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작을 죽인 시녀

2. 윌 브랜튼

_

정신을 차리고 보니, 메리는 자신이 감옥의 지상층에 위치한 응접실에 와 있음을 알게 됐다.

그리고, 그 앞에 마주앉은 한 남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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윌 브랜튼

차는 어떤 것으로 하실런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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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리 앤

...

아무리 세상사에 어두워도 그를 모를 리가 없다고 생각했다.

브랜튼가의 시녀로 일했던 이상, 아니. 적어도 귀족의 신분이라면 한번쯤은 들어보았을 이름이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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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리 앤

도련님...

메리는 떨리는 심장을 억누르고 천천히 운을 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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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리 앤

저는... 이제 사형수나 다름 없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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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리 앤

그러니 바라시는 바대로 곧, 죽은 목숨이 될 거예요.

이것이 윌 브랜튼이 손수 이곳까지 찾아온 이유라 생각해서였을까,

그에게 차마 얼굴을 들 수 없어 추레한 옆머리가 탁상에 닿을 만큼 고개를 떨구었다.

이렇게 한 공간에 있는 것조차 커다란 죄악이 되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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윌 브랜튼

그런 소리를... 들으려고 온 것이 아닙니다만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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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리 앤

네...?

끼익-

그러자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 놀란 눈을 뜬 메리의 옆으로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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윌 브랜튼

나는 그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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윌 브랜튼

당연한 이야기를 들으러 온 것이 아니야.

이전에 보여준 미소는 이미 사라져버린 지 오래였다. 윌이 이쪽을 내려다 보는 눈동자에는 뭐라 형용할 수 없는 경멸이 요동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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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리 앤

아...

마치, 밟혀도 죽지 않는 벌레를 보는 듯한. 메리는 그런 시선을 아주 잘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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윌 브랜튼

제국의 백작씩이나 되는 가주를, 일개 잡부 따위가 죽여놓고서 무슨 선처를 바란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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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리 앤

아, 아니에요! 저는 결코 그런 뜻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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윌 브랜튼

그렇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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윌 브랜튼

불쌍한 척, 가여운 척 눈물에 호소하면 조금이라도 네 죄의 무게가 덜어질 거라 생각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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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리 앤

...

메리는 이번에도 벙어리가 되고 말았다. 잠자코 있는 것 외에는 다른 방법이 없었다.

자신이 죽인 남자의 아들 앞에서 무슨 말을 하든 변명이고, 자극이 될 것임을 알았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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윌 브랜튼

후... 화를 돋우는군.

윌은 숨도 못 쉴 정도로 그녀를 몰아붙이다가도, 곧 다시 제 자리로 돌아가 제 감정을 가라앉히려는 듯 한숨을 내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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윌 브랜튼

...메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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윌 브랜튼

메리 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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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리 앤

네... 도련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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윌 브랜튼

앤 가문 출신일 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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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리 앤

...

앤 가문은, 짐작하디시피 메리의 가문이다.

그녀가 이 작은 지옥으로 스스로 걸어들어가게 한 주체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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윌 브랜튼

장녀로서, 가문을 다시 일으켜 세워 보려고 저희 가문으로 온 거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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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리 앤

...그렇습니다.

그 대답 뒤로, 윌이 거만한 태도로 다리를 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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윌 브랜튼

어디, 신분 상승차 빈 안주인 자리라도 빼앗을 셈이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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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리 앤

...!!

모든 것을 꿰고 있는 사람처럼, 그는 그렇게 무정한 투로 쏘아댔지만

그것은 그저 메리가 지금까지 받아온 무수한, 편견어린 시선들 중 하나에 불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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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리 앤

...아니에요. 그런 게... 아니라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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윌 브랜튼

그러나, 뜻대로 되질 않자 충동적으로 백작을 살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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윌 브랜튼

아닙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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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리 앤

도련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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윌 브랜튼

소리 지르지 마세요, 영애.

그녀의 얼굴은 수치심으로 한없이 붉어졌다.

