__1942년 4월 15일
“너는 어디를 그렇게 걸어 다니고 있는가?(너는 어딜 그리 싸돌아다니는 거냐?)”
오랜만에 뵙는 아버지의 앞은 언제나 긴장되는 자리였다. 아버지 앞에서는 최범규가 있을 수 없었다. ‘엔도 야마토’만 있을 뿐. 그의 아버지는 조선인 중 누구보다 빠르게 아들을 개명시켰고, 가문의 이름도 바꾸었다. 최씨 가문이 사라진 자리에 엔도 가문이 굳게 박혀 있었다.
“최근, 조선인과 잘 어울리는 것 같지만.(요즘 조선인들과 많이 어울리는 것 같던데.)”
“何もないです…!(아무것도 아닙니다…!)”
순간 무슨 배짱이었는지 목소리가 크게 나왔다. 아들에게서 이렇게 큰 소리를 들어본 적이 처음이었던 아버지는 눈썹을 까딱거리며 그 다음 말을 재촉하였다.
“ただ…好奇心です.(그저…호기심입니다.)”
“そんな好奇心などもう持つな。 今世界がどうか知っていながら。愚かでは(그딴 호기심은 이제 더는 갖지 마라. 지금 세상이 어떤 줄 알면서 어리석기는.)”
그때 아버지가 무언가 생각하는 듯 잠시 멈칫하더니 들고 있던 찻잔을 내려놓았다. 그리고 야마토를 등지고 일어섰다. 야마토에게, 아버지는 마치 거대한 벽 같이 느껴졌다. 아버지 엔도 타다요시, 옛 이름 최시형은 원체 풍채가 크고 키가 큰 남자였으나 아들에게는 더욱 더 그러하였다. 타다요시는 잠시 수를 짜내는 듯 하더니 천천히 입을 열었다.
“違う…多分…役に立つかもしらん…(아니…어쩌면…도움이 될 수도 있겠군…)”
“그게 무슨 뜻이죠?(그게 무슨 말이십니까?)”
밀정이 되는 거야.
아버지가 조선말을 했다는 사실에 놀랄 겨를도 없이 심장이 철렁 떨어졌다. 아버지가 저 정도로 비열한 사람이었다는 것에 입을 다물 수가 없었다.
“父…それは……?(아버지…그게 무슨……?)”
“네가 그 독립운동가 나부랭이들과 어울리는 것은 진즉에 알고 있었다. 지로 총독께서 직접 말씀하시더군, 네가 불령선인과 어울려 다닌다고.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네가 잘 알거라 생각한다. 일본과 척을 친다니 그게 가당키나 한 소리냐? 난 잘못 키운 아들놈 하나 때문에 지금껏 내가 매국노라 욕 먹으며 이어온 가문을 개박살낼 생각은 추호도 없어. 허니, 넌 밀정이 돼라.”
“할 수 없습니다... 미도로 할 수 없습니다...
도대체 그가 어떻게 그 사실을 알 수 있었을까. 그러나 야마토는 그것까지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아들의 눈물에도 아비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등 지고 서 있던 아버지가 몸을 돌려 다가왔다. 뺨에 떨어진 육중하고 무거운 손길에 야마토는 방바닥에 볼품없이 널브러졌다. 사내새끼가 이토록 약할 수가. 타다요시는 헛웃음이 나왔다. 그의 장남은 마치 병신처럼 더듬더듬 일본어만 내뱉었다. 그가 그렇게 20년간 키워낸 것임에도 불구하고 타다요시는 야마토를 경멸하였다.
“지금 네 한 몸만 살겠다 이거냐? 네 어미 죽는 꼴 보고 싶어? 조선이 먹힌지도 벌써 40년이 지났다. 허니 우리는 새로운 것을 따라야 한다. 너 한명 총 몇발 쏴봤자 조선은 독립되지 않아. 수없이 많은 인간들이 독립 운운하며 총을 들었다. 헌데, 성공한 적이 있더냐.”
아버지가 싸늘한 눈으로 아들을 내려다보았다.
“단 한번도 없었다. 대일본제국은 고작 그딴 허황된 꿈을 꾸는 자들에게 흔들리지 않아. 아직까지도 모르겠느냐? 우리가 아무리 발버둥쳐봤자 독립 따윈 오지 않을 것이란 것을! 조선, 제 백성도 지키지 못하는 나라가 무슨 나라라고. 그런데도 고집을 부리겠다 이거냐? 그리 어리석게 살다가 네 몸뚱아리는 물론 가문까지 말아먹고 싶냔 말이다!”
아니, 설령 조선이 독립할 수 있다 치자. 아버지가 말했다.
“네가 그 일원이 될 수 있을 것 같으냐?”
“……!”
“넌 아무것도 할 줄 모른다. 조선말을 할 수 있길 하더냐, 조선글을 쓸 수 있길 하더냐. 일본에서 나고 자란 사내의 몸으로 할 수 있는 것은 총 몇 발 쏘는 것 뿐이지. 그런 너를, 아비가 매국노라 일컬어지는 너를, 그들이 믿어줄 것 같으냐?”
