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작을 죽인 시녀
7. 똑똑, 선물입니다.



7. 똑똑, 선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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윌 브랜튼
열쇠도 없이...


윌 브랜튼
여긴 어떻게 들어온 거지?

철컥-

한손으로 문의 잠금장치를 누른 윌은 정말로 메리의 대답을 기다리는 것 같지는 않았다. 이곳을 청소하라는 지시는 역시 그가 내린 게 아니었던 걸까.


메리 앤
아...

어찌 되었든 상황이 잘못 흘러가고 있다는 사실만큼은 살결로 와닿는 메리였다. 그녀는 손아귀 속의 종이 조각을 와락 구기며, 행여나 저번과 같은 위험한 일이 발생할세라 재빨리 대꾸했다.


메리 앤
지, 집사님이 시키셨어요. 이곳... 이 방을 정리하라고.


메리 앤
확인받지 않아 죄송합니다. 그치만, 맹세코 아무것도 건들지 않았어요 도련님.

불행 중 다행인 것은, 윌이 평상시보다 조금 더 피로해 보인다는 것이었다.

충혈된 눈은 다시 보니 메리를 향한 적의보다는 금방이라도 쓰러질 듯한 그의 상태를 증명해주는 것 같았다.


메리 앤
믿어주세요...


윌 브랜튼
...나가.

메리는 기회를 놓치지 않고 서둘러 윌을 지나쳐 방을 빠져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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_

위기를 모면한 후에도 마냥 마음이 안정되지 않았다.


메리 앤
집사님도 설마 나를...

메리는 제 방 창가에 앉아 고개를 푹 떨군다. 정말 이 저택에 내 편은 없는 거야. 누구도 마음놓고 믿어선 안 돼. 잊고 있던 사실을 되뇌이니 더욱 더 철저하게 외로워진 느낌이다.


메리 앤
정말 싫어... 다 싫어... 왜 나는 항상 이렇게......

똑똑-

그때였다. 창문 앞으로 사람의 형체가 가까워진 것은. 놀란 그녀는 순간적으로 침대에서 벌떡 몸을 일으켜세웠지만, 곧 익숙한 목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이안 룩펠
메리. 메리 저예요.


메리 앤
이안...?

조심스럽게 창문의 잠금을 풀어 열어보니, 정말 이안이었다. 2층까지 어떻게 올라온 건지 물어볼 새도 없이 무작정 방안에 몸을 집어넣는 그였다.


메리 앤
어, 잠시, 잠시만요 이렇게 막무가내로 들어오시면...!


이안 룩펠
실례 좀 하겠습니다. 쫓기는 처지라서요.


메리 앤
쫓기다니요? 누구한테요?


이안 룩펠
글쎄요.

이안은 말괄량이 같은 웃음을 지으며 창틀을 발판 삼아 내려왔다. 그는 소매로 신발이 닿은 부분을 닦는 체 하더니, 곧 시선을 메리에게로 고정했다. 무언가 발견한 눈치였다.



이안 룩펠
울었군요?

메리는 황급히 소매를 당겨 눈 주변을 닦았다. 어찌나 벅벅 닦았는지, 그 자극 때문에 눈이 더 빨개질 지경이었다.

보다 못한 이안이 그녀의 손을 잡아내렸다. 찬바람이 부는 바깥에 있다 와서 그런지 살이 닿아 따뜻하기보단 조금 서늘한 감촉이었다.


메리 앤
아, 신경쓰지 않으셔도...


이안 룩펠
또 윌인가요? 참, 아무리 그래도 이렇게나 숙녀를 자주 괴롭히다니.

정말 화난 건지 화난 시늉을 하는 건지 모르겠지만, 메리는 어느 정도 마음이 편해짐을 느꼈다. 긴장이 너무 풀린 나머지 이 사태를 보고 웃음이 새어나올 정도였다.


메리 앤
숙녀 방에 무단침입하신 분이 그런 말을 하시는 건가요?

쿡쿡 웃는 그녀를 보고 이안이 잠시 당황해 손을 마구 내저었다.