반면에, 사건의 감독관이라도 된 양 차분한 얼굴을 한 윌 브랜튼은 미동 없는 태도로 일관하며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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윌 브랜튼

이것에 이의가 있다면야, 당신의 구차한 변명도 기꺼이 들어드리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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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리 앤

무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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윌 브랜튼

대신, 이치에 맞아야 할 것입니다.

메리는 혼란스러운 마음을 감출 수 없었다. 죽음을 앞두고 모든 걸 내려놓을 차에,

이 남자가 찾아와서는 정신없이 저를 흔들어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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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리 앤

...

헌데...

어째서?

주위가 침묵으로 내려앉은 가운데, 메리는 문득 의문을 품었다.

부모를 잃은 자식의 마음으로, 그런 단순하고 진한 원망으로 메리를 자신과 대면시켰다면 이렇게 평정을 유지해선 안 되는 것이었다.

당장에 찢어 죽여도 모자랄 판에 너무도 덤덤히 그녀에게 살해 의도 같은 걸 캐묻고 있다.

대체 왜.

동시에, 메리는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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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리 앤

듣고 싶은 대답이라도... 있으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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윌 브랜튼

...

그가 사형이 임박한 그녀를 제 발로 찾아온 이유를.

이, 어딘가 찜찜한 구석이 있는 대화의 의미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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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리 앤

이상하게 도련님이 마음에 두고 계시는 건 주인님의 죽음 그 자체가 아닌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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윌 브랜튼

이봐, 아까도 내가 분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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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리 앤

뭘 알아내고 싶으신 거죠? 제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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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리 앤

자꾸 그렇게... 쫓기는 사람처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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윌 브랜튼

...!

쿵. 쿵.

급박한 심장고동 소리가 바닥을 타고 울리는 듯했다. 다만 이제 그건 메리의 것이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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윌 브랜튼

영양가 없는 헛소리는 집어치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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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리 앤

머지 않아 가주가 되실 몸으로, 무엇이 그리 겁이 나시길래...

쾅-

윌이 내려찍은 주먹은 메리의 어깨를 간신히 빗겨나가, 바로 앞 탁상에 요란히 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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윌 브랜튼

그만하지 못해?!

그의 동공이 눈에 띄게 일렁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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윌 브랜튼

감히, 너 따위가...

고요한 수면이, 고작 조약돌 몇 개에 주체할 수 없이 파장하는 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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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리 앤

...주제넘어 죄송해요.

메리는 그 정도면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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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리 앤

부디 살펴 가세요, 도련님.

꾸벅-

반듯이 허리를 굽혀 한 인사를 끝으로 그녀는 경비병들이 자리를 지키고 있는 응접실의 출입구로 걸어갔다.

_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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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리 앤

죄인 주제에... 뭐 잘났다고 덤벼댄 건지...

메리는 철창 안쪽 벽면에 붙은 의자에 쭈그려 앉아 방금까지 제가 벌이고 온 일을 뇌내에서 끊임없이 재생 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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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리 앤

이렇게 낼 용기였음, 진작에 내볼 걸...

막상 죽음이 코앞에 닥쳐오니, 여태까지 자신의 가문을 위해 희생한 몫이 아깝게만 여겨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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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리 앤

가문 같은 건...

오래 전 별세한 아버지 대신 어머니가 가주의 자리를 받은 데다, 그마저도 자식들 중 사내아이가 없어 앤 가문은 대를 이어가기 위한 악조건은 죄다 갖추고 있는 셈이었다.

_

와중에 시녀를 원한다는 백작의 청이 와서는 어린 여동생을 보낼 순 없기에 메리가 수락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되었고,

이렇게 들어간 시녀 자리도 제 가문의 일과 겹쳐 남들 눈에는 수상쩍게 비치는 듯했다.

아까 윌의 말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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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리 앤

유일한 가족은 이제 소식도 없고.

메리는 반 년 전 끊겨버린 안부 편지들을 떠올려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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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리 앤

다들... 내가 곧 죽는다는 걸 알면...

