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아가지 못하는 시간들 속 우리
아홉번째 페이지 | 사소한 게 행복이니까.



내가 너를 떠난 그날 밤,

친구한테서 들은 니 모습은 너무 아픔이 아팠대.

근데 그게 나 때문이라고 생각하니까, 그리고 나 때문이 맞으니까

너무 마음이 아프더라고.


그래서 결국 도망쳤어.

너도, 내 친구들도, 나를 아는 사람이 없는 곳으로.

물론 거기서 다시 돌아왔을 때에는, 니가 없더라고.

그렇게 서로를 잊고 자신의 삶을 위해 사는 줄 알았는데.

최근에 다시 들은 니 모습은 내가 생각한 너의 모습과는 달랐어.


너에게 나쁜 짓을 한 건 나인데, 왜 니가 더 아파하는 거고, 왜 니가 더 힘들어하는 건지

왜 그렇게 나를 못 잊는 건지.

물론, 길을 걷다가 마주치게 되면, 내가 도망 갈 것 같지만

길에서 본 니 모습은 행복해보였으면 좋겠다.




정선우
…야, 박지민.


정호석
왜.


정선우
…나 민윤기한테 연락 옴.


정호석
…뭐라고 왔어.


정선우
잘 지내냐는데...?


정호석
차단해_


정호석
알잖아, 그거 전형적이고 뻔한 전남친 연락인 거.


정선우
알긴 아는데.


정선우
술 안 마신 것 같은데.


정선우
오타가 하나도 없어.


정호석
줘봐.



정호석
미쳤네, 차단해.


정선우
뭐하러_ 그냥 놔둬.


정호석
…너 미련 남았어...?


정선우
미쳤어? 무슨 미련이야.


정여주
맞네_ 남았네.


정선우
아니라고.


정호석
맞잖아_


정여주
맞네 -


정선우
나가.


정선우
내 집에서 나가.



정호석
…나 잔다.


정여주
어어, 나도 이제 들어가야겠다ㅎ


정여주
박정우, 잘자_


정선우
11시인데_


정선우
둘 다 안 나와?


정여주
미안, 죽을 죄를 지었다.


정호석
무릎 꿇자.


정선우
됐고, 우선 니 남자친구 얘기나 좀 해봐.


정선우
대신, 자랑 빼고.



정여주
자랑을 안 할 거면 얘기를 왜 해.


정선우
그러네.


정호석
야, 11시인데 니 남자친구는 집에 안 들어간대?



정여주
…그러네, 전화 해볼까.


정선우
해봐, 스피커폰으로_


정여주
…건다.



전정국
* 여보세요_


정여주
* …아직도 집이 아니야?


전정국
* 아, 지금 가려고 하는데, 같이 마셨던 형들이 안 일어나요_


정여주
* 형들?


정여주
* 아, 그 같이 산다던 사촌형?


전정국
* 그 형도 있고_ 다른 형도 있어요ㅎ


전정국
* 누나 지금 나한테 확인 전화한 건가?


정여주
* 어_ 11시인데 집에 아직도 안 들어간 것 같아서.



정선우
목소리는 좋네_


정호석
그러네, 말투도 괜찮고.


정선우
부럽다 -


정호석
넌 남자친구 생기면 바로 나한테 데려와라.


정선우
니가 뭔데.



전정국
* 아, 아니라고_


정여주
* …어? 뭐라고?


전정국
* 아니, 같이 마셨던 형이 많이 취했는데_ 자꾸 바꿔달래요.


정여주
* 바꿔줘봐_ 누군데 자꾸 너를 집에 못 들어가게 하는데.



민윤기
* …여부세요.


정여주
* 누구신데 우리 정국이를 자꾸 잡고 계세요_


민윤기
* 저 민윤기인데요오 -


민윤기
* 정국이 제가 업어키웠는데_ 그쪽이 말도 없이 데려가셨잖아요 -


정여주
* 아니, 저기ㅇ….



정선우
…나 지금 잘못들은 거 아니지.


정호석
…어어, 방금 저 남자가


정호석
민윤기라고 하지 않았냐.


정선우
내가 아는 민윤기냐.


정호석
그런 것 같은데.




민윤기
* …어, 박정우 목소리다_


정여주
* 혹시 민윤기세요?


정여주
* 여기서 다 만나네_ 달리기 진짜 빠르시더라고요.


정여주
* 정우한테 그딴 짓하고 도망가는 거 잡으려고 내가 얼마나 뛰었는데.



전정국
* 뭐야, 뭔 소리예요.


정여주
* 아, 뭐_ 그런 게 있어.


전정국
* 일단 알겠어요_ 이따가 다시 물어볼게요. 지금은 내가 좀 들고 가야 할 사람들이 많아서_


전정국
* 아, 이따가 다시 전화할게요 누나...!


정여주
* 조심해_

탁 -



정여주
나 방금 누구랑 통화한 거냐.


