넌 남이 되고 오히려 더 좋아보여.
17화. 괜찮아지길 바랄게.



믿었던 사람에게 충격을 받았다.

그 믿었던 사람이 너라서, 더 충격이다.

나는 너와 내가 우리의 연애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부분이 달랐다는 걸 몰랐고,

우리는 그렇게 안좋게 끝내야 했다.

싸우면 늘 하던 말.

'애초에'

하지만 애초부터 잘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는 걸 알기에.

그건 그냥 서로를 꺾기 위한 날카로운 말로 쓰일 뿐이었다.



너와 헤어진 뒤, 바로 다음 날.

아침에 일어나 마시는 물은 목으로 넘길 때마다 날카로운 칼날로 변하고,

나를 깨우는 아침 햇빛은 따듯하거나, 따사롭기는 커녕 뜨겁기만 하다.

평소에는 듣기 좋던 새들의 지저귐까지 시끄럽게 깨져버린 유리조각같다.

이렇게 힘든 지금.

나만 힘든 건지, 너도 이런 고통을 느끼고 있는지 모르겠지만.

적어도 나보단 더 고통스러웠으면 좋겠다.

박여주
* 여보세요


김지수
* ...괜찮아?

박여주
* 응, 괜찮아. 어제 알려줘서 진짜 고마워

박여주
* 너 아니었으면 나 진짜 계속 그 남자 만났을 거야_

박여주
* 고마워.


김지수
* 지금 어디야? 잠깐 볼까?


김지수
* 오랜만에 니 얼굴 보고싶다ㅎ

박여주
* 나 지금 집인데, 카페에서 잠깐 만날까?


김지수
* 그래, 우리 늘 만났던 카페에서 보자.

박여주
* 알겠어, 이따 보자_



박여주
지수야


김지수
오랜만이다_


김지수
…어제는 너무 정신이 없어서 인사도 못했지?

박여주
야, 나 괜찮아_ 새로운 사람 또 만나면 되지.


말만,

말만 괜찮다고 했고, 말만으로라도 괜찮아지고 싶었다.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정말 너무 아플 것 같아서,

그럴 자신도 없으면서 누군가를 새로이 만날 수 있다고 얘기하는 내가 너무 초라해서.



김지수
사실, 오늘 아침에 수영이한테 전화가 왔었어.


김지수
너 괜찮냐고 걱정하더라.

박여주
수영씨...? 아, 그 김태형 클럽에서 봤다고 한 그 여자분?


김지수
맞아, 수영이가 번호 딸려고 태형씨한테 갔었는데


김지수
까였다고 하면서 자리로 오길래 그 남자 얼굴을 봤더니 태형씨더라고.

박여주
번호를 따려고 했다고?




김태형
나 아까 어떤 여자가 번호 물어보더라, 그때 그냥 줄걸 그랬나.



김태형
근데, 내가 그 여자한테 뭐라고 했는 줄 알아?


김태형
나 여자친구 있으니까 못준다고 했어.


김태형
이랬는데도 내가 너한테 믿음을 준 적이 한 번도 없어?


박여주
…아.


김지수
이제 그런 놈 만나지 마, 이제 나랑 놀자.


김지수
너 연애하고 나서부터 나랑 안놀아줬잖아_

박여주
알았어 -, 이제 너랑 계속 놀게.

띠리리리리 -


김지수
잠시만,


김지수
* 여보세요_


김지수
* 같이 있어, 잠시만 -


김지수
수영인데, 너 좀 바꿔달래.

박여주
… 나를?

박여주
* 여보세요?


박수영
* 안녕하세요, 여주씨. 어제 뵜던 박수영이에요.


박수영
* 괜…찮으시죠?

박여주
* 아, 뭐 괜찮아요.

박여주
* 어제 일은 정말 감사했어요. 수영씨가 김태형한테 가주신 덕분에 잘 마무리 했어요.


박수영
* 아_ 에이, 아니에요ㅎ


박수영
* 근데, 미술학원에서 일하세요?

박여주
* 네? …네_

박여주
* 어떻게 아셨어요?


박수영
* 아, 제가 일하게 된 미술학원에 여주씨 앞치마가 있길래요ㅎ


박수영
* 앞으로 같이 일하게 될 것 같아요.

박여주
* 아..., 반가워요. 앞으로 잘 해봐요.


박수영
* 네_ 내일 봬요.

탁 -


김지수
뭐래?

박여주
아, 수영씨가 앞으로 나랑 같이 일하게 될 것 같대.