그녀는 아차 싶어 황급히 고개를 내저었다.

지금의 것들로도 충분히 버거운데, 남겨진 가족들이 겪게 될 불행까지 생각하자니 배로 괴로웠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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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리 앤

다행히 재판은... 내일로 미뤄진 것 같아.

병사들의 걸음이 한산해진 바깥을 응시하며 말했다.

꾸벅-

불현듯 긴장이 풀려서일까?

오늘 있었던 우여곡절들을 깨끗이 잊은 것처럼, 그녀는 느리게 졸린 눈을 감았다.

내일에 벌어질 일들을 상상도 못한 채.

_

_

대개 재판의 규모는 범죄의 중대성에 비례한다.

그렇기에 메리는 왜 자신이 정식 법정 대신 이 소규모 연회장 같은 곳에 와 있는지를 고민했다.

탕 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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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관

이곳에 오신 모두들, 자리에 앉아주시길 바랍니다.

게다가 어찌 된 모양인지 재판에 참여하는 귀족들도 그 수가 일반적인 때에 비해 현저히 적었으며,

브랜튼가의 참고인이자, 피해자의 유족으로서는 단 둘밖에 초대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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윌 브랜튼

...재판까지 끌 줄이야.

브랜튼가의 첫째 영식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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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셀 브랜튼

...

둘째 영식. 아셀 브랜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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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 중 누구 하나 마주하기 껄끄러워 메리는 멍하니 법정의 바닥만을 내려다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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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관

브랜튼 백작가의 가주, 윈저 백작 피살사건입니다.

중앙에 선 신관이 소매자락을 펄럭이며, 오른편 좌석에 수갑을 찬 채 앉아 있는 메리를 가리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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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관

이는 백작의 시녀로 일하던 앤 가문의 여자로, 지금은 강력한 용의자로 논의되고 있습니다.

주위를 둘러보던 그는 숨을 한 번 크게 들이쉬었다가, 다시 엄중히 말을 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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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관

그럼 지금부터 증인의 증언을 듣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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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리 앤

...?!

웅성웅성-

그때, 메리는 놀란 표정을 숨기지 못했다. 백작을 실수로 죽이고 만 날. 그날에 그녀가 성에서 도망쳐나오는 동안 마주친 사람은 기억상 없었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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윌 브랜튼

증인...?

윌조차 모르는 듯이 반응하고, 법정 속 사람들이 일제히 소란스러워질 때,

누군가 그 속에서 손을 번쩍 들고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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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셀 브랜튼

저, 증언하면 되나요?

설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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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리 앤

...

앤은 순간 아셀과 눈이 마주쳤다.

마주친 것... 같았다. 그 순간이 무척이나 짧아서 시선이 제대로 맞물렸는지는 확실치 않았다.

저벅 저벅-

그는 알 수 없는 웃음을 그리며, 신관의 앞, 법정의 정중앙에 우뚝 섰다.

그리고는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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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셀 브랜튼

제가 목격한 윈저 백작, 그러니까 아버지의 죽음은...

싱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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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셀 브랜튼

자살입니다.

...뭐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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윌 브랜튼

아셀...

점점 시끄러워지는 청중들에 아랑곳 않고, 아셀은 자신을 넋놓고 보고 있던 메리를 지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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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셀 브랜튼

여기에는 아무 용의자도 없어요. 그러니 저기 있는 메리 양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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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리 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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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셀 브랜튼

무죄겠죠.

사건의 유일한 증인은 피해자의 아들이었다.

그러나 그 아들은, 지금 살인자의 편을 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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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말_

첫 장면에 표지를 만들어 넣을까 하는데 어떨까요? 괜찮을까요?

별로.... 일까요.

그리고 이건 제 기기가 이상해서 그럴지도 모르는데, 비주얼 팬픽은 지문/대사를 수정하는 데 로딩이 심하네요.

다음 번에는 일반 팬픽으로 써볼까 생각 중입니다.

그럼 안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