“믿을……믿을 겁니다……”
마치 처음 말을 배우는 아이처럼 띄엄띄엄 나오는 조선말에 아버지의 낯빛이 창백해졌다. 네가 어떻게…… 야마토, 아니 최범규는 일어서서 아버지를 똑바로 마주보았다.
“믿…게…만들 겁니다……”
차마 인정할 수가 없었다. 인정하기 싫었다. 그가 아득바득 쌓아온 모든 것들이 아버지에 의해 무너지는 것은 그에게 너무나 잔혹한 짓이었다. 잠시 창백해졌던 아버지의 낯빛이 다시 돌아왔다. 그는 당신의 아들의 뺨을 다시 한번 더 후려쳤다. 최범규는 다시 야마토로 돌아왔다. 그리고 아버지는 야마토의 머리채를 움켜잡고 한 단어씩 내리꽂으며 이야기 하였다.
“밀정이 돼라.”
__1942년 4월 17일
“다들 안녕하셨습니까!”
기합이 팍 들어간 목소리가 기지에 울렸다. 그러자 모두들 얼굴에 밝은 빛을 띠고서 그 목소리를 따라 고개를 돌렸다. 여어, 쩡구기! 지민이 제일 먼저 일어나 반겼다. 남준이 빙긋이 웃음을 띠고 그를 맞았다. 뒤이어 윤기가 들어왔다. 연준은 연기가 피어오르는 담배를 한번 까딱하며 인사했다.
“오랜만이구려.”
“날래 온다고 왔는데 늦었나보군.”
단원들이 살갑게 인사를 나누는 가운데 석진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앞으로는 기지에 자주 방문하지 못할 것 같소.”
찬물처럼 끼얹어진 말에 모두들 태현의 쪽을 바라보았다. 그러나 태현도 당황한 것은 매한가지였다. 태현은 최대한 침착하려 노력하며 석진을 응시했다.
“집안 사람이 알아버렸소.”
“알아버렸다는 자가 누굽니까?”
“…유모.”
석진은 주먹을 말아쥐었다. 그녀는 지난 스무해가 넘는 시간동안 바쁜 어머니를 대신해 석진을 헌신적으로 돌보았다. 따라서 석진은 차마 도령어멈을 쏠 수 없었다. 이미 하인들 사이에서 알음알음 퍼지고 있는 소문이나 단지 소문일 뿐이었으되 도령어멈은 그 소문의 진실을 본 사람이었다. 그러니 당연히 제거함이 옳으나……
“동지께서 함부로 입을 놀리고 다니신 것은 아닌 듯 하고.”
“문신을 보았소. 목욕 시중을 들다가.”
수빈은 잠시 생각하더니 손을 들었다.
“그래도…죽이는 것은 옳지 않은 듯 합니다.”
“뭐가 켕기는게 있나 본데.”
우리 대한청년회의 규칙을 다시 읊어야 하나? 연준이 매우 불쾌하다는 어조로 말했다. 제 8항. 단체를 목격한 외부인이 있다면 즉시 사살할 것. 수빈은 연준을 잠시 노려보았다. 그러나 다시 한번 확실한 목소리로 말했다.
“물론 최 동지의 말씀도 옳습니다. 그러나 그것의 앞에 있는 조항을 무시하셔도 안됩니다. 제 5항. 자신의 몸과 단체를 힘써 보호하되 이때 여자, 노인, 어린아이가 죽거나 다칠 경우에는 아니한다.”
“수빈이 말이 옳습니다. 상위 조항이니 이것을 따르는 것이 옳다고 생각합니다.”
남준이 거들었다. 석진은 그렇게 말이 오가는 동안 죄인처럼 고개를 숙이고 그 말들을 듣고 있었다. 점점 말싸움으로 변질이 될 무렵이었다.
“이래서 계몽운동한다는 놈들은.”
“말 다했습니까?”
“조국을 위해서라면 뭐든지 하겠다더니 이 정도의 당연한 일도 못해서 나중에 어떻게 대의를 짊어지려고 하나? 기억해, 도련님. 이건 애들 장난이 아니야. 당신네들이 끼적이는 소설도 아니라고. 그까짓 독립운동하는 모양새 좀 내고 싶어서 안달났나 본데-”
“그만!”
윤기가 버럭 소리를 질렀다. 터질 듯이 소음이 가득하던 기지도 조용해졌다. 윤기의 발치엔 깨진 찻잔이 있었다.
“간나새끼들도 아니고 이게 뭐하는 짓이야!”