김지수
좋네_ 너 거기에 친구 한명밖에 없다며.


김지수
수영이랑도 친구하면 되겠다.

박여주
응, 그러네.


왜 지금 이 순간에

널 번호 따려고 했던 여자와, 니가 같은 공간에 함께 있는 게 불편한 걸까.

이젠 하나하나 정리해야되는데,

4년동안 잘 해온 것처럼.


_

_


원장쌤
앞으로 잘부탁해요_ 잘 해봅시다.


박수영
감사합니다ㅎ


김지연
안녕하세요.


박수영
아, 네_ 안녕하세요.


원장쌤
수영씨는 앞치마 입고, 일 시작해주시고

원장쌤
지연쌤도 하던 일 마저 마무리 해주세요.


김지연
네.



박수영
앞치마…, 이거 입으면 될까요?


김지연
아, 그건 여주쌤 앞치마니까 다른 거 입어주세요.

원장쌤
에이, 오늘 여주쌤도 아파서 못 온다면서요_ 그냥 이거 입어요.

원장쌤
내일 오실 때는 수영쌤 개인 앞치마 사서 와주시고요.


박수영
네


김지연
…아.




전정국
누구예요...?


김지연
몰라요, 갑자기 와서 눈치 없는 짓만 골라서 하고 있어요.




박수영
오랜만이네요?


김태형
어제 만난 게 오늘이 되면 오랜만이 되는 건가요?


박수영
…이거 그리고 계셨네요.


박수영
이거 저도 좋아하는 그림인데ㅎ


김태형
아, 이 그림 제 그림 아니에요. 정국씨 그림입니다.


박수영
그럼 태형씨 그림은 어딨어요?


김태형
수영쌤, 제가 지금 좀 바빠서요.


김태형
비켜주세요.


박수영
수업 시간인데, 어딜 가게요.


김태형
수영쌤이 신경 쓰실 일은 아니라고 생각하는데.



김태형
가볼게요.


박수영
여주쌤.


김태형
…뭐라고요?


박수영
여주쌤, 아픈 거 아니에요.


김태형
무슨 소리를 하는 거예요.


김태형
똑바로 얘기해봐요.


박수영
여주쌤 아픈 거 아니고, 지금 친구 만나고 있어요.


박수영
아프다고 한 이유, 궁금하지 않아요?



박수영
태형씨 얼굴 못 보겠어서 그런 거겠죠.


김태형
그럼, 아프다고 거짓말 하고 여기 안나온 거네요.


김태형
알려주셔서 감사합니다.


김태형
마침, 여주 보러 가려고 하고 있었어요.


박수영
지금 가면, 여주씨가 태형씨를 만나줄까요?


박수영
안 만나줄 것 같은데_


김태형
… 먼저 가볼게요.



김지연
어디 가시게요_


김태형
여주…, 보러 갑니다.


김지연
오늘 저한테 혼자 있고 싶다고 했어요.


김지연
지금 가도 안 만나줄 거예요.


김태형
그래도 일단 가서 빌어야죠.


김태형
오해 풀어야죠.


김지연
… 여주 너무 힘들게하지 마세요.



어느새 하늘은 어두워졌고, 우산도 가져오지 않았는데 비가 오고 있었다.


김태형
천둥 무서워 하는데.

자신은 비를 다 맞고 있지만, 지금 이 순간에도 여주 생각뿐이었다.


날씨는 추웠고, 비까지 맞아 너 추웠지만

그냥 너를 보고싶다는 생각밖에 없었다.

너를 빨리 만나서 내 품안에 넣고 싶고, 오해를 풀고 싶었다.

오늘 하루종일 힘들었을 너를 알기에, 더 빨리 보고싶었다.


그 날과 결과가 똑같을지는 모르지만, 니가 날 다시 받아줄지 모르지만

일단 너에게 전화를 걸었다.


김태형
받아주라 여주야_


그렇게 7통 정도를 걸었지만 들려오는 대답은 길어지는 수신호 뿐이었다.



김태형
나올 때까지 기다릴게_ 좀 진정되면 나 보러 와주라.

받아주지 않는 전화를 들고 너는 들었을 지 모르지만

들어줬으면 좋겠는 마음에 그냥 무작정 기다렸다.



박여주
… 김태형

박여주
너 여기서 뭐해.


너의 집 앞에 서 있는 나에게 우산을 씌워주며 다가온 너였다.

우리가 이제부터 함께 하기로 결정한 그 날처럼, 니가 내 마음을 다시 받아준 그 날처럼

그 날처럼 다시 함께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