





 '가난은 죄다'라고 한다면 감히 누가 앞장 서 부정할 수 있겠는가. 다들 속으로 꿍얼거릴 순 있을 것이다. 그러나 앞장 서서 팻말을 들고 가난은 죄가 아님을 긍정하는 것은 무지막지한 용기를 필요로 하는 일이었다. 그런 용기를 가슴에 품고 있는 자는 극히 드물었고 그것이 지식인들의 비겁함이었다.

 해가 떨어지면 아주 어두컴컴하여 코앞에 놓인 것이 바늘인지 실인지, 더듬어 보지 않는 이상 추측조차 어려웠다. 물론 그건 집 안 사정이었다. 밖으로 나가봐도 어두운 건 매한가지였다만 그나마 형편이 나았던 까닭은 저 건너편, 쭉 뻗은 검지 손가락을 따라 쭈욱 한참을 가면 있는 도시의 불빛들이 새어 들어오기 때문이었다. 갑갑한 공기에 밖으로 나와 잠을 청하는 날이 허다했는데 그런 날이면 차마 정자라 부르기도 뭣한 나무 판자 위에 드러누워서 하늘을 눈에 담았다. 하늘을 둥실둥실 유랑하는 별들은 속도 모르고 어여쁘게 반짝였다. 그런 별들에 속이 상해 고개를 휙 돌려버리면 더 환한 도시의 불빛들에 배알이 꼴렸다.

 그렇게 바깥에서 잠을 청한 날이면, 알람이랄 것도 없이 자연광이 아침을 밝혔다. 길게 뻗은 고운 속눈썹도, 도톰한 눈두덩이도 눈부신 햇살을 막아내진 못했다. 미간을 좁히며 일어나면 언제나처럼 주위는 분주하고 소란스러웠다. 매우 어린 아이들은 자갈이 널린 더러운 길바닥을 맨발의 기봉이처럼 자유자재로 뛰다녔다. 정확히는 '기봉이들'이라는 표현이 어울렸지만. 그러한 발바닥은 늘 숯 검댕 칠한 듯 시커멓고, 자잘한 상처로 뒤덮여있었다. 매일매일이 같은 풍경의 연속이었다.

 그날따라 유독 몸이 찌뿌둥했다. 반짝이는 별도, 도시의 별도 성가셔 도시를 등지고 어정쩡한 자세로 드러누운 것이 화근이었는지 목이 뻐근했다. 허리는 원래도 고질병이었다. 고작 열다섯 어린 아이의 몸에서는 파스로부터 시작 된 박하향이 가득 풍겼다.

 하루는 더럽게 느릿느릿 꾸물거렸다. 덕지덕지 붙인 파스는 하루종일 구부정한 자세로 바느질을 한 탓이었다. 그는 감히 마을 남정네들 사이에선 가장 특출난 솜씨라 할 정도로 재능을 보였다. 이러한 재능 따위 있어야 부질 없었지만은 그래도 다방면에서 무능력하단 말보다는 위로인 셈이었다. 돈도 되지 않는 걸 어따 써먹냐며 투정 부리듯 말꼬리를 늘렸지만 칭찬이 썩 기분 나쁘진 않았다.

 꾸릿한 냄새에 콧구멍대신 입으로 숨을 내쉬면서 바늘 구멍으로 실을 뀄다. 서투르던 시절도 잠시 이제는 제법 익숙해져서는 주변을 돌아다니며 눈이 침침한 나이 지긋한 어르신들을 도와주기도 했다. 그렇게 툴툴거리면서 꿰어주고 나면 나이 들어서 해 봐라. 어디 맘처럼 쉬운지, 하고 말하곤 했는데 그 구절이 그저 저주처럼 들릴 뿐이었다. 나도 저렇게 검은 머리가 하얗게 세어갈 때 까지 이 지긋지긋한 구렁텅이에 못을 박으란 말인가? 젠장. 어서 이 곳을 벗어나서 날개를 펼치라는 응원은 못해줄 망정. 그렇지만 그저 웃고 말 뿐이었다.