이안 룩펠
이번만이에요, 약속합니다. 정말 쫓기고 있는 중이라...


메리 앤
괜찮아요, 뭐. 이 정도야 실례도 아닌걸요.


이안 룩펠
그럼 감사히 있다 가겠습니다.

그렇게 둘은 제법 오래 이야기를 나누었다. 좋아하는 서커스라든가, 어릴 적 무지 혼났던 일화라든가- 그런 시시콜콜한 것들. 그러다 문득 메리는 의문을 가졌다. 이안 그는... 대체 뭐 하는 사람일까.


메리 앤
...

뭐하는 사람이길래, 나를 이렇게 편안하게 해주고, 따뜻하게 대해주는 거지?


이안 룩펠
웃으니 보기 좋네요.


메리 앤
...고마워요.

믿고 싶지 않다. 더이상 누굴 믿을 여력도 없다. 그저, 메리는 누군가와 함께 이렇게 대책없이 웃음을 나눌 수 있는 시간이 소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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윌 브랜튼
그 여자는 못 믿습니다. 아버지를 죽인 여자가, 이 저택에 멀쩡히 살아 돌아다닌다는 게 말이나 됩니까?

윌의 목소리가 거세졌다. 흥분할수록 숨이 가빠와 몸을 지탱하기도 버거워 보였다. 그 앞에 서 있는 게트는 그럼에도 뜻을 굽힐 수 없다는 듯 강경했다.


집사 게트
메리 한 명이서 음모를 꾸몄을 리가 없습니다.

벌떡-


윌 브랜튼
어쨌든 그 여자가 죽인 게...!


집사 게트
확실하지 않습니다.

게트가 주머니에서 잔뜩 훼손되어 원형을 알아보기 힘든 편지지를 윌에게 건넸다. 속에 적힌 글자와 발신인의 이니셜 같은 건 붙에 그을려버린 채였지만 한 가지만은 분명했다.




윌 브랜튼
헤이그가의 문양...


집사 게트
선대 가주님의 품에서 발견했습니다. 아무 이유 없이 이런 걸 가지고 계셨을 리는 없죠. 분명히, 어떠한 배후가 있을 겁니다.


집사 게트
그러니 메리 앤을 곁에 두면서 살피는 게 좋을 듯합니다. 위험 인물이기도 하지만, 사건의 가장 큰 단서가 되는 여자기도 하니까요.


윌 브랜튼
...

초조한 눈빛을 한 윌은 집사 게트에게서 건네받은 편지지를 손에 쥔 채로 한동안 생각에 잠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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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부터 백작가에 이렇게나 사람들이 우글대는 이유는, 아셀의 배웅을 위해서였다. 하녀들은 물론 하녀장도 이 일정을 따로 일러주지 않았지만, 메리는 시간에 맞춰 자리에 있었다.

하녀들
저 기집애는 또 어떻게 알고 여길 온 거야... 무섭다 무서워.

멀끔히 단장까지 끝낸 그녀를 못마땅하게 바라보는 눈초리가 여럿이었다.


메리 앤
...

나도 마음만 같았으면 확 늦잠이나 자고 싶었다고. 일부러 못 들은 체 하면서도 메리는 속으로 미운 표정을 지었다.

그녀가 여기 있을 수 있었던 건, 아셀 그가 어젯밤 그녀를 불러내 따로 일러주었기 때문이었다.


아셀 브랜튼
소식 들었어요?


메리 앤
무슨 소식 말씀하시는지...


아셀 브랜튼
어라, 아직도 미운오리새끼인가 보네요.


메리 앤
...

이 사람은... 나를 이렇게 긁어대는 게 좋은가? 메리는 그저 잎이 다 뜯겨 발치에 버려진 장미만 바라볼 뿐이었다. 이런 상황은 불편하다. 불편함을 넘어서, 오한이 든다.


아셀 브랜튼
친구도 없고 가족도 없고.

계단에 기댄 채 아셀은 장미의 잎을 한 가닥씩 뜯어낸다. 그러다 마지막 가닥마저 앗아갔을 때, 그는 다시 툭. 꺾여 죽은 장미를 무심하게 메리에게로 던졌다.