잘 들어, 지금 이건 전쟁이다. 내래 독립군 수장이라 전투라면 이골이 났어. 자네들 같이 하나같이 제 의견만 고집하며 분열되면 어떻게 되는지는 알아? 뒤져, 한놈도 빠짐 없이. 대한을 위한 군사들이 이래 흩어져서 도대체 무엇을 이룰 수 있겠어! 윤기가 쩌렁쩌렁한 목소리로 말했다. 옆에서는 정국이 힘껏 고개를 끄덕였다. 애초에 우리의 가장 큰 목표이자 단체 규칙 제 1항이 무엇인지 벌써 잊은 것이야? 대한청년회 제 1항! 대한의 독립을 위해서 그 어떤 고통도 마다치 아니하며 모두 단결한다! 그것이 바로 니들이 지껄이는 단체 규칙 아니냐고!
“…제 생각에도 사살은 과한 듯 싶습니다.”
태현이 말을 꺼냈다. 연준은 그럴 줄 알았다는 듯 픽 웃으며 소파에 투박하게 앉았다. 그의 입술에는 담배가 물려 있었다.
“알았어. 적어도 이것으로 우리 단체가 독립을 어찌 생각하는지는 알 것 같네.”
감시 정도는 괜찮지, 도련님? 그 유모라는 인간이 어딜 가서 뭘 떠벌릴지 모르잖아. 석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사살하라는 지령이 떨어질까 두려웠는데 다행히 감시에서 끝난다니 천만다행이었다. 그러나 마음놓고 기뻐할 수는 없었다. 석진은 저때문에 침체된 분위기를 애써 외면했다. 어째 귀국하고서 한다는 것이 비겁하게 피하는 것 뿐인지.
“추태를 보였소. 미안하오.”
석진은 난롯가 근처에 쪼그려 앉아 있던 정국에게 다가가 동그란 머리통을 쓰다듬었다. 저래봬도 총을 잡은 지 벌써 칠년이 다 되어 간다고 했다. 석진의 음성에 조용히 앉아 있던 정국은 고개를 들어 석진을 올려다보았다. 석진은 싱긋 웃어주었다.
“민 동지께 듣기로는 만주에서 나고 자라셨다는데.”
“맞습니다!”
“경성은 이번이 처음이오?”
“아닙니다! 대한청년회 서약 때 한번! 대한청년회 정규 모임 때 한번 와보았습니다!”
기합이 잔뜩 들어간 목소리에 석진은 까닭 모를 풋풋함을 느꼈다. 다시 한번 정국의 머리를 쓰다듬은 그는 다시 부드러운 어조로 입을 열었다.
“내 같이 경성 구경을 하는 것은 어떻소? 나도 경성은 10년만이라.”
정국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석진은 정국의 손을 붙잡고 나와 경성의 거리를 걸었다. 아름다웠다. 어슴푸레한 노을이 지기 시작하고 하나둘씩 거리의 등불이 켜졌다. 사람들은 웃고 떠들며 길을 걸어갔고 간혹가다가 황토색 군복이 보이면 둘 다 섬찟 놀라기도 하였다. 이 모든 것을 커다란 눈에 꾹꾹 눌러담는 소년이 있었고 아직 간절한 아우성에서 벗어나지 못한 자도 있었다. 답지 않게 손을 잡고 걸으면서 석진은 문득 이 열일곱의 봄을 채 지나지 아니한 소년의 손이 꽤나 투박하다는 것을 알았다. 물론 저야 늘상 책상 앞에 앉아 공부하는 것 외에는 하는 것이 없었으니 계집아이의 손만큼 고운 것이지만 말이다. 흙먼지 한톨 없이 깨끗하게 빤 옷은 미국에서 본 사내아이들의 옷차림과 다를 것이 없었다. 독립군 장군이라더니 민윤기라는 사람은 살림재주도 있는 모양이었다. 그래, 석진은 다짐하였다. 이 소년의 봄을 지키기로. 모두 버려야 할 터인데 이리 자꾸 아끼게 되어서 어쩌나. 석진은 속으로 웃었다. 평소 엄격한 부모님 아래에서 자랐다는 정국은 부모님에 관한 첫 기억이 함께 총을 쏘시던 모습이라고 하였다. 그렇게 조금 진지해질 무렵에 사탕 꾸러미를 쌓아둔 상인이 보이지 않았더라면 석진은 소년의 어두운 이면을 보았을 터다. 그는 그것에 조금 감사하면서 눈을 빛내며 사탕 꾸러미를 바라보는 정국을 흘깃 엿보았다.
“먹고 싶소?”
“아닙니다! 사내 대장부는 단 것을 즐기지 않는다 하였습니다!”
“이를 어쩌나. 난 대장부가 아닌가 보오.”
석진이 꾸러미를 하나 샀다. 상인이 석진에게 아는 척을 하며 굽실거렸다. 조금 더 걸은 후에 꾸러미에서 빨간 줄무늬가 그려진 사탕을 꺼내 입에 넣은 석진이 사람 좋게 웃어보였다. 정국도 이내 우물쭈물하며 사탕을 맛보았다. 저흰 내일 만주로 돌아갑니다. 정국이 지나가듯이 말했다.
“이거 받으시오.”
석진이 새로 사탕을 사다가 건네주었다. 선물이오. 꾸러미를 받은 정국의 얼굴은 무척이나 행복해 보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