 그 날은 빨갛게 페인트를 칠한 오토바이 한 대가 마을로 들어섰다. 늘 좋은 소식은 못 들고 오는 집배원이었지만, 타지 사람이 마을에 발을 들이는 건 늘 오랜만인지라 우리는 매번 반겼다. 우리 동네 담당 우체국 집배원이 따로 있는 것인지 매번 낯익은 얼굴이었다. 드문드문 오는 까닭은 얼굴을 잊지 말란 뜻인지 기억이 가물할 때 즈음이면 나타나곤 했다.

 우편 수가 고작해야 서너 개 가량일거라 생각하겠지만 그건 크나큰 오산이었다. 큼지막한 집 여러채 대신에 자그마한 가구가 바글바글한 동네로서 세금 고지서를 비롯한 전기, 상하수도 요금 납부도 제각각이었다. 집배원은 늘 우편을 한가득 싣고 왔지만 여태껏 희망을 싣고 온 적은 없었다.

 집배원은 오토바이 뒷편에 달린 빨간 통에서 양손 가득 우편물을 바리바리 꺼내들고는 우리 쪽으로 성큼 걸어왔다. 그리곤 혹여 잘못 밟을세랴 조심스러운 발짓으로 이곳저곳을 쏘다니며 우편함에 우편을 넣었다. 다 똑같은 모양의 봉투. 그 안에 적혀있는 금액도 대게 비슷했다. 금액이 네자릿수를 넘어가는 집은 이 넓디 넓은 동네에 한 채도 자리하지 않았다. 자린고비마냥 절약하고 또 절약한 대에 대한 일종의 포장 비슷한 뭐시기… 그런 거였다.

 마을 사람들은 집배원을 향해 헤프게 웃었다. 속 없이 좁아진 미간의 틈을 눈치 못챈 채 이런저런 이야기를 자꾸만 끄집어냈다. 꼴 보기 싫었다. 자기도 고작해야 월급쟁이이면서 무슨 갑이라도 되는 양. 그런 기세로 노려보고 있자 마지막 남은 우편 한 통을 손에 쥐고 두리번거리는 집배원과 순간 눈이 맞았다. 움찔했던 것 자체를 부정하진 않겠지만, 그래도 꾸준히 노려봤다. 보란듯이 너보단 성공하겠다는 굳은 각오로.

 어떤 연유에서인지 그 집배원은 한참을 기웃거리다 곧 무너질 듯 위태로운 우리집 앞으로 다시 향했다. 눈썹이 살짝 올라갔다. 무슨 의도인지 도무지 감을 잡을 수가 없었다. 그 집배원은 머뭇거리다 편지를 돌려 뒷면을 한참동안 보고 있었다. 추측만으로는 집배원의 평소같지 않는 루틴을 좀처럼 이해할 수 없어 집 앞으로 달려갔다. 이미 우편함에 우편을 꽂아두고 가는 걸 봤던 게 이유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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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저, 아저씨……."

 우물쭈물거리다 먼저 서두를 뗐다. 조심스러운 문장에, 수줍음이 많다는 걸 팍팍 티내는 문장에 집배원은 힐끔 돌아봤다. 그리곤 다시 우편 뒷면을 살피며 눈썹을 찡그렸다. 그 짓거리를 두어 번 계속할 동안 끓어오르는 화를 삭히기 바빴다.

 "저희 집 우편 이미 받았는데요……."

 집배원은 묻는 질문에 답은 삼킨 채 위아래로 불쾌하게시리 훑었다. 차림새를 보는 건가? 아니면, 얼굴을? 것도 아니면 여기가 무슨 면접장도 아니건만.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늘어질 때 즈음에서야 집배원의 입에 틈이 생겼다.

 "그쪽이 태……."
 "네, 네. 맞…아요."

 집배원이 이름을 부르려는 순간, 황급히 서둘러 대답하며 툭 끊어 버렸다. 고작해야 듣기 싫었던 것이 그 까닭이었을까. 아무쪼록 이 동네에서는 사정을 이해해 이름으로 부르는 자는 없었다. 애를 낳고는 책임은 커녕 하룻밤조차 같이 보내지 않고 자기 살길 찾아 떠난 어머니를 원망하는 최대의 복수였다.