아셀 브랜튼
이 험한 세상에서 어떻게 살아남으려나, 걱정되네.


메리 앤
...소식이 뭐죠?


아셀 브랜튼
내일 집 나갈 거예요.


메리 앤
네?

내내 땅만 보던 메리가 그 말에 고개를 들고 반문했다.


아셀 브랜튼
이제야 봐주네요. 내가 나간다니 너무 좋나 보죠 메리 양은?


메리 앤
그게 아니라... 저는...


아셀 브랜튼
흐응, 하여간.

말아쥔 손으로 입을 가리며 미소짓던 아셀은 불쑥 가지고 있던 흰 종이장을 메리에게 건넨다.


메리 앤
이건...?


아셀 브랜튼
전 내일 헤이그가에 가요. 말만 정기회담이지, 가주 자리가 공석인 틈을 타 우리 영토 가지고 얼토당토한 협상을 하려 드는 거겠죠.


메리 앤
윌 도련님도... 같이 가시는 건가요?


아셀 브랜튼
형은 아파서요. 겁도 많고... 아무튼.

아셀이 종이장 위로 손가락을 툭툭거린다. 자세히 보니 어딘가의 주소가 적혀 있는 듯했다.


아셀 브랜튼
메리 양. 내일 저 가고 나면, 여기로 가서 뭣 좀 받아와요. 맡겨둔 상자가 하나 있거든요.

메리는 조금 떨떠름하지만 딱히 거절의 의사는 없는 투로 물었다. 그걸 도련님 방에 놔드리면 될까요? 그러자 아셀은 싱긋 웃으며 고개를 젓는다.


아셀 브랜튼
가져요. 선물이에요.


메리 앤
네?


아셀 브랜튼
대신 칠칠맞게 누굴 뒤에 달고 다닌다든가, 그러면 안 돼요.

이건 정말 메리 양에게 주는 내 첫 선물이니까.

-그렇게 되고 만 것이다.

선물 같은 건 역시 필요없지만, 그의 명령과도 같은 부탁을 어기자니 그럴 엄두가 안 났다. 그녀가 봐온 아셀이라면 어떤 식으로든지 보복을 해올 게 분명했다.


아셀 브랜튼
그럼, 다녀올게요. 잘 있어요들.

저택의 모든 사용인들이 해맑게 말을 타고 나서는 이 집의 둘째 주인을 배웅했다. 가끔 보면 사이코패스, 이중인격자, 그런 수식어들이 붙어도 모자란 듯 느껴진다. 앞과 뒤가 저리도 다른 사람이라니.

메리는 말발굽 소리가 서서히 잦아들자 허리를 피고 방으로 돌아가려 발길을 돌렸다. 집안일은 얼추 다 끝내놨으니 어딘지도 잘 모르는 가게에 가서 선물을 가져와야 할 것이었다.


메리 앤
아... 혹시 첫째 도련님이 날 찾으시면 어떡하지.

그 전에, 아프다고 들었는데. 아셀이 그냥 한 말이 아닌지 방문을 굳게 잠궈 오늘이 되도록 나오지 않는 윌이었다.


메리 앤
집사님이 거짓말하신 게 아니라면... 내 책임일 텐데...

복도 한가운데 우뚝 선 채로 깊이 고민하던 메리에게 무언가 경고도 없이 날아왔다.

퍽-


메리 앤
윽...!

차갑고, 음습하고, 질퍽한 것.


하녀 1
잘 어울린다 그거. 모자 대신 쓰고 다니는 게 어때?

하수도를 청소한 후 빨지도 않은 것 같은 걸레가 메리의 솜털같은 머리칼에 달라붙었다. 유독 저를 못살게 구는 하녀 중 하나였다. 이번엔 특히나 악감정을 가진 듯이 그녀가 비릿한 조소를 지었다.

하인들
윌 도련님 방에 숨어들어갔다는 게 정말이야?


하녀 1
그렇다니까. 더러워서 정말.