정선우
…그니까, 니 남자친구 친구가 민윤기야...?


정호석
그런 것 같은데.


정선우
미쳤네, 만날 일 없겠지?


정여주
걜 어떻게 만나, 또 도망갈지도 몰라.


정호석
…세상 좁은 거 맞네.



정선우
…됐어, 나 지금 너무 충격적이니까 잘래.


정호석
나도.


정여주
난 정국이한테 전화 오면.



정선우
어, 일단 내일 보자.





정여주
* 아직도 집 도착 안했어?


전정국
* 응_ 좀 오래 걸리는 것 같아요.


정여주
* 춥겠다_ 얼른 가.


전정국
* 안 졸려요? 내일 출근해야죠 -


정여주
* 그래도 너랑 통화는 하고 자야지_


전정국
* 역시, 누나가 나를 더 좋아하는 거 같아.


전정국
* 맞죠.


정여주
* 어어_ 맞아, 그니까 얼른 들어가.


전정국
* 언제는_ 뭐, 연하는 애기같다는둥_ 엄청 말하더니.


전정국
* 내가 그렇게 좋아요?


정여주
* 어, 엄청 좋아.


전정국
* …그럼 나 지금 누나 만나러 갈까요?


정여주
* 지금 12시인데...?


전정국
* 뭐 어때ㅎ


정여주
* …기다릴게.


전정국
* 얼른 뛰어갈게요, 기다리고 있어요ㅎ

뚝 -



정여주
진짜 이런 건 누구한테 배운 거야...








전정국
정여주 -



정여주
…왜 반말이야.


전정국
이참에 말 놓을까요_ 놓지 말까요.


정여주
음_


정여주
놓지 마, 넌 존댓말하는 게 더 귀여워.


전정국
싫어, 사랑해.


정여주
어쭈, 자꾸 까분다 -


전정국
사랑해, 사랑한다고_


전정국
정여주는 내 여자친구야 -


전정국
여주야_ 정여주 -


정여주
ㅎ, 진짜 맞는다ㅎ


전정국
괜찮나봐요, 웃었다ㅎ


정여주
아, 몰라_ 너 짜증나.


정여주
아주 누나 취급도 안해준다 이거지.


정여주
너 집에 가.


전정국
아, 그건 진짜 아니다.


전정국
그럼, 시간도 늦었고_ 하니까,



전정국
한번만 안아주고 가던지.



정여주
…너 왜 그런 말하면서 내 눈을 못 마주치냐_


정여주
똑바로 봐봐 -


전정국
아_ 못 보겠어요.


전정국
나 진짜 이런 거 잘 못하나봐요.


정여주
못하긴, 엄청 잘해서 문제다.


전정국
그래서, 마음에 드나?


정여주
그래_ 마음에 든다.



정여주
야, 나 박정우한테 전화 왔다.


정여주
너 얼른 가_


전정국
아, 아니야.

탁 -


전정국
한 번 안아주고 가요.


정여주
아, 알겠어.

포옥 -


정여주
고마워_ 나랑 만나줘서.


정여주
앞으로 내가 진짜 잘해줄게ㅎ


전정국
누가 보면 누나가 고백한 줄 알겠네ㅎ


전정국
잘자요, 집에 들어가면 연락하고.


정여주
얼른 들어가_








전정국
안 들려요, 크게 말해봐요.


정여주
…맞다고, 그니까 집 나간다고.


전정국
누나 이러는 거 한두번 아니잖아,


전정국
그냥 누워있으면 괜찮아지겠죠, 좀 쉬어요.


정여주
…가지 마.


정여주
가지 말고 내 옆에 있어.



전정국
…나 나갈게요, 이따 봐요.






이게 너와의 마지막이 됐고, 그 이후로는 기억하고 싶지 않은 기억이 됐다.

일도, 단순한 권태기도 아니었던 우리는

그냥 어이가 없는 이별을 맞이했고, 그 끝은 씁쓸만 남았다.

그게 내 선택으로 인한 씁쓸한 결말인 게 문제지만.




정여주
* 넌 또 왜.


박지민
* 박정우가 너 걱정된다고 너한테 전화 좀 해보라고 하길래.


박지민
* 뭔 일 있냐.



박지민
* …너 설마 또 그 일기장 꺼냈어?


박지민
* 갖다버려.


정여주
* 뭘 버려, 이거 손대지 마라.


정여주
* 나한테 신경 끄고 너나 열심히 살아.


박지민
* 어떻게 신경을 꺼.


박지민
* 너 그거 보다가 연락 오래 끊겼던 게 한두번이야?


박지민
* 이제 그만해_


정여주
* …내가 알아서 해.

탁 -


나도 아는데, 나도 너를 아프게 한 걸 아는데.

이기적이게도 널 놓지는 못하겠어.



정여주
박정우 말대로, 니가 먼저 날 잊는 게 더 빠를 것 같아.