 집배원은 우편을 하나 건넸다. 손 가지고 장난질이나 하며 우물쭈물거리다 건네받은 우편은 여태껏 한 번도 경험해본 적 없는 작고 고급스런 봉투에 우아한 글씨체로 이름 두 자가 적혀 있었다. 발신처는 이름조차 낭만적인 구원구. 발신인은 공백란이었다. 편지에서 빛이 난다거나 눈이 부시다거나 하는 얘기가 단지 표현법의 일종이 아니라는 걸 그 때 까달은 듯 하다. 정말 눈이 아프게 밝은 광채였다. 겉부터 찬찬히 훑고 어색한 웃음을 지으며 떠나자 그제서야 봉투를 뜯었다. 그 손길마저 어느 때보다 신중하고 섬세했다. 안에는 두 번씩이나 고이 접은 편지지가 담겨 있었다.

 하필이면 그 때에 어디서 툭 튀어나온 건지 허리춤 남짓 키의 어린 아이들이 한 번에 모여들어 기웃거리는 탓에 급히 집어넣어 버렸다. 이 동네는 정말이지 프라이버시라곤 티끌도 없는 공동체 삶이었다. 적잖은 불만은 있었지만, 딱히 프라이버시 란에 속하는 것이 없었기에 감추는 것 따윈 없었는데 어떤 감각의 발동인지 반사적으로 감추어 버렸다. 그리곤 뚝, 시치미를 뗐다.

 "무슨 얘기를 하긴, 뭘. 빗물에 젖어 발신인이 흐릿해졌다 그래서 확인한 거 뿐이야. 어젯밤에도 또 비 왔잖아."

그러면서 검지 손가락으로 곳곳에 생긴 진흙 칠갑 발자국이며 얕게 고인 물 웅덩이를 가리켰다. 아이들은 한동안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더니 그제서야 납득이 가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영 허무맹랑한 어설픈 변명 따위는 아니었다. 진즉 마을 사람들의 눈치를 보고 구실을 구상해 놓은 덕이었다. 그 말을 뒤로 더 이상 호기심을 충족할 거리가 없자 이내 다른 관심거리를 찾아 우르르 몰려갔다.










 여름의 더위가 조금 일찍 고개를 내밀었지만 아직 초봄인 사실은 변함이 없었다. 산뜻한 공기고 자시고 따위는 이미 온갖 잡스러운 냄새 뒤에 갇힌 지 오래였고, 단지 낮의 장단長短으로 계절을 체감할 뿐이었다. 해는 빨리도 떨어졌다. 평소와 같은 칠흑같은 어둠이 그 날이라고 다를 바 없이 찾아왔다. 추적이던 비 다음인지라 어째 사방은 유난히 더 고요했다. 고요함 속에 몸을 녹여가며 촛불에 불을 밝혔다. 요란한 형광등 대신 촛불이 더 낭만적이었다.

 그제서야 한숨 돌리고 서랍장 깊숙이에 고이 모셔뒀던 우편을 다시 꺼내들었다. 은은한 불빛 안에서 기분 좋은 종이 바즈락거리는 소리가 맴돌았다. 이 편지 안에는 꼭 희망이란 두 자가 적혀있을 것만 같았다. 아니면 구원 비스무리한 것이라도. 



『 당신을 특별한 게임에 초대하고자 합니다.
구원구에서 이루어지는 마피아게임.
상금은 전금액 달러로 지불합니다. 
달러5천만 + 에이
자세한 사항은 한 달 뒤 올 우체부에 같은 발신처로 응하겠다는 답신을 보내주신 후 아래 주소로 찾아오시면 됩니다. 그럼 이만 줄이겠습니다. 』


 편지 속 내용은 위와 같았다. 혹하는 달콤한 말로 풍부하게 채워진 편지였다. 낭만적이던 구원구로부터 발신 된 구원, 두 자가 적힌 편지가 맞았다. 이 편지를 찢어갈기는 바보도 있을까. 특히 적혀있는 플러스 알파, 그 단어가 유독 마음에 꽂혔다.

 급작스레 제시 된 큰 금액에 보통은 사는 사람이라면 꼼꼼히 따져보겠지만 그러고 말고 할 것도 없었다. 그 어디라도 여기보단 행복할 것 같았다. 지옥에나 떨어지란 욕지거리도 문득 응원의 말로 들리는 이 곳에서 드디어 벗어난다. 딱 한 달만 이 악물고 버티면…….

 뒷면에 적혀 있다는 주소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구원구 낙원동 66-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