하녀 1
백작 그 노인네가 죽은 지 얼마 됐다고 남자가 고파? 이젠 아예 안주인 자리까지 넘보려고, 응?

메리는 차갑게 굳은 낯으로 걸레를 떼어냈다. 말을 들어보니, 아마도 지난번 집사의 명령 때문에 윌의 집무실을 정리하러 갔던 저를 봐버린 모양이다.


메리 앤
오해예요.

굽히지 않는 메리의 태도에 하녀가 얼척이 없다는 듯 콧방귀를 뀌었다. 그리곤 몇 발자국 더 다가가 그녀의 오른뺨을 짝, 소리가 나도록 때렸다.


메리 앤
...


하녀 1
둘째 도련님한테도 살랑거리더니, 이젠 아주 여길 니 집으로 만들겠다고?


메리 앤
당신이 제 사정을 아나요? 제가 지금 어떤 마음으로 하루하루를...!

짝-

힘을 버티지 못한 메리가 그만 땅에 주저앉았다. 제법 강한 충격을 받아서인지 목걸이마저 떨어져나가고 만다.


메리 앤
목걸이가...


하녀 1
탐욕스러운 메리야, 너보다 내가 네 처지에 대해 더 잘 알고 있단 말이지.


하녀 주드
그러니까 이딴 거지같은 목걸이랑 같이,

우지끈-


메리 앤
아, 안 돼!!


하녀 주드
우리 브랜튼가에서 영영 사라져줘?

주드의 구둣발이 천천히 들어올려진 자리에 조각조각 부서진 잠자리 펜던트가 나뒹굴었다. 그녀는 사용인들과 함께 창백하게 질린 낯빛의 메리를 남겨둔 채 조롱하듯 자리를 떠났다.


메리 앤
안 돼... 하일리...


메리 앤
흑...

바스락-


메리 앤
이게 어떤 목걸인데... 이게 나한테, 무슨 의미인데...

메리는 구정물 냄새가 나는 제 머리도 신경쓰지 않고, 오로지 부서진 펜던트 조각만을 처절하게 긁어모았다. 얇게 깨진 파편이 손바닥을 파고들어도, 그녀는 미친듯이 흐느끼며 손을 멈추지 않았다.


메리 앤
하일리... 엄마. 제발, 나는 이제 더이상 못해...

때는 소름끼치게 고요했고, 구석 복도에는 작은 나뭇잎조차 날아들지 않는 적막만이 계속되었다.


메리 앤
다 부서졌어... 무슨 모양인지 기억이 나질 않아.

그리고 우연찮게도, 손에 잡힌 펜던트의 가장 큰 파편이, 가장 날카롭기까지 했다.


메리 앤
그만할래, 그만. 너무 지쳤어...

미친 사람처럼 중얼거리며 메리가 어둠속으로 걸어들어갔다.

저벅-


저벅-


그러나 어둠 속으로, 그리고 더 깊은 어둠 속으로 들어가려고 할 때 누군가가 램프를 들고 걸어나왔다. 희멀건 불빛이 메리의 꺼진 안광을 훅 밝혔다.

방에 있는 줄만 알았던 윌이었다.


윌 브랜튼
...메리 앤?


메리 앤
...


윌 브랜튼
네 주제를 잊은 건가? 마땅히 해야 할 일은 안 하고 여기서 뭘 빈둥대는 거지?


메리 앤
죄송합니다...

뚝-


뚝-


윌 브랜튼
뭐...

그때 윌의 눈이 어둠 속에서 커졌다. 방금까지 벌레보듯 했던 자가 맞나 싶을 만큼 그가 빠른 태세로 그녀에게 달려왔다.


윌 브랜튼
손목을 그었어? 이런 정신병자같은-


메리 앤
죄송해요...

털썩-

메리의 눈앞은 그 말을 끝으로 빛 한 점 없이 깜깜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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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말_

너무너무너무너무 오랜만이네요.

분량이 오천 자라고 나오는데(..) 오랜만에 쓰는 글이라 제가 조절을 못한 것 같아요.

그래도 읽히는 동안에 재밌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럼 안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